10화. 드러내지 않아 빛이 나는 사람 Ⅰ (2)
그 시간 김지훈은 송진우, 오하석과 함께 담도 폐쇄 수술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과 컨설트 환자는 더 큰 부담이었다.
동료들이 모두 논의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기웃거리는 전공의마다 시연에 집중하라며 손을 흔들어 쫓아냈다.
“일단 담도 폐쇄부터 확실하게 준비하자.”
강한 긴장 속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땀을 흘려 가며 핵심을 잡아낸 후에야 퇴근을 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여러 감정이 교차했지만 첫날, 첫 번째 시연 포기가 다시 떠올랐다.
‘집에 늦게 들어와도 좋으니까 철저히 준비하라고 할 정도로 경아 씨가 많이 기대했는데.’
고경아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남편 정말 열심히 했는데 어떻게 해.”
“난 괜찮아요. 아이가 더 중요하죠.”
숨 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부른 배를 만지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예정대로 출산한다면 배 속의 딸과 불과 두 달도 차이 나지 않는 아이의 생명이 걸린 수술이었다.
직업 때문이 아니라 같은 엄마로서 진한 아픔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남편에게 고맙고 감사한지, 김지훈의 손을 잡으며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내가 이래서 우리 남편을 사랑할 수밖에 없어. 지훈 씨, 복숭아라도 내올까요?”
남산만 한 배를 두고 어찌 손에 칼을!
큰일 날 소리다.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아내와 딸 모두 지금처럼 건강하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의사도 가족이 아프면 가슴이 찢어지긴 마찬가지다.
부산한 이틀이 지났다.
전원이 모여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이준영 교수, 신현수, 이경석이 첫날 시연을 담당하게 됐다. 다들 퇴근을 미루고 준비에 몰두했다. 이혁원과 나종진은 상기된 얼굴로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던 대로만 해.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어.”
태울 시점이 지난 지 오래였다. 용기를 북돋아 주고, 소아과 병동을 찾았다.
‘스승님 시연이 정말 기대되네. 마지막 날인 토요일 시연은 반드시 봐야 하는데 어떻게 되려나?’
반반의 확률에 은근한 초조함이 깃들었다.
다행히 6주 된 아기, 이준민의 담도염 증세가 사라졌다. 예정된 시간에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수술 잘 끝나고, 절실하게 원하는 운만 따라 준다면 평생 건강하게 살 것이다.
단일성이냐, 다발성이냐.
간 외에 국한됐는지, 간 내에도 발생했는지.
그것이 관건이었다.
‘어떤 경우든 내가 수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후우! 이준민, 우리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 보자. 그 정도 운쯤은 당연히 있어야 돼.’
이준민의 조그만 주먹을 꼭 잡아 준 김지훈이 집도의가 바뀌게 된 환자들을 다시 찾았다. 막상 얼굴을 보자 아쉬운 마음이 또 들었다.
하지만 당연한 선택이다.
긍정만큼 좋은 약도 없었다.
‘야! 덕분에 일찍 퇴근하네. 현수야, 경석이 형, 준비 열심히 하세요. 나는 내일 밤에 합류하겠습니다.’
“우리 남편 너무 멋져!”
고경아가 유난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 며칠 멋있다는 말을 남발했다. 남편 마음을 달래 주고자 하는 마음이 빤히 보여 고마울 뿐이었다.
“경아 씨, 당연한 일이죠. 괜히 이런 일로 흥분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요. 다음 주 수요일이 예정일이니까 조심, 또 조심.”
아내의 응원 덕에 평소와 다름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모로 누워, 가슴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고경아의 뒤척임이 느껴졌지만 어느 틈엔가 익숙해졌다.
얼마나 잤을까?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팔이 뻐근할 정도였다.
“어? 벌써 일어날 시간이 됐나?”
“지훈 씨, 나 배 아파요.”
잠이 확 달아났다.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
황급히 일어난 김지훈이 눈을 비비며 고경아의 배를 만졌다.
“어디? 어디가 아파요? 설마 아뻬는 아니겠지?”
투철한 직업 정신이 아니라 방정이다.
급히 입을 막는 순간 고경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 아랫배가 자꾸 아파요. 어젯밤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진통 같아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진통이라니, ‘헉’ 소리가 절로 났다. 대충 10~15분 간격으로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신없이 머리가 굴러갔다.
아랫배에 국한된 불규칙한 간격의 통증.
일주일도 안 남은 출산 예정일.
가진통일 가능성이 높았다. 확실하다면 여유가 있겠지만 10분 간격은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이 다급해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언제 진진통이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출근한 뒤 시작된다면 챙겨 줄 사람도 없었다. 연락이 된다고 해도 수술 중에는 꼼짝할 수 없다.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병원으로 갑시다.”
“진통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조금 더 기다려 보면 안 될까요? 단순한 복통일 수도 있잖아요.”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일단 병원 가서 확인해야 안심을 하죠.”
부랴부랴 채비를 했다.
걸어서 가도 15분 거리에 불과하고, 차를 타고 가는데 왜 이렇게 먼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이 고경아를 부축하고 들어서자 간호사들이 깜짝 놀랐다.
“선생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산부인과 선생님 콜 좀 해 줘요. 진통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담당 교수님에게 연락할까요?”
수술이나 난산이 있다면 모를까, 교수가 있을 리 없었다. 분만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연락하는 것 역시 맞지 않는 일이었다.
“당직 치프에게 연락해 주세요.”
잠시 후, 고경아의 상태를 확인한 산부인과 치프가 가진통이 확실하다며 즉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교수라고 백번 부르짖어 봐야 일반외과 의사다.
급히 입원 수속을 하고 분만 대기실로 향했다. 이제 진통이 시작된 산모부터 분만실로 곧 옮겨야 할 산모까지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아아악! 야! 너! 아아아!
온갖 소리가 다 터졌다.
고경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걱정이 앞섰다. 아직은 간간이 찌푸리는 정도지만 곧 진짜 진통이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아플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내가 옆에 있어야 되는데, 수술을 미룰 수도 없고 죽겠네. 이러다 정말 경아 씨 혼자 애 낳아야 하는 거 아냐? 우리 딸 태어나는 것도 봐야 하는데.’
온갖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입술만 잘근잘근 씹던 김지훈이 무심코 시계를 보다 말고 화들짝 놀랐다.
오전 6시다.
시연 날이라 회진을 빨리 돌아야 하고, 이준민은 이제 6주 됐기에 수술도 가급적 빨리 시작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야 처갓집이 생각났다.
부리나케 전화를 했다. 장모님은 물론 장인어른까지 난리 났다.
(병원에 가기 전에 연락부터 했어야지, 이제 전화하면 어떻게 해. 사람이 말이야. 빨리 끊어.)
다행히 고경순과 고경희가 있다.
(7시 반 안에 도착할 거예요.)
진통 간격이 조금씩 짧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아랫배만 아픈 상태였지만 전체로 퍼지면 진짜 분만 시작이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를 정도로 초조한 시간이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처제가 도착하려면 멀었나?’
7시 30분이 거의 다 됐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식구들이 우르르 도착했다.
원주가 가까운 곳이 아닌데 장인어른과 장모님까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보통 서두른 정도가 아니었다.
“아버님, 어머님, 빨리 오셨네요.”
“자네 시연하는 날이라 그때 벌써 일어나 있었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경아야, 많이 아프니?”
“지금은 참을 만해요.”
장모님은 한걱정이었다.
“경순아, 경희야, 잘 지켜봐. 에휴! 남편이 의사면 뭐 해. 김 서방, 휴가 같은 거 못 내나?”
“여보! 오늘부터 외부 사람들 앞에서 수술 시연을 해야 한다고 내가 오면서 누누이 말했잖아.”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죠. 남편 없이 애 낳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알아요?”
전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장인어른은 사위가 첫날 시연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장모님도 내심 자랑스러울 테지만, 고경아 때문에 무척 서운할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려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출산을 앞둔 아내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환자 또한 의사의 손과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다.
“경아 씨, 빨리 회진 돌고 올게요.”
재빨리 회진을 돌았다.
여느 때와 달리 서두르는 모습에 환자는 물론 교수들까지 모두 의아해했다.
“와이프가 오늘 출산할 것 같습니다.”
하나같이 놀란 얼굴이었다.
“뭐? 하필이면 오늘이니. 가만! 다음 주가 출산 예정일 아니었어? 허어! 수술은 또 어떻게 한다. 지금이라도 보호자에게 양해 구하고 바꿀까?”
믿지 못할 써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준민과 엄마에게 이미 약속했고, 준비까지 모두 마쳤다. 곧 태어날 딸 때문이라도 아픈 아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내 딸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부모 마음은 똑같을 거야. 준민이 엄마는 누구보다 간절하겠지.’
“아닙니다. 제가 수술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생각해 보면 우리 중에 자식 낳을 때 옆에 있어 준 사람도 없다. 고성문 선생님도 일 다 끝나고 애 보러 갔었어.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지만 그게 의사야, 의사.”
이준영 교수가 힐끗 시선을 주었다.
“빨리 가지 않고 뭐 해? 경아 한 번 더 보고, 서운하지 않게 잘 말한 다음에 수술 들어가.”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꾸벅 인사하고 분만 대기실로 달려갔다.
아아아!
고경아의 고통이 조금 더 심해졌다. 혈색까지 하얗게 변한 것 같았다.
딸이 태어나는 순간만은 아내의 곁을 지키고 싶었다.
고경아와 함께 세상 빛을 처음 맞이하는 딸을 웃으며 맞이하고 싶었다.
간절한 바람일 뿐이었다.
‘수술 시간만 4시간이 넘게 걸릴 텐데, 그때까지 진통을 겪으면 안 되지. 경아 씨가 고생 덜 하는 게 최고야. 경아 씨, 오래 끌지 말고 빨리 낳았으면 좋겠어요.’
어느새 8시 30분이다.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결정을 냈는데 마음이 따라 주질 않았다.
식은땀이 왜 나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준민과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가를 굳혀야 했다.
‘6주밖에 안 된 준민이 수술을 미룰 수는 없어. 경아 씨도, 우리 딸도 원하지 않을 거야.’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고경아였지만 막상 말을 꺼내기 쉽지 않았다. 이마를 적신 땀을 닦아 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경아 씨, 나 수술 들어갈 시간이에요.”
“내 걱정 하지 말고 수술 잘 마쳐요.”
고경아가 애써 웃음 지으며 도리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미 축축해진 손에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만 내쉬었다.
‘미안해요.’
고성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 서방, 9시 반부터 시작이잖아. 아프고 힘든 사람을 두고 왜 이렇게 빨리 가? 준비할 게 있어도 이런 때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지.”
“아버님, 전 오늘 시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첫날, 첫 시연 일정을 바꾼 거야? 자네가 빠지면 제대로 시연이 안 되잖아. 라파로를 자네만큼 하는 의사가 어디 있어?”
사정도 듣기 전에 흥분을 참지 못했다.
고맙고 감사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대화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간략하게 설명하고 수술 방으로 향했다. 송진우와 오하석이 대기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칭얼대는 조그만 아기와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힌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수술 팀의 긴장도 솟구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시연이 벌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이른 회진을 끝낸 교수들 모두 수술 방에 모여 철저하게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돌아온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의 눈가에 묘한 빛이 감돌았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많이 서운할 텐데 꿋꿋한 게 누굴 닮았나?’
수술에 참가하지 않는 전공의들은 전국에서 참석하는 의사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나둘 참석자들이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3년 차 강병옥입니다. 선생님께선 본관 3층에 있는 수술 방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2년 차 차상수입니다. 별관 지하 강당에 자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시연은 9시 30분부터 시작하고, 식사는 1시부터 구내식당에서 뷔페로 진행됩니다.”
장소는 한정돼 있고, 참석자는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연배나 각 병원 내 직위 등에 따라 적절하게 자리 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의사들이 수술 방에 딸린 회의실에 속속 자리했다. 모두들 기대 만발이었고, 학회 임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올바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최인호 교수와 진충기도 보였다.
첫날 시연 일정을 보며 입술을 내밀었다.
“선생님, 오늘 일정에 김지훈이 아예 안 보입니다. 첫날, 첫 시연이라고 했는데 이상합니다.”
“대단한 명예인데 의외군. 무슨 일 있나?”
몇몇 의사들도 의아한 기색이었다.
진충기가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혹시 소문대로.”
눈가를 좁히며 흥미를 보였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최인호 교수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론 알면서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두고 보면 알겠지.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시연해야 할 테니까 신경 꺼. 다들 어떻게 수술하는지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 허술한 점이 있는지 확실하게 찾아내야 돼.”
이혁민 교수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오늘 있을 시연에 대해 설명했다.
외과 학회 사상 첫 시연 행사의 첫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첫 번째 시연자라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영예로운 순간이자 개인적으로도 큰 명예였다.
다들 김지훈이 왜 첫날 집도의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는지 궁금해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국내 최초로 간 절제까지 성공한 써전이기에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직한 부산함이 서서히 사라졌다.
9시 30분 정각.
드디어 첫 번째 시연자가 수술실로 들어섰다.
“첫 시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