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65화 (865/1,329)

9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2)

송진우 얼굴이 벌게질 만한 컨설트였다.

선천성 담도 폐쇄증은 한 개 이상의 간 내 담도, 혹은 담관이 담즙 흐름을 막을 정도로 매우 좁아져 있거나 아예 없는 질환이다. 15,000분의 1의 유병률을 보이며, 여아에게 많이 보인다.

담도가 막힌 것과 다름없어 황달, 흰색 변, 구토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초기에는 신생아 황달 발생과 구분하기 쉽지 않아 대개 4~6주 후에 발견하게 된다.

이대로 방치하면 100퍼센트 사망이다.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다.

“몇 개월이야?”

“6주 조금 넘었습니다.”

늦지 않게 발견했지만 이제 6주 된 아기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처럼 애지중지해야 할 때인데, 그 조그만 배에 칼을 대야 한다니 엄마 아빠의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곧 세상의 빛을 볼 딸 생각이 난 김지훈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건강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말은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지만, 아이의 아픔이 유독 더 아프게 다가왔다.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가 보자.”

소아과 병동으로 가는 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도 울어 목쉰 울음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가슴 찢어짐이 느껴졌다.

생후 6주 된 남아, 이준민.

‘여아한테 흔하다는 건 교과서 얘기지.’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신생아와 다를 바가 없어 검사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초음파 소견과 혈액 검사만 보아도 담도 폐쇄를 부정할 근거는 하나도 없었다.

“이쪽입니다.”

송진우의 목소리가 유난히 나직했다. 뒤따르던 김지훈이 힐끗 시선을 주었다.

‘수진이 때부터인지 그 전부터인지 모르지만, 소아과 컨설트만 오면 너무 심각해지네. 그만큼 환자와 보호자의 아픔을 느낀다는 말이겠지? 좋은 일이다.’

순간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지금은 6주 된 아기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언뜻 한 가지 문제가 덜컥 걸렸지만 치료 방침은 이미 나와 있었다.

으아앙! 으아앙!

울음부터 들렸다.

노래진 얼굴, 뽀얗게 빛나야 할 피부마저 갈색으로 변했다. 조그만 발등에 꽂은 바늘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수액에 의존해야 하는 모습도 모두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안녕하세요.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눈가가 바짝 말라 있었다. 더 이상 흘릴 눈물 한 방울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산후 조리도 채 끝내지 못한 시기에, 수심 가득한 얼굴은 엄마가 환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소아과 선생님께 말씀 들으셨겠지만 수술 이외에 다른 치료 방법이 없습니다.”

“어떻게 수술하나요?”

“담낭을 제거하고, 정상적인 담도를 찾아 소장과 연결해야 합니다.”

담담하려 애쓰던 엄마가 아기를 꼭 안았다. 훨씬 경한 질환에도 울며불며 땅이 꺼져라 한숨짓는 사람이 엄마다. 생각만으로도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그런 수술을 받을 수 있나요? 정말 수술 말고는 방법이 없나요?”

“불행히도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담즙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하는 자체로 위험합니다. 만일 간 내에 담도염이 심하게 발생한다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햇빛을 본 지 6주밖에 안 된 아이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무수한 죽음을 봐야 하는 의사라고 해도 말이다.

엄마의 눈에 두려움이 실렸다.

“선생님, 수술만 받으면 건강해지는 건가요?”

대답이 막막했다.

수술한다고 해도 담즙이 흐를 통로를 마련해 줄 뿐이었다. 미진할 수밖에 없는 검사 탓에 단일성인지, 다발성인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 좁아진 부분이 간 내 담도에도 있고, 다발성이라면 제거하거나 연결할 방법이 없다. 결국 수술 후, 퇴원한 후에도 담도염 발생 가능성은 항상 상존하게 된다.

어린아이이기에 성인보다 훨씬 치명적인 합병증이었다. 최악의 경우 반복되는 염증으로 간경화까지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었다.

유일한 희망은 폐쇄된 부분이 간 밖 담도에 국한된 경우였다. 그것도 췌장 관과 연결되는 부분 상방에서 발생했을 때 한해서 말이다.

소아과 교수가 이미 설명했을 테지만 엄마는 믿기 싫을 것이다. 유일한 치료인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에게 희망적인 말을 듣고 싶은지도 몰랐다.

“경과를 봐야 합니다.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 거죠?”

“아이부터 살리셔야죠.”

엄마의 가슴을 후벼 파는 치명적인 말이었다.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애간장이 타는 것 같은 서러운 울음에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참기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소아과 교수가 들어와서야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김 교수, 언제 수술할 수 있겠어?”

“내일은 이미 늦었고, 목요일부터 학회에서 주최하는 수술 시연 행사가 있습니다. 가급적 빨리해야 하니까 수요일이 좋겠습니다. 가능할까요?”

불과 이틀 앞이다.

소아과 교수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에겐 더 난감한 말이 나왔다.

“수요일은 곤란해. 황달 수치야 당연히 높지만 열도 있고, 염증 수치까지 꽤 높아. 담도염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수술이 가능하겠어?”

성인과는 또 다르다.

6주밖에 안 된 아기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수술 자체를 버티지 못한다. 다행히 담도염이 빠르게 잡힌다고 해도 다음 주로 미루면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

“확실하게 잡은 상태에서 수술해야 안전합니다.”

“최소한 목요일은 돼야 가능할 텐데…….”

진퇴양난이었다.

목요일은 시연 첫날이다.

병원 내 행사도 아니고 학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임의대로 일정을 조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6주 된 아이의 수술을 미루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었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은 아니지만 하루 이틀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수술 시연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다. 전국에서 참석하는 수많은 의사들에게 말뿐이 아닌 실제 실력을 보여 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더구나 첫 번째로 시연을 한다.

교수들의 배려와 동료의 이해를 바탕으로 결정된 일이었다. 어떤 일이든 첫 번째 시작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어깨에 걸린 짐도 무거웠다.

‘후우! 첫 시연, 첫 수술인데.’

반면 담도 폐쇄 수술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아이의 생명이 걸려 있다. 시연이란 행사에 영향을 받으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선택은 명확했지만 조그만 욕심을 모두 버릴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문득 시연에 참가하지 않는 교수들이 떠올랐다. 누군가 대신 수술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 대신 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이혁민 선생님은 시연 진행으로 바쁘실 테니까, 박승준 선생님이나 지동훈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조용히 아이에게 눈길만 주고 있는 송진우가 보였다. 고통조차 호소하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측은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수술 날짜를 정하는 상황에 엄마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가족도 없이 홀로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안함이 전해진 탓인지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정말 아프다고, 정말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고통을 말할 수 있는 나이였다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었을 것이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진료한 의사와 수술한 의사가 혼재되며 문제를 일으킨 진충기와 오창도까지 떠올랐다. 경우가 다르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지만 이미 엄마를 만난 이상 차이는 없었다.

‘시연도 결국 환자를 보다 확실하게 치료하기 위한 일이다. 개인적인 명예와 명성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어.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전달하고 싶다는 각오는 어디로 간 거지? 바보 같은 놈! 진우 아니었으면 평생 후회할 짓을 할 뻔했잖아. 김지훈, 정신 차리자.’

엄마의 눈에서 지독한 아픔이 느껴졌다.

절대 외면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미적거리면 엄마의 불안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시연은 시연일 뿐이다. 내가 없다고 진행이 안 될 리도 없고, 날 대신해 수술할 사람은 많다.’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일단 목요일 첫 수술로 잡을 테니, 그 전에 담도염을 확실하게 잡아 주십시오.”

“고마워. 근데 그날 김 교수 시연은 없어?”

입장 난처하게 만들 일이 아니었다.

“라파로를 저만 하나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머니, 예정대로 진행되면 좋지만 갑작스럽게 변화가 생길 경우 응급으로 수술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수술이 미뤄질 수 있으니까 주의하셔야 합니다.”

보호자에게 시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른 보상을 바란 결정도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과 잘 부탁한다는 말로 충분했다.

“진우야, 아이 상태 수시로 파악해. 스케줄 낼 때 김진호 선생님에게 마취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려.”

깨끗하게 정리하고 다음 컨설트를 보러 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환이 이어졌다. 상당한 시간을 쏟아 검사 결과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환자와 면담했다.

환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고민스러운 말이 이어졌다. 시연 행사와 맞물리며 수술 날짜까지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소화기 교수와 한동안 상의를 한 후에야 병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술해야지.”

“언제 하실 겁니까?”

눈가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회진을 시작하는 이준영 교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주어진 시연 일정을 마음대로 취소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십분 이해하겠지만 시연을 주관하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기에 최소한 상의 정도는 했어야 했다.

‘어후!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은지 모르겠네. 미리 전화 한 통이라도 드렸으면 고민할 일도 아니었잖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전전긍긍, 회진이 끝나기를 기다려 이실직고했다. 입을 열기도 어려운데 하필이면 송재덕 교수까지 옆에 있었다.

“뭐? 목요일에 담도 폐쇄 수술을 잡았다고? 그럼 네가 맡은 시연은 누가 하니? 누가? 그것도 첫 번째 시연인데 큰일 났다, 큰일. 전국에서 의사들이 올라오는 자린데 이걸 어쩐다. 이걸.”

눈까지 크게 뜨며 난리 났다는 표정이었다.

“네 얼굴 보니까 이 교수랑 상의도 안 했구나? 우리 김 교수, 많이 컸다. 많이. 전공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도대체 세월이 얼마나 흐른 거야. 그래서 내 무릎이 이렇게 아프구나. 내 무릎이.”

엉뚱한 말까지 하며 이준영 교수 팔을 툭툭 쳤다. 김지훈에게 눈길만 줄 뿐 아무 말도 없자,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스윽 돌렸다.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잔뜩 걸려 있었다.

‘네가 말한 시연의 의미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잘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아쉽겠지만, 그래서 우리가 널 철석처럼 믿을 수밖에 없구나.’

“이 교수, 왜 말이 없어? 말이. 김지훈이 사고 쳤는데 혼을 내든지, 아니면 수습이라도 해야 되잖아. 제자라고 봐주면 안 된다. 지훈아, 교수야, 우리 입장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어떻게 하니? 어떻게?”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보호자와 소아과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승과 먼저 상의했어야 했다. 단 10분만 여유를 가졌어도 될 일을 두고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

‘내 결정이 틀린 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진행할 일이 아니었어. 오전에는 시간을 낼 수 없는데, 내가 시연할 수술을 누가 대신 하지?’

스승의 말만 기다렸다.

잠시 생각에 잠긴 채 눈길을 준 이준영 교수가 별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입가가 살짝 씰룩거린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뭐야?”

“소아과에서 제게 컨설트를 냈고, 아이와 엄마까지 봤습니다. 설명까지 다 한 상황이라 다른 선생님께 미룰 수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연이다. 후회하지 않겠어?”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요일 시연 일정을 생각하고 먼저 상의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이하고 엄마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설명할 일 아니다. 됐다.”

단 한마디에 상황이 정리됐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졌다. 팔다리에 힘은 왜 빠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 시연은 누가?”

“대신 할 사람 많아. 네가 수술하기로 한 환자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하게 설명하고 양해부터 구해.”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죄송한 일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진충기도 올 텐데 첫 번째 시연을 포기해? 녀석! 고맙다. 하지만 때론 욕심을 부려도 좋아. 박 교수나 지 교수에게 부탁해도 괜찮은 일이었어.’

한 고비 넘었는데, 이혁민 교수가 딱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 있습니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 눈매가 매서워졌다. 과장이기에 부담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닌데 신경 쓸 일이 또 늘었다는 표정이었다. 눈빛만으로 김지훈을 잘게 썰어 다진 후 한마디 던졌다.

“니 수술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알지?”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 아니가?”

이럴 땐 입 꾹 다무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해야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에게 두 번째 컨설트에 대해 설명했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수술이었다.

“네 결정에 달린 수술이다.”

역시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송재덕 교수의 입을 콱 막아 버릴 정도로 완벽하고, 끝없는 신뢰였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서는 스승의 등이 한없이 넓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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