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뜻하지 않은 또 한 번의 경험 (2)
제거해야 할 부분을 보비로 지져 절개선을 정했다. 깊게 파낼 이유가 없지만 난이도는 좌측 간 절제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었다.
눈가를 좁힌 채 화면을 보던 김지훈이 힘차게 말했다.
“모스키토 주세요. 경석이 형, 석션 대기하시고. 종진아, 최대한 움직이지 말자. 너한테 달렸다.”
서걱! 서걱!
모스키토로 간을 살짝 팠다.
단단한 듯 약한 듯, 간 특유의 감촉이 전해지며 조직이 잘렸다. 모스키토를 따라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출혈량이 많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염증이 퍼졌다는 의미였다.
“보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하연 연기와 함께 조직 일부가 지져졌다.
검은 피딱지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염증 때문에 보비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겠어.’
“수처, 타이. 계속 준비해요.”
적정한 깊이로 간을 파고든 바늘이 빠져나왔다.
재빨리 기구를 바꾼 김지훈이 타이를 했다.
혈관종 때 느꼈던 감각을 기억하며 매듭을 지었다. 도움이 될 줄 알았건만 경험적 감각은 무시해야 할 정도로 조직이 약했다.
기구로 전해지는 감각과 화면으로 간이 조여지는 상황을 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결코 쉽지 않았다.
첫 번째 타이를 간신히 마쳤다.
적정한지 알 수 없어 잠시 기다리며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약간은 과한 힘이 가해진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출혈은 잡혔다.
‘후우! 하마터면 간이 찢어질 뻔했네. 정상 조직을 타이할 때보다 살짝 힘을 덜 주는 게 낫겠어.’
모스키토로 천천히 조직을 잘라 나갔다. 어김없이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보비로 충분히 지혈되지 않으니까 주의합시다. 석션!”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
“거즈로 닦읍시다. 간호사, 거즈 많이 사용해야 하니까 카운트 확실하게 합시다. 종진아, 조금 더 들어 올려도 괜찮아. 자신감을 갖고 따라와.”
사실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은 김지훈이었다.
염증이 발생한 조직이 정상 조직과 얼마나 다른지 잘 알기에 더욱 강한 긴장이 다가왔다. 은근한 두려움까지 느껴지며 등짝이 젖은 지 오래였다.
조금씩 전진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피가 흘렀다. 더욱 꼼꼼하고 촘촘하게 수처와 타이를 해야 했다. 혈관종 수술할 때가 훨씬 편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경석과 나종진도 바짝 긴장했다.
서서히 남은 담낭이 떨어져 나왔다.
갈수록 수처해야 할 부위가 간 밑으로 숨으며 더욱 까다로워지기 시작했다. 수술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였지만 피 말리는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김지훈의 손이 점점 느려졌다. 피에 물든 거즈를 빼내는 이경석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나종진은 숨을 죽인 채 집도의의 오더에 집중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오창도였다. 위치가 좋지 않아 기구를 조작하기 힘들었고, 간을 건드리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치솟았다. 수술 팀 이상으로 강한 긴장에 휩싸였다.
‘후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개복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것만이 환자와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결과였다.
살얼음판이 따로 없었다. 오직 김지훈의 실력만을 믿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를 믿어야 했다.
띠! 띠! 띠! 띠! 띠!
처컥! 처컥!
삐이이이! 삐이이이!
규칙적인 기계음만 들렸다.
수술 팀의 모든 감각은 오직 한 곳에만 집중돼 있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손이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세컨은 정확하게 집도의의 주문을 이행하고 있었다.
피에 물든 거즈가 빠져나왔다. 새로운 거즈가 끊임없이 들어갔다.
악전고투 속에서도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절제된 간을 묶은 실매듭은 단단하게 지탱됐고, 은빛 바늘은 새로운 손상을 유발하지 않았다.
간에서 떨어져 나온 담낭이 힘없이 처졌다.
마침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진아, 거의 마지막이다. 움직이지 말고 잘 고정시켜. 경석이 형, 타이할 때 매듭이 잘 안 보입니다. 시야 확보 부탁해요.”
거의 다 떨어져 나왔다. 가장 깊숙한 부분만이 남았다.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시야가 극도로 나빠졌다. 기구 조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이 부분 처리에 성패가 달렸다는 사실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김지훈이 개복 때처럼 몸을 비틀며 간을 절개한 후 필사적으로 수처와 타이를 진행했다. 수술 시야를 최대한 확보하는 이경석의 이마가 땀으로 젖어 들었다. 나종진은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가늘고 긴 담낭이 툭 떨어졌다.
“담낭 나옵니다.”
드디어 남은 담낭이 모두 제거됐다.
끝이 아니다. 안심할 단계도 아니었다.
담낭의 마지막 부분이 제거된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솟아나오며 간을 타고 흘렀다. 담즙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받은 부분이었다. 염증이 가장 심한 탓에 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었다.
“수처! 타이! 거즈 들어오세요.”
간신히 타이까지 마쳤다.
여전히 피가 멈추지 않았다. 봉합 부분을 닦은 거즈가 순식간에 검붉게 물들었다.
압박과 보비는 효과조차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와 개복할 상황에 직면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더 큰 바늘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바늘이 커진 만큼 조작은 더욱 어려워진다. 더구나 끝이 뭉뚝하지 않고 날카롭다. 바늘이 파고든 자리를 따라 새로운 손상이 생길 가능성이 치솟았다.
‘집중하자. 내 손과 우리 팀을 믿자.’
“한 사이즈 더 큰 바늘 주세요.”
큰 바늘이란 소리에 오창도가 흠칫 놀랐다. 진충기가 간 절제를 실패한 이유였기 때문이었다. 참관을 하며 안전한 선 이상으로 간을 파고든 바늘이 어떤 일을 일으켰는지 똑똑히 보았다.
‘간 봉합용 바늘도 아닌 일반 바늘로 괜찮을까?’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다들 움직이지 말아요. 긴장합시다.”
목소리마저 나직해졌다.
은빛 바늘이 간 깊숙한 곳을 찌르고 들어갔다. 서서히 힘을 주며 미세한 감촉까지 느끼려 애썼다. 숨은 혈관이나 담도를 찌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그러나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반대쪽에서 날카로운 바늘 끝이 반짝였다. 바늘을 빼는 순간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렀다.
허용할 수 있는 양 이상이면 개복이다.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타이를 제대로 하지 못해도 역시 개복이다.
매듭을 짓는 김지훈이 눈가를 좁힌 채 화면만 바라보았다. 완벽하지 않으면 복강경으로는 더 이상 출혈을 잡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극도의 신중함을 유지하며 간 깊숙한 곳을 조였다. 긴장을 못 이긴 한 방울의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이 정도면 될까? 더 이상 조이면 간이 찢어진다.’
경험적 감각과 약해진 간 조직 상태를 쉬지 않고 떠올리며 타이를 끝냈다. 실 양끝을 물고 움직이던 기구를 푼 김지훈이 훅! 숨을 내쉬었다.
찐득찐득 강한 긴장이 온몸을 휘감은 채였다.
이경석이 카메라를 접근시켰다. 간 봉합 부분이 크게 확대됐다.
수술 팀의 모든 시선이 고정됐다.
째깍! 째깍!
어디선가 솟아 나오던 피가 서서히 사라졌다.
성공이다.
피 마르는 긴장 속에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길게 숨은 내쉰 김지훈이 수술 팀을 보았다. 밝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덕분에 잘 끝났네. 마무리까지 긴장 풀지 맙시다.”
수술 팀의 눈가에도 안도감과 편안함이 맴돌았다.
오창도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김지훈의 수술을 실제로 보니 학회 때 이상의 감흥이 다가왔다.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문득 진충기와 함께했던 수술이 떠올랐다. 모든 과정을 자신이 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살벌하게 변하는 분위기까지 말이다.
‘김지훈 선생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진충기 선생님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무엇보다 달라. 우리와는 분위기가 정말 달라. 한 교수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느새 수술이 끝났다. 수술 팀의 눈에 강한 자부심이 서렸다.
환자가 무사히 깨어날 때까지 아무도 수술 방을 떠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조용히 환자를 지켜보며 드레인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 또한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환자에 관한 일은 절대 평소와 달라서는 안 된다. 보호자에게 결과를 설명한 김지훈이 병실로 올라가 환자가 잘 깼는지 확인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많이 아프시면 우리 선생님이나 간호사에게 말씀하세요. 바로 조치를 취해 드릴 겁니다.”
“으으으!”
생각 이상으로 길어진 수술에 환자가 신음만 흘렸지만 반응이 느리지 않았다. 빨간 볼과 약간의 피만 묻어 나오는 드레인에 한결 안심이 됐다.
“보호자분,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만, 말씀드린 것처럼 간 일부를 절제해서 며칠 지켜봐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보호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복강경을 이용한 세 번째 간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가슴 가득 밀려오는 알지 못할 뿌듯함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후욱! 후욱! 다음번엔 보다 확실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재수술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과실이라는 면을 면할 길이 없지만, 보호자와 집도의 사이의 간극을 줄여 주면 원만한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보인 행동은 일상적인 일일 뿐이었다. 입장이 입장인지라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던 오창도가 은근히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공의가 있는데 수술이 끝나자마자 병실까지 올라가? 오늘 수술을 봐서는 진충기 선생님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이 정도 실력을 가졌다면 혈관종도 혼자 한 것이 틀림없어. 학회에서 들은 대로 수술 팀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일까?’
오창도와 자리를 가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는 만삭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마님의 배가 불렀다. 한 가지 의문만 해소하고 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수술이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상념에서 깨어난 오창도가 한숨을 쉬었다. 현실의 무게가 강하게 어깨를 짓눌렀다.
“제가 먼저 드려야 할 말씀인데 죄송합니다. 라파로로 잘 마무리 지어 주셨고, 피곤하실 텐데 환자분까지 직접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실례인 줄 알지만 담낭을 남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수술 이후에도 환자분 진료에 불찰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담즙 유출을 놓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지훈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의료 과실이다.
가뜩이나 심란할 오창도였다. 집도의로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겠지만, 나이 지긋한 의사가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의사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오창도가 콧등을 찡그렸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지만 이번 경우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빠져나갈 궁리보다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해결에 임해야 할 일이었다.
마음은 그렇지만 의사의 능력과 실력은 물론 환자를 대하는 자세와 관련된 물음이었다. 자존심 때문인지 오창도의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김지훈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를 묻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무척 힘드실 테지만 이유를 알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후우! 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네. 큰 도움을 받았는데 우리 병원 내부 일이라고 아예 입을 다무는 것이 예의는 아니겠지. 허용하는 선까지 솔직하게 말하자. 김지훈 선생님은 그래도 되는 사람 같다.’
“우리 병원 시스템이 다소 달라 수술 중 실수가 일어난 이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굴곡 담낭을 놓친 것은 명백한 제 잘못이 맞습니다. 어떤 상황이었든 간에 철저하게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리고 수술 후 제가 환자를 보지 못해 담즙이 샌다는 사실을 왜 놓쳤는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병원을 그만둔다고 했지만 아직 근무 중이 분명했다. 집도의가 환자를 보지 못했다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선생님이 보셨다는 말입니까?”
“박병두 환자분 수술 직후 분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핑계지만 본의 아니게 선생님과 제가 근무했던 병원에 모두 폐를 끼치게 됐습니다.”
발령이나 퇴직을 코앞에 둔 의사가 수술을 했다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H 병원 복강경 센터의 인원이 적지 않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마당이었다.
“그럼 수술을 하시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선생님께 수술을 맡기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오창도의 얼굴이 곤란함으로 가득했다.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병원 소속인 데다 개인적인 일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환자분은 제게 맡기시고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김지훈의 말에 도리어 머뭇거렸다.
‘김지훈 선생님 말대로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겠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람의 행동과 말도 문제지만, 시스템이 원인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할 수 있는 말은 해야겠지만 가능한 한 말을 아껴야 해. 나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동료들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아닙니다. 내부 사정을 일일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학회 발표 때 선생님 말씀을 듣고 사고를 쳤습니다.”
“제 말 때문에요?”
사고를 쳤다는 말까지 할 정도인데, 이유가 김지훈의 말 때문이라니 어안이 벙벙할 일이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