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54화 (854/1,329)

4화. 뜻하지 않은 또 한 번의 경험 (1)

수술 전 계획은 참조만 될 뿐이다. 육안으로 확인되는 소견을 따라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오창도는 이 부분을 간과했을 테고, 결국 실수가 유발됐을 것이다.

‘정확하게 확인만 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쉽네. 나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실수고, 이번 수술은 재수술이라 더욱 가능성이 높다. 정신 바짝 차리자. 그나저나 박리가 순조로울까?’

담낭 주변의 유착을 확인하려는 순간 마취과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선생님, 누가 찾아왔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지금 날 보자고요? 수술 중인데 어떻게 봐요?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전해 주세요.”

“오창도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하던데요? 이 환자분 때문에라도 꼭 뵙고 싶다고 그러시네요.”

늦는다더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수술실은 외부인 출입 금지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같은 의사로서 매몰차게 거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취과, 이 환자분 집도했던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간호사, 빨리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안경 쓴 남자 한 명이 머뭇거리며 들어왔다.

“오창도입니다. 김지훈 선생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지훈입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죄송합니다. 보호자분과 어느 정도 얘기 나눴습니다. 다행히 제 불찰을 상당 부분 이해해 주셨습니다.”

“잘됐네요. 말씀드린 대로 굴곡 담낭이 확실합니다. 꼬리 부분이 워낙 가늘어서 놓치신 것 같습니다. 다른 부분은 다 해결했고, 남은 담낭만 제거하면 됩니다.”

집도의였기에 몇 마디 말만으로도 수술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을 것이다.

사실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써전이라면 화면만 보고도 알 수 있어야 했다.

화면에 눈길을 준 오창도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살짝살짝 고개를 젓는 걸 보니 내심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는 것 같았다.

수술 중이다. 더 이상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가도 좋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 뜻밖의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만, 수술을 참관해도 될까요?”

생각도 못한 말에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보호자와 해결해야 할 일로도 경황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첫 수술을 집도한 일반외과 의사로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싶을 수도 있었다.

H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 이유로 거부할 일이 아니었다. 오창도만큼 자신의 수술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사람은 없었다.

시연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함께 보시죠.”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잘해야 본전이네.’

자! 정신 차리고 다시 시작이다.

잠시 풀어졌던 긴장을 다시 끌어 올렸다.

남은 담낭을 살짝 건드리며 당겨 보던 김지훈이 눈살을 찡그렸다. 남은 담낭의 염증이 너무 심한 데다 예상보다 무척 약해 보였다.

함부로 당기면 쭉쭉 찢어질 상황이었다.

간과의 유착을 확인하기도 전에 걱정이 앞섰다.

이경석이 화면으로 보며 물었다.

“조직이 상당히 약해 보이는데 어떻게 제거할 거야?”

고민스러운 순간이었다.

말끔하게 제거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말썽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사실상 수술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구불구불 가느다란 담낭의 길이도 만만치 않았다.

확실한 판단 아래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결정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클립이 있는 쪽부터 건드리면 남아 있는 담즙이 또 샐 수 있고, 염증이 가장 심한 부위니까 동맥과 담낭관부터 처리하고 아래쪽부터 제거하죠.”

“오케이! 지금부터가 문제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으니까 여유를 갖고 접근하면 될 것 같아.”

이경석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수술 팀의 눈가가 편안해 보였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새내기 일반외과 의사인 오하석은 예외였다. 유난한 긴장이 느껴졌고, 모든 수술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때기도 했다.

오창도가 오하석 이상으로 긴장했다. H 병원과는 이질적일 정도로 다른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꼈다. 수련 때부터 달랐던 탓에 부드러움 속에 숨은 힘과 강한 긴장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재수술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수술이 잘 진행될까?’

김지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동맥부터 찾습니다.”

총수담관을 덮고 있는 조직을 박리했다.

수없이 쌓인 경험이 빛을 발했다.

담낭농증도 무리 없이 수술하는 써전, 조기 대장암을 능숙하게 수술하는 써전이 바로 김지훈과 이경석이다.

난관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었다. 신중하면서도 빠른 손놀림을 따라 두꺼운 총수담관 일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굴곡 담낭이라고 해서 혈관과 담낭관까지 가느다란 것은 아니다. 예상한 위치에 정확하게 두 개의 구조물이 있었다. 돌다리도 두드린 후 건너는 것처럼 재차 삼차 동맥과 담낭관이 확실한지 확인했다.

“클립으로 잡고, 담낭 박리하면 끝입니다. 클립!”

끼이이익! 끼이이익!

정확하고 확실하게 잡았다.

“가위!”

동맥과 담낭관이 안전하게 잘렸다.

이제 남은 담낭만 제거하면 끝난다.

많은 어려움을 예상한 과정조차 의외로 쉽게 진행됐다. 도리어 은근한 불안감이 느껴져 더욱 철저하게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지막 박리 들어갑니다.”

간호사도, 마취과 당직 교수도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이었다. 오창도가 가장 안심하는 눈치였다.

‘수술 팀 분위기가 너무 좋고, 재수술인데 정말 깔끔하게 진행하시네. 후우! 우리는 저걸 왜 놓쳤을까?’

나종진이 눈에 불을 켠 채 단 하나의 과정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오하석은 눈만 멀뚱멀뚱, 차원이 다른 써전의 압도적인 실력에 입도 열지 못했다.

가늘고 긴 담낭 하부를 잡았다. 수없이 해 온 수술 과정이었다.

염증이 심하다고 해도 담낭농증 정도는 아니었다. 간과의 간격을 확실하게 유지하며 잔존 담낭 벽을 박리해 제거하면 끝이다.

꾸불꾸불한 모양 때문에 생각보다 남은 담낭의 길이가 길었지만 보비와 모스키토 몇 번이면 떨어져 나올 것이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날카로운 보비 소리가 울렸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박리할 부분이 하얗게 변했다.

잘 지져진 부분에 모스키토를 넣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서둘러 손을 뺐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상당히 의외였다.

“왜 그래?”

“굉장히 단단하네요.”

“염증이 심하면 흐물흐물해야 하는데 단단하다고? 3주 동안 염증이 진행돼서 그런가?”

“아마 그게 원인이겠지만 너무 딱딱해요.”

다시 한 번 박리를 시도했다.

김지훈이 곤란한 듯 눈가를 잔뜩 좁혔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딱딱한 것이 1차 문제였지만 담낭 벽이 간에 너무 바짝 들러붙어 있었다. 무리하게 시도하다간 자칫 간까지 찢어질 상황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제거가 가능할까?’

“이쪽에서는 안 되겠어요. 무리가 따르더라도 반대쪽에서 접근하죠.”

클립에 물린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고 박리를 시도했다. 조심스럽게 담낭 벽을 지진 후 모스키토로 틈을 벌리려 했지만 똑같은 양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난관을 만났다.

“기구가 들어가질 않네. 이거 정말 이상한데요?”

복부 CT를 다시 확인했다. 염증 소견만 심할 뿐 종물은 보이지 않았다. 수술 후 유착이 유독 심하게 발생했다는 말인데, 상식적인 소견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시도했다. 모스키토 끝부분이 들어가지도 않았다. 간 손상 우려 때문에 힘을 과하게 줄 수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담낭을 제거할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과정만을 남기고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남은 담낭만 제거하면 끝인데 여기서 개복해야 한다니 억울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절로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후우! 이걸 어쩌죠?”

“도저히 뗄 수 없는 상황이야?”

집도의가 막히거나 당황하면 손을 바꾸는 것도 무척 유용한 방법이다. 복강경만이 아니라 모든 수술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써전이 바로 이경석이다.

“형이 한번 시도해 보실래요?”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바꾸자 오창도가 눈가를 찌푸리며 남모를 한숨을 쉬었다.

갑작스러운 난관 때문만이 아니었다. 집도의가 어려움을 인정하고 퍼스트에게 기구를 넘기다니, H 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술 팀을 지배하는 확고한 신뢰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도 이런 분위기였으면 최소한 실수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어려워 보이지만 개복만은 면했으면 좋겠네.’

한참 동안 이리저리 시도해 보던 이경석이 고개를 저었다. 박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간과 붙었다는 것은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지훈아, 어떻게 할 거야? 남은 담낭만 떼어 내면 되는데 배를 열기는 그러네. 너무 아깝잖아? 길이가 너무 긴가?”

이경석이 한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나종진과 오하석의 눈길까지 꽂혔다.

원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이미 간을 절제한 경험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왜 고민하고 주저하는지 묻고 있었다. 어떻게 수술하는지 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기도 했다.

길어지는 수술 시간을 누구보다 싫어할 마취과 교수와 간호사도 은근한 압력을 가했다. 이 시점에서 개복으로 전환해도 어차피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이왕이면 환자를 위해서라도 복강경으로 끝내자는 눈빛이었다.

집도의의 마음을 누가 알까?

수술 중 찢어진 간 봉합과 간 절제.

지난 두 번의 수술과는 또 다른 상황이었다. 위험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도 간 절제하고 똑같다. 더구나 간 하부라 수처와 타이가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고, 분명 눈에 보이지 않는 염증까지 퍼졌을 텐데 시도해야 하나?’

수술 팀을 보았다.

무엇을 원하는지를 떠나 이경석이 퍼스트고, 나종진이 세컨이다. 오늘 꾸릴 수 있는 최고의 수술 팀이고, 집도의의 비중이 큰 복강경이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다시 찾아온 기회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포기하면 발전 가능성은 없다.

7~8센티미터 정도면 설령 처리할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해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개복만큼 환자에게 큰 부담도 없었다.

학회에서 말한 조건에 최대한 부합했다.

결정을 내렸다.

“마취과, 보호자 불러 주세요.”

잠시 후, 보호자가 들어왔다. 무슨 일인지 몰라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독 천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남편, 기구대 위에 놓인 기구, 수술 부위를 비추는 화면까지 온통 낯설고 이질적인 광경에 몸이 얼어붙었다.

누구도 편하게 만들 수 없는 일이었다.

“긴장하지 마시고 제 말 잘 들으세요.”

상황을 설명했다.

“첫 수술에서 제거하지 못한 담낭만 남은 상태입니다만, 너무 심하게 간과 들러붙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간 일부를 절제해야 합니다. 크기는 작지만 위치가 좋지 않아 기구를 조작하기 무척 힘들고, 재수술로 인한 염증 때문에 출혈 가능성까지 높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보호자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일단 복강경으로 진행해 보고 불가능하면 개복하겠습니다. 혹시 수술이 끝난 후에 절개 창이 커도 놀라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건가요?”

“수술 도중 방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전 이미 들었던 말인데 수술실까지 불러 설명해 주는 모습에 상당한 신뢰를 보내는 눈빛이었다. 보호자는 무조건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수술실을 나갔다.

담낭 절제가 졸지에 간 절제로 변했다. 지금까지 순조로웠던 과정을 모두 잊고 극도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때였다.

김지훈은 물론 수술 팀의 눈빛이 변했다.

이경석과 간 절제 범위를 신중하게 논의했다.

길이 7~8센티미터, 폭 1~2센티미터.

염증이 동반된 상황을 생각하면 결코 짧은 길이가 아니었다. 더구나 위치가 나쁘고, 남은 담낭의 크기보다 더 넓게 절제할 수밖에 없었다.

“종진아, 기구 잡아야겠다. 염증 때문에 생각보다 출혈이 심할 수 있어. 신중하고 침착하게 따라와야 돼.”

드디어 나종진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수술 팀에게 절제 시 주의할 점을 알리고, 굵은 기구 하나를 더 집어넣었다.

“종진아, 수술할 부위가 보이는 정도까지만 들어 올리자. 보비! 수처 준비하고 대기하세요. 시작합니다.”

학회 발표 때 김지훈이 어떤 말을 했는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수술 팀이었다.

새로운 긴장이 수술실을 휘감았다.

드디어 부분 간 절제가 시작됐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보비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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