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성공도 실패도 값진 일이다 Ⅲ (1)
김지훈이 다소 낯선 기구들을 소개했다. 간 절제를 위한 새로운 기구였다.
개복이 아니라 복강경으로 시도했다는 말이었다.
좌장인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송재덕 교수 이하 S 병원 의료진만 태연했다.
고성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송 교수, 저 수술 누가 한 거야? 설마 김 교수야?”
“요샌 이 교수가 지훈이를 철석처럼 믿는데 누구겠습니까? 선생님 사위가 시도했습니다, 사위가.”
“시도? 성공했어? 못했어?”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성공했든 실패했든 다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켜보시죠.”
한동안 웅성거림이 그치질 않아 조용해지길 기다려야 했다.
잠시 후, 새로운 기구들을 가리키던 빨간 점이 사라졌다.
“다음 슬라이드.”
찰칵!
새로운 화면을 따라 복강경 준비 과정이 소개됐다.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개복 기구를 함께 준비했다는 말에 진충기가 움찔거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배 속을 확인했습니다. 간 절제만 요구되는 상황이었고, 미리 계획한 대로 절제를 시작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
레이저 포인트의 빨간 점이 한 곳을 가리켰다. 간에 절제 선을 표시한 후 모스키토, 보비, 수처와 타이를 이용해 조금씩 절제해 나가는 사진이 이어졌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간 조직의 출혈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장의 슬라이드가 돌아간 후 검붉은 조직 사이로 하얀 조직이 보였다.
“혈관종으로 연결되는 주요 혈관은 세 개였습니다. 지금 보시는 혈관이 첫 번째 혈관이고, 다음과 같이 처리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
발표장이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단편적인 사진만으로도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지 모를 수 없었다.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을 수술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수술하는 것처럼 폭발 직전의 긴장감마저 흘렀다.
차근차근 혈관을 노출시킨 후 안전하게 묶었다.
진충기가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관건은 첫 번째, 두 번째가 아니라 마지막 혈관이야.’
두 번째 혈관을 찾는 과정이 소개됐다.
여기저기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렀다.
수술 부위가 깊고 좁아지며 기구를 움직일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를 비집고 혈관을 잡아 가는 과정은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보시다시피 수술 부위가 굉장히 좁습니다. 집도의만이 아니라 퍼스트와 세컨의 능력과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술 팀 전체가 최대한 호흡을 맞추고, 극도로 주의하지 않으면 진행하기 힘든 과정이 분명합니다.”
이제 최후의 난관, 마지막 혈관만이 남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과정이자 성패를 좌우할 순간이었다.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모든 이목이 슬라이드 화면에 집중됐다.
찰칵! 찰칵!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긴장이 고조됐다.
혈관 주변을 박리하고, 수처와 타이하는 과정은 언제 실패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외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당장이라도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것 같았다.
“다음 슬라이드.”
김지훈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찰칵!
이혁원이 또 한 장의 슬라이드를 넘겼다.
클립으로 혈관을 잡았다. 절단부 출혈을 막기 위해 수처가 반복됐다. 타이가 거듭될 때마다 조직 손상이 우려됐다. 모든 과정이 위험 그 자체였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단 하나의 의문이 모든 참석자들의 뇌리를 스쳤다.
안전하게 처리했을까?
찰칵!
결과가 확인됐다.
세 번째 혈관이 깔끔하게 처리됐다. 절단부의 출혈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경악에 가까운 신음 소리가 터졌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기구를 조작하는 능력은 가히 허탈할 정도의 충격을 안겨 주었다.
남은 간을 절제하는 과정과 절단면 처리를 끝으로 슬라이드 불빛이 꺼졌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수술을 성공했다. 새로운 기구를 썼다지만 복강경으로 간을 절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적인 일이자 경악이었다.
수많은 의사들이 모인 발표장이 정적에 휩싸였다.
박수도, 감탄도, 탄성도 없었다.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최인호 교수의 눈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문 진충기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이마를 적시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설마 김지훈 혼자 힘으로? 아니야, 아니야.’
최인호 교수에게는 성공 자체가 갖는 의미보다 수술 시연은 S 병원 차지라는 생각, 이준영 교수에게 완전히 밀렸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최고의 써전을 꿈꾸던 진충기는 김지훈의 수술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 없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기뻐해야 할 김지훈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국내 최초로 혈관종을 성공하고도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은커녕 어두운 안색이었다.
동기들이나 교수들 역시 담담한 기색이었다.
다른 문제라도 생긴 걸까?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째지는 입을 주체하지 못하던 고성문이 송재덕 교수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의아함이 가득했다.
“송 교수, 이렇게 어려운 수술을 성공했는데 다들 표정이 왜 이래? 수술 후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아직 발표 안 끝났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시죠. 사위 정말 잘 두셨습니다. 정말 잘 두셨어요.”
참석자들 역시 이상한 모양이었다.
누군가 정적을 깼다.
“정말 대단한 수술을 성공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표정이 좋지 않네요. 수술 후 환자에게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수술실에서의 성공만 능사가 아니다. 만일 재수술을 요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했거나, 어떤 이유로든 결국 개복했다면 반쪽에 불과한 수술이다.
이는 곧 실패와 다르지 않았다.
진충기의 눈이 번쩍였다.
‘뭔가 있어. 개복을 피하지 못한 게 틀림없어. 김지훈, 만일 의도적으로 여기까지만 발표했다면 도리어 비난의 대상이 될 거야.’
질시에 사로잡힌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김지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 수술을 통해 정말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제 능력을 고려했을 때 결코 시도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말일까?
다들 흠칫 놀랐다.
최인호 교수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충기는 목이 타는 갈증에 벌컥벌컥 물 컵을 비웠다.
신현수와 했던 수술부터 언급했다.
“경험이랄 것도 없는 일을 믿었습니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문제를 일으켰다면 개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과정이 불안했습니다. 다행히 이틀 만에 멈췄지만 실제로 수술 후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집도의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했습니다.”
“간 절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수술 아닙니까? 시도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불행히도 저는 준비된 집도의가 아니었습니다. 경험, 실력, 능력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함께한 수술 팀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100퍼센트 실패했을 겁니다. 오늘 똑같은 수술을 다시 한다고 해도 운이 따라 주지 않는 한 성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시도조차 망설일 것 같습니다.”
결코 겸손이 아니었다.
“무례한 말씀일 수 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라파로를 많은 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지만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을 앞세운다면 심각한 문제와 능력 부족을 눈앞에 두고도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짊어지게 됩니다.”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수술에 임하는 자세를 반성하고 있었다.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술을 성공하고도 말이다.
“최고의 팀과 함께 수술한 덕분에 성공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갖고 반복할 수 없는 수술은 실패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오늘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요? 의학의 발전과 환자의 안전을 모두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할 겁니다. 최소한 제게는 선후배 의사분들의 귀중한 의견이 필요합니다.”
결국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국내 최초로 시행된 복강경을 이용한 간 절제 수술을 보고도 축하의 박수조차 치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어느새 주어진 시간이 지났다. 이준영 교수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 우리 젊은 선생들이 보인 모습에 여러모로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최고의 수술 팀 덕분이란 말도 가슴에 남습니다. 타성에 젖지 않고 우리 일에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만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했다.
짝! 짝! 짝!
드문드문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이내 봇물이 터진 것처럼 우레로 변했다.
김지훈이 연단 뒤로 사라진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주섬주섬 슬라이드를 챙기던 이혁원의 얼굴이 벌게졌다. 최고의 써전을 위해, 최고의 수술 팀을 향해 함께 달리고자 하는 한 의사의 후배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누군가 힘차게 박수를 치며 중얼거렸다.
“평생 잊지 못할 학회가 되겠어.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잊고 있었네. 오늘따라 술 생각이 유난한데 한잔할까?”
“좋지. 라파로로 간을 자르고도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실력은 뛰어난 줄 알았지만, 속까지 꽉 차 있을지 몰랐어.”
“이렇게 되면 두 병원 다 화가 날 정도로 쟁쟁하지만 시연은 S 병원 차지가 되겠어.”
“아무래도 그렇게 결정되지 않을까? 간 절제까지 한 병원이면 다른 수술은 어떻게 할지 빤하잖아.”
“이 사람아, 신현수 선생하고 이경석 선생 발표 봤을 때 딱 감을 잡았어야지. 진충기 선생이 준비 많이 했는데 아쉽겠어.”
학회라는 장소가 반드시 실력과 능력을 논하는 자리만은 아니었다. 때론 형식을 넘어 가슴속 진솔한 말을 토론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일지도 몰랐다.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송재덕 교수가 고성문의 옆구리를 쳤다.
“선생님, 좋으시죠? 수술 성공했다는 소리에 방정 떨다가 지훈이 말 듣고 많이 느꼈습니다. 신현수하고 이혁원이 한 팀이었는데 그놈들까지 하도 심각해서 얼굴이 다 화끈거리더군요. 못된 놈들!”
“이 교수가 잘 가르친 덕이지.”
“저도 많이 가르쳤습니다. 제가 없었으면 지훈이 저놈이 지금처럼 크진 못했을 겁니다. 교수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한지 모르시죠? 알 리가 없죠, 알 리가.”
고성문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왜 모르겠어? 고마워. 김 서방처럼 손 서방도 잘 가르쳐 줘. 진국인 건 잘 아는데, 군대 때문인지 많이 불안해.”
“가족만 챙기시면 안 됩니다. 세상이 어느 땐데 청탁을 하세요? 청탁을. 그리고 그게 맨입으로 됩니까? 오늘 같은 날은 술 한잔 거하게 사셔야죠. 등심 맛있는 집 아는데 함께 가시죠.”
“등심? 등심 살 정도로 우리 사위들이 잘났나?”
“꽃등심이죠. 꽃이 활짝 핀 등심.”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가 자리로 돌아왔다. 다들 시치미를 뚝 떼며 입을 싹 닦았다.
남은 발표가 이어지며 약간은 무거웠던 분위기가 풀렸다. 여느 때처럼 성황리에 학회가 끝났고, 또 한 번 강력한 인상을 남긴 김지훈은 인사하기 바빴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허허! 김지훈 선생 수술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입니다. 기회가 되겠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수술 시연에 대한 기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함께 있던 신현수와 이경석도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렇게 셋이 S 병원 3인방인가? 무섭다, 무서워.”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기분 좋은 관심이었다.
바글거리던 참석자들이 하나둘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뒷정리를 마친 학회 임원들도 피곤한지 다음 회의 날짜를 잡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몇몇은 상당히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즐거운 저녁을 기대했던 최인호 교수와 진충기가 심각한 얼굴로 사라졌다.
비교될 정도로 인사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나마 평소 친분이 있는 의사들이었다.
모든 관심이 S 병원 의사, 특히 김지훈에게 쏠린 상황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에겐 지독한 수모와 치욕이라도 되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 우리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김지훈, 정말 너 혼자 간을 절제했단 말이야? 그럴 수가 없어. 이준영 선생님의 힘이 분명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신과 의심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학회장을 나서는 내내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H 병원 소속 의사들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펴지 못했다.
누군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최고의 수술 팀 덕분이라고 했지? 우리 병원도 쟁쟁한 분들이 많은데, 그런 팀은 하나뿐인 것 같네.”
왠지 김지훈, 신현수, 이경석의 눈빛에서 서로를 향한 강한 신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발 뒤에 물러서 있는 교수들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철벽처럼 보였다.
그 때문일까? 아직도 S 병원 의사들과 인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