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49화 (849/1,329)

1화. 성공도 실패도 값진 일이다 Ⅱ (2)

마이크를 끌어당기는 진충기의 손에 힘이 넘쳤다.

‘시연까지 잡으려면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해.’

“먼저 담낭농증 수술입니다. 아시다시피 박리 중 큰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시행돼 왔지만, 본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에게 적용해 약 95퍼센트의 성공률을 보였습니다. 그중 가장 심했던 경우들을 보시겠습니다.”

의아함이 서서히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담낭농증은 여전히 신중한 선택을 요했다.

진충기는 터졌다고 해도 무방한 담낭을 과감하게 수술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개복을 한 경우 역시 누가 해도 피치 못할 상황으로 보였다.

슬슬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조기 대장암과 위암입니다.”

신현수와 이경석의 수술 수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혼자 그 모든 수술을 했다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수술 방식이 약간 달랐지만 장단점이 있었다.

진충기는 장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사소한 차이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케이스를 통해 확실하게 설명했다. 당당한 태도와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여기저기에서 감탄이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비만과 합병증이 발생한 탈장 및 아뻬 등의 수술 결과를 보시겠습니다.”

이전의 발표자들보다 시간을 더 준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인 복강경 수술은 발표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수술 건수가 압도적이었다. 그 탓에 도리어 혼자 모든 수술을 했을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어느 경우든 H 병원 복강경 센터의 능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는 발표였다. 진충기의 자신 있는 표정은 스스로 모든 수술을 했다고 웅변하고 있었다.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의아할 정도로 조용했다. 워낙 많은 수술 수와 웬만한 병원에서는 시도하기조차 힘든 질환에 질문의 여지조차 사라진 것이다.

몇몇 질문이 나오긴 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 병원인 S 병원의 교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신현수와 이경석이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수술 방식의 차이도 같은 수술을 하는 써전에게는 큰 관심사이기 때문이었다.

“대장암 수술 시 개복 크기를 상당히 줄이셨는데, 연결 과정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비만 수술 시 지방조직 처리 중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처 대신 주로 보비로 해결하신다고 했는데, 출혈에 대한 우려는 없었습니까?”

진충기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병원도 아닌 S 병원 의사들의 질문이다. 그것도 문제점 지적이 아닌 수술 방식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경쟁 관계를 생각할 때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말씀드린 것처럼 시행하면 보다 안전하게 수술을 마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도의의 많은 경험과 숙련도가 선행되지 않으면 라파로 특성상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겁니다.”

김지훈이 눈가를 굳혔다.

오늘은 발표자마다 긴장을 불러왔다. 특히 진충기는 가슴까지 서늘하게 했다. 마지막 말에 실린 자만의 여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복강경에 관한 한 가히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진충기 선생은 아닌 것 같다. 저렇게 수술을 많이 하고 있는데 소문내고 다닐 시간이 있었겠어? 어쨌든 대단하네. 이래서 사람은 주변을 볼 줄 알아야 하는 모양이다.’

“현수야, 대단하지?”

“나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모든 수술을 혼자 다 했단 말이지? 바짝 긴장해야겠어. 지훈아, 넌 질문할 내용 없어? 소문은 누가 냈는지 모르겠네.”

신현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긴 발표 시간과는 달리 질문과 답변 시간은 의외로 짧았다. S 병원을 포함해 참석한 모든 의사들의 입을 닫을 정도로 압도적 발표였다는 방증이었다.

최인호 교수가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눈빛을 교환한 진충기의 미소가 진해졌다. 누군가 반드시 묻기를 바랐던 질문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발표하신 수술 수가 너무 많아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혼자 하기 힘들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수술을 배분하십니까?”

“오늘 발표한 수술은 최인호 선생님의 지도 아래 한 팀에서 시행했습니다. 숙련도가 매우 중요한 수술이라 집도는 제가 맡았습니다.”

“발표한 모든 수술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헛바람까지 집어삼켰다.

파트를 가리지 않고 여러 질환을 혼자 수술했다는 사실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H 병원, 특히 최인호 교수의 전폭적인 지원이 엿보였다. 뛰어난 써전을 키우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뭐니 뭐니 해도 진충기의 능력이었다. 항간에 떠돌던 복강경에 관한 한 최고의 써전 중 한 명이라는 말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동안 놀라움이 가시지 않았다.

하필이면 다음 발표자가 김지훈이었다.

학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의사들이 김지훈의 첫 시도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단번에 기대감까지 희석시켰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를 최대한 적용 발전시킨 사람이 외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식으로 교육시킵니까?”

“담낭 절제술, 아뻬, 탈장 등 기본적인 수술부터 집도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엄선된 선생이 다시 제 수술 팀에 퍼스트로 합류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을 최인호 교수님과 제가 총괄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은 언제 주신다는 겁니까?”

수련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의사 입장에서는 다소 곤란한 질문이었다. 모든 수술을 집도했다는 말이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저희 병원은 집도의의 능력을 키우는 일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점을 잊지 않고 최인호 선생님과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루뭉술한 대답이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젊은 의사의 패기가 엿보였다.

학회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학술 임원과 시연에 관한 말이 분명했고, 상당히 긍정적이면서도 호의적인 표정이었다.

최인호 교수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김지훈이 무슨 발표를 할지 몰라도 이 정도면 됐어. 시연은 첫 시도를 한 병원이 아니라 광범위한 수술을 보여 줄 수 있는 병원을 선정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이상 발표를 끝내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박수에 인색했던 의사들마저 손뼉을 마주쳤다.

여기저기 인사를 하던 진충기가 미소를 지으면서도 눈가를 좁혔다. 마지막 남은 장애는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김지훈이 앉아 있는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간 절제만 성공했으면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었는데. 이정애 환자를 수술했을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온통 진충기에 대한 말이었다.

이경석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네. 김지훈보다 더한 사람이 있었어.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한 거야?”

신현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만 꽉 깨물고 있었다. 고개 밑으로 숨은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수술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우리만이 아니라 병원 수준까지 뒤처졌을 가능성이 높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전폭적인 지원이란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지훈이 말한 펠로우 충원 문제까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인원 문제는 확실히 심각한 저해 요소였다.

많은 고민 속에 발표가 속개됐다.

일종의 충격 때문인지 중요한 사실을 지나쳤다.

‘간 절제 수술은 어떻게 된 거지? 모두 실패한 건가?’

가능성이 높았지만 다른 의사의 실패에 희희낙락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었다.

‘그건 그거고, 발표에 집중하자.’

드디어 김지훈이 단상에 올랐다. 이준영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혁원이 슬라이드를 준비했다.

발표를 준비하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획기적인 발표를 할까? 아니면 진충기 못지않은 성과를 발표할까?

누구보다도 초조한 사람은 진충기였다.

막상 김지훈이 발표를 앞두자 대단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시도 연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밝은 얼굴이라면 불리하고, 어두운 얼굴이라면 유리할 것이다. 조명 때문인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탓에 발표를 앞둔 김지훈보다 더 초조한 얼굴이었다.

최인호 교수도 답답한지 물 한 컵을 모두 비웠다.

잠시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발표가 시작됐다. 최초 시도라는 타이틀을 가진 의사가 바로 김지훈이다. 진충기의 발표로 희석됐던 기대감이 다시 증폭됐다.

“S 병원 김지훈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병원이 인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적정 인원을 확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대안이 절실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엉뚱한 말부터 나왔다. 학회 발표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시작이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충기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적은 인원으로 수술을 진행하며 해결책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이에 오늘 3포트 라파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존에 4포트는 세 명의 의사가 필요했지만 두 명만으로도 충분히 수술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종합병원이라면 어디나 겪는 문제였다.

좌중의 눈과 귀가 활짝 열렸다.

대부분 기본적인 질환만 나열됐지만, 기구는 카메라를 포함해 단 3개만 보였다. 담낭 절제하는 수술도, 아뻬를 떼는 수술도, 탈장을 복원하는 수술도 모두 3포트로 가능했다.

숙련되고 능숙한 손은 어떤 문제도 만들지 않았다.

“4포트와 비교해 개복 전환률이나 수술 후 합병증 등 모든 면에서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의료인 부족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고, 기구 사용을 줄여 경제성까지 확보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소한 차이가 큰 변화를 이끄는 것처럼 3포트 수술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다.

역시 김지훈이라는 감탄이 터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했다. 진충기와 비교된 것이다.

어려운 수술을 무리 없이 혼자 해냈다는 사실과 기구 하나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 중 전자에 손을 들어 주는 분위기였다.

‘현실적인 이득은 크겠지만 이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로 치부할 수밖에 없어. 게다가 인원이 많거나 수술이 적은 병원에서는 의미 없는 말이잖아.’

학술 임원과 귓속말을 나눈 최인호 교수가 미소를 머금었다. 한층 부드러워진 눈빛에 진충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되면 이변이 없는 한 게임 끝인가?’

이준영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른 병원에서도 적용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3포트 수술은 여기서 마치고, 간략하게 케이스 발표를 이어 가겠습니다. 드문 질환들이라 나중에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다.

케이스 리포트만으로는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 이미 회의 때 선발 기준으로 고려하지 말 것은 건의했고, 설령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일회성 혹은 특이한 수술일 뿐이었다.

‘설마 뭐가 또 있나? 왜 저렇게 태연해?’

최인호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수진의 혈관종 수술이 발표됐다.

후복막 침범을 두려워하지 않는 써전은 없었다. CT와 혈관 촬영만 봐도 섣불리 시도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수술 과정 및 경과를 보고하자 나직한 탄성이 터졌다.

“젊은 선생이라 확실히 과감하고, 정말 대단하네요.”

“신기동 교수님 대신해서 혈관 파트까지 맡고 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자격이 충분해 보입니다.”

“라파로, 간담도에 주력하는 줄 알았는데 혈관까지 담당해서 저렇게 어려운 수술을 해낼 수 있었군요. S 병원에 인재가 참 많습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총상 수술이 이어졌다.

광범위한 손상과 두 번에 걸친 수술 및 2주 이상의 혼수상태 끝에 회복시켰다는 말에 다들 놀라움을 표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외상이기에 다들 머릿속에 꼭꼭 담아 두었다.

“나도 몇 년 전에 비슷한 환자가 왔었는데,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으면 살릴 수도 있었겠네요. 시간이 가장 중요한지 알면서도 간과하고 말았네요.”

“라파로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역시 기본이 단단한 정도가 아니었어요. 웬만한 실력으로는 저 과정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을 겁니다.”

“중증 외상은 확실히 딜레마입니다, 딜레마. 수술도 수술이지만, 이후 치료를 감당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김지훈 선생과 근무하는 선생들이 죽어났겠습니다. 그게 제일 대단합니다. 정성과 노력이 도대체 얼마나 들어간 건지!”

공감하며 깊이 고민하는 의사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학술적인 가치 이상으로 의료진의 노력과 의지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하는 발표였다. 아울러 외과 의사들이 고민해야 할 중증 외상 분야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

슬슬 묘한 기류가 돌기 시작했다.

최인호 교수와 진충기가 좌중의 분위기를 살폈다. 특히 학회 임원들의 반응에 신경 썼다.

“어떻게 보십니까?”

“대단하긴 한데, 특별할 것은 없네요.”

“하긴 시연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기도 합니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3포트 수술과 2건의 케이스로는 진충기의 발표와 비견될 수 없었다.

불안감이 확연하게 사라졌다. 학회 임원과 시연 병원 선정이 손에 잡히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또 하나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준영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좌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며칠 전 갑작스럽게 특별한 수술을 하나 하게 됐습니다. 10분 정도만 양해 구하겠습니다. 김지훈 선생, 바로 발표 준비하고, 이혁원 선생은 슬라이드 준비하세요.”

조명이 다시 꺼지며 슬라이드 화면이 환하게 나타났다.

모두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외과 의사라면 자주 못 보더라도 아주 익숙한 질환이기 때문이었다.

순간 진충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몇 번이나 보았던 복부 CT였다. 이정애 환자를 수술한 것이다.

김지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인호 교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기 직전이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예전에 김지훈은 실패한 수술도 발표했었다.

성공한 걸까? 아니면 실패한 걸까?

김지훈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병원과 개개인의 명예가 모두 걸린 발표다. 아무리 담담하려고 해도 간 혈관종 절제를 성공했다면 표시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찰칵! 찰칵!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화면을 보던 의사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과 의문을 보였다.

설마 복강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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