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48화 (848/1,329)

1화. 성공도 실패도 값진 일이다 Ⅱ (1)

진충기가 밤늦도록 수술 팀과 실패 이유를 찾았다.

수술 팀 모두 무엇인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첫 번째 실수는 타이였고, 두 번째 실수는 큰 바늘을 쓰면서 신중하지 못했던 거야. 한 교수, 수술이 보통 힘들었던 게 아냐. 수술 팀 능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세컨을 펠로우로 채워야 하나?”

한 교수가 고개를 숙인 채 눈가를 찡그렸다.

이번 수술을 기회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다.

모든 과정을 혼자 결정하고, 세컨의 개입조차 허락하지 않으면서 수술 팀의 능력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미 수없이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이제는 직접적으로 수술 팀을 탓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어쩌면 한계에 부딪친 혈관종 수술을 통해 느낀 점이 있을지 몰랐다.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수술 팀을 믿고 함께 수술했으면 좋겠습니다.”

‘독불장군은 없지 않습니까?’

진충기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 전에 능력이 돼야 할 거 아냐? 솔직히 내 손 반만 쫓아와도 이런 소리 안 해. 최인호 선생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김지훈은 이정애 환자를 수술했을까? 했다면?’

수술 및 성공 여부를 알아보는 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수술 전이기를, 만에 하나 수술했다면 자신과 같은 결과에 직면했기를 바랐다.

아무 말 없이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낸 최인호 교수가 뇌리에서 가시질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학회 발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한 교수, 발표 논문 다시 점검하자.”

“예. 그 전에 환자 좀 보고 오겠습니다.”

“환자? 펠로우들이 킵하고 있잖아? 아니다. 갔다 와. 보호자에겐 설명 다 해 놨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난 급한 환자가 있어서 내일 아침에 볼 수밖에 없다고 해. 펠로우들한테 졸지 말고 드레인 잘 보라고 해.”

진충기의 시선은 이미 발표 자료에 박혀 있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쉰 한 교수가 조용히 중환자실로 향했다. 흔들렸던 바이탈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간 출혈이 환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 시간, 김지훈과 신현수도 병실을 찾았다.

가습기를 빠져나온 하얀 수증기가 이정애 환자의 얼굴을 적셨다. 다소 창백한 안색으로 코 줄과 소변 줄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내일 상황 봐서 빼 드릴 겁니다. 혹시 어지럽지 않으세요? 통증은 어떠세요?”

말하기조차 힘든 듯 입술만 살짝 움직였다.

오랜 수술 시간 탓이었다.

“수술 시간이 예정보다 훨씬 길어져서 상당히 힘드실 겁니다. 억지로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좋지만은 않았다.

수술 후 느낀 바가 컸고, 당장은 드레인이 문제였다. 성패를 떠나 깨끗하게 수술되기를 바랐지만, 간 절제 후 볼 수 있는 최대 합병증을 피하지 못했다.

이혁원이 굳은 안색으로 조용히 드레싱을 했다.

뚝! 뚝! 뚝!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피를 지켜보던 김지훈과 신현수가 콧등을 찡그렸다. 조심스럽게 새로운 거즈로 갈아 준 후 병실을 나왔다.

“지훈아, 멈출까?”

“양이 많지 않아서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네. 내일 아침에 다시 확인해 보자. 다들 힘들었는데 발표 준비 빨리 마무리 짓고 들어가자.”

한동안 나직한 대화가 오고 갔다.

의국을 찾았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학회 발표 준비로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이혁원, 나종진, 송진우, 강병옥까지 슬라이드를 확인하고, 발표 내용을 점검하고 있었다.

“혁원아, 오늘 수술 케이스 리포트 작성했다. 확인해 보고 보강할 부분이 있으면 말해. 같이 수정하자.”

“예. 내일 저녁까지 슬라이드 만들어야 하니까, 아침까지 최종안을 꼭 주셔야 합니다.”

신현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철자, 토씨 하나 틀린 부분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경석도 퇴근을 미룬 채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의미가 어떻든 오늘 수술은 매일 벌어지는 수술 중 하나였다. 모든 환자가 중요하고,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학술 임원 선출과 수술 시연.

모두들 전자보다는 후자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자신들이 속한 일반외과의 능력을 확인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의 나직한 한숨 소리가 정적을 파고들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뚝! 뚝! 뚝!

느리지만 끊임없이 떨어지던 피는 멈췄을까?

이른 아침, 김지훈이 이정애 환자를 찾았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소리 없이 보이는 환자의 미소에도 불구하고 김지훈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우리는 정말 최선의 길을 선택한 걸까?’

성패를 떠나 수많은 어려움만큼 많은 생각을 가져온 수술이었다. 그 안에 소중한 배움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해가 밝았다.

드디어 엄청난 의미를 지닌 학회가 시작됐다.

8월로 예정된 수술 시연 때문인지 유달리 수많은 의사들이 참석했다.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어 인사하기 바빴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알아 가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도 학구열이 식지 않는 고성문 역시 당연히 얼굴을 보였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어도, 자주 얼굴을 보아도 항상 어려운 사람이다.

장인어른이기 때문에, 일반외과 선배라는 사실 때문에, 복강경을 가르친다며 태운 기억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중에 으뜸은 역시 고경아의 아버지라는 이유일 것이다.

김지훈의 허리가 공손하게 꺾였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준비 잘했지? 손 서방 봤어?”

“학회 준비 때문에 바빴습니다. 일석이도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던데, 아버님께 인사는 왔죠?”

“아주 잘 놀고 온 모양이야. 옥돔 사 왔더라. 몇 마리 가져왔으니까 끝나고 집에 갈 때 꼭 가져가. 경아 먹여.”

웅성웅성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최인호 교수가 보였다.

학회 임원과 함께 아직도 영향력이 큰 원로 교수들을 안내했다. 간간이 큰 웃음을 터트리며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는 물론 이준영 교수까지 반대쪽에 서서 원로들을 맞이했다. 무뚝뚝하기만 한 스승이 웃음을 보여 다소 어색했다.

김지훈만 그런 느낌을 받을 리 없었다.

“김 서방, 오늘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 무슨 일 있어?”

“학술 임원 선출과 수술 시연이 있어서 오늘 발표를 보며 말씀을 나누실 모양입니다.”

“수술 시연이 있다고? 언제, 어디서?”

“8월 중인데, 병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고성문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그럼 이 교수하고 자네가 주축이 돼서 시연하면 되겠네. 근데 발표할 사람 얼굴이 왜 이래? 요새도 많이 힘들어?”

상당한 부담에 헛기침을 하던 김지훈이 슬쩍 고개를 돌리다 말고 가볍게 숙였다. H 병원 소속 의사들과 함께 있던 진충기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진충기가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생소문의 진원지라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닌 이상 표정 변화 정도는 보일 것이다. 어색한 얼굴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지만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헛소문도 문제지만 최고의 써전은 한 명이라는 말이 잊히질 않네. 팀을 짜도 수술 하나 성공하기 힘든데 혼자서 그게 되나?’

자연스럽게 혈관종 수술이 떠올랐다.

‘기구를 두 개 주문했다고 했는데 수술했나? 이미 경험이 있다면 오늘 발표 중에 수술 결과를 들을 수도 있겠네.’

내심 서로를 강력한 라이벌로 여기는 데다 진충기 역시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 탓인지 묘한 기류가 흘렀다.

진충기가 태연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힐끗힐끗 곁눈질을 했다. 그때마다 김지훈의 표정을 읽으려 애썼다.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아. 수술 시도했다가 문제가 생겨 개복을 한 걸까? 아니면 아예 시도도 하지 못한 걸까? 자존심이고 뭐고 알아볼 걸 그랬나?’

사실 학회장에 오자마자 김지훈부터 살폈다.

간 혈관종을 복강경으로 절제했다면 들뜬 모습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다.

표정만으로 예단할 수 없지만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수그러들었다.

‘그래. 내가 못하는 수술을 김지훈이 할 수는 없지. 제길! 그놈의 실수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마음 졸일 일은 없잖아.’

발표를 들어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모두들 각자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자리했다. 동료들과 자리한 진충기가 여전히 곁눈질을 멈추지 않았다. 어지간히 초조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외과 학회장이 개회를 알렸다.

첫 번째 발표가 시작됐다.

이경석이 당당한 걸음으로 연단에 올랐다.

“S 병원 이경석입니다. 오늘 발표할 주제는 라파로를 이용한 조기 대장암입니다. 9건의 수술을 시행했고, 추적 관찰 결과 개복과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박승준 교수가 좌장을 맡고, 강병옥이 슬라이드를 돌렸다. 세세한 부분까지 결과를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수술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김지훈이 첫 발표를 했을 때보다 수술 과정이 훨씬 정교하고, 깔끔했다. 수술 수가 많은 만큼 내용이 풍성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 수술 볼 때마다 차이가 뭔가 했는데 저거였구나.’

동기의 발전을 보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었다. 함께 노력했고, 어려운 수술과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항상 머리를 맞댔기에 그럴 것이다.

열띤 질문이 쏟아졌다.

이경석과 박승준 교수가 침착하게 답변했다.

자신들의 노력과 성과를 확실하게 알리고,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연단에서 내려왔다.

박승준 교수가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송재덕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박수 소리 봐라. 박수 소리. 역시 박 교수하고 경석이 둘이 머리 맞대고 열심히 한 보람이 있다. 있어. 일이 년 후에는 또 달라져 있을 거야. 이 과장, 박 교수가 이젠 한 식구지? 한 식구. 내 말이 맞지? 그치?”

“그렇고말고요.”

첫 발표에 이어 두 번째 발표도 S 병원의 몫이었다.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내용이란 말이었다.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이뤄 낸 결과였다.

금빛 안경테가 반짝였다.

‘오늘따라 얼굴에서 빛이 나네. 나도 안경 써야 하나?’

“S 병원 신현수입니다. 제가 발표할 내용은 조기 위암과 비만 수술에 있어서 복강경의 유용성입니다. 특히 개복 시 심각한 합병증이 자주 발생하는 비만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는 수술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지동훈 교수와 나종진이 짝을 이뤘다.

비만 수술의 새로운 지평에 뜨거운 관심과 질문이 집중됐다. 수술 난이도가 암 수술에 못지않아 수술 중 무엇을 주의하고, 유념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어쩌면 보험 항목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원가 보존조차 힘든 저수가 체계의 폐해지만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난스러운 관심이 이어졌다.

지동훈 교수가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였다.

“죄송합니다. 시간 관계상 여기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신 분은 점심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현수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발표가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고조됐다.

이혁민 교수의 온 얼굴에 만족감이 서렸다.

“송재덕 선생님, 지 교수하고 현수 발표도 괜찮았죠?”

“그걸 말이라고 해? 박 교수하고 지 교수가 같이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위장관의 보배다, 보배. 그나저나 현수는 언제 수술을 저렇게 많이 했어? 하긴 과장이 노는데 밑에서라도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저도 바쁩니다.”

“바쁘긴. 지훈이 불러서 수술하면서 뭐가 바빠? 현수 하나로 부족해? 욕심이다, 욕심.”

부러운 듯 핀잔을 던지며 고개를 돌렸다.

“고성문 선생님, 지훈이 발표 궁금하시죠? 다음 발표가 H 병원 진충기라는 선생이 합니다. 같은 간담도에 라파로 수술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한답니다. 두 선생 발표를 비교하면서 들으시면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발표를 재미로 듣나?”

고성문이 헛기침을 했다.

의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수 없었다. S 병원과 H 병원의 경쟁과 견제에 대해서도 들었다.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위의 앞날이 걸린 발표란 생각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진충기 선생이라! 나이에 비해 실력이 월등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어떤 발표를 할까? 김 서방도 그만큼 준비했겠지? 시연까지 걸렸는데 다들 참 태연하게도 있네.’

김지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야! 언제 저렇게 수술했지? 지동훈 선생님하고 끝을 봤구나. 무서운 놈. 이러다 꼴찌로 밀려나겠다. 경석이 형하고 둘 다 예의주시해야 되겠어.’

라이벌의 약진은 기쁨이자 두려움이었다. 이기지 못해서가 아니라 뒤처짐이 불안할 뿐이었다.

이제 한 사람의 발표 후에 차례가 온다.

진충기의 시간이 임박했다.

라이벌은 병원 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 병원 일반외과 자존심까지 걸려 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꽉 주었다.

최인호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H 병원 진충기입니다. 오늘 제가 발표할 내용은 라파로가 적용되는 제반 질환 중 중요 질환의 수술 결과입니다. 최인호 선생님, 시작하겠습니다.”

좌중이 술렁거렸다.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다더니!

복강경 수술에 관한 한 선두 주자 중 한 명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만큼 다들 한껏 기대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내용을 발표한다는 말로 들린 것이다.

섣부른 판단일까?

진충기가 가슴을 쫙 폈다. 최인호 교수도 별다른 표정 없이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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