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47화 (847/1,329)

10화. 성공도 실패도 값진 일이다 Ⅰ (2)

이제 시작하면 된다.

“마취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시작하세요.”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후우! 모든 걸 잊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자. 욕심은 내야 할 때만 내자.’

배꼽 하부에 첫 번째 절개 창이 생겼다.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 둔,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커다란 의미가 담긴 수술이 드디어 시작됐다.

에어 팁이 들어갔다.

처컥! 처컥!

복부가 부풀어 오르며 배 속 장기가 하나하나 카메라에 잡혔다. 좌측 간 바깥쪽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그 안에 혈관종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목표물이다.

“트로카 주세요.”

카메라 외 4개의 기구가 더 들어갔다. 3개는 10밀리 굵기의 새로운 기구, 나머지 1개는 5밀리 굵기의 기존 기구였다. 각자 자신의 기구를 잡았다.

우측 간과 좌측 간의 나머지 부분에 이상 소견이 있는지 확인한 김지훈이 기구 끝으로 신중하게 절단해야 할 부위를 가리켰다.

“다른 부위는 정상이네. 현수야, 혈관종과 간격이 충분할 것 같은데, 이 부분부터 자르기 시작하면 되겠지?”

“오케이! 끝에서 3센티미터 정도면 충분해.”

“혁원아, 시야 충분하게 나오도록 잘 잡아.”

이혁원은 눈가만 굳힌 채 말이 없었다.

수시로 나올 전임 두 명의 견해를 듣고, 준비한 대로 진행되는지, 김지훈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수술이었다.

좌측 간 끝 부분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보비 온!”

삐이이이! 삐이이이!

반짝이는 불꽃과 함께 간 외부가 살짝 익었다.

신현수가 익은 부분을 잡고 들어 올렸다.

“보비 온!”

하얀 연기가 쉬지 않고 피어올랐다.

좌측 간 윗면부터 시작해 하부까지 잘라야 할 부분 위로 하얀 선이 그어졌다. 조금이라도 깊게 지져진 부분에서 피가 비쳤다.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해야겠어.”

비만 수술 때 본 간 출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퍼스트의 단단한 긴장과 써드의 집중력은 강한 힘이자 실수를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면으로는 많이 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잖아. 개복 때 이 정도면 지나치는 수준이니까 당황하지 말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간을 잘라야 한다.

김지훈이 나직한 헛기침을 터트렸다.

‘나도 배우면서 해야 하는 수술이다. 오직 수술 부위, 내 눈, 내 손에만 집중하자. 우리 팀의 경고와 조언을 절대 무시하면 안 돼.’

시연, 발표 따위는 모두 잊어야 할 순간이었다. 아니, 수술 방에 환자가 들어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을 잊었다.

“마취과, 간 절제 시작합니다.”

김지훈이 기구를 가져갔다.

수술 팀은 물론 김진호 교수, 고경아, 마취과 간호사까지 모두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첫 수술을 끝내고 다음 환자를 기다리던 이준영 교수가 슬며시 얼굴을 보였다.

잠시 지켜보다 다음 수술을 들어갔다. 가뜩이나 무뚝뚝한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굳어 있었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길게 들리는 보비 소리만으로도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음을 알 수 있었다. 이준영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지금은 오직 환자와 수술만 생각해.’

사각! 사각!

작은 모스키토로 간을 부쉈다.

새끼손톱 반도 안 되는 크기였지만 곧바로 검붉은 피가 비쳤다. 깨진 조직 사이로 실보다 가느다란 혈관과 담도 분지만 남았다.

“보비! 가위! 절제면 처리합니다. 수처 주세요. 현수야, 살짝 조금만 더 벌려 줘. 혁원아, 시야 확보할 때 우리가 잡고 있는 기구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해.”

분지를 자르고, 잘린 간 양쪽 면을 수처로 처리했다.

제거해야 할 혈관종이 있는 부분도 가볍게 처리할 수 없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혈관이 피를 쏟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신중하고 침착했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과정도 쉬운 부분이 없었다. 조금씩 절제면이 깊어져 가며 긴장도 점점 치솟았다.

사각! 사각!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시야가 점점 좁아지며 기구를 조작할 공간마저 확보하기 어려웠다. 간 조직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절개된 간을 힘주어 당길 수도 없었다. 석션의 힘이 부서진 간을 빨아들이면 새로운 출혈까지 야기될 상황이었다.

“현수야, 석션 빼고 가급적 거즈로 출혈 확인하자. 간호사, 수처 주세요.”

같은 과정을 반복하건만 도리어 어려움이 더욱 가중됐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이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극도의 신중함을 실어야 했다.

아직 본격적인 난관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개복과는 차원이 다르네. 집중하자, 집중!’

드디어 수술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위험한 구조물이 보였다. 혈관종과 연결된 3개의 굵은 혈관 중 첫 번째 혈관이다. 그중 단 하나라도 터지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곧바로 개복해야 한다.

“현수야, 기구의 이점은 아예 없다고 생각하자. 평소 사용하는 기구와 똑같이 생각하고 조작하는 것이 좋겠어. 간호사, 클립 준비하고 대기하세요.”

삐이이이! 삐이이이!

사각! 사각!

혈관을 확실하게 노출시키기 위한 박리가 시작됐다. 부서진 간은 끊임없이 피를 쏟아 냈고, 혈관 벽은 예상보다 훨씬 약했다.

김지훈과 신현수의 손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이혁원은 물론 마취과도 숨소리를 죽여야 했다.

이런 과정을 두 번 더 거쳐야 한다.

무사히 모든 혈관을 처리한다고 해도 간이 떨어져 나오는 순간까지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 피부 봉합을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을 것이다.

띠! 띠! 띠! 띠! 띠!

규칙적인 심박동 소리만 들렸다.

첫 번째 혈관이 서서히 화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어떤 수술이든 혼자 해낼 수 없다. 신현수와의 완벽한 호흡, 이혁원의 강한 집중력, 수술 팀 전체의 조화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순간이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시간, 진충기도 첫 번째 복강경을 이용한 간 절제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좌측 간 일부가 이미 잘린 상태였다. 집도의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 수술이 아니다. 손을 대자마자 검붉은 피가 주르륵주르륵 새어 나왔다.

“보비!”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간 절제 전용이라더니 성능이 왜 이래? 보비 파워 올려. 보비 온!”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이 간호사, 수처 줘. 한 교수, 카메라 들어오고 절대 움직이지 마. 아니다. 약간만 바깥쪽으로 당겨. 그만, 그만!”

절단면이 드러났다.

작고 가는 바늘이 간 조직을 뚫고 들어갔다. 신중하게 매듭을 만들고 타이했다.

출혈량이 다소 줄었지만 거즈는 여전히 검붉게 물들었다. 수처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진충기의 수술 모자가 슬슬 땀으로 젖어 갔다.

“수처, 하나 더.”

공간이 좁았다.

“한 교수, 정신 차려. 수처해야 할 부분이 더 깊은데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해? 카메라 잘 비쳐. 세컨, 정신 차려라.”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술 중에 과격하다 할 정도로 과한 반응을 보이는 써전이 드물지 않다.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심지어 욕이 난무하기도 한다.

진충기도 그런 성향인 듯했다.

두 번째 수처로 무난히 출혈을 잡았다.

조금씩 간을 절제해 가며 보비와 타이로 단면을 처리했다. 목소리는 높았지만 역시 실력은 출중했다. 좁은 공간 속에서 기구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절제하고자 하는 간의 3분의 1이 잘렸다. 굵은 혈관이 나올 때가 됐다.

진충기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표정과는 달리 침착하면서도 신중하게 간 조직을 처리하며 혈관을 노출시켰다.

혈관종과 연결된 혈관임을 직감한 진충기의 손이 느려졌다. 조심스럽게 혈관 주변을 처리했다.

까다롭기 짝이 없는 과정을 무난하게 진행시켰다.

“클립! 수처!”

끼이이익! 끼이이익!

은빛 클립 두 개가 혈관에 꽉 물렸다. 만에 하나를 위해 수처와 타이까지 병행했다.

깔끔하게 첫 번째 혈관을 처리했다.

남은 주요 혈관은 단 하나였다.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간 내 혈관과 담도를 처리하며 가장 중요한 구조물에 접근했다. 보비로 간 조직을 지질 때마다 하얀 연기와 함께 검은 피딱지가 생겼다.

“거즈. 여기서 피 더 나면 안 된다. 한 교수, 기구 함부로 움직이지 마. 조심하라고. 야! 세컨이 여기서 왜 나서? 넌 내가 하라는 것만 해.”

수술도, 분위기도 살벌했다. 수술 팀 전체가 얼어붙었다.

매번 있는 일인지 그다지 당황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 희한한 일이었다. 진충기의 실력이 그만큼 출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두 번째 혈관이 노출됐다. 예상외로 굵었고, 수술 부위는 더 깊어졌다.

클립 두 개를 사용해도 각도상 잡을 수 없는 부분이 생겼다. 기구까지 두꺼운 탓에 조작하기도 힘들었다.

“10밀리짜리가 아니라 5밀리짜리가 필요한 거 아냐?”

진충기가 눈 골에 주름을 만든 채 혈관을 처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난관이 분명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성공을 바라볼 수 있었다.

퍼스트 손에 들린 카메라와 기구가 살짝 움직였다. 보다 좋은 시야를 확보해 주기 위한 동작이자 의도였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이기도 했다.

진충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움직이지 마. 석션이나 제대로 해.”

퍼스트가 움찔거리며 멈췄다.

혼자 하는 수술일 수 없건만 진충기는 모든 수술을 집도의 위주로 끌어 나갔다. 워낙 실력이 뛰어나고 주관이 강하기에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입을 열기도 힘들었다.

간신히 클립을 물린 진충기가 길게 숨을 내쉬며 수처를 시도했다. 석션을 따라 검붉은 피가 사라졌다. 은근히 양이 많아 보였다.

“여기만 잡으면 끝난다. 긴장해.”

은빛 바늘이 간 조직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부서지기 쉬운 절제면을 신중하게 타이했다. 매듭이 단단히 조여졌다. 피만 멈추면 성공을 눈앞에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출혈이 만만치 않았다. 혈관 주변에서 나오는 피를 확실하게 잡아야만 한다.

또 한 번 수처를 하고 매듭을 조였다.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줄어들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린 진충기가 강하게 매듭을 조였다.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경험을 믿던 그 순간, 실이 끊어졌다.

‘툭’ 소리와 함께 수술 부위에 단단하게 가해지던 압력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바늘을 찔렀던 자리에서마저 새로운 출혈이 발생했다. 잘린 면으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진충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처! 보비! 석션! 정신 차리고 똑바로 잡아.”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출혈을 잡을 수 없었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도리어 양이 많아졌다. 절제면을 닦은 거즈를 빼내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수술 전 가장 우려했던 문제가 터졌다.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퍼스트가 다급하게 말했다.

“선생님, 개복해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지만 진충기의 눈이 사나워졌다. 출혈만 잡으면 성공이다. 독보적인 존재로 각인될 기회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한 교수, 판단은 내가 해. 카메라나 잘 비쳐. 간호사, 더 큰 바늘 줘.”

더욱 깊고 넓게 간을 뜨고 타이를 했다. 단단하게 매듭을 짓자 출혈이 멈추는 것 같았다.

성공일까?

어디를 찔렀는지 스멀스멀 새어 나오던 피가 다시 줄줄 흘러나왔다. 출혈량이 점점 증가했다. 복강경으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진충기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필사적으로 손을 놀렸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금까지 흘린 피가 적지 않았다.

잘 버티던 환자의 심장이 헐떡이기 시작했다. 바이탈이 흔들리기 직전이었다.

마취과 교수가 피를 달며 소리쳤다.

“진충기 선생님, 심장박동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누가 와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제길! 개복하자. 간호사, 빨리 준비해.”

배를 여는 진충기의 눈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단 한 바늘의 실수가 모든 것을 망쳐 버렸다. 때를 놓친 만큼 서둘러야 했고, 더욱 힘든 수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팀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거칠었다.

김지훈도 간을 절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신현수와 이혁원의 손이 침착하게, 때론 다급하게 움직였다.

“현수야, 수처하기에 너무 좁다. 시야 조금 더 확보해 줘. 혁원아, 석션으로 바꿔서 흐르는 피 해결해. 그렇지. 그쪽에서 석션하는 게 좋겠다.”

어느 한 명 푹 젖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으로 가능한 수술이 아니었다.

자신의 수술을 모두 끝낸 이준영 교수가 수술실을 함께 지켰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에야 수술이 끝났다.

극도의 긴장에 사로잡혔던 수술 팀 모두 맥이 풀렸다. 심한 갈증에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는 눈가를 좁힌 채 말이 없었다.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났다.

같은 수술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날, 두 개의 수술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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