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46화 (846/1,329)

10화. 성공도 실패도 값진 일이다 Ⅰ (1)

진충기와 수술 예약을 잡고 있어야 할 사람.

“이정애 환자분, 오늘은 진료하는 날도 아닌데 어쩐 일이십니까?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선생님을 뵈러 왔는데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뜻밖의 방문에 오늘 어떤 수술을 했는지 까맣게 잊었다. 환자가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경우도 없었다. 의아함을 감추고 마주 앉았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습니까?”

“바쁘실 텐데 바로 말씀드릴게요. 선생님께 수술을 받고 싶습니다.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들었지만, 그래도 복강경으로 시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짐작조차 하지 못한 말이었다.

내심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진충기의 말을 생각하면 환자의 선택은 명확했다. 개복을 말하며 경험이 없는 의사와 80퍼센트 성공을 장담한 의사 중 누구에게 수술받을지 빤한 일이었다.

왠지 불안할 지경이었다.

“제게 수술을 받으시겠다고요?”

“예. 부탁드려요.”

“배를 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죠?”

“그런 말씀은 수술 후에 해 주세요.”

확고한 결정을 내린 말투였다.

기대도 못한 결정에 은근한 부담과 걱정이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 가슴 떨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정애 환자가 더 급했다.

“언제 가능할까요?”

일사천리로 해결해야 할 때였지만 절대 서두르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 번 수술의 위험성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환자의 결정을 확인했다.

복강경으로 시도해 꼭 성공해 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개복은 충분히 각오하고도 남은 얼굴이었다. 이제는 불안을 떨치고 수술해도 좋았다.

“그럼 일정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수술 스케줄 표를 확인하며 고민에 빠졌다. 예상되는 수술 시간부터 준비 기간까지 모두 고려해야 했다.

월, 수, 금은 한 달 후까지 이미 예약으로 꽉 차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뒤로 너무 밀리면 마음이 바뀔 텐데.’

입술을 내밀던 김지훈이 진료 예약까지 확인했다. 눈이 반짝 빛났다. 다음 주 화요일은 바글바글한데 목요일은 한 자릿수 환자에 불과했다.

‘아! 목요일 오후에 학회 준비하기로 했었지?’

학술 임원 선발과 시연이 걸린 일이기에 무리해서 시간을 비웠는데 기회가 될 줄은 몰랐다. 반드시 수술하라는 하늘의 계시 같았다.

“다음 주 목요일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한 달 후에나 예약을 잡을 수 있습니다.”

“목요일이요? 수술하시는 날이 아니잖아요?”

김지훈에 대해 여러모로 다 알아본 모양이었다. 국내 첫 시도일지 모르는 데다 주구장창 위험성만 설명했는데 수술을 받기로 했다면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일이 있어서 예약을 적게 받았습니다. 첫 수술로 할 수는 없고 빨라도 11시 이후에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입원은 화요일에 하시면 됩니다.”

“저야 빨리하면 좋죠.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의사가 이런 말 하면 이상하지만, 저도 복강경으로 끝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수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정애 환자가 일어섰다.

인사를 하려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진료한 지 하루도 안 돼 결정했다. 더구나 집도할 의사는 긍정적인 말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이 짧았던 만큼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환자분, 확신도 드리지 못했는데 왜 제게 수술받기로 하신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 몸을 맡겨도 좋을 만큼 믿을 수 있는 선생님이란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드네요.”

믿을 수 있는 의사!

환자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순간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때마침 소중한 경험을 했다. 비록 여섯 바늘에 불과한 경험이지만 최대한 살려 극대화시키고 싶었다. 성공을 위한 강력한 지렛대로 말이다.

‘해 봅시다. 환자분의 신뢰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외래를 나서는 이정애 환자의 얼굴이 홀가분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지 몰라도 후회는 없었다.

장담을 하는 의사에게 이유 모를 조급함을 보았고, 우려와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의사에게 도리어 진정과 여유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 선택이 맞기를.’

H 병원에서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오늘 중으로 입원 및 수술 여부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것은 좋았지만 이미 김지훈이 준 입원장을 들고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받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답변을 하고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던 이정애 환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휙 하고 스쳐 지나간 하얀 가운 하나가 응급실로 다급하게 사라졌다.

분명 김지훈이었다.

‘교수도 뛰어다니나?’

진료 중 받았던 인상과는 달랐다.

엄청나게 급한 환자라고 해도 교수가 뛰어다니다니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침착하게 보였던 김지훈이라는 의사가 가진 모습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진우야, 혈관 수술할 환자들 찾아서 사정 말씀드리고 수술 늦는다고 해. 만석아, 준비 다 됐지? 빨리 올리자. 손일석 선생, 급하다. 퍼스트 서.”

익숙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급해 보이는 느낌이 왠지 편안하게 다가왔다. 생사를 다투는 응급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빤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시간, 진충기가 심각한 기색으로 복강경 기구를 확인하고 있었다. 일이 아주 묘하게 됐다.

이정애 환자가 온 순간 독보적인 경력을 쌓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성공한다면 학술 임원은 물론 시연까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복강경으로 간 절제를 한 경험은 없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 탓인지 김지훈에게도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환자를 뺏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함을 지우지 못했다.

만일 김지훈이 성공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반대로 자신이 성공한다면?

그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었다.

행여 실패한다고 해도 환자가 한 명인 이상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학회에 발표할 이유도 없었고, 흔히 있는 일 중 하나로 넘어갈 수 있는 수술이기 때문이었다. 도리어 도전 자체가 의사들 입에서 회자될 수도 있었다.

결국 수술 성공 여부를 떠나 이정애 환자를 누가 수술하는지가 관건이었다. 그것이 진충기의 생각이었다.

환자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쓰는 동안 공교롭게 또 한 명의 간 혈관종 환자가 왔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일이었다.

두 건 중 하나, 그중에서도 두 번째 수술을 받게 될 환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런데 이정애 환자가 다른 병원을 선택했다.

강호승에게 기구를 받은 의사는 두 명이다. 바로 반드시 꺾어야 할 라이벌인 김지훈이다. 아마도 자신처럼 학회 전에 수술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되면 같은 질환으로 두고,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은 결코 만만하게 볼 의사가 아니었다.

자신이 성공하고 김지훈이 실패한다면 최상의 결과지만, 반대라면 생각조차 끔찍할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최인호 교수의 감당할 수 없는 질책도 받아야 한다.

“제길! 다음 주 목요일은 정말 긴 하루가 되겠군.”

이런 방식으로 김지훈과 승부를 볼지는 몰랐다. 기필코 성공하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 만일 실패한다면 김지훈도 실패하길 바라야 했다.

담낭농증, 조기 위암, 조기 대장암.

이미 김지훈에게 붙은 최초 수술이란 수식어에 하나를 더 보태 줄 수는 없었다. 최고의 써전은 한 명이고, 그 사람은 반드시 진충기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강호승이 가져온 기구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승부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김지훈도 칼을, 아니 기구를 갈고 있긴 했다.

“현수야, 경석이 형, 다음 주 목요일 혈관종 수술 합시다. 라파로로 시도합니다. 현수야, 고맙다.”

갑작스러운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신현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도움을 줬다. 그것도 개복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운 좋은 놈!’

어찌 됐든 원래 계획대로 정신없이 바빠질 때가 됐다. 구석에 치웠던 자료들이 다시 빛을 보았다.

수술 결정 후 첫 논의가 끝나자 이경석이 입맛을 다셨다.

“하필이면 그날 진료가 줄줄이 비엔나냐.”

자연스럽게 수술 팀이 정해졌다.

김지훈, 신현수, 이혁원.

소식을 들은 이준영 교수가 말없이 어깨를 두드렸다.

“절제면 수처와 타이는 많이 다를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시연을 했으면 하지만,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욕심은 내야 할 때 내야 문제가 없는 법이다.”

이 말이야말로 반드시 명심해야 할 말이었다.

***

바쁜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 왔다. 드디어 손일석과 고경희의 운명의 날이 밝았다.

단정한 머리, 깔끔한 예복, 격식을 갖춘 인사.

단아한 머리, 하얀 드레스, 수줍은 미소.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벌써 3년 전 일이다.

“우리 경희 정말 예쁘네요.”

“우리도 저랬을까요? 무지하게 점잖네.”

고경아가 말없이 웃었다.

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에 맞춰 신랑이 입장하고.

딴따다다! 딴따다다!

결혼 행진곡에 맞춰 신부가 입장했다.

으레 그렇듯 신랑, 신부에겐 정신없는 하루다.

주례, 사진 찍기, 폐백, 그리고 피로연까지.

하오문주답게 병원 식구를 비롯해 손일석과 친분이 있는 하객들이 상당히 많이 왔다.

참석한 교수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동기와 후배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잘 다녀와.”

“갔다 와서 들를게. 나 없는 동안 혈관 수술 잘하고.”

“걱정하지 말고 신혼여행이나 즐기셔.”

기쁜 날에도 눈물이 나는지 장모님의 눈가가 벌겠다. 장인어른은 얼굴만 비치고 휙 돌아섰다. 시집가는 딸을 보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우리 결혼식 날에도 우셨나?’

신랑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일석아, 경희야, 행복하게 잘 살아.’

생판 모르는 사람이 만나 부부가 돼 가정을 이뤘다. 부부는 남남이고, 칼로 물 베는 싸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평생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김지훈이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미안한 일투성이다. 매일매일 잘하겠다고 결심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일쑤였다.

엄마의 눈물 때문인지 눈가를 훔치는 고경아를 보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경아 씨, 앞으로 잘할게요. 파이팅!’

손일석과 고경희에겐 경황조차 없을 하루였고, 김지훈에겐 무척 특별한 하루였다. 거의 15년 가까이 부대끼며 지낸 친구가 드디어 가족이 됐다.

우하하하! 병원에서나 집에서나 윗사람이다.

신랑도 아닌데 결혼식 흥분이 지속될 리 없다.

곧바로 일상에 복귀했고, 혈관종 수술에 집중했다. 여섯 바늘의 경험이 무척 도움이 되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일천한 경험에 불과했다.

은근한 초조함이 가시질 않았다.

이정애 환자가 예정대로 입원했다. 얼굴 볼 때마다 자신감 대신 강한 부담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신현수와 이혁원은 수술 팀으로서 환자와 최대한 밀접한 관계를 쌓으려 애썼다.

학회 발표와 혈관종 수술에 대비하다 보니 어느새 목요일 아침 일과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매번 수술을 앞두고 긴장하지만 오늘은 유독 심하게 다가왔다. 간신히 진료에 집중하고, 예정된 시간에 맞춰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퍼스트를 설 신현수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지훈과 완벽한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수술 팀 전체가 집도한다는 각오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이준영 교수는 수술 중이었다. 여느 때처럼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제자의 수술실을 찾을 것이다.

환자가 옮겨졌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환자분,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선생님, 부탁드려요.”

마취과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바이탈을 점검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출혈에 대비해 준비한 혈액을 확인했다.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김진호 교수가 마스크를 들었다.

“환자분, 마취 시작합니다. 숨 크게 쉬세요.”

정맥 마취제가 투여됐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웅얼거린 이정애 환자가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즉시 기관 내 삽관을 하고, 호흡 마취로 전환했다.

지금부터 수술 팀의 시간이다.

복부 소독을 했다. 소독 천으로 복부만 남기고 전신을 덮었다.

어시스트를 담당한 간호사가 기구대를 수술대 옆에 바짝 붙였다. 김지훈과 필요한 기구가 모두 준비됐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몸이 무거워진 고경아가 자청해 들어와 함께 제반 준비를 했다.

켈리, 모스키토, 가위, 니들 홀더(봉합용 기구), 실과 바늘까지 기구대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또 다른 기구대 위에 개복을 대비한 기구들이 하얀 소독 천으로 덮여 있었다.

‘저걸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이이잉!

나직한 기계음과 동시에 복강경 본체가 작동을 시작했다. 카메라를 연결하자 수술실 한 곳이 화면에 비쳤다. 신현수가 거리를 조절하며 초점과 화질을 점검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보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새로운 기구가 손에 맞는지, 빡빡하지는 않은지 조작해 본 김지훈과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야, 부탁한다. 해 보자.’

‘긴장하지 말고 시작하자. 열심히 준비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모든 준비가 확실하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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