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경험은 힘이자 자신감이다 (1)
환자는 속을 어떻게 수술하는지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더 큰 영향을 받곤 한다. 간암이 아닌 양성 질환이기에 결코 무시하지 못할 말이었다.
복강경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에 미용적인 면이 있기도 했다. 수긍할 수밖에 없지만 간 절제다. 이번만큼은 안전하다는 확신이 서야 가능한 수술이었다.
“아시겠지만 국내에서는 시행한 적이 없는 수술입니다. 간 절제는 다른 수술과 달리 출혈을 제어하지 못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저로서는 안전을 위해서 개복을 권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도조차 못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이정애 환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지훈이 지그시 환자의 눈을 응시했다. 의사로서의 욕심은 철저하게 배제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권할 수가 없습니다. 복강경으로 시도했다 개복을 하게 되면 흉터도 더 많이 남습니다. 환자분이 원하는 목적조차 이룰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정애 환자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굵은 혈관이라도 터지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증상이 없거나 미약할 때 수술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결심했다. 이왕이면 흉이 적기를 바랐고, 일상에 빨리 복귀하기를 원했다.
까닭에 복강경 수술로 유명한 병원 두 곳의 의사를 만났다. 머리 희끗한 의사일 줄 알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젊은 의사였다. 하지만 복강경에 관한 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의 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복강경이 위험해서 수술을 피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못하시는 건가요?”
‘내 생각은 어느 쪽이었지?’
길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인정할 것은 깨끗하게 인정하고, 의사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능력 부족보다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었다.
환자가 원하는 수술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감까지 잃을 이유는 없었다.
“둘 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근 들어 많이 시행되고 있지만 복강경은 한계가 명확한 수술법입니다. 배를 여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면, 특히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요인이 하나라도 더 많다면 의사로서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곧 실력 부족일 테고, 환자분 말씀대로 못하는 거겠죠.”
이정애 환자의 눈길이 김지훈에게 머물렀다.
못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당당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의사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환자로서 자신을 수술할 의사가 어떤 의사인지 알아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험이 훨씬 많은 분들이 있을 텐데, 여러 선생님들이 추천한 이유가 뭘까?’
최초 시도라는 타이틀을 여럿 가진 의사!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알려진 의사!
그래서 다른 병원 의사들도 이준영 교수라는 의사를 놔두고 김지훈을 추천했을 것이다.
젊다는 이유로 경험이나 실력이 부족할 것이란 판단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한 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왜 진충기 선생님과 하는 말이 다르지?’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며칠 전 H 병원 진충기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어요.”
하필이면 이런 판국에!
환자로서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찜찜했다. 의사 사이에 있는 일, 오해일지도 모르는 일을 두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객관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진충기 선생님이요? 수술 잘하시고, 복강경 부분에서는 인정받는 분입니다. 어려운 수술인데 상담 잘하셨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마음이 놓이네요. 배를 열 가능성도 있지만 기구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잘라야 하는 부분이 적어서 성공할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이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80퍼센트요?”
드물게 시행되는 수술의 성공 여부는 확률과 큰 상관관계가 없다. 한두 번 수술을 성공했다고 100퍼센트 가능한 수술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장담을 했다면 이미 간 절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깜짝 놀랄 말이었다.
‘왜 못 들었을까? 기구는 어디서 구했지? 하긴 강 사장님만 기구를 취급하는 건 아니지. 80퍼센트라! 80퍼센트! 이건 거의 성공을 확신한다는 말이잖아.’
숨이 답답해지며 가슴이 서늘해졌다. 침이 바짝 마르는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훌쩍 앞서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낌이 이런 것일까?
궁금증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소문의 근원이건 뭐건 간에 당장 전화해 어떤 기구를 사용해 어떤 식으로 수술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만일 진충기가 이정애 환자를 수술하게 된다면 참관이라도 청해야 할 일이었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어렵다고 하시지만,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지 않나요?”
확률이라도 말해 달라는 얼굴이었다.
사실 의사에겐 큰 의미가 없는 것이 확률이었다. 80이나 50이나 환자에게는 결국 성공 아니면 실패 둘 중의 하나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숫자일지언정 어느 정도 안전한 수술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환자의 마음은 다 그렇다.
불행히도 단 한 번의 경험조차 없는 수술을 수치로 계량할 방법은 없었다.
스승의 말을 기억하는 한, 그동안 지켜 온 원칙을 잊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말은 다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복강경으로 간을 절제해 본 적이 없습니다. 확률로 말할 수술도 아니고요. 제 대답은 같습니다.”
“시도도 하지 못하신다는 건가요?”
“권하지 못하는 것과 시도하지 못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저도 욕심이 있어 시도는 해 보고 싶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자분에게 어떤 수술이 안전한지입니다.”
“시도는 할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이정애 환자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토록 강하게 복강경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는 없었다. 말 못할 사연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어쨌든 지난밤, 고민 끝에 내린 한 가지 결론을 말하고 결정을 기다려도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복강경으로 시도는 할 수 있습니다. 단, 개복 전환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후가 아니라 예측만 되어도 지체 없이 배를 열 겁니다. 간 출혈은 시간이 생명이고, 개인적인 욕심을 앞세워 수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힘주어 ‘예측만 되어도’라는 말을 강조했다.
환자의 관심이 엉뚱한 말에 쏠렸다.
“욕심이라니요?”
“진충기 선생님이 이미 했을 수도 있지만, 간 절제를 복강경으로 했다는 보고를 아직 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수술을 성공한다면 의사에겐 대단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도 자체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80퍼센트에 달하는 성공 장담.
의사의 명예보다 우선시하는 환자의 안전.
전혀 다른 소리로 들릴 만큼 큰 차이였다.
수술받아야 하는 환자의 선택은 명확했다.
안전하지 않으면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80퍼센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일을 빼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상담받았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보인 진충기의 모습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보인 반응과는 완전히 달랐다.
‘분명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어. 자기 이외에는 수술할 수 있다는 의사가 없다는 말까지 했는데 사실일까? 김지훈 선생님 말을 생각하면 사실이네.’
김지훈으로서도 입맛이 쓴 일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부분이 얼마나 부족한지 철저히 되새겨, 다음에 같은 질환이 온다면 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정애 환자가 힐끗 시계를 보며 일어섰다.
“선생님께 수술을 받는다면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죠?”
무안함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말일 것이다.
“증상이 있으시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결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환자분의 신뢰가 중요합니다. 믿음이 더 가는 의사에게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어도요?”
상당히 당황스러울 정도로 단도직입적이었다. 실제로 80퍼센트 성공을 장담한 의사를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합니다. 제가 진료하는 모든 분들에게 신뢰받을 수 없고,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 병원만, 혹은 나만 수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자 자만에 불과하고요. 어떤 결정을 하시든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환자분 생각보다 훨씬 큰 수술입니다. 몸 관리 잘하세요.”
‘에휴! 다른 병원 가라고 고사를 지내는 꼴이네.’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혈관종 수술도 그만큼 멀어졌다.
진충기가 간 절제를 성공한다면 학술 임원은 물론 시연까지 물 건너갈 것이다.
가슴이 쓰릴 정도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치료의 목적은 시연이나 영예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쉽네. 진충기 선생이 진짜 간 절제 수술을 한 경험이 있을까? 정말 서늘하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때 아닌 전화벨 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여보세요?”
(강호승입니다. 점심시간이라 전화드렸는데 통화 괜찮으십니까?)
“딱 맞춰 거셨네요. 괜찮습니다. 웬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혈관종 수술 하기로 하셨는지 궁금해서요. 공교롭게 진충기 선생님도 같은 기구를 주문하셨습니다. 두 개를 주문하실 수도 있다고 하네요.)
간 절제 환자가 두 명이나?
서늘함을 넘어 섬뜩한 느낌이 다가왔다.
궁금함을 풀 기회였다.
전임들이 어떤 수술을 하는지 다른 병원에 알려 줬다고 강호승 스스로 말했다. 그런데 정작 모든 의사들이 관심을 둘 수술을 자신들에게는 알려 주지 않았다.
은근히 서운하기도 했다.
“환자 말 들으니까 첫 절제술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는 말을 안 했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전에 하신 적이 있답니까? 거래한 지 꽤 됐지만, 간 절제에 사용되는 기구는 이번에 처음 보여 드렸는데요.)
응? 다른 기구상에게 구했나?
“그런가요?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혈관종 환자는 진충기 선생님한테 수술받을 것 같습니다. 성공률이 80퍼센트 정도 된다고 하셨답니다. 평소 들은 것보다 라파로를 훨씬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많이 하시긴 합니다. 최인호 교수님이 전폭적으로 미시는데 적을 수는 없죠. 기구 사용량 보면 서로 만만치 않으십니다. 굳이 비교하면 선생님 병원이 조금 더 사용하는데 반대 아닐까요? 어쨌든 선생님과 첫 거래를 터서 그런지 아쉽습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전화한 모양이었다. 잠시 기구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통화를 끝냈다.
진충기는 이미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결국 가능하다는 말이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수술했을까? 별문제 없었을까?’
후다닥 점심을 먹고 간 절제에 매달렸다.
이정애 환자가 어떤 결정을 하든 동일한 수술이 언제 뜰지 모른다. 평소 철저히 대비해야 다음에는 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 이정애 환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들고 있었다. 매우 중요한 번호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선뜻 받질 못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이정애 환자분? 결정하셨습니까?)
“빨리 결정해야 하나요?”
(간 절제 수술이 하나 더 잡혔습니다. 기존에 예약된 수술이 많아서 다음 주가 아니면 한두 달 후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환자분 수술이 급하기 때문에 바로 연락드렸습니다.)
“정말 하실 수 있는 거죠?”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수술은 없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복강경으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우리 병원 이외에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S 병원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흠흠! 어느 선생님에게 어떤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의사들 간의 일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경험이 없는 것만은 사실일 겁니다. 어쨌든 수술받게 되면 집도의가 될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수술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나요?”
(내일까지 연락 주세요. 그럼 오후 수술이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 몸 관리 잘하세요.)
이정애 환자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신뢰부터 몸 관리 당부까지 거의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이상하게도 확신에 찬 의사의 말을 도리어 확신하기 힘들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번 주 주말은 손일석의 결혼식 참석으로 시간 낼 틈이 없을 것이다.
며칠 만에 장인어른과 장모님부터 고경철까지 온 식구가 다시 모이지만 항상 즐거운 일이다. 몸조리 때문에 고경순은 보지 못할 것이다.
‘이름이 광석이라고? 서광석. 좋네.’
왠지 김광석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지는 날이었다.
상념도 잠시, 다음 주 주말로 다가온 학회 준비를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논문과 케이스 리포트가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아쉬움이 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혈관종 수술은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경우이기 때문이었다.
‘아쉽다. 시도해 보자는 말만 할 걸 그랬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수술 때마다 화면에 보이는 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구로 자른다는 생각만으로도 검붉은 색을 띠는 거대한 장기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졌다.
신현수와 이경석도 수술로 정신이 없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정규 수술로 혈관종 수술이 물 건너갔다는 말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마침 비만 수술이 벌어지고 있었다. 노란 지방 덩어리에 파묻힌 위를 다루는 신현수의 손이 능숙하게 보였다.
‘현수나 경석이 형이 퍼스트를 섰을 텐데 너무 겁먹었나?’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것마다 혈관종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수술을 앞두고 정신이 분산되면 안 된다. 고개를 마구 흔든 김지훈이 관자놀이를 치며 다음 수술을 들어갔다.
처컥! 처컥!
규칙적인 기계음이 두 곳에서 들렸다. 별문제 없이 모든 수술이 끝나는 듯했다.
마지막 마무리를 할 즈음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