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무를 흔드는 바람 Ⅱ (2)
아침 댓바람부터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누구 입인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누구보다 인복 많다고 여겼는데, 주는 것 없이 너무 많은 것을 받은 대가인지도 몰랐다.
피스(Peace)! 카르페 디엠!
몇 번을 외쳐도 속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놈인지 걸리기만 해. 멱살을 잡아서 냅다 꽂아 버린다. 아니지. 다시는 입을 놀리지 못하게 박살을 내야지.’
사람으로 인해 호되게 당한 경험 숱하게 많다. 더 이상 속없는 사람처럼 굴 수 없었다. 이런 일까지 넘어가면 험한 세상 헤쳐 나가기 결코 쉽지 않다.
누군지 찾아 입 싸움 하며 주먹 날리는 방법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발군의 실력으로 ‘찍’ 소리조차 못하게 눌러 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딱 세 대만 패 주고 싶다.’
자! 달리자.
한 시간을 늦추면 하루가 늦는다.
소문이고 나발이건 간에 해야 할 일 소홀히 하면 거짓이 진실로 변한다.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간 혈관종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았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2저자라고 해도 3포트 복강경을 주제로 논문 확실하게 쓰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했다. 이혁원의 눈빛에 갈망과 갈증이 실린 지 오래였다.
마침 아주 좋은 케이스가 있었다.
“그럼 오늘 한번 죽여 볼까?”
이른 회진을 마친 김지훈이 으스스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혁원을 호출했다. 기대가 큰 탓인지 마치 수술을 받기 직전처럼 긴장됐다.
“혁원아, 3포트 라파로 과정 읊어 봐.”
“예? 갑자기……. 아닙니다.”
이혁원이 번뜩이는 감을 두 손에 딱 잡았다.
눈 사이골을 깊게 만들며 수술 과정을 읊었다.
손으로 이마를 받친 채 두 눈을 감고 있던 김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4년 차 치프가 1년 차로 돌아갔다.
다시! 다시! 다시! 다시!
어느새 첫 수술 시간이 임박했다.
그제야 다시 소리에서 벗어난 이혁원이 헉헉 숨을 몰아쉬며 혀를 빼물었다. 간만에 피 곤죽이 된 탓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준비 제대로 안 했구나.”
절망스러운 말이 들러붙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지훈의 입이었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복강경 수술이라지만 솔직히 너무 많이 막혔다.
미진함을 인정해야 했다.
이내 환자가 옮겨졌다.
수술실에 들어선 이혁원이 흠칫 놀랐다. 고경아가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수님… 아니, 그게 아니라 고 간호사, 여기서 뭐 하세요? 이젠 수술 안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김 교수님이 이번 수술은 꼭 제가 어시스트 서야 한다고 하도 부탁하셔서 들어왔어요. 담낭 절제술인데 특별한 문제라도 있는 환잔가요?”
그뿐이 아니었다.
3포트 수술이기에 퍼스트 한 명, 간호사 한 명만 있으면 족했다. 그런데 2년 차 차상수까지 허겁지겁 들어와 숨을 헐떡였다.
‘제일 차분하고 얌전한 놈이 왜 이래?’
“차상수, 넌 왜 들어왔어?”
“김지훈 선생님께서 빨리 수술 들어오라고 하셨습니다. 9시가 다 돼서 뛰어왔는데, 아직 마취 전이라 다행이네요.”
뭔가 아귀가 맞아 들어갔다.
이미 잔칫상이 차려진 느낌이었다.
실망도 잠시, 왠지 모를 기대감이 슬슬 온몸을 타고 넘었다.
마취를 하는 김진호 교수와 수술 가운을 입는 김지훈의 눈빛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혁원의 입가에 미소가 걸릴 듯 말 듯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다.
이제 한마디만 나오면 된다.
‘뭐 해? 이혁원, 자리에 서? 어떤 말을 하실까? 둘 중 하나만 나오면 첫 라파로 집도다.’
멍하니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철저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김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결정을 철회할 사람이었다. 자칫 다 된 밥에 스스로 재를 뿌릴 수도 있었다.
엄청난 핍박 속에 되풀이했던 수술 과정을 정리했다. 습관처럼 손이 움직이며 나직한 소리를 웅얼거리고 말았다.
누군가의 아주 낯익은 기척이 느껴졌다.
김지훈이 장갑에 묻은 소독 가루를 털며 말했다.
“차상수, 세컨 자리에 서. 잘 봐.”
“예, 선생님.”
“이혁원, 논문 제대로 쓸 수 있겠어?”
시간만 나면 머리를 맞댔는데, 아닌 밤에 홍두깨다. 온몸에 걸린 기대가 무색하게 수술실에서 논문을 확인하다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소문이 사실 되기 전에 우리 최선을 다해서 제대로 쓰자. 그럼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염두에 두고 시작해 봐.”
응? 예상했던 말이 아니었다.
수술과 논문을 연관시키지 못한 이혁원이 머뭇거렸다. 소문이란 말은 또 무엇인지 모를 일이었다.
“뭐 해? 시간 없어. 다음 환자 수술 못 미뤄.”
톤은 다르지만 드디어 원했던 말이 나왔다.
흥분으로 가슴이 뛸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긴장으로 심장이 벌렁거리고, 복강경 기구들이 낯설게 보일 지경이었다.
다른 수술을 받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혁원이 훅 숨을 내쉬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침착해야 한다는 소리를 수없이 되새겼다.
“이혁원 선생, 수술 시작하세요.”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유난히 묵직하게 들렸다.
고경아가 작은 주먹을 흔들며 소리 없는 파이팅을 외쳤다.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시치미 뚝 떼다니, 부창부수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이혁원이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수많은 수술을 김지훈에게 받았고,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복강경 역시 주요 과정을 모두 배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한 적은 없었다.
더구나 집도의가 거의 모든 과정을 담당해야 하는 3포트 수술이다. 그간 결코 자만이 아닌 자신감으로 매 수술에 임했어도 이번 수술만큼은 치솟는 긴장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차상수의 조용한 눈길조차 부담이었다.
김지훈은 아무 말도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눈빛만 보일 뿐이었지만 속마음은 다소 달랐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듯, 모든 후배가 다 귀하고 소중했다.
반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다. 스승과의 관계에서 말미암은 특별한 인연이 중심을 살짝 기울게 했다. 후배들 중 가장 가깝게 여겼고,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혁원아, 지금까지 해 온 대로만 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이자 응원이었다.
이혁원이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첫 라파로다. 잘하려고 욕심내지 말자. 선생님께 배운 대로 안전하고 침착하게 수술을 끝내자.’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작해.”
“메스! 에어 팁!”
드디어 이혁원의 첫 복강경 수술이 시작됐다.
에어 팁이 들어갔다.
처컥! 처컥!
카메라를 넣은 이혁원이 익숙하게 배 속을 살폈다. 담낭 염증 이외에는 깨끗했고, 수술 중 어떤 장애도 발생하지 않을 상태였다.
트로카 두 개가 더 들어갔다.
카메라를 잡은 김지훈이 능숙하게 두 개의 기구가 들어올 자리를 비쳤다. 이혁원의 손을 따라 간과 담낭이 기구에 잡혔다.
본격적인 시작이다.
“보비 온(On)!”
삐이이이! 삐이이이!
하얀 연기와 함께 담낭이 박리됐다.
간과 담낭이 분리되며 경계선이 깊어졌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여러 번 받았고, 이쯤에서 기구를 넘겼다. 갈수록 어려운 과정이 이어지지만 지금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아쉬움만 남았던 순간이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왔다. 복강경 수술을 확실하게 배우기 위해서는 도움받을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이혁원의 이마에 맺힌 땀이 점점 진해졌다.
‘참착하게 해. 잘하고 있어.’
김지훈은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렵게 담낭을 3분의 2 이상 박리한 이혁원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위험 구조물을 처리해야 할 때였다. 강한 부담에 목을 돌리는 이혁원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벌떡벌떡 뛰는 동맥과 담즙이 배출되는 담낭관을 조심스럽게 찾아 박리를 시작했다.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되는 총수담관이 일부 드러났다.
이혁원의 눈에는 위압적이었다.
눈에 띄게 손이 느려졌다. 두 손에 신중함과 침착함이 가득 실렸다.
사악! 사악! 삐이익! 삐이익!
돌아가거나 쉬운 방법은 없다. 본 대로, 배운 대로 모든 신경을 집중해 안전하게 박리해 내는 것뿐이었다. 수술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때였다.
수술 과정을 꿰뚫고 있는 고경아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필요한 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지훈의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가 전해졌다.
‘그렇지. 이대로 가자. 잘하고 있어.’
등짝이 후줄근하게 젖을 무렵, 두 개의 구조물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박리해야 할 부분 이외에는 조금도 손상을 주지 않았다.
이혁원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담낭 동맥, 담낭관 잡습니다. 클립!”
끼이익! 끼이익!
동맥과 담낭관이 잘렸다.
간과 연결된 마지막 부분을 떼어 내자 담낭이 툭 떨어져 나왔다. 담낭을 빼내고, 수술 부위를 확인한 후 배를 닫을 때까지 긴장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컷!”
마지막 봉합을 마친 이혁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자식이! 이혁원답지 않게 무슨 땀을 이렇게 흘려?’
개구리는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모양이다.
3시간이나 걸렸지만 첫 수술에 3포트다. 4포트 수술을 대비해 들어온 차상수는 수술 구경만 했다. 이혁원 홀로 수술 시야를 확보하며 담낭 절제까지 모두 해냈다.
말 그대로 김지훈은 거들었을 뿐이었다.
침착하게 잘했다.
박수를 쳐 줄 만큼 정말 잘했다.
“이혁원 선생도 역시 타고난 써전이야.”
김진호 교수의 과분한 칭찬까지 들렸다.
그래서 휴게실로 직행이다.
마치 첫 복강경 수술을 받았을 때처럼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다. 후배로만 보였던 이혁원이 어엿한 써전으로 거듭났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자를 보는 스승의 마음이 이럴까?
김지훈이 훅! 숨을 불어 내며 뿌듯함을 깊숙이 묻었다.
‘수술은 깔끔하게 잘 끝냈어. 나보다 낫다. 하지만 결과만큼 중요한 것이 과정이야.’
목에 힘 꽉 줬다.
“이혁원, 오늘 수술 어떻게 생각해?”
이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수술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전공의이기에, 첫 수술이기에 시간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문제점이 많았다.
“부분 과정을 할 때는 몰랐는데, 전 과정을 해 보니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구 조작이 미숙했고, 그 때문에 박리는 물론 동맥과 담낭관을 잡을 때 제 스스로도 불안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전공의의 관점이었고,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김지훈의 입이 열리는 순간 불길이 쏟아졌고, 이혁원은 수술할 때 이상으로 땀을 흘렸다.
‘너무 욕심냈어. 혼나도 싸.’
자신했던 수술을 해도 타는 마당에 오늘은 피할 길이 없었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고, 환자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하필이면 점심시간까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아 남은 여유까지 많았다. 주옥같은 말의 향연이 화려하게 벌어지자 쥐구멍을 찾던 이혁원이 한 줌 재로 날렸다.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의욕만 앞세우면 환자 잡는다. 똑바로 하자.”
언제 들어도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김지훈 역시 ‘똑바로 하자’는 말을 면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자식! 오늘따라 유난히 의기소침이네. 첫술에 배부른 사람 없다. 나도 눈물 콧물 많이 흘리고 나서야 라파로가 어떤 수술인지 간신히 감을 잡기 시작했어. 이제 시작인 놈이 축 처지긴. 이혁원, 오늘 수술 정말 잘했어, 인마.’
김지훈이 목을 휘휘 돌리며 일어났다.
이혁원도 따라 벌떡 일어섰다.
‘이제 간담도 파트 돌 수 있는 날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라파로는 오늘로 끝인가?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를 주실까?’
아직도 머리끝에서 하얀 연기가 풀풀 날렸다. 그 와중에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피식 웃음을 머금은 김지훈이 문을 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오후 수술 잘 준비하고, 끝나는 대로 논문 보자. 참! 오늘 저녁부터 라파로로 간 절제 가능할지 논의할 거니까 시간 분배 잘해.”
수술, 논문, 논의.
일이 마구 몰려온다는 생각까지 겹친 이혁원이 힘없이 고개를 숙이다 말고 깜짝 놀랐다.
“간 절제를 라파로로 하신다고요?”
“하긴 누가 해? 가능한지 논의하는 수준이야.”
별일 아니라는 말투였지만 이혁원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감히 추측도 할 수 없었다.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들 수술 하면 김지훈 선생님을 떠올리지만, 한 번도 쉽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 아직 전문의도 따지 못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혁원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돌연 목소리에 힘이 팍팍 실렸다.
지금 모습이 바로 이혁원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태우기만 하면 선배가 아니다. 이왕 힘을 내는데 조금 더 기운을 불어넣어도 좋을 것이다.
문을 열던 김지훈이 그대로 멈춰 섰다.
나직하지만 또렷한 한마디가 들렸다.
“이혁원, 다음 주에 손 한 번 더 보자.”
“예? 다음 주예요?”
“하기 싫으면 말고. 앞당겨서 종진이 줄까?”
이혁원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자신의 밥은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한다. 나종진에겐 6, 7, 8월이라는 세 달의 시간이 마지막 텀으로 남아 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치 1년 차 때 첫 집도를 앞둔 것처럼 강한 기대와 설렘이 넘쳤다.
‘이런 맛에 수술 준다. 너희들이 잘하면 나도 헛소문에 시달리지 않을 거야. 평생 함께 갔으면 좋겠다.’
김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