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의사도 사람이다 (1)
인공호흡기의 호흡 압력계가 출렁거렸다. 기계가 공기를 밀어낼 때 상당한 저항이 걸렸다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원인은 둘 중 하나다.
파이팅을 한 걸까?
기계 오류는 아닐까?
다시 경고음이 울려야 한다. 아무런 변동이 없다면 기계 오류로 인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 이렇게 지나가서는 안 된다.
슈우욱! 슈우욱!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규칙적인 기계음만 울렸다. 파이팅이었다면 흔들렸을지도 모를 산소포화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오만석이 소리쳤다.
“진우야, 자극 줘 봐. 파이팅이 분명해.”
가장 오랜 시간 곁을 지킨 의사의 확신이 실려 있었다. 미세한 변화도 가장 먼저 잡아낼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간절한 희망을 품으며 지켜보았다.
꾸우욱! 꾸우욱!
송진우가 발톱이 창백해질 정도로 압박했다.
꿈틀! 꿈틀! 꿈틀!
자극이 가해지는 대로 반응하며 손가락이 툭툭 튀었다. 경고음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이라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차상수가 입을 꾹 다문 채 이동현 환자의 발을 잡았다.
순간 간절하게 원했던 일이 벌어졌다. 손가락을 넘어 손 전체가 떨렸다.
또 한 번의 자극에 팔다리가 슬쩍 비틀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한 긴장이 다가왔다. 빤히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오만석이 소리쳤다.
“진우야, 한 번 더!”
절박한 목소리가 이동현 환자의 귓가를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그 순간 마치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것처럼 가슴이 요동쳤다.
반복적이다.
호흡 압력계가 미친 듯 위아래로 오르내렸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졌다.
자발 호흡과 기계의 격렬한 충돌이었다.
그렇게 기다려 왔던 파이팅이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쉬지 않고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모두들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간호사가 심폐소생술 카트를 밀며 다급하게 달려왔다.
오만석이 인공호흡기를 뗐다.
기도 절개 상태다.
격렬한 기침 소리 대신 목이 뒤로 꺾였다. 발작적인 요동을 따라 끈적거리는 가래가 뛰쳐나왔다. 침대에 묶인 손발을 마구 흔들며 얼굴까지 시뻘게졌다.
흐으윽! 후욱! 후우욱!
튜브를 따라 들리던 호흡 소리가 점점 강해졌다.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마치 목에 박힌 튜브가 갑갑하다는 듯 손바닥을 덜덜덜 떨었다. 격한 움직임에 심전도로 전해지는 전기 자극까지 불안해졌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바이탈이 흔들린다고,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심전도 기계까지 경고음을 터트렸다.
사방이 온통 날카로운 소리뿐이었다.
어레스트가 났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 정도로 격렬한 움직임이자 의식 호전이 분명했고, 한 번 시작된 파이팅은 멈추지 않았다.
충분히 확실하게 확인했다.
“송진우, 알람 꺼. 오만석, 환자 상태 살펴. 차상수, 석션!”
생리 식염수가 기도를 타고 들어갔다. 가느다란 석션 줄을 기관지 깊숙하게 넣은 차상수가 석션을 했다.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손길이었다.
의사로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침착함이다.
찌이익! 찌이익!
노란색이 섞인 허연 가래가 끌려 나왔다.
숨길이 조금 더 넓게 열렸다.
“허어억! 허어억!”
거친 숨소리를 토해 내며 괴로워했다.
너무도 극적인 변화였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동현 환자의 생이 걸려 있다. 사소한 변화도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의 눈이 매의 눈처럼 매서워졌다.
석션 줄을 따라 산소를 공급해야 할 공기가 한순간에 빨려 나갔다. 산소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격한 자극에 부담을 느낀 심장이 급박하게 뛰었다.
띠띠띠띠띠띠띠띠띠!
극심한 부담이자 스트레스였다.
오더를 내리려던 김지훈이 소리쳤다.
“오만석, 송진우, 뭐 해? 제대로 대처해.”
“간호사, 비지에이 주고 흉부 사진 찍읍시다. 바륨(진정제) 빨리 준비해요.”
호흡 상태를 예의주시하며 언제든 진정제를 투여할 준비를 했다. 산소 줄을 목에 박힌 튜브에 연결한 덕인지 발작적인 움직임이 급격하게 잦아들었다.
충분한 산소 공급이나 강해진 자발 호흡 때문이 아니었다. 2주가 넘는 동안 죽은 듯 누워 있었다. 근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격렬하게 파이팅을 한 결과 의외일 정도로 쉽게 지쳐 버린 것이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안이 남았다.
의식 상태다.
반짝! 반짝!
손전등 불빛을 따라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오만석의 눈에 강한 흥분이 스쳐 지나갔다.
“환자분, 내 목소리 들립니까? 환자분, 들리면 눈 한 번 깜빡여 보세요. 진우야, 다시 자극 줘 봐.”
짧은 시간 동안 고함과 자극이 반복됐다.
눈을 깜박이지 못했다. 눈동자는 다시 한곳에 고정돼 있었다.
절대 몸만 돌아올 리 없었다.
“선생님, 동공반사 확실하게 있습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만 목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오만석이 눈가를 찌푸리면서도 활짝 웃었다.
조용히 사라졌던 차상수가 다시 얼굴을 보였다. 두 손에 검사 결과가 들려 있었다.
인공호흡을 중지할 경우 얼마나 호흡 상태가 나빠지는지 확실하게 파악했다. 파이팅이 한 차례 더 관찰됐지만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진정제를 투여하고 호흡기를 달았다. 꿈틀거리던 작은 움직임까지 서서히 잦아들며 깊은 수면에 빠져들었다. 불과 10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 전혀 다른 수면이었다.
모두들 맥이 풀린 것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이마가 온통 땀투성이였다.
긴장이 지속되는 듯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멍하기만 했다.
그러나 엄연히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동현 환자는 분명 한 발, 아니 한 단계 도약했다. 목소리에 반응하고, 파이팅이 지속된다면 삶의 길에 확실하게 들어설 것이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무엇이 이동현 환자를 깨운 것일까?
혼수와 혼미 상태가 2주 넘도록 지속된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저산소증으로 인한 일시적 뇌손상이 가장 합당한 의심이겠지만, 그마저 의학적 증거는 없었다.
환자가 가진 삶의 의지나 의료진의 노력 또한 마찬가지다. 물리적으로 계량하기도 어렵거니와 다음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의학적 판단은 아니었다.
혹시 의료진의 절실한 바람이 전해진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믿고 싶었다.
몸무게까지 준 것 같은 오만석, 초췌한 얼굴의 송진우, 여전히 차분하지만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차상수, 이 자리에 없는 후배들과 손일석까지.
한두 사람의 노력이 아니었다.
때문인지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의사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한계가 너무 보이네. 현수하고 경석이 형은 어떻게 판단할까?’
중증 외상에 대한 고민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민도 잠시, 밤이 너무 깊었다.
“오만석, 네가 한 말 잊지 않을게. 진우야, 환자 잘 살피고 아침에 보자. 차상수, 부탁한다.”
항상 어둡고 서늘한 중환자실 앞이 오늘따라 따스하게 느껴졌다. 한시라도 빨리 보호자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진정제의 효과가 지속될 시간이었다.
환자 이상으로 힘든 사람이 보호자다.
파이팅을 할 때, 목소리에 반응할 때 본다면 2주가 넘도록 쌓인 피로로 지친 마음과 육신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기도 절개로 대화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내일 아침에는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가장 먼저 봤어야 할 일석이가 제일 아쉬워하겠네.’
힐끗 대기실을 본 김지훈이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몇몇 별.
점점 불러 오는 배를 안고 곤히 자는 고경아.
이동현 환자의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인지 누군가가 유난히 그립고, 누군가가 유난히 사랑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면회가 시작됐다.
상기된 얼굴의 손일석, 오만석과 함께 보호자를 만났다. 지난밤 벌어진 일을 설명하자 아내와 아들이 믿기 힘들다는 듯 눈만 멀뚱거렸다.
“정말입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호흡 문제로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입니다. 약 때문에 회복이 지연되진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삑! 삑! 삑!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짧게 날카로운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인공호흡기 한쪽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오만석이 다급하게 움직이자 보호자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
삐이익! 삐이익!
갑작스러운 파이팅이 발생했다.
이동현 환자가 몸을 비틀었다. 팔다리를 흔들며 본능적인 괴로움을 호소했다.
보호자의 눈에는 회복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을, 아들은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여보! 여보!”
“아버지! 선생님, 왜 이러시는 겁니까?”
돌연 눈을 뜨며 고개를 돌렸다. 초점 잃었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아내와 아들에게.
외마디 비명이 터졌다.
“아버지!”
“여보!”
아들과 아내의 눈가가 격렬하게 떨렸다. 뜨거운 눈물이 아버지, 남편의 손에 뚝뚝 떨어졌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동현 환자의 눈길이 가족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나 살아 있다는 듯.
결코 나를 포기하지 말라는 듯.
삐이익! 삐이익!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 거친 숨이 튜브를 따라 터져 나왔다. 고통을 느낀 손이 다신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아내와 아들의 손을 꽉 잡았다.
손일석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 시간 이후, 숨 가쁜 날이 흘렀다.
이동현 환자가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다.
불과 이틀 후 인공호흡기를 뗐다. 기도 절개 때문에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의식까지 깨끗해졌다.
가히 극적인, 기적적인 회복이었다.
“아버지, 조금만 더 힘내세요. 선생님, 언제까지 중환자실에 계셔야 합니까? 아직도 위험한 상태입니까?”
“아닙니다. 내일 병실로 올라가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들의 죄책감이 조금씩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 남편 말은 언제 할 수 있나요? 저 목에 넣은 튜브는 언제 빼나요?”
“곧 튜브 겉에 보이는 구멍을 막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빼는 시기는 조금 더 기다려 주세요.”
순조로운 회복을 따라 병실로 올라갔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아들과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무려 3주 만에 땅을 디딘 것이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튜브 외부 구멍을 임시로 막고 내부 구멍을 열었다. 기관지, 튜브, 성대로 이어진 통로가 다시 열렸다. 수술 이후 단 한 번도 토해 내지 못했던 뜨거운 숨결이 마침내 입으로 터져 나왔다.
“으으으! 으으! 여, 여보!”
“여보! 여보!”
“아버지! 아버지!”
꾹꾹 눌렀던 울음이 통곡으로 변했다. 슬픔과 절망이 아닌 기쁨과 행복이 가득 찬 울음이었다.
이제 곧 이동현 환자는 배 속이 산산이 부서진 충격을 모두 이겨 내고 퇴원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멀지 않았다.
손일석과 오만석의 손을 잡은 이동현 환자가 눈물만 뚝뚝 흘렸다. 혼수상태일 때 곁을 지켰는데 절절한 고마움을 표현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건만 즐거운 웃음만 머금었다. 물, 미음, 죽을 먹는 모습만으로도 모든 보상을 받았다.
그동안 중증 외상 환자를 수없이 봤다. 누군가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고, 누군가는 웃으며 퇴원했다. 수많은 요소가 개입했을 것이다.
이동현 환자의 치료 과정을 되짚었다.
응급실에 단 10분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검사한다고 수술이 늦어졌다면.
손일석, 신현수, 이경석이 없었다면.
후배들이 중환자실을 지키지 못했다면.
수많은 의료진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현실이었다면.
결과는 단 하나, 죽음이다.
중증 외상 치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도 중요했지만, 환자 이송부터 체계적인 지원까지 필요한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오만석의 말이 새삼 다가왔다.
‘만석아, 특히 네가 수고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해 보마.’
더 많은 환자를 살려 더 많은 삶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의사의 직무는 삶을 지켜 주는 것이고, 의사의 보람은 웃음에서 나온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바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