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33화 (833/1,329)

3화. 그저 감사할 뿐 (2)

그렇게 또 하루하루가 지났다.

이동현 환자가 피를 말렸다.

수술 후 발생한 혼수상태에서 벗어난 환자는 대부분 빠르게 의식이 호전된다. 예외는 어디에나 있지만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서 봐야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회복을 알리는 모든 지표가 좋아지고 있었지만 이틀이 지나도록 혼미 상태가 이어졌다. 그 탓에 더욱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손일석과 오만석은 불안한 의식 상태에 전전긍긍했고, 보호자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새 금요일 하루가 다 지났다.

이로써 2주가 넘도록 이동현 환자는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밥은 모두 제거했고, 드레인 역시 단 두 개만 남았다. 그런데 왜 혼미가 지속되고, 자발 호흡은 약하기만 한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뇌손상인가?’

매분 매초, 피가 마르는 순간이었다.

상황도 좋지 못했다.

이젠 킵을 하기 힘들 정도로 전공의들의 체력이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오만석까지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손일석의 얼굴에서 갑갑함이 떠나질 않았다. 물론 누구보다도 강한 중압감과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김지훈 자신이었다.

‘힘들어도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

“일석아, 지금이 고비야.”

“알고 있어. 몸은 좋아지는데 의식이 못 쫓아오니까 뇌손상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힘이 빠지네. 오늘 킵할 후배들에게 단단히 말해 놓을게.”

“아닐 거야. 너도 좀 쉬어.”

꿈틀! 꿈틀!

움직임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흐으으! 후으으!

반면 튜브를 따라 나오는 숨은 여전히 약했다. 뇌손상이란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대로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한 상황이었다.

신경외과, 신경과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일반외과 교수들 역시 경험한 바가 없었다.

의식과 호흡 저하의 확실한 원인을 모르기에 수그러들던 불안감이 점점 증폭됐다.

밤새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다.

주말 집담회 때 다시 한 번 거론했지만 뾰족한 답이나 해결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가운데 주말 당직을 맞이했다.

이번만큼은 일복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막강한 후배들이 있지만 손일석이 막바지 결혼 준비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남았지?”

“3주 후다. 이 환자 좋아지는 걸 봐야 마음 편히 신혼여행을 갔다 올 텐데 걱정이야.”

“제주도?”

“응. 허가받아야 할 데가 많아서 외국은 일찌감치 접었다. 군발이의 설움이라고 할 수 있지. 형님께서 제주도 다녀오셨는데 내가 더 큰 비행기를 탈 수는 없지. 이번 주말은 시간을 낼 수 없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말고 준비나 잘해. 넌 쇼핑도 좋아하잖아. 얼굴 펴, 인마. 누가 보면 결혼하기 싫은 줄 알겠다.”

흥분되고 설레는 시기에, 쇼핑까지 좋아하는 놈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피곤 때문이 아니라 김지훈과 똑같은 마음과 심정이었다.

애써 웃으며 손일석을 보낸 김지훈이 얼굴을 굳혔다. 이래저래 혼자 있어야 할 고경아가 마음에 걸렸지만 주말 당직을 피할 길은 없었다.

폭주는 면했다. 대신 쉴 만하면 환자가 왔다.

차라리 잘됐다.

부지런히 응급실, 중환자실, 집을 오갔다. 간간이 차상수가 보였다. 다들 힘에 부쳐 할 때 티 내지 않고 묵묵히 환자를 보는 모습이 듬직했다. 또 한 명의 뛰어난 후배를 보았다는 생각이 진해졌다.

‘그동안 왜 상수를 보지 못했을까?’

늦은 밤, 수술을 마치고 이동현 환자 앞에 앉았다. 일요일이 막 시작된 지금, 많은 후배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곁을 비우지 않았다.

논문 2개에 지쳐 헉헉대는 이혁원, 같은 이유로 오프도 반납한 강병옥, 당직인 나종진과 송진우 및 오하석, 외상 치료에 목을 건 오만석까지.

“만석아, 환자분 어때?”

“혼미한 의식과 미약한 자발 호흡을 빼고는 바이탈, 혈액 검사, 수술 부위 모두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왜 그 부분만 좋아지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오만석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묵묵부답이다.

신경외과 교수조차 직시하지 못하는데 일반외과 전공의가 원인을 알 리가 없었다. 어쩌면 뇌손상이란 말을 꺼내고 싶지 않은지도 몰랐다.

김지훈도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눈과 얼굴이 벌게진 송진우가 들어왔다. 김지훈의 눈치를 보며 오만석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킵을 바꾸자는 말이었다.

누가 있든 알아서 교대할 일이었다. 그럴 연차이기도 했고, 지금까지 보인 노력만으로도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오만석이 엉거주춤 일어서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김지훈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얼굴이었다.

힐끗 이동현 환자를 한 번 더 보고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상황에 어울리지 않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이동현 환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인데 괜찮겠습니까?”

“얼굴 보니까 심각한 일인 것 같다. 말해 봐.”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환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응급실 근무에 주력하면서 선생님과 손일석 선생님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후욱! 긴 숨을 내쉬었다.

“중증 외상 환자의 골든아워를 왜 지켜야 하는지, 의료진의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수술 실력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정말 셀 수도 없습니다. 일반외과 의사로서 전공의 때만이 아니라 전문의 때도 이 길을 가고 싶습니다.”

“중증 외상을 전담하고 싶다는 말이야?”

“그렇습니다.”

이미 온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꼬치꼬치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열정만으로 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의사 개개인이 결심한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고, 개인적인 삶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정말 하기 어려운 생각인데 이런 말까지 할 수 있다니 멋지다. 오만석, 넌 최고의 써전이 될 거야. 하지만 고려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 당장 외상 파트도 없고, 다른 병원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아.’

세세하게 말해야 힘만 빠질 것이다.

“만석아, 네 말은 알겠는데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체력과 의지만으로 가능한 부분이 아니야.”

외상 전담의 생활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갑갑한 일이었다. 오만석 이상으로 열정적인 송진우도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만석의 결심과 과감한 말에 감탄하면서도 내심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전문의도 되지 못했지만 각오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구미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제넘게 꼭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뭔데?”

“외상 환자를 전담하는 파트를 만들어 주십시오.”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드린 말씀 그대로입니다. 만들어만 주신다면 펠로우 지원해서 중증 외상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전공의도 점점 부족해지는데 외상 파트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많은 환자를 잃게 될 겁니다.”

흥분했는지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진정해. 그러니까 외상 파트를 나보고 만들어 달라는 말이야? 만석아, 나 이제 전임 됐어. 내가 무슨 능력으로 파트를 만들어? 원장님께서 직접 나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 펠로우 자리만이라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께서 필요하다고 제안하시면 신현수 선생님, 이경석 선생님은 물론 교수님들 모두 동의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파트 신설이 아니면 펠로우로 뽑아 달라?

오만석이 김지훈이란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말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물론 이혁민 교수가 곧 유방, 갑상선 파트를 만들 것이란 말이 오고 간 지 오래였다. 그간의 행보를 볼 때 거의 기정사실처럼 굳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혁민 교수는 과장이고, 병원에 지대한 공헌이 있다.

더구나 일반외과 내부에서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반되는 인력과 비용 등의 문제는 경영을 맡고 있는 신동철 이사장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 한다.

교수 중 가장 아래가 갓 전임이 된 사람이다. 당연히 말을 꺼낼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스카우트 조건에 펠로우 선발권이 있었는데.’

아쉬움에 생각날 뿐, 이미 물 건너간 일이다.

심각한 인력 부족, 중증 외상 환자를 전담할 의료진의 필요성은 십분 공감했다. 하지만 갑자기 터진 애먼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들이대다니 오만석답긴 했다. 구미에서 들었던 단순, 무식, 과격이란 단어 중 두 가지가 절로 떠올랐다.

대답이 궁한 김지훈이 입맛만 다시자 오만석의 표정이 확연하게 변했다. 절박하다는 듯, 이 길이 아니면 갈 길이 없다는 듯 비장하기까지 했다.

“선생님, 다시는 이런 환자를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1분이라도 빨리 대처했다면 지금쯤 회복됐을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살리고 싶습니다. 제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상황에 빠진 환자를 살리고 싶습니다.”

결코 펠로우 자리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

심각한 상태에 빠진 환자 곁을 오래 지킨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한계를 인정하고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자신의 생각과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자연스레 손을 떼게 되고, 결과는 대부분 좋지 않은 쪽으로 나게 된다.

반면 더욱 강한 애착을 느끼며 집요할 정도로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되지만 종내에는 웃음으로 보답받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후배들 모두 후자를 선택해 왔다.

이동현 환자에 국한하면 오만석은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가장 강한 열의를 갖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예외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갑갑했다.

“선생님, 살리고 싶습니다.”

높아진 목소리에 중환자실의 적막함이 깨졌다. 조용히 일에 집중하고 있던 간호사들이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문득 힘든 일이 있을 때, 어깨에 걸린 짐이 가볍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강한 어깨를 바라야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개개인의 능력이 강해질수록 환자를 살릴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외상 파트는 또 하나의 발판이 될 것이다.

여건은 병원과 선배,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심각한 인력 부족에 봉착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 왔다. 오만석의 말을 능력 밖이라는 생각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외상 파트라! 응급 의학과가 있는데 연계가 가능할까? 송동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보다 먼저 넘어야 할 일이 뭐가 있지? 주제넘은 일 아닐까?’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차상수가 조용히 들어왔다. 늦은 밤이 가져온 피로가 두 눈에 가득했다. 김지훈에게 인사를 하고는 오만석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석션 언제 하셨습니까?”

대화를 나누느라 석션할 시간을 놓쳤다. 오만석이 자신의 머리를 치며 다급하게 손짓하자 침착하게 인공호흡기를 떼고 석션 줄을 잡았다.

찌익! 찌이익!

능숙하게 가래를 빼내며 호흡 상태까지 적절하게 유지시켰다.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분비물이 옅어질 때까지 집요하게 석션을 했다.

‘자식! 제대로 하네. 이게 석션의 정석이지.’

인공호흡기에 삶을 기대고 있는 이동현 환자는 지속적인 석션의 자극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얌전하기만 한 차상수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살리고 싶다. 정말 살리고 싶다.’

안타까움이자 의사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욕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상수였기에 더욱 간절해 보였다.

찌이익! 찌이익!

기관지를 막고 있는 분비물을 모두 빼내겠다는 듯 차상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얌전하기만 했던 손에 절박함까지 실렸다.

가장 오랜 시간 킵을 함께한 오만석이 모를 수 없었다. 격한 감정이 전염됐는지 다소 진정됐던 오만석이 갑자기 소리쳤다.

“선생님, 이동현 환자를 살리고 싶습니다.”

절박한 목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자극했다. 규칙적인 심전도 소리와 인공호흡기의 기계음이 묻혔다.

어둠 속에 대부분의 몸과 정신을 걸치고 있는 이동현 환자의 귀에도 똑똑하게 전해졌다.

그 순간 송진우가 덥석 오만석의 팔을 잡았다. 목소리를 죽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다급한 기색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꿈틀! 꿈틀!

이동현 환자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지난 며칠간 보아 온 모습이었다. 특별히 강해진 것도 아니었고, 움직이는 부위가 넓어진 것도 아니었다.

깊은 밤,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은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왜 그래? 손가락 움직이는 거야…….”

“아니, 저기.”

송진우가 고개를 흔들며 가슴을 가리켰다.

슬쩍슬쩍 가슴이 오르내렸다.

규칙적으로 숨 공기를 밀어내는 인공호흡기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점점 엇나가며 마치 요동치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자발 호흡이 강해지는 징후일까?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삐이익! 삐이익!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