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32화 (832/1,329)

3화. 그저 감사할 뿐 (1)

남은 정규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아기를 찾았다.

응애! 응애!

엄마는 울음소리만으로도 배 아파 난 자식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아프다는 것인지, 배고프다는 것인지, 기저귀가 젖어 불편하다는 것인지 다 안다.

눈물을 훔치면서도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어휴! 배가 너무 고픈 모양이네요. 하루만 더 기다리죠. 울음소리가 쩌렁쩌렁한 게 금방 퇴원할 수 있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잘 울어서 제가 고맙습니다. 아! 녹는 실로 꿰매서 실밥을 풀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까 퇴원한 후에 한 번만 외래로 오세요.”

유문 부위를 수술했지만 장 속까지 열지 않는 한 감염의 우려는 극히 낮았다. 비슷한 크기의 수술이라도 장 내부가 노출되는 아뻬와 달리 녹는 실로 봉합할 수 있는 이유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병실에 들른 김에 장중첩증으로 입원한 아이 상태를 묻자 간호사가 활짝 웃었다.

“어제 잘 풀렸어요. 교수님께서 수술까지 갈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다행이죠?”

좋은 일, 기쁜 일이 이어졌다.

송진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활짝 웃었다.

어린아이들 문제라면 유달리 걱정하거나 안도하는 기색이 눈에 딱 뜨였다. 총각 의사에게는 보기 드문 반응이었다. 애가 있기는커녕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희한한 일이었다.

‘원래부터 애를 좋아하는 놈이었나?’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었다.

수술한 환자들을 찾기 전, 어린아이들의 강한 생명력을 온몸에 묻히고 중환자실에 들렀다.

손일석, 오만석과 함께 보호자가 보였다.

환자 손을 잡은 보호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껏 기대를 품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지 불안했다.

“일석아, 무슨 일이야?”

말없이 환자를 가리켰다.

순간 숨도 쉬기 어려웠다. 입만 벙긋벙긋 ‘어’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동현 환자가 눈을 떴다.

꿈틀! 꿈틀!

자극도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간헐적 움직임이 아니라 지속적이었다.

온몸이 떨리며 소름이 쫙 돋았다.

“언제부터야?”

“보호자가 들어오자마자.”

손일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무려 9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배 속을 헤집은 치명적인 총상과 두 차례에 걸친 수술을 버티고, 드디어 어둠의 긴 터널에서 한 발 빠져나왔다.

전율처럼 몸과 가슴이 마구 떨렸다.

오만석도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총상 환자, 이동현은 결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대로 의식이 돌아와 준다면 더 큰 희망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훅! 거친 숨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들떴던 가슴이 서서히 진정됐다. 아니, 억지로 진정시켰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긴 환자를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매번 찾아오는 감정의 동요는 어쩔 수 없었다.

“일석아, 정확한 의식 상태는? 호흡은?”

“혼수상태는 확실하게 벗어났는데 목소리에 반응하는 수준은 아니고, 호흡도 여전히 약해. 그래도 대단하지?”

목소리에 담긴 욕심이 보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들은 이를 악문 채 주먹만 꽉 쥐었다. 아내는 김지훈의 가운을 잡고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슬픔, 아픔, 두려움, 절망, 희망, 기쁨의 의미가 모두 담긴 눈물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이제 회복의 길에 들어섰지만 이동현 환자는 여전히 탁자 끝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유리병이었다. 보호자는 몰라도 의사는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할 때였다.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닙니다. 스스로 숨을 쉬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몰차다고 해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벅찬 가슴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맞댔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은 누구나 확실하게 알고 있다. 집도의이자 주치의로서 한 가지만은 당부해야 했다.

“경험상 지금이 도리어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것은 다들 잘 알 거야. 조금만 더 정신 바짝 차리고 힘내자.”

돌아서는 김지훈의 입이 굳게 닫혔다.

‘살릴 수 있다. 살 수 있다. 산다.’

강한 확신이 전의처럼 불타올랐다.

이동현 환자가 눈을 뜬 그날.

허수진은 보석처럼 빛났다. 반짝이는 눈빛과 조그만 입술이 앙증맞았다.

홀쭉했던 뺨에 살이 올랐다. 앙상했던 팔다리는 싱싱한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한껏 아침 이슬을 머금은 연둣빛 새싹이었다.

“밥 먹으니까 좋아?”

“좋아요. 정말 좋아요.”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마지막으로 상처를 확인했다.

명치부터 아랫배까지 길게 난 상처는 잘 아물었고, 드레인이 있던 자리도 말끔하게 막혔다.

수술 후 2주도 안 돼, 꺼져 가는 촛불처럼 불안하고 가녀렸던 아이가 14살 소녀로 변했다.

“그럼 내일 집에 갈까?”

“정말이요?”

얼마나 기쁜지 팔짝팔짝 뛰며 손뼉을 쳤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마음껏 먹으며 뛸 수 있고, 숨도 차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빠, 나 집에 가도 된대.”

목소리며 말투까지 더욱 또렷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웃었다.

중증 지적장애는 말 그대로 지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들뜨고 즐거워하는 허수진을 보는 눈에 사랑이 가득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분명했다.

그동안 누구보다 고생한 사람이 있다. 장수연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느 누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위해,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바칠 수 있을까?

직업이나 사명감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치료 잘해 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요. 병원비 걱정이 많았는데, 그 부분까지 신경 써 주셔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저도 원장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수고스럽지만 내일 퇴원 수속까지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뜻 모를 어머니의 괴성에 담긴 마음이 느껴졌다.

문득 송재덕 교수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허물없이 대해 준다고 해도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민망하고, 예의를 잃은 행동이었다.

“근데 얼마나 깎아 줬나요?”

장수연도 주변을 보며 목소리를 한껏 낮췄다.

“그냥 퇴원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역시 송재덕 교수와 신동철 이사장이었다. 이왕 해 주는 거 찔끔찔끔 생색만 내기보다 한 방에 해결해 주는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될 것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퇴원을 앞둔 환자부터 이제 막 수술을 받은 환자까지 모두들 축하의 말을 전했다. 허수진이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해맑게 웃었다.

이렇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오래간만에 고경아와 오붓한 식사를 즐긴 후 나란히 누웠다. 슬며시 배에 귀를 가져갔다. 콩닥콩닥 배 속 아기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 딸 잘 크고 있네.”

“산부인과 선생님도 안 가르쳐 주시는데 누가 딸이래요? 지금은 몰라도 우리 아이 태어나면 꼭꼭 집에 들어와야 돼요. 이러다 아빠 얼굴도 모르면 어떻게 해요?”

“내가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 갈아 주려면 매일 제시간에 들어와야 하니까 그런 걱정 말아요.”

“큰소리는. 두고 볼 거예요. 다음 주부터 지훈 씨 수술 못 들어가요. 수술 준비나 수술실 정리처럼 크게 힘들지 않은 일만 하게 될 거예요.”

“야! 간만에 좋은 소식이네. 벌써 그랬어야지. 가만히 보면 간호과도 꽤 빡빡해. 그럼 출산휴가는 언제 받아요?”

“7, 8월 두 달 동안?”

한참 더울 때다. 출산부터 산후조리까지 무엇 하나 만만치 않을 것이다.

출산휴가가 끝나면 아이는 누가 봐야 할지 걱정이 다가왔다. 꽤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아이 봐주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장모님을 믿어야 할까?

다음 날, 점심 무렵.

김지훈과 손일석이 헛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아아앙! 아앙! 선생님!”

예쁘게 차려입은 허수진이 네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가운에 매달려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치료하고 보살펴 준 사람을 떠나기 싫다는 14살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부모와 장수연이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불현듯 눈가가 뜨거워졌다. 너무도 고마워 가슴이 아픈 것처럼 시렸다.

‘이렇게 잘 나아서 건강한 모습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다신 아프지 말고, 다신 병원에서 보지 말자.’

“수진아, 이젠 가야지.”

“엉엉! 선생님! 아앙!”

“이렇게 울기만 하면 우리가 아픈 사람을 치료할 수가 없어. 수진아, 아프지 않아도 얼마나 살쪘는지 보게 다음에 꼭 놀러 와.”

허수진이 마지못해 가운을 놓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아빠 손을 꼭 잡았다. 김지훈을 보다 말고 깜짝 놀란 듯 허겁지겁 엄마 손을 찾았다.

함께 복도를 지나 스테이션 앞까지 걸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만감이 교차했다. 앞으로 얼굴 보기 힘들 것이다. 놀러 오라는 말을 했지만 그런 일조차 일어나서는 안 된다.

땡! 엘리베이터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수진의 퇴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아버지의 어눌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수진아, 항상 건강해야 돼.”

고개를 숙이며 허수진의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누군가 다가왔다. 발걸음이 뒤뚱뒤뚱 어색했다.

허수진의 어머니였다.

손을 잡으며 헤 웃었다.

“아아아아! 어어어어!”

의미 모를 소리를 내며 가운을 문질렀다. 더듬더듬 손을 잡아 왔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엄마의 웃는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고마움이었다.

입원 내내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한 번의 웃음, 한 방울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까지 눈길을 떼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해 잘 가라는 작별 인사 대신 손만 흔들었다.

“에이! 환자 퇴원하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왜 코가 시큰하냐. 당직 대비해서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지훈아, 이따 보자.”

손일석이 서둘러 사라졌다. 결코 눈가를 보이지 않았다.

허수진의 가족과 장수연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입원 내내 느낀 감정까지 또렷하게 기억할지 몰랐다. 아니, 그럴 것이다.

‘은비는 잘 지내나?’

허수진과 송은비가 어제 수술한 한 달배기 아이를 안고는 활짝 웃고 있었다. 세 아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랑은 어떤 치료보다 강력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건강일지도 몰랐다.

‘경아 씨도, 우리 아이도 다 건강해야 하는데.’

가족이든, 후배든, 동기든 다 마찬가지다.

생각만 하면 안 된다.

허구한 날 태우기만 하면 아무리 사랑하고 아껴도 입이 나오기 마련이다. 때론 큰 불만이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적절한 때 반드시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아주 알맞은 기회가 왔다.

젊고 건장한 아뻬가 연이어 떴다.

허물없는 놈들은 오해할 여지도 없고, 아뻬는 1, 2년 차가 반드시 숙달해야 할 수술이다. 입국식을 앞두고 기대 만발일 후배, 이동현 환자를 보며 새삼 눈에 뜨인 후배부터 챙기는 것이 마땅했다.

오하석이 첫 집도를 눈앞에 두었다. 다시 소리가 끊임없이 휴게실을 울렸다.

퍼스트를 서는 김지훈은 말이 없었고, 이혁원과 강병옥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오하석의 손에 집중했다.

일과가 끝나기 전인 탓에 수술을 들어온 고경아의 손길이 세심했다.

무사히 수술이 끝났다.

‘첫 수술치고는 상당히 무난하게 잘했다.’

힐끗 눈길 한 번 주고 전임 교수와 치프가 사라졌다. 강병옥이 오하석과 함께 휴게실을 찾았다. 냉정하면서도 뜨거운 불길이 날름날름 혀를 내밀었다.

텅 빈 수술실에 오하석 홀로 남았다. 뒤늦게 집도 사실을 안 송진우가 얼굴을 붉히며 오하석의 축축한 눈가를 닦아 주었다.

두 번째 수술이 이어졌다.

차상수에게 메스를 넘겼다.

“감사합니다.”

‘자식이 갑자기 불러서 수술 줬는데 하나도 안 놀라네. 조용한 게 아니라 차분한 성격인가?’

눈에 보이는 성격답게 수술 내내 얌전하게 손을 놀렸다. 교과서가 연상될 만큼 원칙에 입각해 모든 과정을 처리했다. 누군가가 딱 떠올랐다.

“주로 누구한테 수술 받았어?”

“신현수 선생님께서 많이 챙겨 주셨습니다.”

역시 가르치는 사람에게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김지훈도 빠질 수 없었다. 간단하게 한마디만 날렸다.

“상수야, 2년 차잖아. 열심히 하자.”

‘똑바로’나 ‘열심히’나 단어만 다를 뿐 그게 그거다.

이혁원이 직접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불길을 많이 경험했는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 차상수의 얼굴이 예상외로 차분했다.

대단한 놈!

어쨌든 이 모든 일에 전임 교수와 선배와 연인의 사랑이 깔려 있다.

그렇게 태우고 타면서도 허물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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