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31화 (831/1,329)

2화. 한 줄기 빛 (2)

손일석이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환자의 손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모든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됐다.

바르르!

마치 경련처럼 손가락이 떨렸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모두들 꼼짝도 하지 못했다. 행여 방해라도 될까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꿈틀! 꿈틀!

확실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심장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뛰었다.

손일석이 벌떡 일어나 동공반사를 확인했다. 발톱이 부서져라 자극을 주고, 자발 호흡 상태를 확인했다. 바짝 마른 입술로 환자에게 고함을 쳤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내 말 들립니까?”

“일석아? 어때?”

묘한 탄식이 터졌다.

“동공반사, 자발 호흡 모두 너무 약해.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그럴까? 의식 상태가 좋아지긴 한 걸까?”

혼수상태는 미동도 못하지만, 직전 단계인 혼미는 격렬한 움직임까지 보일 수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였지만 성급한 기대는 실망만 키울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누구보다 기뻐할 보호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자칫 기도 절개 자체를 반대할 수도 있었다.

치료 방침은 전적으로 의료진의 결정이자 책임하에 이뤄지기에 더욱 신중해야 했다.

기도 절개를 곧바로 진행해야 할까?

환자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김지훈이 고민에 잠겼다.

자극에 반응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의식 유무를 떠나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어야 한다. 자발 호흡이 강해지고, 근력을 회복해 스스로 가래를 뱉어 내야 안심할 수 있다.

“일석아, 빠른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다.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어차피 기도 절개는 해야 된다.’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진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제거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필요하지만 회복만 된다면 어떤 후유증도 남지 않는다. 심지어 기도 절개 부위의 튜브를 유지한 상태에서 말까지 할 수 있다.

결론을 내렸다.

일반외과에서는 보기 드문 기회다.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강병옥과 오만석에게 몇 가지 유의 사항을 전하며 기도 절개를 진행했다.

“해부학 구조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수야. 그래야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어. 내가 처음 할 때 거즈 3장 이상 사용하면 안 된다고 배웠는데, 정확한 말인 것 같아.”

혈압이 다소 낮은 이유도 있겠지만 지방조직을 헤치고, 근육 사이를 팔 때 역시 거의 피가 나지 않았다.

“절개해야 할 기도 연골은 탄력이 있으니까 크게 열지 않아도 돼.”

어느새 기도 연골이 열렸다. 기관에 삽입됐던 튜브를 제거했다.

삐이익! 삐이익!

인공호흡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토했다.

김지훈이 조용히 환자를 지켜보며 기도에 뚫은 구멍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일이 분 정도 기다렸지만 미세한 자발 호흡만 느껴졌다.

인공호흡기를 절대 뗄 수 없는 상황이었다.

‘ㄱ’ 자로 구부러진 새로운 튜브를 연골에 난 구멍을 통해 삽입했다. 재빨리 호흡기 줄과 연결하자 요란했던 경고음이 사라졌다. 상당한 자극을 받았을 텐데 기침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후우! 일석아, 확실히 돌아오겠지?”

손일석이 이를 악물었다.

“분명히 봤잖아. 당분간 인공호흡기는 제거하지 못하겠지만 의식은 반드시 돌아올 거야. 만석아, 병옥아, 킵할 때 자주 자극 주고, 동공반사 확인해.”

확신 가득한 말에 한 줄기 희망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든 난관에도 지금까지 버텨 왔기에 앞으로도 견뎌 내 기필코 눈을 뜰 것이라 믿었다.

보호자 면회 시간이 됐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슈우욱! 슈우욱!

급박한 박동 소리와 규칙적인 인공호흡기 소리만이 들렸다. 두려움에 떠는 보호자에게 8일 만에 처음으로 희망이 담긴 말을 할 수 있었다.

“기도 절개하는 동안 손을 움직이셨습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그럼 깨어나신 겁니까?”

아들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반응이 불규칙해서 아직은 혼수상태라고 봐야 합니다만, 깨어나실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여보! 눈 떠 봐요! 우리가 왔어요! 여보!”

손가락이라도 움직였으면, 강한 자극에 반응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이동현 환자의 눈과 귀는 굳게 닫혀 있었다. 혼수와 혼미 상태를 오가는 것 같았다.

면회 시간 내내 아들은 차가운 손을, 아내는 창백하기만 한 발을 주물렀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이 아버지이자 남편인 이동현 환자의 팔다리를 적셨다. 목을 뚫어 삽입한 튜브가 가족의 슬픔을 더욱 가중시켰다.

희망은 슬픔을 더욱 깊게 하는지도 몰랐다.

‘반드시 눈을 뜨실 겁니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오후 회진을 돌았다.

오늘도 컨설트가 세 장이나 와 있었다. 두 장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날아오는 혈관 수술 의뢰였고, 남은 한 장은 소아과였다.

“유문 협착증?”

오래간만에 보는 질환이었다.

송진우와 함께 소아과 병동으로 향했다. 마침 회진을 돌던 소아과 교수와 마주쳤다.

“김 교수, 수진이 경과가 너무 좋네. 수술 잘해 준 덕이야. 고마워. 그래서 말인데, 유문 협착증 아이 말고 장중첩증 아이가 한 명 더 있어. 복원 안 되면 수술 부탁해. 아! 유문 협착증 아이는 너무 증상이 심해. 최대한 빨리 해 줘.”

“최대한 빨리요?”

“자기네 과하고 마취과 사정 빤히 알지만 우리도 갑자기 받은 아이야. 이제 생후 1개월인데 너무 심하게 토해서 체중까지 줄어드는 상태야. 부탁할게. 당장 수술할 수 있을 정도로 컨디션은 맞춘 상태지만 언제 흔들릴지 몰라.”

허수진 때문인지 수술이 필요한 소아과 환자 컨설트가 김지훈에게 몰리는 조짐을 보였다.

써전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좋아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그 몇 배로 아파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봤기 때문이었다.

병실에 들렀다.

응애! 응애!

갓 한 달 된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직 산후 조리도 끝나지 않았을 젊은 엄마가 아기를 안은 채 울고 있었다.

아기를 감싼 담요와 엄마 옷이 온통 비릿한 냄새의 토사물로 지저분했다. 한눈에도 양이 적지 않아 보였다. 항상 배가 고팠을 아기는 허겁지겁 모유나 분유를 빨았을 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분수처럼 토해 냈을 것이다.

포동포동 살이 올랐어야 할 아기의 얼굴이 홀쭉하게 보였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약해진다. 특히 심한 구토로 인해 간신히 잡아 놓은 전해질 균형이 깨지면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다.

응급 아닌 응급에 준해야 했다.

‘후우! 아픈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지?’

안타까운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진우야, 마취과에 내일 첫 수술로 할 수 있는지 당장 알아봐. 김진호 선생님께 부탁해야 한다. 한 시간이면 끝나니까 예정된 수술을 진행하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

눈가에 주름이 잔뜩 잡혀 있던 송진우가 급히 스케줄을 작성하고 그대로 내달렸다.

허수진을 볼 때와 표정이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더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아이가 많이 힘들어 보이네요. 가급적 빨리 수술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아무것도 먹이지 마세요.”

“언제 할 수 있을까요? 수술하면 좋아지나요?”

“예측하지 못한 문제만 없다면 빨리 회복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절대 먹이지 마세요. 물도 안 됩니다.”

마음 아픈 엄마는 자식의 울음과 보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젖을 물릴지도 몰랐다. 신신당부하고 장중첩증 아이 병실을 찾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소아과 간호사가 급히 달려와 방사선과에서 복원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결코 수술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경우였다.

‘방사선과에서 해결하고 끝냈으면 좋겠네. 얼굴도 못 봤지만 제발 몸에 칼 대지 않길 바란다.’

어느 틈엔가 나타난 송진우가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선생님, 아이 컨디션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내일 아침 첫 수술로 하시랍니다. 대신 맥주 한 박스…….”

역시 김진호 교수였다.

갓난아기라도 스케줄이 모두 제출된 이후에는 이런 부탁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 그동안 쌓은 인연 때문인지 맥주 한 박스라는 말이 도리어 큰 즐거움을 전했다. 한 아이와 엄마를 위한 뇌물이라면 얼마든지 공손하게 바칠 수 있었다.

하하하!

간만에 소리 내 웃었다.

늦은 저녁, 두 건의 혈관 수술을 했다.

손일석이 있는 한 언제나 세컨일 줄 알았던 강병옥과 송진우가 차례차례 퍼스트를 섰다. 열심히 보고 배운 덕에 전공의로서는 상당히 훌륭하게 섰다. 물론 수술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격려와 태움 속에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만석이 허리를 숙인 채 소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차트를 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리를 비워도 안심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혼수상태와 혼미를 오간 이틀째.

지난밤, 한 통의 전화도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중환자실을 찾아 환자 상태를 확인했다.

미세하지만 확실히 어제와 달랐다. 왠지 얼굴에 혈색이 돌고, 팔다리는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처럼 힘이 실린 것 같았다.

느낌에 불과할지라도 희망이 샘솟았다.

자발 호흡이 미약해 인공호흡기 모드조차 바꿀 수 없었지만, 그간의 경과를 생각하면 분명하고 대단한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오만석이 새벽에 나간 검사 결과를 가져왔다.

“어젯밤에 변동 없었어?”

“최소 두 차례의 움직임이 더 있었습니다. 강병옥 선생과 진우도 확실하게 봤습니다.”

“그래?”

희망의 크기가 슬쩍 부풀어 올랐다.

흉부 사진부터 확인했다.

기도를 절개하고 넣은 튜브는 제자리에 정확하게 고정돼 있었다. 수시로 기관지 내를 석션해 가래를 빼낸 덕에 가벼운 기관지염 소견만이 관찰됐다.

어제보다 좋아졌다.

‘다들 밤새 고생했구나.’

혈액 검사 결과지를 펼쳤다.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산소 포화도가 95퍼센트를 넘었다. 수혈을 중단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빈혈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혈소판 수치가 눈에 들어왔다.

“154,000? 만석아, 확실히 올라갔지?”

“예. 계속 10만 언저리였는데 처음으로 15만을 넘었습니다. 혈액 응고 기능도 확실하게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치솟았던 간 효소 수치가 확연하게 내려갔고, 신장 기능을 알려 주는 수치도 정상 범위 내였다. 드디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하루 만에 폐렴과 기도 절개가 가져온 불안, 두려움을 단숨에 뒤집을 정도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또 다른 터닝 포인트일지도 몰랐다.

오만석의 숨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흥분과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이후 가장 오랜 시간 킵을 했고, 누구보다도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석아,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알지? 이럴 때 도리어 제대로 쉬어야 돼. 네 머릿속이 혼란하면 이 환자 놓친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눈이 시뻘게진 거구의 후배를 뒤로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외상 환자의 치료에 대한 열정과 관심에 감탄이 나왔다. 이 또한 최고의 써전으로 가는 길 중 하나일 것이다.

‘오만석! 환자 꼭 살리자. 부탁한다.’

기대를 품고 수술실로 향했다.

이혁원이 아닌 송진우가 차상수와 함께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다.

차상수는 수술실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자 얼굴부터 벌게졌다.

“이 수술은 제가 꼭 들어오고 싶어서 상수하고 들어왔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미안한 일이 아니다. 차상수, 킵도 많이 했는데 얼굴 보기 참 어렵다. 시간 되면 내 수술 자주 들어와.”

“예, 선생님.”

조용한 성격답게 목소리도 나직했다.

아침 첫 수술이 시작됐다.

생후 1개월, 유문협착증이다.

고사리 같은 손발이 눈에 밟혔다.

어시스트를 서는 고경아의 눈에도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툭하면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의 발길질에 짙은 모성애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우상복부를 열었다.

단단한 캔디처럼 커진 유문 조직이 위와 십이지장의 통로를 바짝 좁히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잡고 유문 겉면을 절개한 후 살짝 벌렸다.

딱딱한 조직이 갈라지며 연약하기만 한 점막 조직이 드러났다. 성인이라면 반드시 점막 바깥 부분을 막아 줘야 하지만 유문 협착증에서는 금기다.

무엇보다 갓난아기의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이것으로 수술 끝이다.

응애! 응애!

마취 기운이 사라지자 옹알이를 하다 말고 힘차게 울었다. 회복실로 들어온 엄마가 아이를 안으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얼마 가지 않아 마를 눈물이었다. 아이는 금방 회복될 테고, 여느 아이처럼 쑥쑥 클 것이다.

“선생님, 언제부터 먹여도 되나요?”

“빠르면 하루 이틀 후에도 가능합니다.”

엄마가 아기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며 솜털처럼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길 하나하나에 엄마의 사랑이 가득했고,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긋 웃음으로 보답할 것이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응애! 응애!

엄마의 손길이 아니면 단 한시도 생존하지 못할 한 달배기 아이의 생명력은 놀랍기만 했다.

이동현 환자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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