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노력 없는 기적은 없다 Ⅲ (1)
목소리에 점점 강한 힘이 실렸다.
“수술 전 복부 CT를 찍지 않았는데, 수술 중 그로 인한 문제는 없습니까? 사전 정보가 충분했다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집도의가 받아야 할 질문을 뻔뻔하게 해 댔다.
‘어쭈? 김지훈, 네가 작전을 구사해? 어림없지.’
“총상은 외부 충격이 아니라 내부 충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T를 찍는다고 해도 손상 부위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구나 골든아워를 놓치면 사망률이 100퍼센트에 수렴하기 때문에 수술을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 항문 괴사 때문에 2차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피할 수 없었습니까?”
총상 원리가 아니라 수술에 관한 문제였다. 손일석의 눈가가 슬그머니 사나워졌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손상 부위가 워낙 광범위했고, 환자 상태가 어레스트 나기 직전까지 몰려 혈류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1차 수술에서 임시로 인공 항문을 만들고 뺀 것은 적절한 판단으로 보입니다.”
불길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틈을 주지 않고 맹공을 이어 가려는 순간 신현수가 쓰윽 끼어들었다. 1차 수술을 함께했고, 김지훈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후복막에 박힌 총알을 제거한 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후복막은 복벽 손상과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이 맞습니다. 또한 이런 문제는 일반적인 외상 측면에서 봐야 합니다.”
어떤 질문이 나와도 막힘이 없었다. 손일석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리는 순간 마지막 남았던 우군, 믿었던 동기가 적군으로 돌아섰다. 이경석이 가세한 것이다.
“1차 수술에서 총수담관 손상을 놓쳤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인데 수술 중 간과한 것은 아닙니까?”
‘형까지 왜 이래요? 아주 오늘 날 잡았네.’
과실은 아니었지만 가장 뼈아픈 부분이었다. 손일석이 일순 답을 못하자 김지훈이 나섰다. 퍼스트가 아닌 집도의의 책임이 분명한 문제였다.
“미세 손상을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동일한 환자가 없길 바라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 T-tube 삽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까?”
가히 설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임들 모두 고민했던 부분을 마구 풀어냈다.
어느 순간 애초에 품었던 불순한 의도가 사라졌다. 미진했던 부분, 실수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이 있는지 집요하게 묻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눈초리를 세웠던 손일석 역시 완전히 몰입하며 총상에 대한 의문을 함께 풀어 갔다.
성격 다른 땀이 맺힐 무렵에야 총상 토론이 끝났다.
난타전을 벌인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혁민 교수의 눈가에 웃음이 걸렸다. 전임과 손일석이 큰 불 피했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제한된 시간도 꽤 지났다.
‘오늘은 이걸로 끝?’
언감생심, 기대와 달리 곧바로 2차전이 시작됐다.
공격수가 화려하게 바뀌고, 토론 주제에 기형종까지 추가됐다. 이준영 교수가 포문을 열고,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가 협공을 가했다.
김지훈, 손일석! 너희들 이리 와!
이미 동기들에게 몇 방 맞은 손일석이 가장 먼저 장렬하게 산화했다. 선공 날리고, 손일석의 등 뒤에 숨었던 김지훈 역시 집중포화에 가루가 됐다.
주된 목표가 사라졌지만, 수술을 들어갔거나 관여했던 전임이 아직 두 명이나 남았다. 집도의 못지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직접 보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식으로 수술했는지 모를 교수들이 아니었다.
“신현수 선생, 이경석 선생.”
이름 부르는 것으로 게임 끝났다.
전에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전임 세 명과 군의관 한 명이 모두 무너졌다.
전임들의 오늘 집담회 총평은?
망했다. 폭삭 망했다.
이 정도면 태울 만큼 태웠고, 시간도 꽤 지났다.
기형종과 총상 환자 수술을 들어갔던 전공의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장작이 소진돼 잔불만 남았다고 여기는 순간 이혁민 교수의 고개가 스윽 돌아갔다.
자나 깨나 불은 조심해야 한다.
“이혁원, 나종진.”
조곤조곤, 활활활.
“얼굴 벌건 놈하고, 놈놈놈 너도 들어갔지?”
동네 망치가 휙휙 맴돌다 그대로 내리꽂혔다.
퍽퍽퍽! 퍼벅!
소리 없는 비명이 터졌다.
결국 오늘도 주말 집담회는 불길이 난무한 전장이었다.
회의실 곳곳에 널브러진 전사자들을 뒤로한 송재덕 교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강병옥, 넌 요새 위장관 수술 많이 들어간다며? 소감이 어떠니? 소감이. 하석아, 1년 차들아, 힘들지? 선배들이 일 너무 많이 시키면 언제든 말해라. 내가 혼내 줄게.”
운 좋은 놈들!
천운을 타고난 놈들!
“아닙니다. 많이 도와주십니다.”
“그렇구나. 그래야지. 놈놈놈, 너도 열심히 하고 있지? 총 맞은 환자 못 살리면 혼날 줄 알아. 선배들이 사흘 밤낮을 새다시피 했는데 지금부터는 네가 책임져. 알았지? 알았니?”
얼굴만 봐도 긴장 백배인데 결정적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총상 환자 확실하게 치료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이준영 교수였다.
“예, 선생님. 제가 꼭 살리겠습니다.”
쿵쿵쿵! 쿵쿵쿵!
오만석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김지훈도 스승처럼 눈길을 주었다.
부드러운 눈길 속에 담긴 뜨거움을 받은 송진우가 급히 뒤를 따랐다. 오하석의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주말 오프다.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한 주 내내 극한으로 몰렸던 탓인지 휴가라도 받은 것 같았다. 일단 한잠 자고, 저녁을 먹은 후 또 잤다.
일요일 아침 6시가 돼서야 쉬지 않고 몰려드는 잠에서 벗어났다.
‘더 자도 되는데 습관 참 무섭네.’
멍하니 누워 있던 김지훈이 고개를 돌렸다. 곤하게 자고 있는 고경아의 얼굴이 보였다.
눈을 뜨자마자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위안이자 더없는 행복이었다.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고경아도 편안함을 느끼는지 잠결에 미소를 머금었다.
‘예쁘네. 경아 씨, 사랑해요.’
일과 임신으로 누구 못지않게 피곤할 고경아였다. 오늘도 해가 중천에 걸려야 침대를 벗어날 것이다. 아내를 챙겨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만 했다.
얼마 전, 아이가 발길질을 한다며 뺨을 발갛게 물들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자 볼록한 배가 한 손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 안에 사랑의 결실이 있다.
콩닥콩닥 뛰고 있을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빠의 손길에 반갑다며 조그만 주먹을 꼭 쥔 채 팔딱팔딱 발길질을 하는 것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기분 좋은 나른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째깍! 째깍!
스르르 눈이 떠졌다.
배 속 시계가 아침을 알리고 있었다.
밥 먹는다고 냉장고를 뒤적이면 사랑하는 사람의 달콤한 잠을 깨운다. TV도 못 켜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실 바닥 청소를 하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배고픔이 전하는 강렬한 자극이 이동현 환자의 존재를 일깨웠다.
걱정이 다가왔지만 이제는 어엿한 교수인 전임이다.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병원에 나타나 후배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다. 철석처럼 믿는 것이 서로를 편하게 하고, 더욱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었다.
궁금함과 불안감을 참고, 또 참았다.
8시 땡 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뇌로 보낼 당분 보충이 절실했다. 후다닥 밥 푸고, 후루룩 퍼부었다.
열심히 수저를 놀리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선생님 당직이세요?”
응급실 주간 근무 간호사들이었다.
“아니요.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잠깐 들렀어요.”
후우! 안도의 한숨 소리가 터졌다. 마치 얼굴 본 것만으로도 환자가 몰려온다는 듯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러다 면전에서 소금 뿌리는 것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요새 당직 때 응급실은 잠잠했던 것 같은데 아니었나?’
남은 밥 깨끗이 비우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전 일과를 시작했는지 전공의들은 아무도 없었다. 봐야 할 환자가 한두 명이 아니다. 24시간 내내 단 1분도 빠지지 않고 곁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가 제일 자리 비기 좋은 시간이지.’
지난밤 기록이 담긴 차트를 확인했다. 오만석의 기록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이동현 환자는 밤새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띠띠띠띠띠띠띠!
상당히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바이탈을 확인했다. 확실히 불안정했다. 무엇보다도 수술 전부터 지속된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드레인을 살폈다. 완연하게 피가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빨간 혈액 팩이 달려 있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대량 출혈과 대량 수혈로 인한 혈액응고 장애가 언제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지표가 불길했다.
똑! 똑! 똑!
간간이 떨어지는 소변 방울만이 위안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송진우와 오하석이었다.
“선생님, 언제 오셨습니까?”
“너희들이 주말 당직이었구나? 만석이는?”
“밤새 킵해서 오전에 자라고 했습니다.”
송진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옆에 앉았다.
“선생님, 이 환자 깨어날 수 있을까요? 인공 항문을 절개 창으로 뺐는데 3차 수술이 필요한 건 아닙니까?”
“3차 수술?”
수술이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환자는 결코 세 번의 마취를 이겨 내지 못할 것이다. 매 순간마다 죽음과 맞부딪치고 있는 환자를 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오전에는 둘 중 누가 킵할 건데?”
“하석이가 할 겁니다. 제가 옆에서 봐주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하게 가르칠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중환자실 환자를 본 경험이 거의 없더라고요.”
인원 부족은 연차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주고 있었다. 특히 1년 차가 가장 문제였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 탓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까지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오하석에게 송진우 같은 선배가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챙겨 주고, 잘 따르니까 보기 좋다.”
오늘따라 벌건 얼굴이 여간 듬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얼굴이 왜 붉다 못해 시뻘게진 걸까? 선후배 사이가 보기 좋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이 자식은 당황스럽게 또 왜 이래?’
이유를 물어봐야 난로만 만들 것이다.
“하석아, 열심히 배워. 어디에도 이런 선배 없다. 참! 입국식 할 때 안 됐나?”
피곤에 절은 단발머리가 간만에 찰랑거렸다.
“다음 주 주말에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올해부터는 술 좀 자제하자고 해야겠다. 예전처럼 술 먹이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은 누워야 할지도 몰라. 진우야, 안 그래?”
송진우가 반색을 했다.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정식으로 인사는 해야지.”
두런두런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눈은 환자와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오하석이 졸린 눈을 비비며 오가는 말과 차트에 열중했다.
잠시 후, 손일석이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 나한테 맡기라니까 왜 나왔어? 얼굴 보니까 잠은 잤네. 집담회가 그렇게 끝났는데 두 발 뻗고 잔 모양이다. 친구 사이 멀어지는 건 순간이지. 진우야, 보고해.”
시치미 뚝 떼고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이동현 환자는 유리병 같은 상태다.
한 명이라도 정상적 컨디션을 유지하면 그보다 유리한 일은 없었다. 잠깐의 수면이지만 오만석도 힘을 충전할 것이다. 이제 환자만 좋아지면 된다.
상의를 마친 김지훈이 보호자를 만나고 병원을 나섰다. 가는 길에 갓 만든 샌드위치와 우유를 샀다. 이런 날, 요새 같은 시국에 밥 차려 달라고 하면 죽일 놈이다.
저녁은 무조건 외식이다. 겸사겸사 병원에 잠깐 들르면 일거양득이다. 환자까지 좋아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전공의만 남았다.
송진우가 열심히 환자를 보며 오하석에게 일일이 유의해야 할 점을 말했다. 필요한 조치를 다 한 후, 아주 중요한 일이 있는 것처럼 목소리를 죽였다.
“하석아, 김지훈 선생님이 입국식 날짜 물어본 이유가 뭔지 알지? 다음 주에 메스 받을 수 있으니까 준비 철저히 해. 엄한 말 나오면 트레이닝 다시 시작한다.”
오하석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지훈이 메스를 건넨다면 단단히 각오해야 했다. 물론 신현수나 이경석에게 받는다고 해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사실 1년 차에게 안 무서운 사람 없다.
환자 치료도, 일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일복 없는 박승준 교수면 좋으련만 지동훈 교수가 당직이었다. 응급실이 부산해지고, 지동훈 교수가 얼굴을 보일 때마다 수술 방 유리문이 활짝 열렸다.
드르륵! 드르륵!
또 한 명의 환자가 나른한 마취 기운을 안고 병실로 향했다. 확실하게 깼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시간은 어떤 환자에게도 동일하다.
“만석아, 네가 킵할 차례지? 여긴 나한테 맡기고 중환자실 환자 봐.”
바쁜 와중에도 전공의들은 최대한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모든 의료진의 촉각이 한 명의 환자에게 집중됐지만 여전히 혼수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벌써 4일째다.
째깍! 째깍!
일요일 밤이 점점 깊어졌다.
띠띠띠띠띠띠띠띠띠띠!
슈우욱! 슈우욱!
기계음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한밤의 적막함과 피로에 간호사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간간이 나직한 말소리만 들릴 뿐 중환자실이 조용하기만 했다.
폭풍 전의 고요일까, 아니면 폭풍 후의 고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