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노력 없는 기적은 없다 Ⅱ (1)
물에 빠져 죽음 직전까지 몰렸던 아이가 몇 년 후 생사를 헤매는 아버지의 곁을 꿋꿋하게 지켰다. 송은비 속에 잠재된 의지와 생명력이 가족을 지킨 것이다.
10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14살 아이가 몇 년간 거대한 기형종을 안고 살았다. 14시간이 넘는 수술을 버티고, 불과 이틀 만에 중환자실이 무섭다며 울었다.
지적장애는 결코 장애가 아니었다. 편견과 의심을 보기 좋게 깨 버리며, 의료진의 불안과 두려움을 울음과 웃음으로 씻어 주었다.
송은비를 속에 안고 고개를 돌렸다.
허수진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고.
손일석에게 환자를 부탁하고 강병옥과 함께 병동으로 올라갔다. 막 회진을 끝낸 교수들이 내리 사흘 밤을 새 몰골이 말이 아닌 김지훈을 보며 혀를 찼다.
전공의 때는 누구나 그럴 수 있다. 펠로우 때도 똑같은 모습을 볼 줄 몰랐지만 워낙 열심히 일했고, 일복 넘친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임이다. 젊다고 해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제아무리 강철 체력이라지만 언젠가는 코피 흘리거나 자리에 몸져누울 것이다.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때론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고, 때론 아버지처럼 자상한 송재덕 교수가 가장 먼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김지훈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지훈아, 교수야, 오늘 수술 괜찮겠니? 환자가 제일 문제지만 너도 문제다. 내가 라파로 할 줄 알면 대신 해 줄 텐데 미안하다. 미안해.”
“아닙니다. 일석이하고 신현수 선생, 이경석 선생이 도와줘서 일찍 끝낼 수 있었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 고마워? 조금만 더 고생하자. 동기들이 최고다, 최고.”
툭툭 어깨를 치는 송재덕 교수의 손이 부드러웠다. 이혁민 교수가 수고했다는 듯 웃으며 눈길을 주었고,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는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김지훈 선생, 오늘 수술 4개나 있다면서 괜찮겠어? 마음은 굴뚝같은데 도와줄 방법이 없네.”
“박승준 선생님, 체력보다 정신력이 더 강한 사람입니다. 김지훈 선생, 내 말이 맞지? 이 정도쯤은 우습지?”
지동훈 교수가 주먹을 휘둘렀다.
과장된 몸짓과 농담에 왠지 마음이 편했다.
“지 교수, 사흘 밤낮이야. 그동안 잠도 거의 자지 못했는데 정신력으로 극복이 돼? 그러고 보니 손일석 선생도 거의 못 잤겠네. 낮에 좀 잤나?”
“사실 저도 걱정이긴 한데,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말도 있잖아요. 아직도 저런 체력이 있다니 부럽네요.”
“정신일도는 집중력이지.”
“어? 그런가요?”
“김지훈 선생, 하여튼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중환자실 킵은 문제없나? 설마 주말 당직은 아니지? 당직이면 내가 바꿔 줄게.”
절대 가식이 아니었다.
선배가 진심으로 챙겨 주면 후배에겐 큰 힘이 된다. 박승준 교수의 진심 때문인지 풀려 가던 다리에 활력이 붙는 것 같았다.
지동훈 교수도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의 진실한 변화에 활짝 웃었다.
회진을 끝낸 전임들이 다가왔다. 신현수와 이경석이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잔에서 전해지는 따스함보다 더 따뜻한 배려와 마음이 느껴졌다.
‘경석이 형, 현수야, 함께 수술해 줘서 정말 고맙다.’
“경석이 형, 두 잔 다 마시라고요?”
“한 잔 갖고 잠이 깨겠어?”
맞는 말이었다.
홀짝 한 모금 마신 김지훈이 소태 씹은 표정을 지었다.
“어우! 왜 이렇게 써요?”
“오늘 수술 네 개 하려면 카페인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블랙으로 진하게 탔다. 한 번에 쭉 마셔.”
“박카스도 줄까?”
뭐든지 더블이다.
신현수가 박카스 두 병을 꺼내 보였다. 이경석이 안마하듯 어깨까지 주물러 주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대화가 오고 갔지만, 문득 이보다 좋은 직장과 동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무조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은 벌써 회진을 도셨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간호사가 손짓을 하며 전화기를 흔들었다. 동료의 관심과 마음에 없던 힘이 솟을 판인데 이준영 교수의 전화였다.
(수술 잘 끝났지? 오전에는 진료 때문에 힘들다. 오후 수술은 나하고 같이하자.)
우아악! 얼마 만인가!
혹여 지나친 피로에 실수할지 모른다는 걱정일 수도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스승의 마음이었다. 가루가 되도록 깨지고, 재가 되도록 타도 좋았다.
눈가 힘차게 비빈 후 수술 방으로 내려가 씩씩하게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등짝에 소름이 쫙쫙 들며 나른한 졸음기를 밀어냈다.
고경아는 힘이자 생명이다.
“지훈 씨, 오늘은 꼭 집에 와야 돼요. 우리 아이가 아빠 보고 싶은지 발길질을 심하게 하네요.”
슬그머니 쥐여 준 삶은 계란과 흰 우유는 일용할 양식이었고, 걱정을 숨긴 다정한 말은 마음의 평안이었다. 세 달 후면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수술이 시작됐다.
허수진을 응급으로 수술한 이후 근 4일 만에 하는 정규 수술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이혁원과 고경아만 들어와 단란한 분위기도 한몫 거들었다.
“3포트로 하니까 조용하고 좋네.”
“선생님, 오늘은 제가 최선을 다해서 빨리 끝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이구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 선생님만 바라보는 이혁원입니다. 해바라기 아시죠? 해바라기. 그런 의미에서 피곤 풀리시면 라파로는 제게.”
언제 하오문에 가입했을까?
손발 오그라드는 아부에 진담 섞인 농담까지 하며 김지훈의 피곤을 풀어 주려 애썼다.
고경아는 애써 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도 힘들 텐데 남편 걱정만 가득했다.
‘경아 씨, 걱정하지 말아요.’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해요? 꼭 들어와요.’
해야 할 말, 들어야 할 말 많았지만 수술실이다.
“마취 시작합니다.”
김진호 교수의 말을 시작으로 수술이 시작됐다.
처컥! 처컥!
나직한 기계음만 울렸다.
극심한 피곤도 김지훈의 손을 막지 못했다. 이혁원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됐고, 고경아의 어시스트는 그야말로 최고라 할 수 있었다.
무난히 두 번째 수술까지 끝났다.
이제 막 12시가 넘었다.
평소 해 왔던 대로 다음 환자 수술을 준비하려던 이혁원이 난데없는 말에 눈만 껌벅거렸다.
고경아는 자기 일처럼 반색했다.
“점심 식사 후에 하신다고요?”
“너무 피곤해. 한두 시간이라도 쉬고 하자.”
사흘 밤낮의 강행군에는 김지훈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쉰 이혁원이 직접 오더를 내고, 수술 기록지까지 작성했다.
1년 차가 해야 할 일이지만 수술을 들어왔을 때 일이었다. 손이 부족해진 이후, 4년 차 치프도 심심치 않게 1년 차 시절로 돌아가야 했다.
할 일을 끝내고 잠시 눈치를 보던 이혁원이 병실로 올라갔다. 체력 하면 누구나 울고 갈 써전이 수술도 미룰 정도로 심한 피곤을 호소했다. 오늘만큼은 혼자 오전에 수술한 환자를 볼 생각이었다.
‘설마 연락 안 했다고 혼나진 않겠지?’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김지훈이 이미 환자를 보고 있었다.
어깨는 축 처지고 발걸음은 무거운데,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급히 옆에 서던 이혁원이 눈가를 찡그리다 못해 인상까지 썼다.
문득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난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환자가 무사히 회복되면 힘이 난다고 하셨었지? 무심코 지나쳤는데 정말 그러신 모양이다.’
실력 이상으로 환자에 대한 애정이 강한 김지훈이었다. 빤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수술이 끝나자마자 환자부터 챙길 줄은 몰랐다.
끝이 아니었다.
허수진이 너무 무서운 중환자실을 벗어나 덜 무서운 병실로 올라왔다. 세심하게 허수진을 챙기는 김지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이 순간만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상황 설명은 의료진의 의무다. 보호자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장수연이 잠시 자리를 비운 탓에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아버님, 이젠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주무세요. 쓰러지면 수진이는 누가 봐요? 어머님도 건사하셔야 되잖아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게 아니라 잠 좀 주무시라고요.”
“예,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답답하지만 이런 실랑이가 즐거운지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다 말고 소리 내 웃었다. 평소 보지 못한 모습이었고, 보호자 사정을 감안하면 남들 보기에 좋지 못할 수 있었다.
이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왜 웃으세요?”
“생각해 보니까 수진이 부모님하고 이렇게 오래 얘기한 게 오늘이 처음이네. 수진이가 좋아진 덕에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진작 얘기할 걸 그랬어.”
즐거움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중환자실에 들어선 순간 김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오전에 잠을 잤는지 안색이 한결 좋아진 손일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내내 이동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레인은 어때?”
“하루 이틀 내에 멈출 상황이 아니잖아. 바이탈이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 걱정이다.”
“나 없는 동안 환자 부탁한다. 혁원아, 킵이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조정 잘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강철 체력일까?
절대 아니다. 곧 서른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다.
보호자까지 만난 후 1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30분 후에 깨우라는 말에 이혁원이 또 갸웃거렸다.
‘이삼십 분 더 주무셔도 되는데. 안 피곤하신가?’
이유가 있었다.
몸을 흔들자마자 벌떡 일어난 김지훈이 부리나케 세수를 하고는 중얼중얼 무언가를 되새기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복강경 수술 과정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들어오자 아직도 수술 과정을 되풀이하던 김지훈이 바짝 긴장했다. 마치 전공의 1년 차처럼.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혁원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원동력일 것이다. 자신과 가장 관계가 깊은 사람을 항상 어려워하고, 존경하는 모습에 왠지 뿌듯함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후 수술이 시작됐다.
딱 한 사람 추가됐을 뿐인데 단란했던 오전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퍼스트를 서는 이준영 교수는 굳은 얼굴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세컨을 자청한 이혁원은 거의 숨도 쉬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두 건의 수술을 마친 김지훈이 조용히 처분을 기다렸다. 이준영 교수가 쓰윽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한 줄기 바람이 휭 불었다.
찬바람일까, 뜨거운 바람일까, 따스한 바람일까?
“총상 환자는 어때?”
예상했던 질문이 아니었다. 한껏 긴장했던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별 변화 없습니다.”
“좋아질 것 같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확신을 갖지 못하면 환자는 좋아질 수 없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네 자신과 동기들을 믿고 확신을 가져. 허수진처럼 좋아질 거야.”
귀중하면서도 힘이 되는 말이었다.
이제 기다렸던 본론이 나와야 한다. 수없이 반복한 수술에도 문제는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3포트 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듣고 싶었다.
그런데 수술 가운을 벗으며 생각도 못했던 말을 했다.
“아직도 4포트로 수술하는 병원이 많아. 논문으로 작성하고, 곧 있을 춘계 학회에 3포트 수술 발표하자. 기형종과 총상 치료는 케이스 리포트로 발표해.”
“예? 발표요?”
“인원이 우리 병원만 부족하겠어? 기형종과 총상도 매우 드문 경우야. 잘 준비해.”
커다란 등을 휙 돌렸다. 뜨거운 불길은 없었고, 당연히 재도 날리지 않았다.
결단코 이런 날은 없었다.
멀뚱멀뚱 뒷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바르르 떨었다.
3포트 수술에 어떤 문제도 없다는 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칭찬이었다.
‘좋았어. 까르페 디엠!’
“혁원아, 선생님 말씀 들었지? 3포트로 수술한 환자 차트 모두 모아서 기본 작업 시작하자.”
“예? 저도요?”
“네가 슬라이드 돌려야 할 것 같지 않아?”
“논문도 써야 하는데…….”
찌릿! 찌릿! 파바박!
눈빛 하나로 이혁원의 입이 꾹 닫혔다.
4년 차 치프라고 해도 복강경 수술에 관한 한 1년 차 이상으로 일하고 배울 때였다. 꾀라도 부리면 다른 수술을 할 기회까지 완전히 날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도 전공의처럼 일하는 김지훈을 쫓아갈 지름길은 없었다.
“선생님, 바로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이혁원이라는 이름을 2저자로 등재하자.”
2저자라면 거의 자신의 논문을 쓰는 것처럼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졸지에 논문 두 개를 작성하게 된 이혁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프도 제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바쁜데 어디서 시간을 내야 할지 암담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김지훈의 오더다. 가장 존경하는 써전의 속을 쏙 빼먹으려면 무조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눈가를 좁히던 이혁원이 갑자기 화색이 됐다. 주먹을 바르르 떨며 입꼬리까지 살짝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