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25화 (825/1,329)

9화. 노력 없는 기적은 없다 Ⅰ (2)

인공 항문을 만들 소장이 너무 창백했다. 연이은 수술과 과도한 조작 탓에 연동 운동조차 관찰되지 않았다.

비단 소장에만 국한된 상황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장기가 저산소증과 기능 저하에 빠져 있을 것이다.

불안해도 최선의 결정을 내렸고, 확실하게 처리했다. 인공 항문을 만들기 전 반드시 해야 할 과정이 있었다. 단 10분의 투자가 환자에게 어떤 이득을 줄지 몰랐다.

먼저 어떻게든 패혈증 진행을 막아야 했다.

장이 괴사됐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으로 내용물이 샜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한 군데도 아닌 소장, 대장 두 곳이다.

보통 오염 발생 부위에서 단위 면적당 100,000개 이상의 세균이 관찰돼야 감염으로 이어진다. 세균 수와 오염원의 양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진행하세요.”

“간호사, 이리게이션 준비됐죠?”

이동현 환자의 면역력은 바닥이었고, 이미 패혈증에 빠진 상태기에 더욱 철저하게 씻어 내야 했다.

저체온증 역시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중심 체온을 올려 주는 효과까지 기대하며 물의 온도를 확인했다.

알맞게 데워졌다.

배 속에 뜨거운 물을 쏟아부었다.

“석션! 이리게이션!”

맑은 물이 나오고, 또 나올 때까지 씻어 냈다.

배 속에 고였던 핏물까지 모두 사라졌다.

수술 부위가 말끔하게 보였다.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급하게 배를 닫아야 했던 1차 수술 시 미진했던 부분이 있을지도 몰랐다.

째깍! 째깍!

점점 마음이 급해졌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위와 소장을 연결한 부분은 깔끔했다. 소변 줄을 넣은 십이지장도 잘 막혀 있었다. 봉합으로 처리한 간 손상면의 우징이 지속되는 양상이었지만 더 이상 손을 댈 부분은 없었다.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담낭을 제거한 부분이 남았다. 수없이 수술했던 장기다. 아무리 급하게 처리했다고 해도 별문제 없을 것이라 믿었다.

거즈로 눌러 닦으며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순간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즈가 노랗게 물들었다. 어딘가에서 담즙이 샌다는 의미였다.

급히 확인한 담낭관은 잘 묶여 있었다.

‘어디지? 설마 손상 부위가 더 있나?’

치명적인 상황이다.

절대적으로 침착해야 한다.

담즙이 샐 수 있는 모든 부위를 철저하게 확인했다.

총수담관을 덮고 있는 지방조직 일부에 피멍과 함께 약간의 파열이 관찰됐다. 1차 수술 시 이미 확인했던 부분이었고, 문제없었다.

‘다른 부위는 아니다. 여기밖에 샐 곳이 없어.’

파열된 부분을 살짝 벌렸다. 갈색이 도는 노란 액체가 흘러나왔다.

등짝이 서늘해졌다.

담관 손상이 분명했다.

총알이 스쳐 지나가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손상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1차 수술 시 수술 팀 전체가 인지하지 못한 이유였다.

지금이라도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었고,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손상이었다.

반면 예정보다 빠르게 진행하며 아낀 시간을 모두 빼앗길 상황에 직면했다.

띠띠띠띠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취과 교수는 바이탈에만 집중한 채 말이 없었다. 단 몇 분의 시간일지라도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직은 이동현 환자의 끝을 볼 순간이 아니었다.

아무리 급해도 미진한 부분을 절대 남기면 안 되는 부위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2차 수술이다. 시간이 지연되면 될수록 어레스트가 날 가능성만 치솟는다.

‘손상 부분을 일일이 찾아서 해결할 시간도, 방법도 없다. 담즙 배출 통로를 만들고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

지체 없이 손을 내밀었다.

“켈리 주고, 티 튜브 준비해요.”

과감하면서도 정확함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신경과 감각을 눈과 손에 집중시켰다.

손일석의 눈가가 심하게 일그러졌다.

‘총상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잡아내기 힘든 부분이야.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제길! 첫 수술에서 담관을 확인하자고 말해야 했어.’

실수나 과실이라고 말하기 힘들었지만, 1차 수술에 참여했던 의료진에게는 자책의 순간이었다. 만회라도 하듯 강하게 리트랙터를 당겼다.

의외의 상황에 이경석의 긴장이 더욱 진해졌다.

피멍이 든 지방조직을 박리했다.

제법 출혈이 발생하는 부위지만 몇 방울의 피만 비쳤다. 저혈압으로 인한 혈류 감소가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의 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총수담관이 환하게 드러났다. 눈으로는 손상 부위를 찾을 수 없었다.

담즙이 샐 정도라면 미세한 손상이 다발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혹 아니라고 해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담즙 배출 통로인 T-tube의 효과를 믿어야 했다.

담관을 곧바로 절개했다. 노란 담즙을 닦아 내며 T-tube를 삽입했다.

김지훈의 손은 거침없었다.

이경석과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며 확실하게 절개 면을 봉합하고, 단단하게 타이했다. T-tube를 따라 갈색 담즙이 흘러나왔다.

째깍! 째깍!

귀중한 시간을 소비했지만 이동현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문제를 해결했다.

‘후우! 이번에도 놓쳤으면…….’

다음에 벌어질 결과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놓친 손상이 또 있는지 철저하게 기존 수술 부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수술 팀 모두 눈을 번쩍였다.

“이상 없죠?”

“이상 없습니다.”

이제야 인공 항문을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절개 창을 내는 것은 손상만 가중시킨다. 우측 복부에 두 곳의 사입구가 있어 만들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귀중한 시간이 흘렀다.

“마취과, 10분 내에 배 닫습니다.”

“계속 진행하세요.”

복벽 속의 근육 일부를 잘라 낸 후 소장을 빼냈다. 굵은 실로 절개 창을 닫으며 인공 항문 주변 부분은 헐겁게 봉합했다. 소장이나 장간막이 눌리지 않는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컷!”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고작 5바늘뿐이었다.

절대 지나치면 안 되는 부분이 남았다.

총알이 들어간 자리인 사입구다.

강한 충격과 회전으로 손상이 심하게 발생하는 부위다. 조직 괴사는 감염을 유발하고, 이 역시 패혈증의 원인이기에 철저하게 치료해야 한다.

1차 수술에서 손일석이 처리하는 방식을 보고 배웠다. 과감하게 죽은 조직을 걷어 냈다. 사입구에 소독액으로 흠뻑 젖은 거즈를 채워 넣는 순간 마취과 교수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마취 끊은 지 10분 됐습니다. 바로 옮깁시다.”

환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심장은 여전히 헐떡이고 있었다.

모든 생명 유지 장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겼다. 아내가 달려오며 오열했다. 아들은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참았다.

“선생님, 수술은 잘됐습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띠띠띠띠띠띠!

새벽 5시, 이동현 환자의 급박한 심장박동 소리가 중환자실에서 다시 울렸다. 정확히 2시간 만에 수술이 끝났지만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2차 수술을 견딘 것만 해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의료진 전체가 달라붙어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조그만 변화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수, 목, 금 내리 3일 동안 밤을 샜다. 몇 시간의 잠이 풀어 준 피로가 고스란히 돌아왔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피곤을 떨칠 수 없었다.

손일석 역시 거의 감긴 눈으로 간신히 환자를 보고 있었다. 도리어 번갈아 당직을 선 전공의들이 팔팔했다. 오만석이 휘휘 팔을 휘두르며 힘을 내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수술도 하셔야 하는데 들어가 쉬시죠.”

심각한 수면 부족 앞에 장사 없었다.

더구나 정규 수술이 네 건이나 있다. 수술을 미룰 수도, 누가 대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다 실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다가왔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끙’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경석이 형,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시죠. 일석아, 같이 연구실로 올라가자. 오만석,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고, 시간 되면 깨워 줘.”

1시간 30분 정도밖에 잘 시간이 없었다.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연구실 구석에 놓인 낡은 소파에 몸을 맡겼다. 그동안 연이은 수술로 긴장을 풀 틈이 없었다.

환자 걱정도 잠시, 급격하게 잠이 몰려오며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드르렁! 드르렁!

김지훈과 손일석이 코를 골면서도 툭하면 몸을 뒤척였다. 불편한 자리가 아니라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심각한 환자가 주는 중압감은 잠을 잘 때도 떨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7시 30분이다.

간신히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발바닥의 감각도 이상할 지경이라 괜히 잤다 싶을 정도였다.

엉망인 컨디션으로 회진을 돌 수 없었다.

찬물로 샤워를 했다.

4월 말의 공기가 엄청 차갑게 느껴졌다.

“끄으응! 지훈아, 어디 가?”

손일석이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

말이 오고 가야 잠만 깨울 것이다. 조용히 나와 중환자실로 향했다.

허수진의 부모와 이동현 환자의 보호자를 보는 순간 은근한 긴장이 다가왔다. 구름을 걷는 것 같은 감각이 급격하게 사라졌다.

주고받아야 할 말은 많지만 환자 상태부터 살펴야 했다. 중환자실 문을 열자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 으아앙!”

허수진이 악다구니를 쓰는 것처럼 울어 댔다.

“수진아, 괜찮아. 울지 마.”

강병옥은 손을 잡은 채 쩔쩔매고 있었다.

순간 또 피가 나는 것은 아닌지, 극심한 통증이 유발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옥아, 무슨 일이야?”

“선생님, 오셨습니까?”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급한 마음에 절개창과 드레인을 살피며 청진기부터 꺼내 들었다. 별다른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수진아, 왜 그래? 어디 아파?”

강병옥이 조용히 속삭였다.

“방금 전에 다른 환자 어레스트 나서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CPR(심폐소생술) 하는 걸 본 모양인지 그때부터 울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달래도 소용없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는 거지?”

“검사 결과, 드레인 다 좋습니다.”

까닭 모를 한숨이 툭 터져 나왔다.

아무리 강해도 14살 어린아이다.

익숙하지 않은 온갖 기계음과 심각한 상태의 환자들이 누워 있는 곳이 바로 중환자실이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소아 중환자실을 이용했어야 했나? 아니야. 그쪽에서는 외과 치료가 불가능해. 어쨌든 이건 내 불찰이야.’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겁에 질린 것뿐이라니 정말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면 좋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고, 신경이 갈 만큼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이 힘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허수진을 달래고 나서야 울음이 잦아들었다.

아직은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시기였다. 배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올 테고, 수술 부위는 언제 피를 콸콸 쏟을지 몰랐다.

이해득실을 정확히 따져야 했다.

‘심리적 부담이 훨씬 클 수밖에 없겠어. 최대한 빨리 병실로 옮기는 것이 유리해. 너무 빠르게 좋아지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기네.’

어른도 견디기 힘든 곳이 중환자실이다.

과감하게 결정을 내렸다.

“병옥아, 소아과 병실에 있으면 대처하기 힘드니까 우리 과 병실로 올리자. 소아과 선생님께 말씀드려. 이러다 또 울겠다. 빨리 조치 취해.”

강병옥이 후다닥 사라졌다.

“수진아, 오늘 다른 병실로 갈 거야. 이젠 무서운 거 없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있어도 돼. 그러니까 그만 울어.”

허수진이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면회가 시작됐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란, 부모에게 딸이란 기뻐도, 슬퍼도, 행복해도 눈물을 자아내는 존재일 것이다.

“수진이는 정말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네요.”

일반 병실로 올라간다는 말에 장수연이 뛸 듯이 좋아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버지도 이해를 했는지 계속 인사를 하며 고맙다는 말만 했다. 어머니의 웃음소리에 왠지 큰 의미가 담긴 것 같았다.

김지훈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지켜보다 이동현 환자를 찾았다.

연구실에 있을 줄 알았던 손일석이 면회를 들어온 보호자와 함께 있었다. 온몸에 피로가 걸려 있었고, 김지훈 자신의 몰골도 비슷할 것이다.

여전히 혼수상태다. 바이탈은 1분이 멀다 하고 흔들렸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혈액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보호자의 마음을 안정시킬 요인이 없었다.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무표정한 것처럼 보였다.

중환자실에 있는 가족을 면회하는 보호자들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독한 두려움, 불안, 슬픔, 안타까움이 한데 뒤섞여 도리어 머릿속과 가슴이 텅 비는지도 몰랐다.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환자 상태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보호자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무겁고 답답한 마음만 남을 뿐이었다.

“더 이상 수술할 부분은 없습니다만, 우려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혼수상태에 혈압도 낮고, 패혈증까지 발생한 상태입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좋아지지 않으면 사망하실 수 있습니다. 수술 부위가 정상적으로 아물지 않아 터지게 되면 그 역시 사망 요인입니다.”

희망적인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어떡해! 어떡해!”

눈가가 흠뻑 젖은 아내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정말 희망은 없는 걸까?

불현듯 여리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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