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노력 없는 기적은 없다 Ⅰ (1)
띠띠띠띠띠띠띠띠!
심장이 다시 빨라졌다.
삑! 삐익! 삑! 삑!
간신히 유지되던 산소포화도마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90퍼센트 아래로 떨어질 때마다 수시로 경고음이 울렸다.
뚝! 뚝! 뚝!
드레인을 따라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손상된 간과 광범위한 수술 부위에서 발생한 우징 탓이겠지만 수술 직후보다 진했고, 속도마저 빨라졌다.
패혈증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였다. 모든 요소가 촉발 원인이었지만 장 조직 괴사로 인한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최악에 최악이 겹쳤다.
외부에서 장을 살리는 방법은 없다. 아무리 노련하고 실력 있는 의사라 할지라도 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켜보는 것은 절대 답이 아니었다.
김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일석아, 마취를 견딜 수 있을까?”
“버티기 힘들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아. 최대한 수술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 제길! 며칠만 더 버텨 줬어도 마취 부담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피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역시 시간이 생명이다. 정확하고 확실한 수술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떻게 수술해야 할까?
상행결장을 모두 제거하고, 소장 말단을 다시 자른 후 새로운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한다. 복부를 열고 닫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 것이다.
통상의 경우라면 말이다.
‘2시간 내에 해야 한다. 그 정도면 견딜 수 있을까?’
마취로 인한 영향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결국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술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조건이었다.
수술 과정을 그린 김지훈이 결정을 내렸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어. 끝까지 책임진다.’
“재수술 들어가자. 준비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만석이 움직였다.
손일석과 함께 보호자를 만났다. 상황을 들은 아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금 재수술을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설마 수술해도 돌아가시고, 안 해도 돌아가신다는 말입니까?”
최선을 다했건만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답답하기만 했다.
“장이 썩어 패혈증이 진행되면 100퍼센트 사망입니다. 환자분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릴 상황도 아닙니다. 1분이라도 빨리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해결해야만 회복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동현 환자의 아내는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아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원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망을 각오했던 첫 번째 수술이 끝났을 때 살아 있는 아버지를 보고 강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2차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도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자책도 시간이 지나면 희석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과 하루도 안 돼 의료진에게 또다시 사망을 거론하며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화가 날 수도 있었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않았고,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보호자를 탓할 게 아니었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기에 보호자의 원망 섞인 눈빛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보호자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려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사소한 실랑이, 짧은 시간 지체마저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당장 수술 동의를 해 주셔야 합니다. 동의서가 없으면 어떤 일도 진행할 수 없고, 결국 피해는 환자분이 입게 됩니다. 결과는 사망입니다.”
건조하게 들리는 말에 도리어 심각한 상황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아들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끄윽끄윽’ 울었다.
어떤 사고였는지 모르기에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가족의 마음만은 느낄 수 있었다. 슬픔과 안타까움, 자책과 죄책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의사에게 다른 선택이 없듯 보호자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단호한 표정으로 결정을 기다리는 김지훈을 보며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목소리 높여서 죄송합니다. 빨리 수술해 주십시오. 제발 아버님을 살려 주십시오.”
“선생님, 제발 우리 남편 살려만 주세요. 목소리라도 듣게 해 주세요. 눈만 뜨게 해 주세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환자분에겐 보호자분들의 희망과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결코 원치 않는 시점에 2차 수술이 결정됐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다급한 발걸음에 기필코 살려야 한다는, 반드시 살리고 싶다는 절박함이 실려 있었다.
아들의 어깨가 격하게 흔들렸다.
수술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즉시 마취과를 찾았다. 한밤중 몰려오는 본능적인 졸음에 몸을 맡기고 있던 당직 교수가 흠칫 놀랐다.
“어젯밤에 수술한 환자를 또 수술한다고?”
당연한 반문이었다.
내리 3일 동안 응급 수술이 뜨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수술 중 사망을 각오하고 14살 어린아이와 총상 환자 마취를 연이어 걸었다. 다행히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오늘은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처럼 보인 것이다.
“바이탈이 이 지경인데, 하루도 안 돼 마취를 또 걸면 정말 몇 시간 못 버텨. 한 시간이나 허락될지 몰라.”
“어떻게든 두 시간 내에 마치겠습니다. 마취만 걸어 주십시오.”
당직 교수가 힐끗 눈길을 주며 김지훈을 째려보았다.
수술 시간이 아니라 마취 자체가 문제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면 마취과가 아니다. 막말로 살아 있는 사람을 죽였다 다시 살리는 과가 바로 마취과다.
“두 시간?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술실에서는 살아서 나가게 할 테니까 시간 걱정하지 말고 반드시 살려. 환자 한 명 수술하면서 이틀이나 부담 줘 놓고 못 살리면 다신 마취 안 해 줄 거야. 꼭 살려. 김지훈 선생, 해 보자.”
일말의 힘과 희망을 얻었다.
“감사합니다.”
이동현 환자의 수술 준비가 빠르게 끝났다.
막 수술 방으로 옮기려는 순간 의외의 얼굴이 보였다. 오늘 당직도 아니고, 중환자실에 환자도 없는 이경석이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지훈아, 지금 들어가는 거야?”
“예. 형은 무슨 일로 나왔어요?”
“일석이 전화받고 나왔어. 상행결장 제거하고 인공 항문 다시 만든다고? 대장 쪽은 내 전문이잖아. 시간을 얼마나 아낄지 모르지만 오늘은 나랑 같이하자. 일석이보다 내가 퍼스트를 더 잘 설 것 같지 않아?”
당연하다는 목소리였다.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14시간을 함께 수술한 후 총상 환자 수술까지 들어온 손일석, 당직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총상 환자 주요 수술을 함께한 신현수, 진료를 대신 봐준 것도 모자라 손일석의 전화 한 통에 달려온 이경석.
개개인의 능력만 따지면 더 노련하고 실력 있는 의사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모인다면, 뭉친다면 이보다 더 유능한 수술 팀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경석이 형, 부탁할게요.”
“집도의도 아닌데 부탁은 무슨! 솔직히 수진이하고 총상 환자 수술 못 들어가서 안타까웠어. 빨리 가자.”
이경석이 앞장섰다.
손일석의 등이 하염없이 넓어 보였다.
‘일석아, 고맙다. 경석이 형, 고맙습니다. 우리 이 환자 꼭 살립시다.’
허수진이 눈에 들어왔다.
새근새근!
중환자실이 주는 공포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통증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강인한 삶의 의지와 최고의 수술 팀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이동현 환자도 그럴 것이다.
이미 치명적인 총상에도 불구하고 1차 수술을 버텼다. 2차 수술까지 버티고, 어둡기만 한 혼수상태에서 벗어나 결국은 웃음을 보일 것이라 믿었다. 어떤 악조건도 이겨 낼 사람은 기필코 이겨 내기 때문이었다.
새벽 3시, 이동현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졌다.
전신 상태가 점점 악화됐다.
띠띠띠띠띠띠띠! 띠띠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은 듣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흐으윽! 흐으윽!
집중하지 않으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발 호흡은 미약하기만 했다.
의식은 없고, 모니터에 연결하자마자 불안한 바이탈을 알리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미 패혈증 초기 증세까지 보였다.
환하게 드러난 복부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인공 항문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마취과 교수의 눈에 강한 긴장이 서렸다.
“마취 시작합니다. 수술 바로 시작하세요.”
집도의 김지훈, 퍼스트 이경석.
세컨 손일석, 써드 오만석.
김지훈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치명적이라고 해도 다시 잡을 수 없는 기회였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삶을 볼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수면이었지만 몸과 마음의 피로도 어느 정도 덜었다.
기필코 살려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시작합니다.”
곧바로 절개 창을 열었다.
굵은 실 몇 개를 끊어 내자 복벽이 활짝 열렸다. 까맣게 죽은 인공 항문은 물론 모든 부위가 너무 쉽게 떨어졌다.
수술 후 보여야 하는 회복 반응이 조금도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불길한 징조였다.
복벽에 걸어 놓았던 소장과 상행결장을 떼어 내자 수술 부위가 드러났다.
나직한 신음이 터졌다.
상행결장의 3분의 1 이상과 10센티미터가 넘는 소장 말단부가 변색됐다. 그 자체로 치명적이었다. 빠르게 결정하고 배를 열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가 수술을 잘못한 걸까?’
자책이 들 지경이었다.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과 감정 때문에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오직 당면한 문제에만,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상행결장 제거합니다. 멧젬!”
어차피 남길 부분이 아니다.
수술용 가위로 상행결장을 지지하고 있는 장간막을 거침없이 자르고 묶었다.
절반이 후복막에 묻힌 장기다.
더없이 신중해야 하지만 일분일초마저 아까운 시간이었다. 과감하게 후복막을 박리했다. 군데군데 피가 비쳤고, 정상적으로 보여야 할 출혈과 차이가 확연했다.
이경석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빠르게 손만 놀렸다.
문제없다는 의미였다.
서걱! 서걱!
상행결장이 툭툭 떨어져 나왔다.
상당 부분 박리가 진행됐지만 부족한 혈류로 거의 피가 나지 않았다. 환자의 혈압까지 낮은 상태였다. 수술 후를 대비해 사소해 보이는 출혈도 확실하게 잡아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다.
‘양이 적다고 간과하면 수술 후 출혈로 또 열어야 한다. 세 번의 기회는 없다.’
“보비! 석션! 타이!”
자르고 묶고, 자르고 묶기를 반복했다.
이경석의 어시스트는 완벽했다.
“결장 나갑니다.”
간호사가 재빨리 대장을 받아 들었다.
순식간이라는 말이 연상될 정도로 빠르게 상행결장을 모두 제거했다.
이번 수술의 핵심이 남았다.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할 소장은 정확하고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지훈이 변색된 부분에서 2~3센티미터 떨어진 부위를 가리켰다.
“이쯤에서 자르면 되겠죠?”
“오케이!”
소장에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 처리가 관건이었다.
인공 항문을 만들든, 다른 장과 연결하든 혈관까지 깨끗하게 박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장 내부로 통하는 혈류가 있어 통상 1~2센티미터 이상 박리하지만, 또다시 괴사할 위험성이 높았다.
반면 주변 조직을 지나치게 많이 남기면 복벽에 눌리는 부분이 발생해 역시 괴사를 유발할 수 있었다.
“혈관은 최대한 남기고 인공 항문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될까요?”
이경석이 신중한 눈으로 김지훈이 가리킨 부분을 보았다. 잠시 눈가에 주름까지 만들며 고민했다. 이 상황에서 또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때는 마취도 못 걸 것이다.
손일석이 전화한 이유와 기꺼이 수술을 들어온 이유가 있다. 전임 중 대장과 소장을 가장 많이 수술했기에 정확하고 확실한 조언을 해야 했다.
‘남은 소장도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혈류가 나쁘다. 지훈이 판단도 맞지만 너무 불안해. 좀 더 남겨야 한다.’
“지훈아, 더 남기자.”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복벽에 혈관이 눌리지 않을까요?”
“근육을 열어 줘서 과도한 압력을 해소시키면 될 것 같아. 환자가 회복되면 혈류도 강해질 테니까, 복원할 때까지 문제없을 거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써전의 판단이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시작하죠.”
장간막을 다듬었다. 혈관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남겨야 할 부분은 확실하게 남겼다. 죽은 부위를 포함해 미리 정한 곳에서 소장을 잘랐다.
마취과 교수가 놀랄 정도로 엄청나게 빨리 진행됐다.
손일석과 오만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가를 좁힌 채 수술 부위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밖으로 빼면 끝이다.
단, 다른 문제가 없어야 했다.
배를 연 지 막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