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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822화 (822/1,329)

8화. 동료가 있기에 Ⅲ (1)

원래 인공 항문은 새로운 절개창을 내 만들어야 하지만 허용되는 시간이 없었다. 복부 정중앙에 낸 기존 절개창으로 소장과 상행결장을 빼내는 수밖에 없었다.

허술한 처리로 장 내용물이 배 속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이미 새어 나온 오물을 포함해 어느 곳에도 고이지 않도록 드레인 8개를 박았다.

층층이 봉합할 여유는 없었고, 곧 다시 열어야 한다. 굵은 실로 한꺼번에 몇몇 부분만 봉합했다.

20센티미터가 넘는 절개창이 단 5바늘로 닫혔다. 거의 열려 있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관통한 부분을 소독하고 두텁게 드레싱을 했다.

오전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급기야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환자의 심장이 급박하면서도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심정지가 오기 직전의 양상이었다.

이미 마취제 투여는 멈춘 상황이었다. 인공호흡기만 제거했다.

“중환자실로 옮깁시다.”

드르륵! 드르륵!

“환자 옮깁니다. 비키세요.”

인투베이션 튜브는 물론 모든 라인을 그대로 유지한 채 환자를 옮겼다. 보호자들이 뒤따라 왔지만 설명할 시간조차 아껴야 했다. 핏물로 흠뻑 젖은 수술 팀을 본 아내와 아들이 손만 덜덜 떨었다.

중환자실이 급박해졌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호흡 상태를 확인한 나종진이 인공호흡기를 연결했다. 흔들리는 바이탈에 경고음이 쉬지 않고 울려 알람을 끌 수밖에 없었다.

7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소변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모든 장기에 상당한 부담이 가해졌다는 의미였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여전히 심장은 불규칙했다. 숨만 유지될 뿐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대비해야 했다.

“만석아, 어레스트 대비해.”

심장을 유지시키기 위한 약물이 투여됐다.

전기 충격기까지 준비했다.

수술 팀 모두 바짝 긴장한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전도가 미친 듯 널뛰거나 편평하게 변하는 순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겠지만 회생 가능성은 없었다.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제발! 제발! 제발!

무거운 침묵 속에 시간이 흘렀다. 초조함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띠띠띠띠! 띠띠띠띠띠!

빈맥은 지속됐지만 부정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레스트가 날 가능성이 줄었건만 아무도 안도하지 못했다. 단지 지금 당장 해야 할지도 몰랐던 심폐소생술을 면했다는 의미밖에 없었다.

조금의 여유를 얻은 김지훈이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수술 팀을 보았다. 모두들 눈이 시뻘게진 채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33시간 동안 병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단 두 명의 환자를 무려 2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술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했건만 총상 환자 이동현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다.

불안한 바이탈에 맥이 풀렸다. 의식은 언제 돌아올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의사의 한계가 절절히 다가왔다.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 수술을 버틴 것만 해도 기적과 다름없었다. 의료진이 먼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현수가 지친 기색이 완연한 김지훈과 손일석의 어깨를 툭 쳤다. 힘없는 미소를 머금던 손일석이 물었다.

“넌 어떻게 알고 들어왔어?”

“어제 당직 지훈이 대신 내가 서기로 했다는 말 못 들었어? 연락받고 바로 나왔는데 조금 늦었다. 지훈아, 미안하다.”

“워낙 급했던 환자라 나도 잊고 있었네. 너희들 덕에 출혈 빨리 잡았고, 십이지장 쪽도 빨리 해결할 수 있었어. 내가 고맙다.”

신현수가 피식 웃었다.

“일찍 왔어도 너희 둘이 먼저 수술하는 게 맞았던 거 같아. 일석이가 혈관 쪽은 나보다 훨씬 낫더라. 보는 내가 다 떨릴 정도였어. 총상 무섭네.”

“무슨 소리야? 내가 쭉 퍼스트 섰으면 시간 오버해서 어레스트 났을 거다. 현수 네 덕에 이 환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물론 김지훈 이 자식 힘이 제일 컸지만, 집도의면 그 정도는 해야지?”

오만석이 귀를 기울이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언뜻 부럽다는 기색이 스쳤다.

눈길을 주고 있던 김지훈이 허탈하게 웃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결과를 떠나 한마디 꼭 하고 싶어졌다. 스스로 위안 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현수야, 일석아, 우리 이러다 정말 최고의 수술 팀 될 것 같지 않아? 경석이 형까지 들어왔으면 완벽했을 거야. 이 환자를 나 혼자 수술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환자만 보고 있었다.

아무도 환자가 치명적인 총상을 버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2차 수술을 기약하며 급하게 마무리했을 때만 해도 어레스트를 각오했다.

환자는 사망하지 않았다.

살리고 싶다는 열망이 수술 팀을 휘감았다. 모두가 전력을 다한다면 살 수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머금었다.

극한적인 상황 덕에 도리어 서로의 속마음을 가슴 뜨겁게 느끼고 있었다.

김지훈이 머리를 감싸 쥐며 눈가를 비볐다.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지만 병동 환자를 봐야 하고, 외래 진료도 해야 한다.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현수야, 회진 돌고 외래 봐야지. 수고했고, 고맙다. 난 수진이도 봐야 하니까 먼저 올라갈게. 일석아, 잠깐 이 환자 좀 봐줘. 오만석, 회진 돌고 바로 킵해.”

“예, 알겠습니다.”

오만석이 힐끗 환자를 보고는 병동으로 내달렸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 큰 체격답게 상당히 쌩쌩했다. 킵할 힘이 남아 있을 것이다. 허수진의 수술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 도리어 다행이었다.

‘지금 보이는 열의 평생 간직했으면 좋겠다.’

외상 치료에 미쳤다는 생각만 했는데, 어쩌면 오만석 덕분에 이동현 환자를 살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수진을 찾았다.

노티가 없었다는 말은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드레인을 따라 뚝뚝 떨어지는 피가 보이는 것 같았다. 만일 출혈이 지속된다면 허수진도 재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긴장이 다가왔다.

중환자실의 밤은 성인에게도 무섭고 섬뜩하다. 견디기 힘든 두려움과 육체적 부담에 수술 후 한잠도 못 잤을 것이다. 그 탓인지 곤히 자고 있었다.

새근! 새근!

거대한 기형종 대신 커다란 절개창이 호흡을 방해하겠지만 수술 전보다 한결 숨이 편해 보였다. 가끔씩 찡그리는 눈썹과 옅게 깔린 홍조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징후였다.

드레인부터 살피려는 순간 이경석이 보였다.

의아한 일이었다.

“형, 중환자실에 환자 없잖아요? 웬일이에요?”

“아이고! 이틀을 꼬박 새더니 얼굴색이 환자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네. 오늘 외래 진료는 내가 할 테니까 회진만 돌고 쉬어.”

이유 모를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수술실에서만 얼굴 보면 최고의 수술 팀이 아닐 것이다. 함께 환자를 보고, 모두의 노력으로 환자를 살릴 때 최고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진료를 형이 해도 될까요?”

“송재덕 선생님, 이준영 선생님 오더다. 시간 되는 대로 선생님들도 진료 도와주신다고 했어. 나 죽기 싫다. 이준영 선생님 눈빛 장난 아니다.”

정말일까?

분명 먼저 말했을 이경석이었다.

“고마워요. 몇몇 분은 내가 직접 봐야 하니까 나머지 분들만 부탁할게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드레인을 확인했다. 드레싱 겉이 깨끗한 것으로 보아 강병옥이나 오하석이 얼마 전에 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피가 나오고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거즈를 살폈다.

순간 훅 숨이 터져 나왔다.

노랗고 말간 색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드레인을 따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체액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벌써 멈췄지?’

허수진은 진정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아이였다. 2.54킬로그램에 달하는 종양을 갖고도 지금까지 버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가슴 떨리도록 기특하고 장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허수진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이유인지 고맙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부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신 사랑을 전하려는 듯 잡은 손에 힘이 살포시 들어갔다.

허수진이 눈을 떴다.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었다. 비틀린 입가에 묻은 것은 분명 미소였다.

“수진아!”

“선생님, 아파요.”

“그래. 많이 아플 거야. 수진이 네가 건강하기 때문에 아플 거야. 고맙다. 수진아, 정말 고맙다.”

“선생님, 아픈데 배고파요.”

깜짝 놀랄 일이었다.

장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해도 무려 14시간 동안 배 속을 헤집었다. 그 시간만으로도 장이 돌아오기까지 며칠 이상 걸린다. 어떻게 벌써 배고픔을 호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청진을 했다.

커다란 절개창에 왠지 미안했다.

‘작게 열었으면 훨씬 덜 아팠을 텐데.’

장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수술한 지 이제 하루가 약간 넘었을 뿐이었다. 모든 면에서 물조차 먹을 때가 아니었다.

어린아이에게서 흔히 보는 자극과 감각의 착각이었다.

“수진아, 지금은 아무것도 먹으면 안 돼. 조금만 더 참자. 숨 쉬는 건 편하니?”

“아픈데 편해요. 선생님, 나 무서워요.”

허수진의 손가락이 중환자실 환자에게 향했다.

14살 어린아이에게는 기계음조차 공포였다. 지적장애를 가졌다고 해도, 딸의 아픔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부모의 사랑과 온기가 필요할 것이다.

의료진이 절대 대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야 수술 후 면회를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애간장을 태웠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똑같이 밤을 새고, 발만 동동 굴렀을 부모의 가슴은 이미 찢어지고도 남았다.

허수진의 부모를 불렀다.

장수연이 도와줬지만 손을 씻고 신발을 갈아 신은 후, 소독된 가운을 걸쳐 입는 것마저 힘들어했다.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무려 하루 반이 훌쩍 넘은 후였다.

“으어어어! 수진아! 으어어어!”

아버지가 울었다. 그저 아프게만 들렸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어머니는 의미 모를 소리를 질렀다. 가슴 절절한 슬픔일지도 몰랐다.

“아아앙! 엄마! 아빠!”

허수진이 엉엉 울었다. 부모에게 매달리는 아이의 서러운 울음이었다.

배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절개 창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점점 울음소리가 커졌다. 중환자실의 낯설고 섬뜩한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가왔다. 부모에게는 두려움이자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딸도 서로의 손을 놓지 못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지만, 진하고 진한 사랑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장수연이 눈가를 붉혔다.

“선생님, 언제 병실로 올라갈 수 있을까요?”

“정말 강한 아이네요. 오늘 소변 줄 빼고 하루만 더 지켜보겠습니다. 올라가고도 남을 것 같네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수진아, 밥 먹었지?”

“아빠, 나 배고프고 아파.”

“수진아, 참아. 참아야 빨리 나. 수진아, 으어어어어! 얼마나 아팠니.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으어어어어!”

다리를 절룩이며 딸의 얼굴을 가슴 깊숙이 안았다. 뚝뚝 떨어지던 뜨거운 눈물이 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며 차가운 발만 매만졌다.

띠! 띠! 띠! 띠! 띠! 띠! 띠!

놀라운 일이다. 다소 빠르게 뛰었던 수진이의 심장이 편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딸을 보는 엄마의 어울리지 않는 웃음 속에 김지훈을 볼 때와는 다른 미소가 걸렸다.

먹먹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동안 입조차 열지 못했다.

어느새 허용할 수 있는 면회 시간이 끝났다.

“간호사, 10분만 더 면회시켜 주세요.”

가끔, 아주 가끔은 기쁜 마음으로 예외를 허용해도 좋을 것이다. 서로를 꼭 잡은 손을 떼어 놓을 수 없었다. 무한한 사랑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수진아, 이렇게만 가자. 넌 이미 건강해졌어.’

다시 이동현 환자를 찾았다. 수술 직후보다 좋아졌을 뿐이지, 조금도 안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놀라운 회복을 보인 허수진 때문인지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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