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동료가 있기에 Ⅱ (2)
숨 가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환자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급박하게 들리는 박동 소리, 창백한 장기, 마취과 당직 교수와 윤서연의 부산한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나 더 버틸지 모른다.
해결해야 할 부위는 수없이 남았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담낭 제거하고 십이지장 확인합니다.”
너덜너덜해진 담낭은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다. 어차피 없어도 되는 장기이기에 중요 부분에만 신경 쓰며 빠르게 제거했다.
불과 10여 분 만에 담낭 동맥을 묶고 자르던 김지훈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손일석 역시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섬뜩한 기운마저 흘렀다.
담낭을 제거한 자리 밑으로 심한 손상 부위가 보였다. 구멍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십이지장이 주행하는 부분이었다.
간만큼, 혈관만큼 치명적인 장기다.
‘십이지장 손상만은 없어야 돼.’
부질없을지라도 한 가닥 희망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손상 부위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던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촉진하자 장 내부가 확실했다.
번갈아 양쪽으로 손가락을 밀자 쑥쑥 밀려 들어갔다. 한쪽은 위장이고, 반대쪽은 총수담관과 연결된 십이지장이었다. 그 속에 췌장액과 담즙이 나오는 연결부가 있다. 간 손상 이상으로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석아, 십이지장도 확실하게 터졌다.”
답답한 신음이 터졌다.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면 휘플을 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 해결하든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만지면 만질수록 위험한 장기다.
파열된 부위를 제거한 후 정상적인 부분에 소변 줄을 넣고 배 밖으로 빼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일 수 있었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소화액이 고이는 것만 방지해 수술 부위가 녹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점은 조그만 구멍 하나 달랑 난 경우 이외에는 거의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사실이었다.
총상이 그런 수준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지금도 다발성 손상이 환자의 육신에 지속적이고 심각한 부담을 가하고 있었다.
띠띠띠띠띠띠띠!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몰랐다.
수술용 가위를 잡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조심조심 수술할 상황은 예전에 지났다. 절대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수 없었다.
빠르면서도 정확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은 수술 내내 최고의 수술 팀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침 완벽하게 호흡을 맞출 동료 한 명이 눈앞에 있다. 이미 수술 가운을 입고 언제든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는 신현수다.
양해를 구하거나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난 집도의다. 일석이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퍼스트 교체한다. 현수야, 빨리 들어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만석과 나종진에게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 부분은 현수가 퍼스트를 서는 것이 맞아.’
손일석이 고민도 하지 않고, 아무 소리 없이 세컨 자리에 섰다.
상황을 깨달은 나종진이 재빨리 물러나고, 신현수가 퍼스트 자리로 들어왔다.
신현수는 이미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곧바로 수술이 시작됐다.
손상 정도부터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특히 가장 관건이 되는 부위의 동반 손상 여부가 중요했다.
Ampulla of Vater(바터 팽대부).
췌장관과 담도가 합쳐진 총수담관이 십이지장과 연결된 부분으로 약간 돌출돼 있어 팽대부라고 한다. 만약 손상을 입었다면 담즙과 췌장액이 배출될 수 없다. 결국 주변부를 녹여 생사를 오가는 복막염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방지할 방법은 휘플뿐이었다.
휘플은 곧 수술 중 사망이다.
걱정과 고민은 머릿속 일이다. 김지훈과 신현수의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십이지장 박리합니다. 켈리!”
위와 십이지장 연결부인 유문 부위부터 박리했다. 강한 충격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십이지장 쪽으로 불과 1~2센티미터 박리하자 더 이상 온전한 형태를 찾을 수 없었다.
손상 부위가 거의 바터 팽대부가 있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순간 손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다가왔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초조하고 답답했다.
‘결국 휘플을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을까?’
가늘고 좁은 리트랙터로 조심스럽게 십이지장 내부를 벌렸다. 육안으로나 촉감으로나 모두 정상이어야 휘플을 피할 수 있다.
“무영등 초점 잡아 주세요.”
흐릿흐릿 내부가 보였다.
팽대부 직전까지 손상을 입었다. 입안이 바짝 말라 왔다.
볼록 솟아 나온 부위가 서서히 드러났다. 찢어진 부분은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 점막이 벌겋게 멍들어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손상을 입은 것은 분명했다.
손일석이 상당히 당황했다.
“지훈아, 제거해야 하나? 휘플할 시간은 없어.”
총상은 김지훈보다 많이 봤지만, 간 주변 손상을 수술한 경험이 많다는 말은 아니다.
눈가를 잔뜩 좁힌 채 팽대부를 지켜보던 김지훈이 지체 없이 판단을 내렸다.
‘확률은 반반이지만 환자의 회복력에 맡길 수밖에 없어.’
“지금은 시간이 관건이야. 일단 십이지장은 손상 부위만 제거하고 막는 게 최선이야. 소변 줄 넣고, 위와 소장 연결시키는 것으로 끝내자. 현수야, 어때?”
‘지금 상태에서 이 정도라면 휘플은 선택이 아니다. 지훈이 판단이 가장 적절하고 정확해.’
“진행하자.”
집도의와 퍼스트의 의견이 일치했다.
“마취과, 위 자릅니다.”
“혈압 여전히 낮은 상태예요. 서둘러 주세요.”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 부위인 유문 직상방에서 위를 자르고 빠르게 봉합했다.
팽대부 상부에서 십이지장을 막으려면 손상된 부분을 남겨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박리해 유문과 손상된 십이지장을 동시에 들어냈다.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신현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속도였다.
따르륵! 따가각!
“수처! 타이! 종진아, 석션! 오만석, 확실하게 끌어.”
낮은 혈압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만만치 않았다. 손상 부위는 물론 손을 댄 부분 전체에서 우징처럼 스멀스멀 피가 새어 나왔다.
혈액 응고 장애 징후였다.
남은 시간이 점점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십이지장 막고, 폴리(Foley:소변 줄) 넣자.”
“간호사, 폴리 준비해 줘요.”
소화액이 나오는 팽대부에 인접해 십이지장을 막아야 한다. 가장 확실하고 안전하게 봉합과 타이를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김지훈과 신현수의 손이 완벽하게 어울렸다.
상부 쪽 십이지장이 맹관 양상으로 막혔다.
“폴리!”
조그만 구멍을 내 소변 줄 끝을 십이지장 안에 위치시켰다. 옆구리 피부를 절개하고 복벽을 통해 소변 줄 반대편을 피부 밖으로 끄집어냈다. 십이지장 내에 고이는 소화액이 관을 따라 배출될 것이다.
“위와 소장 연결합니다.”
곧바로 남은 위 부분과 소장을 연결했다.
평소 김지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과감하다 못해 거친 손이었다.
신현수는 아무 말 없이 퍼스트에 전념했다. 집도의와 퍼스트가 암묵적으로 이미 수술 방향을 동의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쉬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워낙 어려운 과정이었다. 엄청난 시간을 아꼈다고 해도 시간은 이미 새벽 6시를 향하고 있었다.
간 출혈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지만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우징 양상으로 조금씩 끊임없이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평행결장과 소장에 걸친 장 손상은 출혈만 잡았을 뿐 손도 대지 못했다.
아직 처리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피가 마를 것 같은 초조함 속에 우하복부를 압박했던 수술용 천을 제거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손상 부위와 맞닿았던 부분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장간막을 거칠게 처리했지만 혈관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잘리다시피 손상받은 대장과 소장이었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연결하면 100퍼센트 샌다. 이경석이 있었다면 좋은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교과서에 기재된 표준 수술을 변형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행결장은 어차피 못 살리니까 완전히 제거하자. 평행결장은 막아 버리고 소장을 밖으로 빼면 당장은 문제없겠지?”
Hartmann's Operation(하트만 수술)이다.
손상받은 대장에서 항문 쪽과 연결된 부분은 파열된 부분을 막는다. 장 내용물은 원래 흐름대로 배출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소장 쪽과 연결된 부분은 인공 항문을 이용해 새로운 배출 통로를 만든다. 수개월 후 인공 항문을 없애고, 끊어졌던 장을 다시 이어 주면 된다.
심한 대장 손상 시 가장 안전한 수술법 중 하나다.
신현수와 손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
막 상행결장을 제거하려는 순간 급박한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간당간당 유지되던 바이탈이 극단적으로 밀리기 직전이었다.
띠띠띠띠띠띠!
“환자 바이탈 흔들립니다. 얼마 못 버틸 것 같아요.”
“윤서연 선생, 당장 수술 중단해야 할 정도야?”
윤서연이 소리쳤다.
“오래 못 버텨. 언제 어레스트가 날지 몰라.”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6시가 훌쩍 넘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고민할 시간은 단 1분도 없었다.
최종 결정은 집도의가 해야 한다.
수술 팀 전원의 시선이 김지훈에게 향했다. 이대로 닫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장을 제거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현수야, 일석아, 터진 장만 막아 버리고 상행결장과 소장 밖으로 뺀 후 재수술하자. 윤서연 선생, 조금만 더 버텨 줘.”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진 부분을 수술용 가위로 거침없이 잘랐다. 흘러나오는 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환자의 목숨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한 방울의 피 이상으로 1초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뻥 뚫린 대장을 막아야 한다.
상행결장 위아래, 즉 시작과 끝이 터졌다. 당연히 소장과 이어진 부분 및 평행결장이 시작하는 부분이 열려 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대장이다. 점막이 빠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물이 샐 것이다. 총상 환자의 최대 사망 요인 중 하나는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다.
꼼꼼하면서도 빠르게 평행결장과 상행결장 시작 부분을 막았다.
인공 항문으로 빼낼 소장 말단부와 상행결장이 끝나는 부분만 열려 있는 상태다.
형체를 잃은 소장 주변 조직을 들어냈다.
서걱! 서걱!
마치 헝겊을 자른 것처럼 거친 손이었다. 출혈 이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후복막 손상 부위에 구멍이 보였다. 총알이 박힌 자리일 것이다.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손일석에게 물었다.
“출혈 위험이 있는데 총알 제거해야 돼?”
“5밀리미터가 넘으면 제거가 원칙이야. 2차 손상을 입힐 우려까지 있어서 지금 제거하는 것이 좋겠어.”
“오케이!”
조심스럽게 켈리를 밀어 넣었다.
딱딱한 감촉이 전해졌다.
깊이와 위치상 중요 혈관이나 기타 구조물을 극도로 주의해야 하는 부위였다.
켈리를 살살 돌려 가며 신중하게 딱딱한 물체의 양끝을 확인했다.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켈리 끝을 넓게 벌려야 했다. 새로운 손상을 유발시킬지도 모른다는 긴장이 가시질 않았다.
어느 순간 켈리 끝에 총알이 딱 물렸다.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두 번째 총알을 제거했다.
구멍을 따라 울컥 피가 넘쳤다.
“석션!”
고인 피를 제거하자 스르르 피가 차올랐다. 정확한 출혈 조직을 찾는 것은 쉽지도 않을뿐더러 무리하게 파헤치다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
또한 칼이든 총알이든 이물질이 박히거나 관통한 상처는 열어 놓는 것이 원칙이었다. 섣불리 봉합해 버리면 내부 공간에서 감염이 유발되기 때문이었다.
총알이 박혔던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과 서늘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공 항문 만듭시다.”
마지막으로 상행결장과 소장을 배 밖으로 빼내는 과정만 남았다. 그 전에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배 속 구석구석 샅샅이 씻어 내야 했다. 대장에서 빠져나온 대변이 배 속에 남아 있으면 수술이 아무리 잘되어도 의미 없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물을 대량으로 쏟아부었다. 시간이 없어 가장 굵은 석션 팁 두 개로 빨아냈다.
인공 항문을 만들기 직전 배 속을 보는 순간 답답한 한숨만 터졌다.
우측 하부가 파열된 간, 소변 줄이 박힌 십이지장, 위와 소장 연결부, 한쪽은 막히고 남은 한쪽은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할 하행결장, 연결이 끊어진 평행결장, 뻥 뚫린 것 같은 후복막까지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각오한 일이다.
환자는 최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간당간당한 상태로 수술을 버틴 지 이미 6시간이 넘었다. 얼마나 더 시간이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1분 후에 심장이 정지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윤서연이 초조한 기색으로 수술을 재촉했다.
“최대한 빨리 진행해 주세요. 간호사, 추가로 시킨 혈액 언제 와요? 송진우 선생, 직접 가서 가져와.”
아직 인공 항문 두 개를 더 만들어야 하고, 복부까지 닫아야 한다. 족히 1시간 30분 이상 걸릴 것이다. 수술 팀의 초조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석아, 현수야, 2차 수술로 마무리하자.”
암묵적 동의를 확인했다.
그때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익! 삐이익!
경고 수치를 최대한 조정했지만 한계를 넘은 것이다.
윤서연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지훈아, 곧 어레스트 날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수술 끝내야 돼.”
이대로 닫으면 지금까지 한 수술은 무의미했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했지만 목적은 환자를 살리는 것이다.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10분만 버텨!”
김지훈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고함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