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20화 (820/1,329)

7화. 동료가 있기에 Ⅱ (1)

마취과 교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김지훈 선생, 혈압 떨어진다. 출혈 부위 빨리 잡아. 간호사, 혈액 하나 더 달고 풀로 틀어. 송진우, 더 세게 짜.”

어느 장기에 어떤 손상이 발생했는지 확인할 틈이 없었다. 피가 나오는 부분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했다.

손일석이 빠르게 시야를 확보했다.

“켈리! 켈리!”

따르륵! 따가각! 따르륵! 따가각!

눈에 보이는 대로 출혈 부위를 잡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순식간에 십여 개의 켈리를 사용해 출혈을 잡았지만 손상 부위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설상가상 배 속 깊은 곳에서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간이다.

오만석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당겼다. 나종진이 재빨리 장을 반대쪽으로 밀었다.

우측 간 하부가 파열돼 울컥울컥 피를 쏟고 있었다. 마치 믹서에 넣고 거칠게 갈아 버린 것처럼 잘게 조각나 있었다.

순간 가슴이 섬뜩해졌다.

수없이 본 간 파열이었지만 동반 손상이 너무 많고 심각했다.

숱한 경험이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움찔거리며 간 손상부터 해결하려는 손일석을 막았다.

“다발성 장기 손상이야. 혈관이 더 급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손상부터 막자. 석션! 탭!”

간 주변에 고인 피를 제거했다. 출혈 부위를 압박하기 위해 수술용 천을 간 손상 부위 주변에 최대한 욱여넣었다. 잠시나마 지속적인 출혈을 막아 줄 것이다.

총상이든 아니든 수술 원칙은 동일하다.

치명적인 손상부터, 비슷한 정도라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손상부터 처리해야 한다.

간도 간이지만 동맥 출혈은 더 무섭다. 켈리로 잡은 조직 중에 분명 혈관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부터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먼저였다.

십여 개의 켈리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는 것은 물론 손놀림까지 방해받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우선순위를 정한 김지훈이 켈리를 잡으며 소리쳤다.

“타이!”

수술 팀은 집도의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고, 김지훈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써전이다.

손일석이 눈길도 돌리지 않고 빠르게 손을 놀렸다.

순식간에 켈리로 잡은 조직을 묶고 손상부 주변을 닦아 냈다. 혈액 덩어리 속에 지저분한 물질들이 잔뜩 뒤섞여 있었다.

대장 손상 때문이었다.

광범위 복강 내 오염으로 인한 패혈증!

총상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손상 부위가 구별되기 시작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행결장이 평행결장으로 이행되는 부위 일부가 파열됐다. 담낭 하부가 너덜너덜하게 터져 있었다.

이내 가장 심각한 손상이 관찰됐다.

총수담관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총알이 십이지장 초입 부분이 포함된 조직을 뚫고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간에 심각한 파열까지 입혔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든 손상이었다.

단 하나의 총알이 대장을 뚫고 담낭 하부를 부순 후, 총수담관의 옆을 지나 십이지장을 거쳐 간 하부까지 손상을 입힌 것이다.

엽총도 살상이 충분히 가능한 총이다.

거리와 각도까지 모든 부분이 환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불법 개조가 원인일 수도 있었다. 원인이 뭐가 됐든 놀라고 당황할 때가 아니었다.

바이탈은 여전히 최악의 상황이었다.

손상 부위는 또 있다.

이미 대장 속 내용물이 흘러나왔기에 더욱 철저하게 감염 방지 조치를 취해야 했다.

수술용 천으로 각 장기를, 특히 파열된 대장을 확실하게 덮으려는 순간 한 줄기 피가 조직 사이를 뚫고 주르륵 흘러나왔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저혈량성 쇼크에 빠져 있는 환자 상태를 고려해야 했다.

어딘가 고여 있던 피가 흘러나오는 양상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출혈이다.

한 방울의 피라도 빨리 막아야 한다.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동시에 켈리를 잡았다.

피가 새어 나오는 부분을 벌렸다. 온통 피로 물들어 조직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손일석이 재빨리 벌린 부분을 유지하며 시야를 확보했다.

의외로 깊었다.

깊숙하게 켈리를 밀어 넣어 조직을 한껏 벌렸다. 점점 더 심해지는 출혈은 분명 동맥 손상을 암시하고 있었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출혈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띠띠띠띠띠띠띠띠!

환자의 심장이 한계까지 몰리고 있었다.

주르륵! 주르륵!

낮은 혈압에도 불구하고 쏟는 것처럼 피가 흘러나왔다. 중요 장기와 구조물이 있다는 사실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어디 숨은 거지?’

손일석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전에도 이 부분에 있는 혈관을 놓쳐서 환자를 잃었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김지훈은 절대 혈관을 놓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수술 부위에 집중했다.

시간이 없었다.

양손에 켈리를 잡고 조직을 헤쳤다. 세 개의 켈리가 절묘하게 엇갈리며 조직을 파고들었다.

과감하면서도 신중하게 기구를 조작하던 순간 희끗한 조직이 보였다.

두 손을 모두 쓰고 있어 해결할 손이 없었다.

따르륵!

그 순간 손일석이 정확하게 하얀 조직을 잡았다. 살짝 잡아당기자 거의 끊어진 것과 다름없는 혈관이 끌려 나왔다.

최적의 손놀림이자 환상적인 호흡이었다.

김지훈이 곧바로 타이하고 주변을 닦았다.

정적이 흘렀다.

쉬지 않고 흐르던 피가 사라졌다.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혈관을 잡은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장기가 있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맞는다면 테이블 데쓰가 현실화될지도 몰랐다.

우상복부 깊숙한 부위였다.

만일 신장 동맥이 끊어진 것이라면 신장 역시 손상받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양한 증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마취과, 혈뇨가 발생했는지, 제대로 나오는지 빨리 소변 확인해 주세요.”

마취과 간호사가 재빨리 소변을 확인했다.

“소변량은 상당히 적지만 색깔은 괜찮아요.”

다행히 신장 손상은 배제할 수 있었다.

후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파열된 평행결장을 단단히 감쌌다. 추가 손상을 입지 않도록 우상복부 전체를 조심스럽게 압박하고 재빨리 우하복부를 확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맹장을 중심으로 상행결장 시작 부위 및 소장 말단부까지 엉망이었다. 곳곳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고, 장 속에 있던 내용물이 주변을 오염시킨 상태였다.

‘손상이 너무 심각하고 광범위해. 살릴 수 있을까?’

죽음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답답한 한숨이 절로 터졌다.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출혈부터 잡아야 했다. 간 출혈이 신경 쓰였지만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다발성 장기 손상인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우선순위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생각은 생각일 뿐,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김지훈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켈리!”

손일석이 피를 닦아 내며 시야를 확보했다.

충수돌기는 형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동맥은 끊어졌겠지만 가느다란 동맥이고, 이미 장간막 속으로 끌려 들어갔을 것이다.

가장 먼저 잡아야 할 혈관은 따로 있었다. 상행결장과 맹장 및 소장 말단부로 각각 들어가는 동맥이다.

“상행결장 동맥부터.”

동맥이 주행하는 장간막 일부를 끄집어냈다.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총알이 후복막까지 뚫고 들어갔고, 주변 조직을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장간막 끝 부분이 완전히 뭉개져 동맥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상태에서 무작정 끊어진 동맥을 찾는 것은 살인 행위에 가까웠다.

간 출혈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일일이 잡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수술로 인한 손상이 겹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장간막 속 어딘가에 혈관이 숨어 있을 것이다.

“아예 장간막을 잡자.”

피로 물든 장간막 사이를 켈리로 뚫었다.

따르륵! 따가각!

켈리 사이에 잡힌 조직을 잘랐다.

“타이!”

손일석이 빠르게 손을 놀려 장간막 일부를 묶었다.

따르륵! 따가각!

“타이! 컷!”

상행결장 하부, 맹장, 충수돌기와 연결된 장간막을 모두 자르고 묶었다. 줄줄 흐르던 피가 확연하게 줄었지만 소장 쪽에서 여전히 피가 흘러나왔다.

“석션! 거즈! 탭!”

간신히 시야를 확보했다.

순간 하얗고 기다란 구조물이 보였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건 피가 툭툭 새어 나왔다. 출혈 강도는 정맥이었지만 색깔이나 양상은 동맥이 분명했다.

즉시 켈리로 혈관을 잡았다.

“타이! 이리게이선! 석션!”

쏟아붓다시피 대량의 물로 우하복부를 씻어 냈다. 맑은 물이 순식간에 벌겋게 물들었다. 수술용 천과 거즈로 물기를 제거한 후 출혈 지속 여부를 확인했다.

어디선가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떨어진 혈압으로 인해 당장은 동맥 출혈인지, 정맥 출혈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돼.’

이제 간 출혈을 잡아야 하지만, 터진 것처럼 손상받은 대장과 소장을 지나치면 안 된다. 심각한 감염은 출혈만큼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놔두면 계속 장 내용물이 흘러나올 것이다.

“장겸자! 탭!”

따르륵! 따가각!

잘린 소장과 상행결장을 장겸자로 잡아 구멍을 막았다. 어떻게 처리할지는 다음 문제였다. 지금은 수술용 천으로 출혈 부위 및 손상된 조직을 모두 압박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혈관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출혈 부위를 거의 다 잡았다.

지체 없이 처리해야 할 부위, 다발성 손상과 혈관 파열 때문에 손을 대지 못한 장기가 남았다.

간을 눌렀던 탭을 제거했다.

검붉은 색으로 완전히 피에 물들어 있었다. 수혈하는 족족 빠져나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석션! 오만석, 리트랙터 확실하게 끌어.”

우측 간 하부 3분의 1 정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너무 잘게 조각나 손상 부위를 이어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절제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김지훈 선생, 혈압이 너무 불안정해요. 최대한 빨리 출혈 잡고 수술 시간 줄여야 합니다.”

윤서연의 목소리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몰라도 무척 다급했다.

아주 잠깐 시선을 돌리는 순간 신현수가 보였다. 수술 가운까지 입고 있는 모습에 살짝 한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시간이 생명이었다.

“간 처리합니다.”

손상 정도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간 뒤편에 몰려 있는 조각난 간 조직을 손으로 퍼냈다.

피 속에 잠긴 마지막 조각을 제거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작고 딱딱한 물체!

납작해진 총알 하나가 나왔다.

손일석이 재빨리 받아 간호사에게 건넸다.

“생리식염수에 담아 보관해요.”

딸그락!

작은 금속이 식염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환자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은 원인이 고작 손톱만큼 작은 물체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런 데 정신 팔 때가 아니다. 집중하자.’

간 내 담도와 혈관으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조각 일부만 남았다. 살릴 방법이 없었다.

곧바로 제거하자 간이 떨어져 나간 부분 전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였다.

‘다른 방법은 위험하기만 해.’

“일석아, 손상부 수처해서 출혈만 막자.”

“그게 좋겠어.”

부서진 간과 간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손상 부위 겉면을 따라 봉합해 간 밖으로 흐르는 혈류를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직경이 7~8센티미터에 달하는 바늘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간을 봉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인 데다 기구를 조작할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굵고 커다란 간 봉합용 바늘을 가져가자 오만석이 있는 힘을 다해 끌며 ‘끙’ 소리를 냈다. 시야가 다소 넓어졌지만 손을 놀리기에는 여전히 좁았다.

수많은 경험이 빛을 발했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손상 면을 전해지는 감촉만으로 파악한 후 X 자 모양으로 깊게 떴다.

바늘을 찌르기도 어려운 상황이건만 김지훈의 손은 느려지지 않았다.

“타이!”

손일석 역시 눈가를 좁힌 채 실에서 전해지는 압력에 집중했다. 굵은 실이 절단면을 강하게 옭죄었다. 실을 자르고 나서야 봉합과 타이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점점 깊은 부위를 봉합해야 했다.

타이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배 속으로 들어간 김지훈과 손일석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식으로 무려 여덟 바늘이나 떠야 했다. 마지막 봉합을 마치고 나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마취과 간호사가 급히 땀을 닦아 주었다.

얼기설기 손상 면을 모두 봉합했다.

정확하고 확실한 수처와 타이 덕에 출혈량이 상당히 줄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일정 부분 해결했지만 남은 손상은 여전히 많았다.

하나하나가 다 환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총상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째깍! 째깍!

힐끗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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