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동료가 있기에 Ⅰ (2)
제대로 잠도 못 잔 손일석이 응급실에?
무슨 일일까?
“뭐가 그렇게 급해? 아무도 없어?”
(총상이야, 총상! 환자 보낸다는 연락 왔어. 사고 발생 한 시간 안으로 보인다. 빨리 내려와.)
“총상이라고?”
총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허수진의 상태도 조마조마한데, 응급 중의 응급일 수밖에 없는 환자가 오다니 첩첩산중이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찬물로 세수하는 것도 모자라 관자놀이를 마구 주무르며 머리까지 감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왜애애앵! 왜애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앰뷸런스 한 대가 병원에 도착했다. 번쩍이는 경광등 사이로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환자를 옮겼다.
“연락드렸던 총상 환잡니다. 바이탈이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엽총에 맞았다고 합니다.”
119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민간 병원에서 총상 환자는 일평생 단 한 명도 보지 못할 수 있다. 간호사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오만석과 손일석이 곧바로 달려왔다. 한눈에도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총상이라고 해도 외상 환자 치료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군 병원이 생각나는지 손일석이 이를 악물었다.
“인투베이션 준비하고, 중심 정맥 잡을 거니까 세트 갖고 와요. CT 찍을 시간 없어요. 오만석, 어레스트 대비해. 송진우, 김지훈 선생에게 빨리 연락해.”
오더를 내리며 총상 부위를 확인했다.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우상복부와 우하복부에 하나씩 두 개의 사입구(총알이 들어간 자리)가 보였다.
오만석과 함께 환자 몸을 뒤집어 등을 살핀 손일석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사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관통상이 아니었다.
총상을 입은 부위도 문제였지만 사냥용 엽총은 의외일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 두 개의 총알이 환자의 주요 장기를 휘저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제길! 최악이네.’
이미 의식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손일석과 전공의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중심 정맥을 잡고 수액을 쏟아부을 무렵, 김지훈이 응급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띠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이 급박했고, 호흡은 미약했다. 창백한 안색과 차가운 피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은 저혈량성 쇼크가 상당히 진행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종진, 환자 상태 다시 확인해. 오만석, 직접 혈액실 가서 피 타 와. 송진우, 비지에이 내보내. 간호사, 흉부, 복부 단순 사진만 빨리 찍읍시다.”
평소 전공의들과 각자 해야 할 일의 선을 지켰던 손일석이 정신없이 소리쳤다.
총상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미 가운은 벌겋게 물든 지 오래였다. 환자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만이 가득했다.
손상 부위는 밖에서 해결할 수 없다.
살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빠른 수술뿐이었다.
“송진우, 오만석은 왜 안 와? 빨리 피 갖고 와. 지훈아, 마취과 만나서 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돼. 아니다. 같이 가자. 나종진, 어떻게든 환자 살리고 있어.”
순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유일하게 총상 경험이 있는 써전의 판단이었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따라 그대로 내달렸다.
수술 방으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총상이라고는 인턴 때 거의 사망해 들어온 환자를 본 경험이 다였다. 수술 원칙이 달라질 것은 없다지만 걱정이 앞섰다.
‘우상복부! 간만 다쳤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만약 다른 부위에도 손상을 입었다면 휘플까지 해야 하나? 아니야. 수술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망 가능성만 높아진다. 우하복부는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일석이는 어떻게 판단할까?’
배를 열기 전에는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었다.
곧바로 마취과 당직 교수를 찾았다.
총상 환자란 소리에 깜짝 놀라며 바이탈 여부부터 확인했다. 이미 쇼크 상태에 빠졌다는 말에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혈압도 거의 안 잡히는데 마취를 걸어 달라고?”
손일석이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총알이 우상복부와 우하복부 두 곳에 박혔습니다. 지금 즉시 출혈 부위 잡지 못하면 혈압 잡기도 전에 응급실에서 죽습니다. 보호자 문제는 걱정하지 마시고, 수액과 혈액 때려 부을 테니까 마취만 걸어 주십시오.”
아무리 안면이 있고 친하다고 해도, 파견 근무자와 전임 교수는 입장과 자격이 다르다. 손일석은 수술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손일석이 격하게 반응했다.
“23시경 사고, 내원 시간은 24시경, 현재 시간 00시 20분입니다. 복부 총상은 사고 발생 시각부터 2시간 내에 수술 들어가지 못하면 100퍼센트 사망합니다. 지금 들어가도 70퍼센트 이상입니다. 시간을 끌면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마취과 당직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당직 의사이자 일반외과 교수로서 확실한 책임하에 수술 결정을 내려 달라는 눈빛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테이블 데쓰!
불과 하루도 안 돼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환자를 떠올리는 순간 바이탈부터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일석이 기본적인 치료 원칙을 모를 리 없었다.
손일석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있었다.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과 배 속을 뚫고 들어간 총알이 내부에서 가한 충격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능하고 노련한 써전이라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총상처럼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경험자의 판단과 결정을 십분 존중해야 한다.
‘바이탈을 잡기도 전에 사망한단 말이지? 일석이 판단이 틀릴 리가 없어.’
100퍼센트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써전이다.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마취만 걸어 주십시오.”
“후우! 알았어. 빨리 올려. 보호자에게 확실하게 설명해. 테이블 데쓰가 얼마나 골치 아픈 문제인지 알지? 어제 밤새 수술했다면서 괜찮겠어?”
마취과에게도 테이블 데쓰는 대단한 부담이었다.
생사를 오가던 환자조차 수술실에서 사망하면 소송까지 가는 경우를 가끔 보고 듣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 수술도 못해 보고 응급실에서 사망했을 때 도리어 별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답답한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이었고, 환자를 살려야 하는 의료진의 의무 또한 현실이었다.
각오할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김지훈 선생, 우리 눈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지만, 보호자는 결과만 본다는 거 잘 알지? 꼭 살려야 한다. 에이! 불길한 생각은 말자.’
서둘러 간호사를 찾던 마취과 교수가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한밤중에 벌어지는 마취와 수술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살리기 힘든 환자가 총상 환자였다. 단 하나라도 소홀한 부분이 있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 남을 것이다.
“간호사, 오늘 백듀티가 윤서연 선생이지? 총상 환자 마취한다고 빨리 연락해요.”
혼자 감당할 환자가 아니었다.
응급실로 내려온 김지훈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마취과 교수의 우려 이상으로 환자 상태가 나빴다. 전공의 3명이 달라붙어 있었지만 쉴 새 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언제 어레스트(Arrest:심정지)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모두들 초긴장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종진, 수술 준비 다 됐어?”
“준비는 됐습니다만, 바이탈이 너무 안 좋습니다. CT는 안 찍어도 됩니까?”
손일석이 고개를 저었다.
“복부 사진 찍었으면 됐어. CT 찍다 시간 끌리면 바로 사망이야. 마취과에서 연락 오는 대로 올려.”
CT는 손상 정도와 부위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검사였지만 경험 있는 군의관의 판단이었다. 또한 골든아워가 가장 중요한 환자라는 의미였다.
김지훈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송진우, 보호자는?”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급히 처치실을 나가던 손일석이 김지훈을 보았다.
“지훈아, 설명 안 해?”
총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가 집도하는 것이 마땅했다. 퍼스트의 역할 자체가 집도의와 거의 다르지 않을 수술이었고, 한 팀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일석아, 네가 설명하는 게 좋겠어.”
“내가 집도하라고? 그런 소리 마. 총상을 많이 봤다고 해서 수술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야. 어떤 의사보다 많은 경험과 실력이 있어야 돼. 집도는 네가 하는 게 맞아. 난 아직 퍼스트야.”
단호한 표정이었다.
이 또한 경험 있는 써전의 판단이자 동료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다. 강한 부담과 동시에 연유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다가왔다.
보호자를 만났다.
어떤 사고인지 몰라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가 오발 사고란 말을 되풀이했다.
경찰로 보이는 사람까지 몇몇 보였지만 환자 치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직계가족을 찾자 부인과 아들뿐이었다.
“보호자분, 지금 환자분 상태가 굉장히 안 좋습니다. 두 발을 맞았는데, 간을 포함해 주요 장기가 얼마나 큰 손상을 입었을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들이 쓰러지듯 주저앉는 어머니를 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총 한번 잡아 보지 못했더라도, 의사가 아니더라도 총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를 수 없었다.
“그럼 살아나실 가망이 없는 겁니까?”
“희박합니다. 수술 이외에는 살릴 방법이 없고, 수술 중 사망하실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동의해 주십시오.”
“어떡해! 어떡해! 아아악! 당신 때문이야! 아아악!”
아들의 눈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비명을 지르며 누군가를 노려보던 아내는 이미 실신 직전이었다.
잘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보호자분, 시간이 없습니다.”
돌연 처치실이 부산해졌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가운이 벌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총알에 짓이겨진 아버지의 몸에서 나온 피다.
아들의 눈에 강한 두려움이 스쳤다.
“빨리 해 주십시오. 선생님, 제발 우리 아버님 살려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우리 남편 좀 살려 주세요.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제발!”
보호자의 절박함이 온몸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사망 가능성만 높아진다.
“송진우, 테이블 데쓰 다시 설명하고 동의서 받아. 수술 방에서 연락 안 왔어?”
“지금 올리라고 연락 왔습니다.”
“일석아, 올라가자. 나종진, 오만석하고 수술 들어와. 송진우, 보호자분 수술 방 앞에서 대기하라고 하고, 너도 들어와서 마취과 선생님 도와.”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 빤했다.
정신없이 서두른 탓인지 무언가 빠트린 것처럼 찜찜했지만 시간 여유는 단 1초도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 방으로 달렸다.
드르륵! 드르륵!
환자가 도착했다. 즉각 수술실로 옮겼다.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손이 힘없이 흔들렸다.
띠띠띠띠띠띠띠!
바이탈을 확인한 마취과 교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혈압이 70도 안 잡히잖아. 송진우, 빨리 와서 피 짜. 간호사, 마취 끝나는 대로 혈액 5팩 더 시켜요.”
이미 혈액과 수액을 쏟아붓는 것처럼 투여했지만 바이탈 변동은 거의 없었다.
이미 각오한 상황이었다. 얼굴이 잔뜩 굳은 마취과 교수가 마취 기구를 잡았다.
마취랄 것도 없었다. 정맥 마취제 주사하고, 이미 삽관된 튜브에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이탈이었다.
“마취 시작합니다.”
“복부 소독 시작합니다.”
통상 마취가 끝난 후 소독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시간을 최대한 아끼는 것이 원칙이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알코올과 베타딘을 들이부었다. 배가 조금만 깊게 눌려도 사입구를 통해 피가 흘러나왔다.
“바로 수술해도 됩니다.”
“수술 시작합니다.”
김지훈이 메스를 잡았다.
정확하게 밤 12시 40분이었다.
총상 발생 추정 시간에서 1시간 40분 후, 응급실에 도착한 지 30분 만이었다. 필수 검사도 생략한 채 어떤 환자보다 빠르게 수술을 시작했다.
이 환자의 골든아워가 1시간일지, 2시간일지, 아니면 이미 훌쩍 지났을지 누구도 모르는 상태였다.
수술 팀의 눈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살리자. 살리고 싶다. 살려야 한다.’
절개 창에서 피가 나올 상태가 아니었다.
단번에 복부를 길게 절개했다.
복막 일부가 드러났다.
구멍을 내 배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후, 메스와 가위로 복벽을 한꺼번에 열었다.
잔뜩 고인 검붉은 피 사이로 창백해진 장이 보였다.
“석션, 이리게이션, 탭.”
찌이익! 찌이익!
핏물로 가득한 석션 줄이 요동쳤다. 콸콸 쏟아지는 핏물로 석션 통이 출렁였다. 뚝뚝 떨어질 정도로 피를 머금은 탭이 수술실 바닥에 쌓였다.
수술용 가운이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리트랙터!”
나종진과 오만석이 재빨리 리트랙터를 당겼다.
우상복부부터 확인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길에 걸린 모든 장기가 으깨지다 못해 터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 형체를 분간하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생리식염수로 씻어 내고 수술용 천으로 닦아 내자 곳곳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혈관인지 조직 손상 때문인지 알 수 없었고, 구분은 무의미했다.
복압이 뚝 떨어지며 혈압도 떨어졌다.
환자의 육신에 견디기 힘든 부담이 가해졌다.
띠띠띠띠띠띠띠띠!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