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동료가 있기에 Ⅰ (1)
기다림은 고통이다.
순조로운 회복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책임지고 있는 환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손일석과 이혁원에게 허수진을 맡기고 강병옥과 회진을 돌았다.
회진 내내 허수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수술 팀이 모두 모여 있었다.
손일석이 무거운 숨만 내쉬었다.
“일석아, 아무 변동도 없어? 왜 못 깨어나지?”
“너 회진 도는 동안 김진호 선생님하고 소아과 교수님, 신경외과 치프가 왔었어. 워낙 약한 상태에서 마취 시간까지 너무 길었으니까 기다려 보자네. 후우!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집도의가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였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0시간 이상 걸릴 수술이라는 사실을 빤히 알았으면서도 더욱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자책만이 다가왔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진이 어때?”
“선생님 오셨습니까?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책할 이유 없다. 누구도 너희들 이상으로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결과도 좋을 거야.”
스승의 말에도 분위기는 어두웠다.
어젯밤 11시부터 단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허수진이 정상적인 회복을 보였다면 한결 덜했을 테지만, 초조한 상황에 점점 더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액! 새액!
미약한 숨결을 따라 느껴지던 비릿한 냄새가 사라졌다. 마취제가 거의 다 빠져나갔다는 신호였다.
이제는 늘어졌던 신체가 반드시 활력을 되찾아야 했다. 지금도 바이탈은 잘 유지됐고, 소변량도 충분했다.
그래서 더 초조했다.
‘마취가 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너무 어렵게 수술했기에, 지적장애라는 멍에를 가진 부모의 사랑이 어떤지 보았기에 간절함만이 남았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허수진의 손을 꽉 잡았다.
‘수진아, 제발 힘을 내자.’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도는 것 같았다.
손일석이 눈가를 좁히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새애액! 새애액!
순간 자발 호흡이 강해졌다.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격한 기침을 터트렸다. 마치 우는 것처럼 눈가를 찡그렸다.
콜록! 콜록!
“수진아! 허수진! 눈 떠 봐! 허수진!”
김지훈의 고함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눈가를 찌푸리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튜브를 따라 격한 숨을 토해 냈다. 앙상하게 마른 팔을 들어 튜브를 잡아 빼려 몸부림을 쳤다.
수술 전과는 다른 고통이다.
수술 팀 모두 기다려 왔던 고통이었다.
‘됐어. 됐어.’
거대한 기형종, 1,500cc에 달하는 수혈, 명치부터 아랫배 끝까지 절개해야 했던 수술, 14시간이 넘는 마취를 모두 견뎌 냈다.
실로 경이적인 생명력이었다.
지적장애에 가려진 삶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여리고 약한 몸 어디에 그런 의지가 숨어 있는지 몰라도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잘 버텨 준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이혁원이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었다.
인투베이션 튜브를 빼도 좋았다.
“괜찮을 것 같다. 빼자.”
튜브를 제거했다.
“콜록! 아아앙! 아아앙!”
갑갑함을 털어 내는 울음이 터졌다.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이 누군가의 온기를 원했다.
김지훈이 말없이 손을 잡아 주며 웃었다.
흐릿한 시야에서도 웃음을 보았는지 허수진이 손에 힘을 주었다.
멈추지 않는 울음소리가 이렇게 반가울지 몰랐다.
“잘 참아 주어서 고맙다.”
“수진아, 내 말 들리니? 들려?”
“아아앙! 아아앙!”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이준영 교수가 넓고 커다란 등을 돌렸다.
“다들 수고했다.”
‘수진이는 결코 약한 아이가 아닌 것 같다. 무사히 회복될 거야. 모두 잘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감돌았다.
수술 팀의 흥분과 기쁨이 전해졌는지 울음소리가 차차 잦아들었다.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던 허수진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파요. 아파요.”
눈물 젖은 눈으로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그래. 안 아프게 해 줄게. 조금만 기다려. 진우야, 진통제 하나 주자.”
허수진의 호소에 수술 팀을 휘감았던 흥분이 가라앉았다. 울컥한 가슴 대신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때였다. 무엇보다 수술 부위 상태가 관건이었다.
드레인을 확인했다. 빨간색이 약간 섞인 맑은 삼출액이 뚝뚝 떨어졌다. 의외로 양이 않았지만 배 속을 씻어 낸 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출혈은 잡힌 것 같네.”
손일석이 중얼거리며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단 하나의 수술을 위해, 14살 어린아이의 생을 위해 어젯밤 11시부터 시작해 18시간이 넘도록 눈 한번 붙이지 못했다.
다들 눈이 시뻘겠다.
머릿속에 바윗돌 하나 넣은 것 같은 무거운 두통과 함께 졸음이 몰려왔다. 극심한 피로로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다리 감각마저 무뎌졌다.
누구도 킵할 상황이 아니었다.
“혁원아, 병옥이 부르고 한 시간이라도 눈 좀 붙여.”
“저희는 괜찮습니다. 선생님 먼저 쉬시죠.”
“괜찮긴 뭐가 괜찮아? 5분 후에도 내 눈에 보이면 오늘 모두 킵이다. 빨리 사라져. 일석아, 너도 가서 쉬어.”
“넌 안 쉬어?”
“병옥이 오면 쉴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런 피곤 앞에서는 장사 없다.
김지훈 역시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지만 집도의의 책임을 방기할 수 없었다.
수술 팀 모두 마찬가지였다. 5분이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강병옥이 내려온 후에야 모두들 중환자실을 나갔다.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았는데 쉴 수 있을까?
병동 환자 보고를 한 강병옥이 김지훈의 가운을 잡아끌었다. 그만큼 친밀해졌다는 표현일 것이다. 왠지 흐뭇해진 김지훈이 감기던 눈 사이로 웃음기를 보였다.
“선생님, 제가 있을 테니까 올라가서 쉬십시오.”
“고맙다. 병옥아, 수진이 잘 부탁해.”
진통제 효과로 선잠에 빠진 허수진을 보던 김지훈이 어기적어기적 중환자실을 나갔다. 맥이 다 빠졌을 텐데 어쩐지 어깨에 힘이 걸린 것 같았다.
강병옥이 콧등을 찌푸렸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힘이겠지? 어떻게든 이 수술을 봤어야 하는 건데, 김지훈 선생님하고 운때가 안 맞나? 과장님은 매일 산더미처럼 과제를 내주시고 정말 미치겠네.’
집도의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장수연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딸 보고 싶습니다. 수진이요.”
“아버님, 지금 수진이가 힘들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따가 깨면 면회시켜 드릴게요.”
“수진이 보고 싶습니다. 우리 수진이.”
열심히 고개를 숙이며 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는 아버지의 눈에서 진한 눈물을 보았다. 1급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어머니의 눈은 이미 눈물로 가득했다.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장수연도 연신 눈가를 훔쳤다.
함께 한참 동안 설명한 끝에야 지금은 면회가 불가능하고 도움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들었다. 등 뒤로 부모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진이, 우리 수진이.”
고맙다는 말과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렇게 아프고 시릴 줄은 미처 몰랐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지금도 허수진의 얼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시간을 맞춰 놓고 잠을 청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다.
‘딱 한 시간만 자자.’
얼마나 잤을까?
따르르릉! 따르르르릉!
30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혁원이었다.
(선생님, 드레인 양상이 좋지 못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둘러 일어나자 졸음을 못 이긴 손일석이 진저리를 치며 무슨 일인지 묻고 있었다.
“드레인에서 피 나오는 것 같아.”
“뭐? 괜찮았잖아?”
다급히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강병옥과 수술 팀 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드레인을 보고 있었다. 허수진은 진통제 탓에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진아, 어디 아픈 데 없어?”
“아파요. 아파요.”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똑! 똑! 똑!
악몽과도 같은 새빨간 피다.
“강병옥, 언제부터 나왔어?”
“선생님 나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작했으니까, 한 30분 정도 됐습니다. 혈소판 투여했고, 혈장까지 예비로 더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일석아, 우징일까?”
“혈관이 풀렸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종양을 제거한 부위에서 나오는 게 분명해.”
허수진의 눈가를 살폈다. 다행히 창백하지 않았고, 숨소리도 고르게 들렸다. 잠결에도 본능적으로 뒤척이는 모습에 도리어 안도할 수 있었다.
한동안 피 떨어지는 양상을 지켜보았다.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았고, 동일한 경험은 숱하게 많았다. 허수진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조급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분명히 우징이야. 혈액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으니까 반드시 멈춘다.’
“일단 지켜보자.”
애써 확신을 가졌지만 허수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를 큰 변동이었다.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간에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일은 의사의 의무다.
허수진의 부모와 장수연을 찾았다.
아직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잠은 잤는지 모를 일이었다. 시뻘게진 눈으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은 어느 부모 못지않은 사랑이었다.
“선생님, 부모님이 수진이를 보고 싶어 하시는데 아직도 면회가 힘든가요?”
장수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피가 나온다는 말에 깜짝 놀라며 감정적인 동요까지 보여 한참 동안 다독여야 했다.
허수진의 부모를 챙길 사람은 장수연밖에 없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관계인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잘 회복될 것이라 믿지만 오늘 면회는 힘들겠습니다. 피 나온다는 소리는 빼고 부모님께 잘 말씀해 주세요.”
무거운 마음과 육체적 피로에 걱정까지 겹쳐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보였다.
피곤에 휩싸인 김지훈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지훈아, 교수야, 힘든 날이다. 힘든 날. 빨리 가서 쉬자. 참! 너 오늘 당직이지? 현수가 대신 선다니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자. 빨리. 내가 다 말해 뒀다.”
한마디라도 더 나오면 그만큼 쉴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만 끄덕이고는 슬며시 송재덕 교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우리도 퇴근하죠.”
“응? 갈까? 그래. 우리도 가자. 가자. 지훈아, 수술 잘돼서 다행이다. 준영이가 굳게 믿더라. 굳게. 그렇게 무시무시한 걸 어떻게 뗐니. 잘했다. 잘했어.”
말이 길어질 판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힐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송재덕 교수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주고는 더 빨리 사라졌다.
웃을 힘도 없었다. 스승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쉴 시간 역시 없었다.
“경아 씨, 수진이 상태가 불안하네요. 먼저 자요.”
(어젯밤부터 한잠도 못 잤는데 괜찮겠어요?)
“이런 일 한두 번인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아요.”
불과 30분도 자지 못했다.
꼴딱 밤샌 일은 많았지만 오늘처럼 긴 시간 동안 눈도 붙이지 못한 적은 없었다.
14시간이 넘는 수술은 같은 시간 동안 여러 개 수술을 하는 것보다 몇 배 더 힘들었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똑! 똑! 똑!
미세한 차이가 보였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상당히 느린 속도로 떨어진다고 해도 불과 10킬로그램에 불과한 허수진의 몸무게를 생각해야 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누군가 확실하게 킵할 사람이 필요했다.
함께 수술한 이혁원과 송진우는 일과를 끝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원이 부족하기에 당직이 해야 할 일은 항상 태산이었다. 단적으로 지금까지 오만석은 물론 오하석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오늘 밤은 여기 있자.’
한두 시간이라도 자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다.
어느새 밤 11시가 넘었다.
당직인 나종진과 강병옥에게 킵을 맡겼다.
“변동이 있으면 바로 나 깨워.”
중환자실 내 당직실에서 잠을 청했다. 눈을 감았다 싶었는데 바로 떠야 했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몸서리가 쳐졌다.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깜짝 놀라 전화를 받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지훈아, 응급실로 빨리 내려와.)
손일석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아니, 절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