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17화 (817/1,329)

5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Ⅲ (2)

극도의 긴장에 도리어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큰 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손일석은 물론 이혁원과 송진우도 목과 어깨를 흔들며 과도한 긴장을 풀었다.

김진호 교수가 차단막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김 교수, 터진 혈관 잡은 거 맞지?”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맞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앞으로 혈관을 얼마나 더 잡아야 하는지 모르지만 조심해야겠어. 방금 전에 순간적으로 바이탈까지 흔들렸다. 간호사, 피 새로 답시다.”

불과 혈관 두 개를 해결했을 뿐이었다.

서너 시간 사이에 두 팩의 피가 투여됐다. 성인이었다면 두세 배 이상 수혈해야 했을 것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예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어려운 수술이었다. 조직 강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도 철저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이 다가왔다.

‘수진아, 미안하다. 최선을 다할 테니 어떻게든 견뎌 줘. 김진호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수술실에서 써전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수술뿐이다. 바이탈은 마취과의 몫이었고, 김진호 교수기에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진행합시다.”

아직도 십여 개에 가까운 혈관이 남아 있다. 조직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채 탄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박리 도중 얼마나 많은 출혈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사각! 사각!

“석션, 이리게이션, 거즈.”

지독하게 힘들고 어려웠다.

혈관 하나를 잡는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진이 다 빠질 정도였다.

손일석은 타이를 끝낼 때마다 뻣뻣해진 목과 어깨를 돌렸다.

석션 통이 핏물로 가득 찼다. 수술실 바닥에 쌓인 거즈를 셀 수 없었다.

세 번째 혈액이 모두 들어가고 네 번째 혈액이 투입됐다.

띠띠띠! 띠띠띠!

허수진의 심장이 헐떡였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렀다. 진행은 더디기만 한데 매번 혈관 촬영 사진을 참조해야 했다. 일정한 주행 방향 없이 뒤틀려 있는 탓이었다.

기형종 일부가 후복막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수술 부위가 깊어져 시야는 도리어 나빠졌다.

종양 덩어리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딱딱한 조직이 그대로 찢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송진우, 매스(Mass:종물)만 확실하게 잡아. 절대 움직이지 마. 이혁원, 석션 정확하게 위치시켜.”

세컨과 써드마저 집도의만큼 힘든 상황이 지속됐다. 손발조차 함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까지 극심해졌다.

김진호 교수 역시 피로를 느낄 사이도 없이 초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수술실 바닥에 쌓인 거즈 수를 세던 간호사의 얼굴이 어두웠다.

출혈과의 사투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14살 어린아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어느 순간 수술실 밖이 점점 부산해졌다.

마취 스케줄을 확인하며 장비를 확인하는 마취과 교수들과 수술을 준비하는 간호사들이 잰걸음을 놀렸다. 회진을 앞둔 나종진과 강병옥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잠깐 얼굴을 보인 후 사라졌다.

어느새 오전 8시가 넘었다. 무려 6시간 반 동안 기형종과 사투를 벌였지만 이제 절반 정도 제거했다.

쉬지 않고 지속하는 건 수술 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았다.

누적된 피로가 실수를 유발할 수 있었다.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고 해도 혈관을 제거하는 중이기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았다.

“마취과, 5분간 쉬겠습니다.”

“후우! 김지훈 선생, 우리는 손 바꾼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취과 간호사가 피곤에 젖은 채 손을 바꿨다. 밤새 어시스트를 한 수술 방 간호사 대신 고경아가 들어왔다. 수술 상황을 주고받는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고경아의 눈길에 걱정과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김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팀은 바꿀 수 없다. 누가 들어오든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현 수술 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유리했다. 문제는 밤새 쌓인 피로였지만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에 모두 이겨 낼 것이다.

눈을 감은 채 다음 과정을 고민하던 김지훈이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바꾼다던 김진호 교수가 여전히 마취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선생님, 힘드실 텐데 안 나가십니까?”

“내가 마취 시작한 환자야. 나가긴 어딜 나가? 5분 거의 다 됐다. 시작 안 해?”

원래 허수진을 담당하기로 했던 교수와 손을 바꾼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불현듯 어디선가 힘이 솟았다. 최고의 수술 팀이 가져야 할 마음을 본 덕일 것이다.

김지훈이 어깨를 강하게 흔들었다.

“마취과, 바이탈 괜찮습니까?”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수혈량이 적지 않습니다. 가능한 빨리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시작합니다.”

다시 혈관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띠띠띠! 띠띠띠!

슈우욱! 슈우욱!

심장박동 소리와 숨을 불어넣는 인공호흡기 소리만 나직하게 울렸다. 1,000cc가 훌쩍 넘은 수혈에도 버티고 있는 허수진의 강한 생명력을 믿을 뿐이었다.

사각! 사각!

“석션! 보비! 거즈! 이리게이션! 석션! 타이!”

혈관 하나를 묶을 때마다 땀이 등을 타고 줄줄 흘렀다. 수술실 바닥에 쌓인 뻘겋게 물든 거즈와 핏물로 점점 차오르는 석션 통을 보며 바짝 긴장의 고삐를 죄었다.

또 하나의 혈관을 잡았다.

후복막과의 단단한 연결이 조금씩 끊어지며 서서히 거대한 종양이 배 밖으로 밀려 나왔다.

종양의 움직임이 커지면 커질수록 연결부 손상 우려가 높아진다.

김지훈이 슬며시 송진우의 손을 눌렀다.

“진우야, 조직 찢어진다. 내가 당겨 주는 만큼만 당겨.”

거의 모든 혈관을 찾아 일일이 묶었지만 박리한 조직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멈추지 않았다. 종양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점점 커질수록 출혈도 그만큼 늘었다.

‘이건 혈액 문제가 아니라 종양 조직이 가진 특성인데, 혈관을 다 잡으면 멈출까?’

수술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초조함이 가시지 않았다. 도리어 두려움과 불안만이 가중되고 있었다. 손일석 역시 눈가에 잡힌 주름을 지우지 못했다.

째깍! 째깍!

어느새 12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전 진료 중 짬을 낸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들어왔다. 무뚝뚝한 얼굴로 혈관을 처리하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쳤던 송진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어느 틈엔가 수술실을 나간 후였다.

아직 혈관이 남았다.

극심하게 다가오는 피로에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지속되는 출혈은 단 1분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찬 우유 하나에 기대 필사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해야 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수술하면 도리어 집도의의 힘이 가장 덜 든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세컨이나 써드는 몇 배의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혁원아, 진우야, 거의 다 끝났다. 힘내자.”

삐이이! 삐이이!

찌이익! 찌이익!

드디어 마지막 혈관을 찾았다. 후복막과 간당간당하게 연결된 남은 조직이 위태로웠다. 손끝만 삐끗해도 혈관까지 찢어질 수 있었다.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진우야, 마지막이다. 절대 움직이지 마. 확실하게 잡아. 혁원아, 석션 정확하게 위치시켜.”

따르륵! 따가각!

혈관을 잡았다. 손일석이 마지막 타이를 했다. 매듭이 조직 속을 파고들었다.

“컷!”

마침내 후복막과 연결된 모든 혈관을 제거했다. 허수진의 몸을 파먹던 거대한 기형종이 툭 떨어져 나왔다.

훅! 숨을 내쉰 김지훈이 종양을 배 밖으로 빼냈다.

12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손일석이 재빨리 절단면 전체를 거즈로 눌렀다.

핏기를 잃은 종양은 예상보다 더욱 무거웠다.

경험해 보지 않는 한 허수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크기와 무게만으로 바싹 마른 14살 아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김지훈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시계 침이 막 2시를 가리키기 직전이었다.

수술을 시작한 지 무려 12시간이 넘었지만 종양 제거가 끝이 될 수 없었다.

극에 달한 수술 팀의 피로는 문제가 아니었다. 허수진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수술을 끝내야 했다.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더 힘내자.”

수술 팀과 허수진에게 한 말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다음 과정을 서둘렀다.

절단면 곳곳에서 발생한 출혈을 잡기 쉽지 않았다. 우징과 비슷한 양상이었기에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압박과 보비를 이용한 전기 지혈, 수처, 지혈제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더 이상 손댈 수 있는 부위가 남지 않았다.

차츰차츰 출혈 부위가 사라지며 양도 확연히 줄었지만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일석아, 기형종이 모두 제거됐을까?”

“의심되는 부분은 모두 제거했잖아. 남아 있어도 이 이상 제거할 방법이 없어. 여기서 조금만 더 건드려도 출혈을 잡지 못할 거야.”

임시 조직 검사마저 의미가 없었다.

손일석 말대로 의심쩍은 부위를 모두 제거하려다 도리어 치명적인 문제만 유발할 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허수진과 수술 팀 모두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완전히 제거됐기만을 바라자.’

마무리를 해야 했다.

“마취과, 배 닫습니다.”

수술 부위에 드레인을 넣고 복막과 복벽을 동시에 닫았다. 명치부터 골반 위까지 난 절개 창이 커 봉합하는 시간도 적지 않게 걸렸다. 너무 얇아 근육과 지방을 따로따로 봉합하기에도 힘든 상황에 마음이 아팠다.

“컷!”

마지막 봉합을 끝냈다.

오후 3시 30분이었다.

무려 14시간이 걸렸다.

온몸에 진이 빠져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지만 누구도 쉴 수 없었다.

허수진의 의식이 확실하게 돌아오지 않았다. 성인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 마취를 했다. 다섯 팩이 넘는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수술 중 출혈이 많았다.

그 모든 것이 심각한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김지훈 선생, 의식도 너무 흐리고 자발 호흡이 있긴 한데 상당히 약해. 중환자실로 옮기자.”

“예. 이혁원, 먼저 나가서 준비해.”

허수진의 미약한 숨결을 따라 마취제 냄새가 자욱하게 퍼졌다. 손가락이라도 움직이면 좋으련만, 축 늘어진 채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깨어나겠지?’

초조함에 가슴이 떨렸다.

7시간이 넘게 어시스트를 선 고경아의 피곤한 얼굴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도리어 안타깝기만 했다. 임신 5개월에 이르러서도 배려받지 못하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처우가 마음에 걸렸다.

‘다음 달부터는 달라질까? 이번 검진이 언제라고 했지?’

생각도 잠시.

드르륵! 드르륵!

어린아이의 팔이 힘없이 흔들렸다.

중환자실로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불안해 몇 번이고 기관지에 삽입된 튜브 끝에 손을 대야 했다. 미약한 호흡을 따라 약간의 숨 바람이 느껴졌다.

허수진의 아버지가 다리를 절룩이며 다가왔다. 눈이 시뻘게져 있었다. 수술이 시작된 이후 단 한시도 자리를 떠나지 못한 것 같았다.

“어으으! 수진아! 어으으!”

딸을 본 아버지의 울음이 신음처럼 들렸다. 웃는 얼굴로 남편의 손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가족의 울음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함께 있던 장수연이 발을 동동 굴렀다.

“선생님, 우리 수진이 괜찮은 건가요?”

“괜찮을 겁니다. 수진이가 깨어나는 대로 면회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부모님부터 안정시켜 주세요. 아버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으으! 수진아! 어으으!”

애끓는 부모의 울음소리가 중환자실까지 따라붙었다.

부풀어 오른 배를 잡고 방긋방긋 잘도 웃던 허수진의 얼굴이 창백하기만 했다.

간호사들이 바이탈을 체크한 후 오더를 확인하며 빠르게 움직였다. 수술이 오래 걸린 만큼 필요한 검사가 많았다.

동공반사를 확인한 이혁원이 눈가를 찌푸렸다.

“어때?”

“반응이 좀 느린데, 의식 문제가 아니라 마취에서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판단이 맞기만을 바랐다.

‘수진아, 힘내자.’

줄줄이 달린 기계 장치.

똑똑 떨어지는 수액과 혈액.

간신히 제 속도를 유지하는 소변.

수술 팀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허수진이 14시간이 넘는 수술과 마취를 견뎌 냈기만을 바랐다. 무거운 침묵 속에 간절함이 뒤섞였다.

잠시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흉부 사진은 깨끗했고, 혈액 소견 또한 수술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취과 역시 수술 팀만큼 최선을 다해 허수진의 전신 상태를 유지시킨 것이다.

이제 의식만 돌아오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불행히도 여기까지였다.

시간이 가도 자극에 반응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영양실조에 빠졌던 전신 상태, 14시간의 마취, 대량 출혈과 수혈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기다려야 했다.

누구도 허수진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오하석이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왔다.

<기형종. 17X12.5센티미터. 2.54킬로그램. 임시 조직 검사상 절제면 프리. 악성 판정 유보>

이렇게 거대한 종양을 이겨 낸 아이다.

‘수진아, 넌 강한 아이야. 지금도 이겨 낼 수 있어.’

김지훈이 허수진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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