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Ⅲ (1)
거의 건드리는 것처럼 약한 힘으로 잘린 조직을 잡았다. 으깨진 조직이 간당간당 매달린 채 언제든 툭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타이!”
손일석이 극도로 신중하게 실매듭을 밀었다.
조금씩 조여 가며 조직 손상을 최대한 막으려 했다. 미세한 힘이 조금 더 가해졌다. 가느다란 실이 조직 속을 파고들며 또다시 일부를 손상시켰다.
실을 따라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왔다.
재차 시도할 수는 없었다. 새로 묶을 조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일석아, 그대로 타이해.”
간신히 매듭을 지었다.
언제든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꼴이었고, 출혈은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지혈을 위해 수처까지 했다. 칼 모양으로 생긴 바늘 끝이 조직을 베고 나가지 않도록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타이하는 손에도 긴장이 잔뜩 실렸다.
탄력을 완전히 잃은 조직과 실 사이에 미세한 틈이 생겼다. 그 틈으로도 피가 새어 나왔다. 혈액 응고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순전히 물리적인 문제였다.
단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첫 번째 박리 후 봉합과 타이만 했을 뿐인데 벌써 수술복이 젖어 들었다.
김진호 교수가 간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피에 흠뻑 젖은 거즈만 여러 장이었다. 수술 중 발생할 출혈양이 만만치 않음을 직감했다.
14살 어린 나이에, 종양 무게를 빼면 10킬로그램 조금 넘는 체중이다. 단시간에 많은 피를 투여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허용할 수 있는 만큼 수혈 속도가 빨라졌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자신과 손일석의 손을 믿고 최대한 출혈을 막아 가며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스키토!”
이제야 두 번째 박리다.
심상치 않은 출혈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종양 조직이 더욱 깊게 침범했을 경우를 고려해야 했다. 온전하게 정상 조직이라면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더 깊숙한 부분에서 살살 조직을 벌렸다.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기형종 경계라 생각되는 부분에서 거의 1센티미터 이상 떨어진 부위였지만 역시 단단하고 딱딱했다. 오랜 기간 진행된 염증으로 정상 조직마저 종양과 똑같은 양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 이상 깊게 박리하면 위험하다.’
최대한 주의했건만 조직을 다소 깊게 파고드는 순간 마치 쪼개지는 것처럼 위아래로 쭉 벌어졌다. 찢어졌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통상 거즈로 피를 닦는 것이 조직 손상을 덜 주고, 세컨과 써드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술 부위를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위험했다.
이혁원의 손을 막았다.
“혁원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흐르는 피만 석션만 해. 거즈는 우리만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 보비!”
삐이익! 삐이익!
하연 연기와 함께 조직 일부가 잘렸다.
“타이!”
손일석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조직이 얼마나 찢어지기 쉬운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혈을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약하게 타이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실매듭도 조직을 파고들었고, 수처를 해도 출혈은 완벽하게 제어되지 않았다.
악전고투였다.
피에 물든 거즈가 쌓여 갔다.
한곳을 계속 맴도는 것처럼 진전이 없었다.
주변 조직이 모두 피로 물들어 기존에 출혈했던 부위인지, 수술 중 출혈로 물들었는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수혈 속도까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째깍째깍!
상황은 급하고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는데, 이제 불과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박리했다.
모스키토를 가져가던 김지훈이 손을 멈췄다.
‘큰 실수를 할 뻔했어. 급할수록 침착해야 돼.’
“일석아, 혈관이 나올 부분인 것 같다.”
박리해 가며 혈관을 확인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수술실 벽에 달린 뷰박스로 다가갔다. 오염되지 않도록 양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복부 CT와 혈관 촬영을 신중하게 살폈다.
“바로 앞에서 혈관 하나가 나오고, 그다음이 터진 혈관이지? 혈종과의 간격이 얼마 되지 않아서 걱정이네.”
“그렇게 보이는데, 지금처럼 박리하면 터진 혈관을 묶을 수 있을까? 조금 더 깊게 박리해야 출혈 부분 밑에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정확한 판단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단단한 조직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실력이었다. 출혈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에서도 적지 않은 피가 나왔다. 후복막 깊숙이 접근하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두려움이 다가왔다. 그간의 경험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자신감을 잃으면 수술은 불가능하다.
바싹 마른 허수진과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딸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시작하자.”
눈가를 굳힌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박리하기 힘든 단단한 조직이 혈관 벽과 바짝 붙어 있을 것이다. 무턱대고 박리하다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는 혈관을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바로 앞에 혈관이 있다는 사실만 믿을 뿐이었다. 더욱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기도 했다.
사각! 사각!
단단한 조직을 벌리기 위해 수없이 모스키토 끝을 벌렸다. 거의 전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절대 과감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인내력을 갖고 조직을 벌렸다.
살짝 벌어진 틈으로 끊임없이 피가 새어 나왔다. 어린아이에겐 상당한 출혈이라는 사실을 항상 상기해야 했다.
허수진의 바이탈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면이었다.
‘이쯤이면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보이지?’
답답하고 급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박리를 진행하던 김지훈이 순간 멈칫거렸다. 미세한 틈으로 성상이 다른 조직이 보인 것이다.
“일석아, 혈관 같지?”
손일석이 눈가를 좁혔다.
“맞는 것 같아. 조심해야 되겠어.”
딱딱한 조직이 둘러싸고 있어 눈앞에 보이는 구조물이 혈관인지조차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답답함이 가중됐지만 다음 혈관을 정확하게 찾기 위해 눈으로 보이는 차이를 머릿속에 박았다.
혈관으로 의심되는 부분을 중심으로 한쪽 면을 벌렸다. 어디를 건드리든 어김없이 피가 흘렀다.
더 이상 깊게 들어가면 다른 혈관에 손상을 줄 수 있어 반대쪽에서 접근했다.
“석션! 거즈! 잠시만 압박합시다.”
빤히 보이는 피를 두고 압박조차 강하게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박리해야 돼.’
불과 몇 밀리미터가 한없이 두껍게 느껴졌다. 박리 방향이 틀렸거나, 조금만 무리하게 힘을 주어도 치명적인 출혈이 야기될 수 있었다.
겉면을 박리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마에 땀이 맺힐 무렵에야 간신히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 그 속에 포함돼 있을지 모를 혈관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천운에 가까웠다.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가쁜 숨을 내뱉고 말았다.
“타이!”
손일석이 극도로 긴장했다.
혈관이 제대로 조여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실과 매듭이 조직을 찢으며 파고들었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강하게 조여야 했다.
모스키토로 뚫은 부위 위아래를 타이했다.
실매듭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매듭 사이를 자르는 김지훈의 눈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혈관 존재 유무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만일 혈관이 없다면 검사 결과를 완전히 틀리게 해석했다는 의미였다. 결국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출혈이 야기된 혈관조차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서걱!
조직이 잘렸다.
반드시 잘린 혈관이 있어야 한다.
수술 팀의 시선이 동시에 단면에 집중됐다.
거즈로 단면을 닦는 동안에 침이 말랐다.
빨간 피가 사라지는 짧은 순간 혈관 벽으로 생각되는 조직이 보였다.
제대로 잡았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정학하게 예측했지만 도박이나 다름없는 과정이었다.
안도의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단단한 조직 속에 숨은 혈관이 동맥 양상인지, 정맥 양상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런 식으로 남은 혈관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식은땀만 맺혔다. 출혈이 발생한 혈관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암담함 그 자체였다.
CT와 혈관 촬영 사진에 집중했다.
방금 전 자른 혈관이 예상했던 혈관이 맞는지 철저하게 확인해야 했다.
십여 장이 넘는 사진과 수술 부위 구조를 일일이 대조한 끝에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일석아, 우측 바로 옆에 터진 혈관이 있겠지?”
“이 부분이 확실해.”
손일석의 단호한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퍼스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모스키토!”
후복막 깊숙한 곳을 박리해 나갔다.
예측이 맞는다면 혈종부터 나와야 한다. 주변 조직은 모두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확신을 갖고 조금씩 전진하던 순간 갑자기 저항이 사라졌다. 쑥 밀려 들어간 모시키토를 따라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거즈 몇 장이 피로 물들었다.
“석션! 이리게이션! 출혈 부위야. 집중해.”
찌이익! 찌이익!
석션 팁을 따라 핏물이 사라졌다. 동시에 터진 혈관에 가해지던 압력이 사라지며 새빨간 피가 솟구쳤다. 종양에 피를 공급하는 일종의 동맥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섬뜩함을 지울 수 없었다.
거즈로 출혈 부위를 급히 압박했다. 단단한 주변 조직 때문에 박동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주의력, 경험과 숙련도만이 터진 혈관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확실한 시야 확보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혁원, 송진우, 조금만 더 당겨. 석션 조심하고.”
거즈를 살짝살짝 옆으로 밀어 가며 박리를 진행했다. 조금만 과도하게 밀어도 압력이 사라지며 시뻘건 피가 울컥울컥 솟구쳤다. 모든 정신을 오직 혈관에 집중시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렀다. 장갑에 묻은 피가 굳어 검게 변할 정도였다.
“석션! 거즈로 닦고.”
출혈이 점점 심해졌다. 혈관이 피 속에 잠겨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압박하던 거즈를 갈 때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손일석이 동맥 주행 방향으로 생각되는 후복막 부분을 강하게 눌렀지만 소용없었다.
찌이익! 찌이익!
석션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피에 물든 거즈가 어지럽게 쌓여 갔다.
신중하게 접근할 여유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초조함이 강하게 다가왔다.
허수진의 실제 몸무게는 10킬로그램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혈액도 그만큼 적다. 성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출혈에도 바이탈이 흔들릴 수 있었다.
시간을 끌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상황이었다.
‘후복막을 연 상태에서 터진 혈관을 잡지 못하면 끝이다. 분명히 여기에 있다. 내 손과 수술 팀의 능력을 믿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를 악문 김지훈이 혈관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 주위를 과감하게 박리했다.
시뻘건 피가 주르륵 모스키토를 타고 흘렀다.
‘분명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왜 안 보이지?’
똑같은 의문이 손일석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수술 팀의 신중한 판단이 틀렸을 리가 없었다. 집도의는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훈이었다.
“지훈아, 분명히 여기 있어. 계속 진행해.”
힘이자 응원이자 확신이었다.
“석션! 거즈!”
수술 팀의 판단을 믿고 다시 한 번 과감하게 박리했다.
석션 팁을 따라 피가 사라지는 순간 무언가 하얀빛이 언뜻 눈앞을 스쳤다.
첫 번째 혈관을 잡을 때 보았던 구조물이었다.
혈관 벽이 확실했다.
손일석이 눈을 번쩍이며 빠르게 석션해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다.
김지훈은 하얀색이 보인 부분을 중심으로 과감하게 모스키토를 밀어 넣었다. 여전히 단단하다는 느낌만 전해졌지만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따르륵! 따가각!
“석션! 이리게이션! 거즈!”
극히 짧은 순간 확실하게 시야가 확보됐다. 모스키토와 모스키토 사이로 혈관 조직 일부가 분명하게 보였다.
정확하게 잡았다면 출혈이 현저하게 줄어야 한다. 만일 반대라면 손상만 가중시켰을 것이다.
째깍! 째깍!
숨 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거즈로 피를 닦아 내는 동안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일분일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수술 팀 누구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째깍! 째깍!
한 장 두 장 바닥에 쌓이는 거즈.
솟구치던 피가 서서히 줄었다.
마침내 단단한 조직에서 흘러나오는 정도의 출혈 소견만 보였다.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인 김지훈이 모스키토 사이에 잡힌 조직을 자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터진 혈관이 분명한 것 같아. 타이!”
조직이 으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손일석이 강하게 이중으로 타이했다.
혈관 단면을 확인했다. 혈전 조각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터진 혈관이 확실했다.
응급 수술을 초래한 가장 불안하고 위험한 부위를 해결했지만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째깍! 째깍!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