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15화 (815/1,329)

4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Ⅱ (2)

천만다행, 양이 많지 않았지만 시한폭탄과 다름이 없었다. 후복막 조직이 가하는 압력이 지혈 작용을 해 간당간당 버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손일석이 눈가를 찌푸린 채 김지훈을 불렀다.

“지훈아! 어떻게 할 거야?”

빤히 출혈을 보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당장 출혈을 막아야 하지만 기형종을 놔둔 채 혈관만 잡을 수는 없다. 무리하게 접근하면 도리어 출혈을 악화시켜 어린 생명을 앗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10시간 이상 걸릴 수술이었다.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정규 수술로 해도 수많은 위험과 난관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수술을 모든 면에서 미흡할 수밖에 없는 응급으로 해야 한다니 답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 안전할까?

아침까지 버틸 수 있을까?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지켜볼 수 있을까?”

손일석도 심각한 고민에 잠긴 채 CT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출혈 부위에 접근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대답 대신 나직한 숨소리만 들렸다. 조언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 생명이 달린 일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한 판단이 요구되는 순간이었다.

‘출혈이 지속되면 수진이를 구할 방법이 없다. 운 좋게 출혈이 멈춘다고 해도 전신 상태는 더 나빠질 테고, 혈종 때문에 혈관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응급 수술 이외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켜보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단 몇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정확한 판단일까?

집도의가 모든 책임을 지고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퍼스트의 의견이 절실했다. 손일석과 의견이 일치한다면 더욱 강한 확신을 갖고 수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석아, 어떻게 생각해?”

“다른 방법이 없잖아. 몇 시간이라고 해도 아침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위험해.”

집도의와 퍼스트의 의견이 일치됐다.

결정을 내렸지만 급박한 상황과 응급 수술로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감이 떠나질 않았다. 더구나 인력이 충분한 시간도 아니었다.

수술 중 사망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테이블 데스!

최악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상황에 맞부딪쳤다.

엄청난 압박이자 스트레스였지만 목숨이 달린 수술을 하는 써전에겐 숙명과도 같은 단어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허수진의 부모가 떠올랐지만 아이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가를 굳히며 어금니를 꽉 문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구성할 수 있는 최고의 수술 팀이 필요했다. 써드의 역할조차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피곤에 찌든 1년 차가 들어올 수술이 아니었다.

“지금 바로 수술하자. 송진우, 하석이는 안 들어와도 돼. 네가 들어와. 혁원아, 소아과 병동에 연락해서 수술 준비 최대한 빨리 하라고 해.”

수술 방으로 내달렸다.

김진호 교수가 당직이었다.

“내일 하기로 한 기형종을 지금 하자고?”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이자 마취과 의사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김지훈에겐 천군만마나 다름없었다.

“갑작스러운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수술실 준비되는 대로 즉시 해야 합니다.”

“수술 준비는?”

“30분 내에 혈액까지 다 준비하겠습니다.”

“예상 시간은?”

“10시간이 훌쩍 넘을 것 같습니다.”

김진호 교수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마취과 입장에서도 허수진의 응급 수술은 대단한 부담이었다. 가뜩이나 어리고 허약한데 상태까지 나빠졌다. 마취 위험이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정규 수술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지훈이 판단이라면 고민할 여지가 없어.’

“알았어. 바로 옮겨.”

고민도 없이 결정을 내려 줘 천만다행이었다.

단 1분이라도 빨리 준비하기 위해 소아과 병동으로 달려갔다. 손일석, 이혁원, 송진우가 간호사들과 함께 다급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허수진의 부모를 만났다.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는 눈만 멀뚱거렸다. 어머니는 아프다며 울고 있는 딸의 손을 잡은 채 같이 울고 있었다. 유난히 서럽게 들렸지만 감정에 휘말릴 때가 아니었다.

“아버님,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응급 수술이라는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최대한 쉽게 설명했지만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평생 친절한 설명 한번 듣지 못한 사람처럼 고개만 숙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간호사, 소아과 선생님께 응급 수술 들어간다고 연락하고, 혹시 아버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시면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수술 준비가 끝났다.

곧바로 옮겨져 수술실로 직행했다.

수술 방 앞까지 쫓아온 아버지의 눈에 이제야 두려움이 서렸다. 불편한 다리로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주변을 감도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또다시 들려온 말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고통을 호소하는 허수진의 울음소리에 고개만 숙이고 수술실로 향했다.

띠띠띠띠띠띠!

어린아이의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사이 대량 출혈이 발생했을 수도 있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독한 통증 때문이기만을 바랐다.

“수진아, 내 손가락 보이지? 이 손 따라와 볼까?”

의식 상태를 확인한 김진호 교수가 간호사에게 눈짓했다. 차가운 정맥 마취제가 투여되며 허수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인투베이션 합니다. 복부 소독해도 좋습니다.”

노련한 마취과 의사답게 단 1분이라도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재빨리 복부 소독을 하는 사이, 김지훈과 손일석이 수술 가운을 입었다.

허수진의 몸을 덮은 소독된 천 사이로 자그맣지만 불룩 솟아오른 배만 보였다.

14살 아이의 몸이 아니었다. 마치 예닐곱 살 아이를 수술하는 것처럼 조심해야 했다.

출혈 지속 여부가 관건이었다. 지금도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초를 다투는 응급 수술이 되질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수술, 지금까지 한 수술 중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는 수술, 그런 수술을 응급으로 해야 한다. 수술 팀이 가진 모든 능력이 필요했다.

“일석아, 혁원아, 진우야, 시작하자.”

수술 팀의 눈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메스!”

새벽 1시 30분, 수술이 시작됐다.

어린아이 피부라지만 너무 힘없이 열렸다.

피하지방은 보이지도 않았고, 근육 역시 종양에 눌려 종이처럼 얇았다. 투명한 비닐 막에 불과한 복막을 통해 거대한 종양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복막을 절개했다.

조그만 복부가 열리는 순간 종양 일부가 배 밖으로 밀려 나왔다. 미끌미끌하면서 울퉁불퉁한 기형종이 절개 창을 꽉 채웠다.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출혈 부위로 접근할 수 없었다. 난소와 연결된 부분을 먼저 절제해야 기형종을 한쪽으로 밀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후에야 내부 장기 및 후복막에 접근이 가능했다.

‘CT에서 본 것보다 더 크다. 무리하게 다루다가는 추가 혈관 손상까지 유발할 수 있어. 절대 서두르지 말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돼.’

“마취과, 후복막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난소 절제부터 시작합니다. 바이탈에 유념해 주십시오.”

“지금은 괜찮습니다. 바이탈은 내게 맡기세요.”

이미 출혈에 대비한 수혈이 시작됐다.

느릿느릿 한 방울씩 들어가고 있지만 출혈 부위에 접근하는 순간 바이탈이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어린아이의 몸이 버틸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투여해야 할 것이다.

거대한 종양을 최대한 배 밖으로 꺼냈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커도 너무 컸다.

CT로, 혹은 밖에서 볼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빠져나온 부분만 해도 성인 주먹 두 개에 가까운 크기인데, 나머지 절반은 아직도 배 속에 남아 있었다.

제거해야 할 종양이 수술 시야를 꽉 가로막았다. 배 속 공간이 작아 손을 놀리기조차 쉽지 않았다. 자그마한 자궁과 방광을 확인하고 간신히 우측 난소를 찾았다.

종양 시작 부위이기에 살릴 방법은 없었다.

난소는 상당히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는 장기였지만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자궁과 연결된 나팔관, 난소 동맥 및 정맥이 종양에 눌리고 밀려 있는 상태였다.

몇 번이고 해부학적 위치를 확인하고, 손일석과 의견이 일치한 후에야 자를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난소와 연결된 주변 조직을 박리해 완전히 분리해 냈다.

종양은 크고 배 속은 작은 탓에, 타이하는 내내 손일석의 손이 종양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빠른 처리가 요구됐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 혈관 출혈에 초조함이 가중됐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겠어. 바이탈은 김진호 선생님께 맡기고 침착하자.’

기형종 하부를 조심스럽게 배 밖으로 당겼다. 유동성이 거의 없어 함부로 당기면 후복막과 연결된 부분이 찢어질 수 있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서서히 대장과 소장 일부가 드러났다. 납작하게 눌린 채 핏기를 거의 잃은 상태였다. 장기간 지속된 탓에 연동운동마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탭.”

수술용 천으로 장을 좌측으로 밀어냈다.

장간막 사이에 묻혀 있는 기형종 밑 부분을 따라 손을 넣었다. 부들부들한 장기의 감촉이 사라지며 다소 단단하게 느껴지는 후복막이 만져졌다.

신중하게 위장 쪽으로 손을 밀었다.

불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들어간 부분에서 딱딱한 조직이 가로막았다. 후복막과 연결된 부위였다.

살짝 힘을 줘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했다. 돌덩어리처럼 딱딱했다.

“일석아, 확인해 봐.”

손일석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하네.”

혈관이 포함된 조직이 이 정도로 딱딱하면 박리 중 출혈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부는 이미 출혈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긴장이 치솟았다.

시야 확보가 우선이었다.

종양 일부를 배 밖으로 꺼냈지만 아직도 배 속을 차지한 부분이 상당했다.

기형종은 최대한 우측, 대장과 소장은 최대한 좌측으로 밀어낸 후에야 시야 일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형종-혈관-장간막-혈관-후복막.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상기하며 장간막을 펼치는 순간 수술 팀 모두 말을 잃었다. 출혈이 더욱 진행됐는지 겉면 일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바이탈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진행하세요.”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위험도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수술 계획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다. 답답한 소리가 수술실을 맴돌았다.

돌아가는 길은 없다. 오직 절제뿐이었다.

잠시 수술 부위를 노려보던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손일석도 동시에 기구를 받았고, 이혁원과 송진우는 리트랙터를 당기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최대한 빨리 출혈 부위 잡자. 모스키토.”

장간막 일부를 절개했다. 슬금슬금 배어 나오는 빨간 피와 벌겋게 물든 조직이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과 위험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기형종과 후복막이 연결된 부분으로 접근했다.

불과 1~2센티미터를 박리했을 뿐인데 단단한 조직에 가로막혔다. 기형종이 후복막을 침범한 부위였다.

조심스럽게 주변 조직을 박리해 종양 일부분을 노출시켰다. 웬만한 힘으로는 모스키토가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단단한 조직에서 점상 출혈이 관찰됐다.

내부 출혈로 피가 새어 나온 것이다.

급박하게 다가오는 초조함을 억눌렀다.

‘서두르면 안 돼. 침착하게 접근하자.’

숨을 고르며 모스키토를 밀었다.

종양 전체가 단단하고 딱딱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종양 조직 속으로 모스키토를 밀어 넣었다.

상당히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한 번에 큰 힘을 가하면 종양 조직이 크게 찢어질 수 있었다.

손에 걸리는 압력을 느끼며 조금씩 침착하게 힘을 가했다.

어느 순간 단단한 벽이 뚫리는 것처럼 모스키토 끝이 쑥 종양 속을 파고들었다.

시뻘건 피다.

박동을 따라 솟구치는 피가 아니라 뚫린 면을 따라 줄줄 흘렀다. 굵은 혈관이 아닌 거미줄처럼 주변으로 뻗은 미세한 혈관이 손상된 것이다.

“보비!”

삐이익! 삐이익!

절개와 지혈 효과를 동시에 가진 보비로 모스키토가 파고든 부분을 잘랐다. 절단면에서 피가 주르륵 새어 나왔다. 양이 많지 않았지만 환자는 14살 어린아이다. 성인을 수술할 때와는 모든 면을 달리 봐야 했다.

출혈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보비!”

삐이익! 삐이익!

하얀 연기와 함께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절단면을 덮어야 할 까만 피딱지가 보비 팁까지 뒤덮었다. 조직이 지져져야 하는데 출혈량이 많아 피만 지져진 것이다.

좋지 않은 징후였다.

더구나 종양 조직은 지혈이 잘 되지 않는다.

이혁원이 거즈로 신중하게 피딱지로 덮인 절단면을 살짝 눌러 닦았다. 하등 문제가 될 손놀림이 아니었지만 피딱지가 떨어져 나가며 빨간 피가 새어 나왔다.

조금도 지혈되지 않았다. 양도 적지 않아 보비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모스키토! 조직 깨질 것 같다. 살살 잡아.”

따르륵! 따가각!

잘린 면 위아래를 모스키토로 잡는 순간 조직이 으깨졌다. 종양과 주변 조직에 발생한 만성 염증 때문에 점점 단단해지면서 탄력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새로운 손상에 출혈만 가중됐다. 이제 박리를 시작했을 뿐인데 당황스러웠다.

모스키토 사이로 배어 나오는 피를 보는 순간 입이 바짝 말라 들었다.

가슴이 섬뜩할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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