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Ⅱ (1)
수술 중 다량의 출혈이 예상되기에 혈액과 수액을 적절하게 투여하기 위한 굵은 라인이 필요했다. 다행히 중심 정맥에 사용되는 소아용 도관이 있긴 했지만 비쩍 마른 허수진에겐 그마저도 길고 굵었다.
이혁원이 옆에 있었지만 직접 하고 싶었다. 저혈량성 쇼크에 빠진 환자를 수술할 때마다 했던 술기인데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간만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수진아, 따끔할 거야. 참을 수 있지?”
주삿바늘은 성인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중심 정맥을 잡기 위한 의료용 준비물까지 옆에 있었다. 눈가에 두려움이 스쳤지만 김지훈의 가운 한 자락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워할 거 없어. 금방 끝나.”
우측 쇄골이 끝나는 부분을 넓게 소독했다. 차가운 느낌에 허수진이 몸을 떨었다. 그마저도 무서울 것이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을 보지 못하도록 국소 마취제도 몸을 돌려 주사기에 담았다.
“따끔! 따끔!”
은빛 바늘이 연약한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곧바로 국소 마취제를 투입하자 통증을 느낀 허수진이 비명을 질렀다.
손일석이 재빨리 손을 잡아 주었다.
“다 됐다. 다 됐다. 수진아, 이젠 안 아플 거야.”
지적장애 때문에 걱정했는데 잘 참아 주었다.
중심 정맥 도관 삽입 전 길을 열어 줄 바늘을 찔러야 할 부분을 찾았다. 쇄골이 전하는 딱딱한 감촉을 느끼며 굵은 바늘을 찔렀다. 쇄골 하 정맥이 뚫리며 바늘과 연결된 주사기에 검붉은 피가 비쳤다.
피부 주변만 마취할 수 있다.
깊은 곳을 찌를 때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통증에 허수진이 움찔거렸다. 입술을 꼭 문 채 울음을 참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잘 참네.’
재빨리 굵은 바늘 속 공간에 가이드 와이어(Guide Wire)를 끼우고 바늘을 빼냈다. 유연한 재질로 만들어진 소아용 도관을 와이어를 따라 밀어 넣었다.
빠지지 않도록 잘 고정한 후 수액을 연결했다. 굵은 도관을 따라 막힘없이 빠르게 주입됐다. 쇄골 하 정맥에 정확하게 들어갔다는 의미지만 마지막 확인이 남았다.
“수진아, 잘 참았어. 간호사, 흉부 사진 찍읍시다.”
쇄골 밑을 찌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폐에 구멍을 내는 수가 있다. 기흉이 발생하면 수술이고 뭐고 모두 미뤄야 한다. 김지훈이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며 신중을 기한 이유였다.
흉부 사진이 나왔다. 우측 폐 상부에 하얀 음영이 관찰됐고, 기흉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심 정맥 도관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의미였다.
이제야 안심한 김지훈과 손일석이 허수진을 다시 찾고는 병동으로 돌아갔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또박또박 들리는 목소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일석아, 잘 알아듣지 못해도 부모님께 설명했어야 했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도 잘 모르겠다. 수진이한테만 집중하자.”
구석에 앉아 안절부절못한 채 딸만 바라보던 부모의 아픈 눈빛이 가슴에 박혔다.
고맙다는 말 이외에는 들을 수 없는 현실까지.
이틀 후 첫 수술이다.
수술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지만 최소 10시간 이상 걸릴 것이다. 당연히 다른 수술은 단 한 건도 잡지 않았다.
허수진이 잘 버텨 주길 바라며 수술 팀 전체가 모여 최종 정리를 했다.
일부만 자를 수는 없다. 일단 건드리면 무조건 모두 제거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완전 적출을 할 수 없으면 배를 열고 닫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어깨에 걸린 긴장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현수와 이경석까지 참석해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몇 번이나 반복한 일이었지만 여전히 많은 의견이 오고 갔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잘 버티던 단발머리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이혁원이 눈치를 주고, 함께 참석한 송진우와 강병옥이 수시로 옆구리를 쳤지만 그때뿐이었다.
손일석과 함께 혈관 촬영 사진을 보며 의견을 나누던 김지훈의 눈빛이 스윽 오하석에게 꽂혔다.
전공의들이 흠칫 놀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1년 차 때 가장 힘든 시간이 바로 가만히 앉아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긴 했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주말 집담회에서도 졸 정도였다. 100일 당직 기간인 탓에 더욱 힘들 것이다.
그동안 흔히 봐 왔던 일이지만 오하석은 수술 팀의 일원이다.
‘힘든 건 알지만 오늘은 아니다.’
눈썹에 힘을 주던 김지훈이 한 소리 하려다 말고 입맛을 다셨다. 불현듯 참을 수 없는 피로를 호소하는 지동훈 교수의 얼굴과 새까만 응급실 보고가 생각난 것이다.
‘지동훈 선생님 일복도 만만치 않네. 어제 한잠도 못 잤으면 근 하루 반 동안 거의 못 잤다는 말이지? 어휴! 여자가 아니라 1년 차라서, 써드라서 이번만 특별히 봐준다.’
다들 좌불안석이었지만 못 본 척 계획에 집중했다.
오하석이 홍일점이라고 해서 넘어갈 후배들이 아니었다. 신나게 졸며 고개 떨어트린 벌을 받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타고 혼나지 않으면 1년 차가 아니다.
지난날이 생각난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수술실에서 졸면 안 된다.”
자리를 끝내며 툭 던진 한마디에 이혁원이 비상을 걸었다. 강병옥이 눈을 부라리고, 송진우는 얼굴을 활활 불태웠다.
어느 수술이나 마찬가지지만 김지훈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기형종 수술 중에는 절대 졸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김지훈이 더욱 부산해졌다.
오전 회진 중 응급 수술로 눈이 벌게진 손일석까지 소아과 병동에 들렀다. 소아과 교수도 마음을 못 놓는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허수진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수진이 안정을 위해 병실은 그대로 유지했으면 합니다. 다만, 수술 후 며칠은 중환자실에 있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케이! 많이 안정됐으니까 수술은 진행해도 될 것 같은데, 별 문제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수진의 부모가 와 있었다.
“아버님, 내일 수술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어둔한 말 사이로 엄마가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딸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여느 모녀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동의서 작성까지 마쳤다.
가슴으로 딸의 위험을 느끼는지 아버지의 눈에 진한 두려움이 스쳤다. 확실하게 알아듣고 수술에 동의하는 보호자를 대할 때보다 더 막중한 책임이 다가왔다.
이제 수술만 잘 끝내면 된다. 보통 어려운 수술이 아니었지만 확신을 갖고 임해야 했다.
슬며시 다가오는 긴장을 뒤로하고 오전 진료를 시작했다. 난소 절제를 위해 산부인과까지 다시 한 번 찾았다.
어느덧 하루 일과가 무난히 끝났다.
내일 수술 잘하라는 의미인지 퇴근도 예정대로 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기에 응급실에 들러 손일석의 손을 잡아끌었다.
“일석아, 오늘은 응급실 근처에도 가지 마.”
“안 그래도 지금 있는 환자만 보고 철수할 생각이었어. 10시간 정도면 충분할까?”
“예정대로 진행돼도 빠듯할 것 같아. 수진이가 잘 버텨야 할 텐데 걱정이야. 변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손일석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별일 없을 거야. 내일을 위해 오늘은 푹 자자.”
‘지훈이 너는 온갖 경험을 다 했으니까 잘 자겠지? 난 잠이 잘 올지 모르겠다.’
은근한 긴장이 느껴졌다.
사실 김지훈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담담해질 만도 했지만 이번처럼 어려운 수술을 앞두면 잠을 설치기 십상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수술 계획을 차근차근 되짚다 보니 어느새 11시가 다 됐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수술을 앞둔 상태에서 피곤을 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생소하지만 잠자리에 들 때였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막 이불 속을 파고들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든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그대로 뛰쳐나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리 멀지 않던 병원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제발 별일 아니기만을 바랐다.
허수진이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했다. 이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김지훈을 보자 더욱 서럽게 엉엉 울었다. 수술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수진아, 어디가 아파? 배가 아파?”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울음이 끊이질 않았다. 심한 복통에 배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복부 진찰은 물론 울음소리에 청진마저 불가능했다. 이유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단순 복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통증을 잘 참는 아이가 이 정도라면?’
갑작스럽게 발생한 심한 복통!
불길했다.
“이혁원, 바이탈은 어때?”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혈압, 혈압 확실히 괜찮아?”
“오시기 직전에 쟀을 때 110에 70 정도였습니다.”
앙상한 팔은 혈압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조차 어렵게 했다. 심장박동이 매우 빨랐지만 극심한 복통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했다.
“혈압 다시 한 번 재고, 빨리 복부 사진하고 CT 찍자. 응급이라고 확실하게 전해.”
김지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응급 환자로 방사선실 스케줄도 빡빡할 것이다.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직접 내려갔다.
전공의도 아니고 교수가 직접 부탁하자 방사선사가 입맛을 다시며 촬영을 준비했다. 응급 환자 때문에 정신없었던지 피로에 젖은 모습이었다.
잠시 후, 송진우가 허수진을 태운 침대를 밀며 CT실로 들어왔다. 여전히 엉엉 울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볼록 솟아오른 배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통증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 틀림없다.
급한 대로 내려오기 전 진경제와 진통제를 투여하라고 했다. 조금은 통증이 완화되길 바랐지만 아이가 참을 수준이 아니었다.
“아파요. 선생님, 아파요.”
수술 팀은 물론 이준영 교수까지 가장 걱정한 문제가 있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급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수진아, 조금만 참자. 아파도 움직이면 안 돼.”
“아파요. 선생님, 아파요.”
허수진을 달래며 직접 바이탈을 확인했다. 다행히 별다른 변동이 없어 곧바로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송진우가 차폐복을 입고 허수진 옆에 섰다. 촬영기가 나직한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자 두려움까지 겹쳤다.
“무서워요. 선생님, 무서워요.”
“수진아, 괜찮아. 아픈 거 아니야.”
이혁원까지 차폐복을 입고 들어가 남은 한 손을 잡아 주었다. 달래고 달랜 끝에야 조금은 안정을 찾았다. 간신히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위이이이잉!
나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시작합니다. 못 움직이게 잘 잡아 주세요.”
막 첫 번째 화면이 뜰 때 덜컥 문이 열렸다. 송진우에게 연락받고 달려온 손일석이었다.
“김 교수,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는데 잘 모르겠어.”
“설마 우리가 걱정했던 문제는 아니겠지?”
“일단 CT부터 보자.”
폐 하부가 보였다.
간혹 늑막이나 폐 하부 염증 때문에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깨끗했다. 워낙 드물고 노인에게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마음만 조급해졌다.
간과 위가 보였다. 연이어 담낭과 췌장이 나타나며 기형종의 가장 윗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대한 기형종의 단면이 나타났다.
드문드문 보이는 하얀 음영은 뼈나 치아 조직일 것이다. 원래 그런 종양이다. 주의를 돌려야 할 부분이 아니었다.
1센티미터 간격으로 잘린 단면이 차례차례 이어졌다. 마침내 후복막과 혈관으로 연결된 부분이 보였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동시에 눈가를 좁혔다.
2주나 치료해야 했던 불량한 전신 상태!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혈관!
갑작스럽게 발생한 심한 복통!
수술 전 가장 두려운 합병증은 갑작스러운 혈관 파열로 인한 출혈이었다. 만일 과도한 출혈이 발생했다면 수술도 못해 보고 허수진을 잃을 수 있었다.
한 컷 한 컷 지나쳐 갔다.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잠깐만요!”
혈관 주변을 감싼 1X1센티미터 정도의 흐릿한 음영이 보였다. 절대 보이지 않아야 할 음영, 처음 시행한 CT에서는 분명 보이지 않았던 음영이었다.
출혈이다.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치명적인 일이었다.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출혈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쏟고 막힌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즉각 조영제를 투여하고 재촬영이 이어졌다.
조영제가 혈관 밖으로 새어 나와 주변으로 퍼진다면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무조건 수술해야 하지만 수술이 가능할지, 허수진이 버틸 수 있을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위이이이잉!
기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허수진은 여전히 배가 아프다며 울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의료진의 위안일 뿐이었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안타까운 눈으로 힐끗힐끗 김지훈만 보았다.
검게 보였던 혈관 내부가 조영제로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컷 한 컷 지나갈 때마다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마침내 출혈이 의심되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명과도 같은 탄식이 터졌다.
피가 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