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Ⅰ (2)
기형종 혈관 촬영 사진을 보는 순간부터 수술에 참여할 수 있기를 갈망한 손일석이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번쩍번쩍 눈을 빛내고 있었다. 친구를 넘어 뜨거운 열정을 가진 한 명의 훌륭한 써전이었다.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고맙다.’
“일석아, 나하고 같이 수술하자.”
“응? 내가? 현수하고 경석이 형이 있는데 그래도 될까?”
은근슬쩍 뒤로 뺐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가 귀까지 걸렸다. 속으로 만세를 부르며 별 난리를 다 치고 있을 것이다.
아픈 환자를 두고 기뻐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써전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손일석에겐 특히 그럴 것이다.
“왜? 힘들 것 같아?”
“아이구! 무슨 소리야. 퍼스트 서는 건데, 우리 집도의께서 잘 이끌어 주시면 되지. 나는 손만 거들면 되는 거 아냐?”
지금까지 김지훈이 주도한 수술은 대부분 그래 왔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었다. 기형종 제거의 핵심은 혈관 처리였고, 손일석은 혈관에 목을 맸다. 게다가 가장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김지훈이었다.
“손만 거들면 안 되지. 내일 저녁까지 1차 수술 계획 세워. 혁원이하고 오하석이 수술 팀이야.”
“헉! 내가 수술 계획을 짜라고?”
딱 봐도 엄살이다. 맞장구쳐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살짝 진실을 섞어서.
“주임 교수 오더야. 아직 수술 팀을 바꿀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마침 내일 내가 당직이니까 검토할 시간도 충분해. 무슨 말인지 알지?”
손일석이 입을 삐죽거렸다.
“예에! 확실하게 준비해서 주임 교수님 드시기 딱 좋도록 대령하겠습니다. 더 이상 할 얘기 없으시면 전 이만.”
‘다른 말 나오기 전에 도장 확실히 찍자.’
손일석이 할 말만 딱 하고 휙 사라졌다.
신현수와 이경석이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워하면서도 최선의 방안을 선택했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기형종은 꼭 경험해 봐야 할 질환이었다. 하지만 허수진에게는 그 어떤 환자보다 더욱 강한 수술 팀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했다. 신경을 분산시키면 실패할 확률이 크게 치솟을 수 있었다.
‘형, 일석이를 보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선생님들 모두 동의하신 일이니까 문제없겠죠?’
‘더 이상 좋은 방법은 없어. 이번 수술은 일석이가 들어가는 게 맞아. 우린 최선을 택한 거야.’
나직한 속삭임이 오고 갔다.
“지훈아, 그럼 일석이하고 준비 잘해. 우리도 시간 나는 대로 도울게. 경석이 형, 가시죠.”
왠지 즐거움이 실린 것 같았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그동안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로만 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미안하고 고맙네.’
문득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동기 중 속 좁은 놈은 바로 김지훈 자신이었다. 서운함이나 욕심 따위는 하등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 시간, 손일석이 이혁원, 강병옥, 송진우를 찾았다.
허수진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후 머리를 맞대고 검사 결과와 씨름을 벌였다.
바짝 마른 아이 배 속에 있는 16X12 센티미터 크기의 기형종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혈관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스승님은 어떤 식으로 접근하실까?’
이혁원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선생님, 혈관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그래서 우리가 모인 거야. 어떤 생각이라도 좋으니까 머릿속에 꿍치지 말고 빨리 말해. 이제 14살에 불과한 아이를 잃을 수는 없잖아.”
‘혈관 저놈의 게 날 두렵게 한단 말이지? 허수진,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망할 놈의 기형종 반드시 없애 줄게.’
손일석이 전에 없이 진지해졌다. 혈관 수술을 집도하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갠 전공의들 역시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기형종이 주는 중압감이 아무리 심해도, 불편한 의자에서 조각 잠을 자야 할 정도로 바쁘다고 해도 할 일은 해야 한다.
1년 차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피로가 눈에 보였다. 리트랙터만 끌려고 일반외과를 택했을 리 없다. 이쯤에서 활력 한번 강하게 불어넣어 줄 때가 됐다.
마침 아뻬 하나가 떴다. 마른 체격에 개복을 원해 딱 알맞은 케이스였다.
눈이 발개진 단발머리가 찰랑찰랑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용케 머리 감을 시간을 낸 모양이었다.
오하석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이혁원을 불렀다.
“혁원아, 하석이 준비시켜.”
“퍼스트 세우실 생각이십니까?”
“세워도 될 것 같은데, 부족해?”
“아닙니다. 준비시키겠습니다.”
오더가 줄줄이 밑으로 내려갔다.
“송진우, 하석이 퍼스트 세우신단다. 준비시켜.”
흠칫 놀란 송진우가 부랴부랴 수술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오하석을 불렀다. 당직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자투리 시간마저 허투루 사용할 수 없는 김지훈이 손일석과 함께 버티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기형종 수술 계획으로 후끈 달아오른 상태였다.
“일석아, 경계부는 어떻게 확인할 거야? 혈관 처리할 때 후복막을 무작정 박리할 수는 없잖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야.”
“퍼스트가 아니라 집도한다고 생각하고 계획 세워. 우리 손이 완벽하게 맞지 않으면 수술하기 힘든 거 잘 알잖아?”
‘어후! 생각보다 쉽지 않네. 이 자식은 어떻게 갈수록 예리해지지? 죽겠네.’
은은한 숯불이 점점 화력을 높였다.
장작불이 필요한 오하석은 처음부터 휴게실행이다. 양쪽에서 사랑과 애정의 불을 놓기 시작했다.
“지금 난 3년 차로서 널 교육시키는 거야.”
오하석이 입술을 꼭 깨물었다.
선배들은 물론 전임까지 활활 타는 것을 무수하게 봤다. 알게 모르게 도와주던 송진우 역시 일에 관한 한 개인적인 관계에 연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외과 전공의로서 첫 퍼스트를 문제없이 해내고 싶었다.
단단히 각오했다.
“수술 과정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퍼스트를 설 수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말해 봐.”
“예. 환자의 우측 하복부를 12번 메스로 자른 후 지방과 근육 층을 절개합니다. 복막을 확인하고…….”
“그건 수술 기록지잖아? 피부 절개 후 지방은 어떤 기구를 사용해, 어떻게 열어야 되는지 왜 빼먹어? 다시.”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1년 차에게 벌어지는 악몽이 시작됐다.
다시, 다시, 다시.
벌게진 얼굴로 ‘다시’를 외치는 송진우의 눈가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반복에 반복을 하며 수술 과정을 말하던 오하석의 숨이 가빠졌다. 눈을 꽉 감은 채 고개를 흔들며, 눈앞에 있는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선배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다시, 다시, 다시.
드르륵!
평소 들리지도 않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후다닥 달려 나간 오하석이 환자를 옮기고 수술 준비를 했다. 송진우의 눈짓에 그 와중에도 수술 과정을 수없이 되새겼다.
무심할 정도로 빠르게 마취가 시작됐다.
전임이 된 이후 아뻬는 거의 치프나 3년 차에게 주었던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오하석이 전에 없이 다가오는 긴장에 훅 숨을 들이마셨다. 퍼스트 자리에 서니 김지훈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인 것이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 시작하십시오. 김지훈 선생, 오래간만에 아뻬 하네. 혹시 어떻게 하는지 잊은 건 아니지?”
“그래서 혁원이하고 같이 들어왔습니다.”
1년 차의 긴장을 잘 아는 김지훈과 마취과 당직 교수의 농담에도 분위기는 풀리지 않았다. 써드를 자청한 송진우의 유난한 긴장까지 더해진 탓이었다.
메스를 드는 순간 김지훈의 눈빛이 변했다. 피부를 절개하고 배를 연 후 아뻬를 제거할 때까지 고개 한번 들지 않았다. 간혹 눈빛만 번쩍일 뿐이었다.
딱 한마디만 들을 수 있었다.
“오하석, 과도한 긴장은 수술에 방해만 돼.”
빠르게 수술이 끝났다.
마지막 수처까지 마무리한 김지훈이 스윽 이혁원을 보았다. 순간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이혁원, 치프라고 1년 차 교육 소홀히 하는 거 아니지? 똑바로 하자. 뭐가 문제였는지 송진우하고 직접 알려 줘.”
김지훈이 목을 휘휘 돌리며 수술실에서 나왔다.
휴게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 없었다.
15분 정도 흐른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환자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래? 가자.”
앞서가는 오하석의 발이 보이지 않았다. 거의 뛰다시피 병실까지 올라가서야 숨을 돌렸다.
환자가 무사히 회복됐는지 확인하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눈가에 찔끔 눈물 한 방울 정도는 묻었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선배들의 교육이 느슨하진 않았을 것이다.
‘퍼스트도 잘 섰고, 생각보다 훨씬 당차네.’
“오하석, 내 앞으로 아뻬 오면 바로 준비해.”
언제 메스를 줄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엉뚱한 놈이 얼굴 벌게진 채 주먹을 바르르 떨며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날 밤, 모든 일과가 끝난 후 특별 교육이 시작됐다. 1년 차에겐 너무도 귀중한 시간을 30분이나 써 가며 지독하게 밀어붙였다.
“다음번에는 오늘처럼 쉽게 지나가지 않아. 퍼스트를 제대로 서야 메스를 받을 수 있어. 김지훈 선생님이 어떻게 수술하셨는지 절대 잊지 마. 기본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야. 이왕이면 우리가 가장 먼저 받아 보자.”
홀로 남은 오하석이 한숨을 쉬다 말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라는 말과 차가운 주스 한 캔에 담긴 따스한 마음 때문이었다. 밤이 깊었지만 오늘도 정신 차리고 일과를 마무리할 힘을 얻었다.
***
기형종 수술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김지훈도 늦은 밤까지 연구실 불을 밝혔다.
역시 손일석이었다. 날카로운 지적을 결코 흘려듣지 않았다.
후복막과 연결된 혈관을 어느 방향에서 접근할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지 확실하게 계획을 짰다.
수술 계획을 검토할 때마다 마치 자신이 집도하는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고민해도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수술이었다. 그 탓인지 아직도 혈관 처리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일단 수술 전 필요한 사항은 모두 준비했다.
단 하나만 빼고.
다음 날 아침, 손일석과 함께 막 출근한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매일 응급실 당직을 서는 손일석의 일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전에 말씀드린 기형종 환자 수술 계획을 세웠습니다. 수술 팀은 손일석, 이혁원, 오하석입니다.”
이준영 교수가 힐끗 시계를 보며 회진까지 남은 시간을 가늠했다.
손일석의 일과, 극히 드문 종양, 제자가 집도하는 수술이기에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보자.”
CT와 혈관 촬영 검사를 거는 손일석이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김지훈을 본받아 슬며시 캔 커피 하나를 놓았지만 뇌물이 통할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마치 발표를 하는 것처럼 설명이 이어졌다.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듣고 있는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매서웠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상입니다.”
‘현수하고 경석이 형 마음이 이제야 절실하게 이해되네. 조용히 앉아만 계시는데, 왜 이렇게 땀이 나지?’
손일석이 슬며시 이마를 닦았다.
“누가 세운 거야?”
“제가 세웠습니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과연 문제가 없을까?
김지훈도 귀를 활짝 열고 기다렸다.
“손일석, 혈관 처리할 부분이 종양과 후복막이 맞닿은 부위야. 조직 강도가 어떨지 고려 안 해? 혈관 한다면서 만만하게 보는 거야?”
화르륵! 단 한마디로 불길에 휩싸였다.
연타를 맞은 손일석이 부스스 부서지기 시작했다.
‘어후! 이준영 선생님도 혈관을 전공하셨었나? 왜 이렇게 날카로우시지? 놓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네. 난 불에 타 죽어도 싸.’
멀쩡하게 앉아 있던 놈이 삽시간에 재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숨을 죽이던 김지훈도 결코 피해 갈 수 없었다. 퍼스트가 타는데 집도의가 타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김지훈, 너도 같이 세웠을 텐데 생각 안 했어?”
고개 뚝 떨어트리고 얌전히 불길에 몸을 맡겼다.
아무리 불길이 거세도 스승의 주옥같은 지적을 흘려들으면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리고 집중을 유지하던 순간!
“손일석, 군 생활 하면서 공부 열심히 한 모양이다. 이쪽으로는 신 교수가 안심해도 좋을 것 같다. 김지훈, 배울 게 많아. 정신 바짝 차려.”
우아악! 이런 반전이!
이렇게 격한 칭찬을 하다니, 그것도 길게 말하다니 도저히 스승이 한 말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캔 커피마저 너무 맛있게 마셨다.
힘차게 재를 뚫고 나온 손일석의 눈이 반짝 빛나려는 순간 묵직한 말이 나왔다.
“손일석, 이론과 손은 별개야. 집중해.”
한 방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김지훈은 왜 가슴을 쓸어내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 손일석처럼 칭찬받고 싶다는 열망이자 욕심일까?
“수술 전 준비 확실하게 하고, 긴장 풀지 마.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환자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땀 한 바가지 쏟고 나서야 수술 전 가장 넘기 힘든 벽 하나를 넘었다.
수술 계획을 더욱 자세하게 다듬는 김지훈과 손일석의 눈가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물먹은 것처럼 등짝에 딱 달라붙은 와이셔츠가 주는 갑갑함도 잊었다.
목표는 오직 하나!
허수진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수술 팀의 능력과 허수진의 굳건한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치료에 있어 지적장애는 단순한 수치 부족에 불과한 문제였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의료진과 장수연이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허수진을 찾았다. 여전히 전신 상태가 불량했다. 거대 기형종이 몸속에 있는 한 더 이상 호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아과 교수에게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하겠다고 연락하고, 수술 전 필요한 첫 번째 준비를 시작했다.
14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육신.
단순한 술기라 할지라도 위험성은 증가했다.
김지훈이 은근히 다가오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