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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812화 (812/1,329)

3화. 한 아이를 살려야 한다 Ⅰ (1)

김지훈의 눈가에 살짝 부드러운 주름이 잡혔다. 마치 생각이 있으니까 안심하라는 것 같았다. 목소리나 말투도 평소 그대로였다.

“이번 수술은 일단 두 개로 진행합니다. 오하석, 추가로 손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대기하고 있어. 졸지 마.”

강병옥은 아예 당황스러운 얼굴이었다.

“선생님, 간이 담낭을 누를 텐데 시야 확보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고도 비만 때처럼 해 볼 생각이야. 카메라 위치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상의하면서 하자.”

수술 내내 혼자 두 몫을 한다는 말이었다.

그간 담낭 절제술은 4포트(Port)로 수술했다. 즉, 집도의 기구 두 개, 카메라 하나, 시야 확보를 위해 세컨이 사용하는 기구까지 도합 4개를 이용했다. 당연히 수술 팀은 최하 3명이 필요하다.

반면 아뻬나 탈장은 세컨의 역할이 없어 3포트로 진행했다. 실제 2명으로도 충분했지만, 교육 및 개복에 대비하기 위해 한두 명 더 들어간 측면이 컸다.

담낭 절제술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

때론 상식처럼 여긴 기존의 방식에 많은 불합리함과 불필요한 구석이 존재한다. 발상을 전환하면 그런 요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다만,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기에 안전에 절대적으로 유의해야 한다.

“기구는 언제든 추가로 넣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합시다.”

가볍게 어깨를 흔든 김지훈이 기구를 잡았다.

불과 이틀 전까지 세컨이 간을 들어 올려 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박리를 시작했다. 간 하부에 붙은 채 박리 부분을 숨기고 있는 담낭을 보는 순간 긴장이 다가왔다.

‘초반이 중요해.’

으레 그렇듯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은 예기치 못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머릿속으로 그린 과정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기구를 가져갔다.

간과 담낭의 경계를 확인했다. 담석이 문제를 일으켰지만 염증이 심하지 않아 담낭 벽이 제법 단단해 보였다. 건강한 간 역시 웬만한 힘이나 압력에 찢어지지 않을 것이다.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담낭을 당겼다. 스르륵 간도 함께 당겨졌지만 다행히 담낭과의 경계가 보였다. 아슬아슬했지만 기구 하나가 들어갈 틈은 확보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하든 박리할 선은 변하지 않는다. 신중하게 기구를 접근시켰다. 기구 끝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아 조금 더 담낭을 당겼다. 간도 따라 움직이며 왼손으로 전해지는 압력이 강해졌다.

‘이 정도 힘에는 찢어지지 않겠지.’

“보비!”

삐이익! 삐이익!

담낭 벽이 지져지며 박리 시작 부분이 간에서 떨어져 나왔다. 순간 팽팽했던 압력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수술 시야를 잃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구를 뺐다.

간을 슬쩍 들어 올려 박리 면을 확인했다. 출혈이나 간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긴장하자.’

박리된 담낭 벽을 잡고 하방으로 당겼다.

간이 따라 내려왔지만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 상대적으로 말랑한 담낭이 더 밑으로 내려오며 다시 시야가 확보됐다.

역시 기구 하나가 딱 들어갈 틈에 불과했다. 상당히 노련해진 김지훈에게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았다. 정확한 위치로 신중하게 기구를 접근시켰다.

갑자기 화면이 흔들리며 시야가 확 나빠졌다. 깜짝 놀란 김지훈이 그대로 멈췄다.

강병옥이 문제였다. 집도 경험이 없는 데다 처음 시도하는 방식인 탓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도움이 되고자 한 행동이지만 도리어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위험 구조물이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이 천만다행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며 무섭게 경고했다.

“강병옥, 기구가 움직이는 중에 카메라를 조작하면 어떻게 해? 라파로 기본도 잊었어?”

김지훈이 수술하면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강병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경아는 깜짝 놀랐고, 오하석은 아예 겁을 먹었다.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졌다.

누구 잘못일까?

‘후우! 병옥이를 혼낼 일이 아니었어.’

사전에 알려 주지 않고 다짜고짜 시작한 집도의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았다.

이내 자신의 불찰을 깨달은 김지훈이 직접 강병옥의 손을 잡고 카메라 위치를 조정시켰다.

“강병옥, 함께 상의하지 않은 내가 실수했다. 미안하다. 우측으로 들어와야 더 잘 보일 것 같다.”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하자.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깨끗한 사과에 강병옥의 민망함과 자책이 사라졌다.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보비 소리가 이어졌다.

간의 위치는 바꿀 수 없지만 떨어져 나온 담낭은 여러 방향으로 당길 수 있다.

강병옥은 더 이상 실수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시야를 확보하며 박리를 이어 갔다.

어느 정도 담낭이 떨어져 나왔다. 박리할 부분이 간에서 멀어지자 도리어 시야가 좋아졌다. 딱딱한 장기인 간은 더 이상 밑으로 처지지 않았고, 박리된 담낭을 원하는 방향으로 잡아끌 수 있었다.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좋았어. 동맥과 담낭관 처리만 잘하면 된다.’

카메라 위치를 잡아 주며 담낭 벽을 3분의 2 정도 박리했다. 상당히 무난하게 진행되자 마취과 교수까지 화면에 눈길을 주며 큰 관심을 보였다.

간 문제가 해결되자 대장이 스윽 시야를 가렸다.

“마취과, 테이블 업(Up) 시켜 주세요. 동맥 확보합니다. 병옥아, 카메라 조금만 뒤로 빼자.”

수술 부위 일부를 침범했던 대장이 스르륵 사라졌다.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기구 두 개만을 사용해 수없이 해 온 과정일 뿐이었다. 각도를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야는 충분했다.

끼이익! 끼이익!

어느새 동맥과 담낭관이 클립에 물렸다.

3분의 1 정도 남은 담낭 벽을 박리하는 과정도 수월하게 끝났다. 때론 간이 가리고 때론 대장이 불쑥 시야를 가렸지만, 적절하고도 안전하게 대처했다.

“마취과, 배 닫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술이 끝났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방식이 바뀌면 첫 몇 번은 고전하기 마련인데, 의외일 정도로 쉽게 마무리됐다.

수술 팀, 마취과 교수는 물론 고경아까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됐어. 케이스만 맞는다면 앞으로 3곳만 뚫자.’

4개를 쓰나, 3개를 쓰나 아무 문제도 없다는 사실에 김지훈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염증이 심하면 예전 방식으로 진행해야겠지만 대부분은 3개를 써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시도 덕에 귀중한 인력을 한 명 더 확보한 것이다.

신현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방금 수술한 환자의 복부 CT를 보던 김지훈이 오하석을 불렀다.

“오하석, 다음 환자 복부 CT 갖고 와.”

신중하게 두 개의 CT를 비교했다.

“병옥아, 어때 보여?”

“두 명 다 담석이 원인이라 그런지 염증 소견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다음 수술도 3포트로 진행하자. 오하석, 넌 안 들어와도 돼. 지금 바로 신현수 선생 수술 들어가. 배울 게 정말 많은 수술이니까 눈 크게 뜨고 봐.”

어떤 수술이든 중간에 문제라도 생기면 적어도 손 하나는 더 필요하다. 더구나 3포트 수술은 이제 한 번 해 봤다. 그런데 아예 두 명으로 시작하겠다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경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정말 둘이 하실 거예요?”

“손 필요하면 우리 고 간호사가 있잖아요.”

싱긋 웃었다.

자만일까? 자신감일까?

김지훈이라면 후자일 것이다.

두 건의 수술을 연달아 강병옥과 진행했다. 불안한 주변 시선과 달리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마지막 수술이 끝날 때쯤 신현수가 얼굴을 비쳤다.

‘김지훈, 네 덕분에 수술 잘 끝냈다. 담낭 절제술도 기구 두 개면 충분하단 말이지?’

유심히 화면을 지켜보던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어떤 의사든 수술 팀을 모두 채우고 싶어 한다. 그래야 편하고, 돌발 상황이 생겨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욕심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지금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마무리까지 끝낸 김지훈의 눈가에 즐거움이 실려 있었다.

“현수야, 수술 잘 끝냈지?”

“덕분에. 하석이 보내 줘서 미안하고 고맙다. 둘이 했는데 문제없었어?”

“지금까지 괜히 세 명 이상을 고집했던 것 같아. 현수야, 사람도 부족한데 라파로는 앞으로 둘이 해도 충분하겠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수술 또 있지? 난 수진이 보러 간다. 병옥아, 빨리 끝내고 가자.”

별일 없었다는 듯 손을 흔든 김지훈이 수술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신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누구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스카우트 조건을 뿌리치고 남았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내가 있어야 최고의 써전이 될 수 있다고? 나 역시 김지훈 네가 있어야 최고의 써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두 명이 해도 충분하다는 말은 네 실력이 그 정도란 의미겠지?’

투지가 부글부글 솟아올랐다.

평생의 라이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식이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김지훈이 까딱까딱 강병옥을 불렀다. 미안한 일은 미안한 일이지만 수술 중 실수는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해 온 부분이 바로 기본이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탁탁 서로의 가운에 묻은 태움과 재를 털고 소아과 병동으로 향했다.

허수진의 전신 상태는 여전히 불안했다. 혈액 수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병옥아, 검사 결과 어때?”

“전해질 균형은 일부 개선됐고, 단백질과 알부민 수치도 약간 좋아진 정도에 불과합니다. 빈혈 때문에 오늘 수혈할 예정이라고 하셨습니다.”

“토하진 않아?”

“소량으로 여러 차례 나눠서 식사를 하는데 구역이 심합니다. 수술하는 날까지 컨디션을 끌어 올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고 있지만 오랜 마취와 수술을 견디기에는 턱도 없었다. 수술 중 출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 더욱 걱정이 앞섰다.

허수진을 만났다. 가냘픈 팔을 타고 빨간 피가 한 방울씩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김지훈을 보고는 얼른 눈가를 훔쳤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는 허수진의 눈가가 빨갰다. 약간은 어둔한 목소리 너머로 눈물 자국까지 보였다. 수혈을 위해 사용한 굵은 바늘이 무척 아팠을 것이다.

“주사 맞는구나. 많이 아팠어?”

“아니요.”

“밥은 먹었어?”

“먹었는데 또 배고파요.”

헐렁한 환자복 위로 불룩 솟아오른 배와 비정상적으로 가는 팔다리에 눈이 갔다. 암 덩어리를 가급적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점점 더 약해질 것이다.

종양 크기가 크고, 혈관이 많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수술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즉시 기형종을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은 수술 팀을 꼭 정하자.’

“수진아, 주사 잘 맞아. 내일 보자.”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누가 시키지 않아도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지적장애는 말뿐인가 보다. 허수진의 모자람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일지도 몰랐다.

시간은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허수진을 본 지 일주일째 되는 날 간신히 모두 모였다. 예정된 수술까지 불과 6일 남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수술 팀조차 꾸리지 못했다.

‘얼굴도 보기 힘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 이번 수술은 나 혼자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되는 경운데, 더 이상 늦으면 안 돼.’

신현수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어제 당직을 서서 그런가,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네. 지훈아, 허수진 맞지? 수진이는 어때?”

“다행히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예정대로 수술하면 될 것 같아. 더 늦기 전게 오늘 수술 팀 결정하자. 현수야, 누가 퍼스트를 서는 게 좋을까? 경석이 형, 어때요?”

둘 다 달력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현수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혁민 선생님이 위장 파트 손을 놓으신 이후로 시간 내기가 만만치 않아. 지동훈 선생님이나 나나 수술이 잔뜩 밀렸어.”

“나도 요즘 이상하게 환자가 몰려. 박승준 선생님하고 같이해야 할 수술도 몇 개 있고.”

“결국 시간 내기 어렵다는 거죠?”

“시간이야 내려면 낼 수도 있었는데, 너 때문에 글렀지. 요즘 이준영 선생님 수술 들어갈 때마다 눈에 불을 켜신다. 눈빛에 타 죽을 지경이야.”

김지훈 때문이라니?

“내가 뭘 어쨌다고요?”

“라파로 둘이 하잖아. 너나 이준영 선생님은 쉬울지 몰라도 난 아직 어렵다. 대장암 라파로로 하고 싶어서 도전한 게 여기까지 올 줄 몰랐네.”

“형, 난 비만 환자 상담까지 늘었어요. 이혁민 선생님 수술은 들어갈 생각도 못합니다.”

죽는 소리가 아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바빴다. 각자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복강경이나 혈관도 그 연장선일 것이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간담도부터 유방 파트까지 힘들기로 따지자면 단연 으뜸이었다. 말해야 입만 아플 일이고, 투지를 부를 때가 아니었다. 어쨌든 신현수와 이경석이 퍼스트를 서기 힘들다는 사실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런데 크게 당황하지 않는 눈치였다. 잠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스윽 손일석을 보았다.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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