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권한과 부담 Ⅱ (2)
마지막 바늘이 점점 가까워졌다. 등이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손일석은 여전히 눈가에서 힘을 빼지 못했다. 입이 바짝 말랐는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사악! 사악!
이제 한 바늘 남았다.
동맥-인조 혈관-정맥이 ‘H’ 자 모양으로 완벽하게 연결되기 직전이었다.
연결 과정 못지않게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인조 혈관 내 공기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혈관 내 소량의 공기는 문제없다지만, 있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생리식염수를 채웠다. 바늘구멍처럼 작은 틈 사이로 뽀글뽀글 공기가 새어 나왔다. 신중하게 연결 부위를 확인하고 마지막 수처를 했다. 손일석의 손이 시작할 때와 똑같은 힘과 속도로 움직였다.
눈으로 보기에는 깔끔하게 끝났다. 혈류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수술의 성패가 달렸다. 긴장이 훅훅 치솟았다.
툭! 툭!
혈관 겸자를 풀었다.
동맥에서 출발한 피가 인조 혈관을 거쳐 정맥으로 힘차게 흘러 들어갔다. 바늘구멍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양이 많으면 수처든 타이든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었다.
“거즈.”
피를 닦아 내며 출혈량을 확인했다. 아주 미세하게 살짝 묻어 나오는 정도였다.
아직 안심할 시간이 아니었다.
흘러나온 피가 고여 혈전을 형성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동맥과 정맥 주변 조직을 복구시켰다. 투석 때 굵은 바늘이 들어갈 인조 혈관 일부를 피부 가까이 위치시켰다. 신경이 눌리지 않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피부를 닫았다.
눈을 감은 채 신중하게 인조 혈관에서 전해지는 박동까지 느낀 후에야 김지훈과 손일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단계 중 수술 팀의 강한 집중력과 고도의 인내력을 요구하지 않은 과정은 없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호흡이 맞았기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훈아, 잘된 것 같은데 어때?”
김지훈이 입을 모은 채 손일석을 보았다.
내심 수술 전 숱한 어려움을 예상했는데, 단 한 가지도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잘못 생각했다는 방증이었다. 바로 수술 팀, 특히 손일석의 실력이었다.
그 때문에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동기와 후배들을 어떻게 보고 있던 거지? 나만 잘났다고 설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다른 사람의 실력을 낮게 평가하는 것 또한 자만의 일종일 것이다. 그런 의미가 맞는다면 큰 실수를 했다.
손일석은 결코 군 병원 생활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송진우가 기울인 엄청난 노력을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과소평가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밤 10시 넘어 끝난 수술이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주었다. 동기 중 누구와 기형종 수술을 해도 좋다는 스승의 말이 새로운 의미를 담고 다가왔다.
깊은 고민에 잠긴 김지훈을 힐끗 본 손일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휴게실로 들어갔다. 간만에 세컨으로서 손을 보탠 송진우도 대기 모드에 들어갔다.
늦은 밤, 휴게실이 적막했다.
‘오늘은 뭘 지적할까?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었을까?’
수술 과정을 되새기는 손일석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친구에게 타는 것은 분하지만 지적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컸다. 최대한 빠르게 피와 살로 만들지 않으면 3개월이라는 시간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덜컥!
김지훈이 조용히 옆에 앉자 손일석이 눈가를 좁히며 귀를 활짝 열었다.
잠시 말이 없자 재촉하듯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깨달았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내가 아는 걸 모두 전해 주는 거야. 스승님 말씀대로 속 좁은 사람은 없어. 일석아, 네 덕분에 중요한 걸 알았다. 고맙다.’
가슴을 펴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불안해한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지적은 별개 문제였다. 손일석이 혈관 파트를 확실하게 맡았을 때, 친구의 난리법석은 한때의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일석아, 혈관하고 인조 혈관은 단단한 정도나 질긴 정도가 다르잖아. 타이할 때 힘주는 방향이 다르거나 일정하지 않으면 어디가 찢어지겠어?”
손일석이 입을 열지 못했다. 주의한다고 했는데 눈에 밟힌 모양이었다.
물론 절대 그런 문제를 일으킬 실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사람의 손은 기계처럼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단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었다.
‘혈관이 찢어지겠지. 내가 반대로 당기면서 타이를 했네. 큰 실수를 했는데 손상 안 줘서 정말 다행이다.’
김지훈이 모질게 한마디 더 했다.
“다음 주에 똑같은 수술 하나 더 있어. 잊지 마. 우린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야.”
“미안하다. 주의할게.”
내친김이다.
“열 때도 그렇고, 마무리할 때도 바짝 긴장해. 주변 조직 손상 주면 오래 써먹지 못한다는 거 잊었어? 어느 수술이든 과도한 힘은 금기잖아.”
결국 휴게실이 활활 불길에 휩싸였다. 다음 타자로 들어온 송진우는 얼굴까지 불타올랐다.
여기서 끝내면 아무리 사람 좋아도 앙금이 남는다. 여느 때처럼 함께 둘러앉아 따스한 커피 한 잔씩 마셨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혈관 수술은 정말 타고났네.’
“일석아, 솔직히 너 때문에 긴장된다. 혈관 수술 다시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 송진우, 너도 이젠 기본이 몸에 익었구나. 그렇게만 해.”
마지막 한마디에 친구와 후배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공연히 쑥스러워진 김지훈이 먼저 일어서 나가자마자 손일석이 송진우를 보며 양손을 활짝 폈다.
송진우가 눈만 껌벅거렸다.
“뭐 해? 하이파이브 몰라?”
“아는데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눈치가 왜 이렇게 없어? 하오문도로 써먹고 싶어도 쓸 수가 없네. 너 지훈이한테 처음 들은 소리지? 나도 처음 들었다. 우리 중 제일 빡빡한 놈이 저런 말을 했으면 기념 정도는 해야지.”
‘난 자주 듣는데.’
혀끝까지 밀려온 말을 간신히 집어삼킨 송진우가 두 손을 들었다. 마지못해 들렸던 손이 활기차게 맞부딪쳤다. 선배가 같이 축하하자는데 마음을 담는 것이 마땅했다.
전에 없는 신뢰를 가졌지만 허수진을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유리한 점이 보이질 않았다.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신 상태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후복막과 실타래처럼 연결된 혈관을 떠올리면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었다. 난소와 연결된 종양을 제거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했지만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 없는 시간을 짜내 자궁 적출술을 참관했다.
“무슨 일이야?”
“기형종 환자 한 명이 있는데 한쪽 난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정확한 과정을 보기 위해 들어왔는데, 어떻게 수술하시는지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 14살짜리 아이? 얼마든지 봐도 좋은데, 난소 쪽이 문제가 아니잖아. 가능하겠어?”
“최선을 다해야죠.”
“김 교수도 자신 없는 모양이구나. 역시 혈관이 문제지? 상황이 안 좋던데, 수술 잘됐으면 좋겠다.”
컨설트를 의뢰하기 전 산부인과에서도 이미 검토를 했을 것이다. 분야가 다르지만 노련한 의사마저 고개를 저었다는 사실에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문득 유방 수술을 하며 미용이 중요하다는 이혁민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자궁과 난소는 여성에게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비록 지적 장애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난소는 못 살리겠죠?”
“사이즈가 작아도 안 되는 일이야. 성인이었으면 상실감이 클 수도 있는데 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는 잘 모르지만 3급이라고 해도 그런 면은 똑같지 않겠어?”
생각이 많아지는 말이었다. 어떤 장애가 있든 인간의 기본권은 달라지지 않는다. 성별을 넘어 존중받아야 한다. 사회적 약자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수많은 난관 때문인지 그 어떤 수술보다 치열한 수술이 될 것이란 예감이 다가왔다.
허수진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크게 불안할 일이 없었다. 안이 잘 돌아가면 밖에서도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환자와 수술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만큼 병동과 응급실 일도 늘어 수술을 들어갈 수 있는 전공의가 급격하게 부족해진 것이다.
신임 1년 차가 들어왔지만 퍼스트는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교수 수술에서 인원을 줄일 수는 없었다. 전임 모두 빠듯한 인원으로 수술해야 했다. 써드는 당연히 없는 자리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슬슬 한계에 부딪쳤다.
마이너 수술은 무조건 3명이 수술했다. 심하면 2명이 하며 간호사의 손을 빌리는 경우까지 생겼다. 아뻬라고 해도 손 하나가 있고 없음은 대단히 큰 차이다. 집도의와 퍼스트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더욱 강한 긴장이 요구됐다.
“요새 일반외과 수술이 왜 이렇게 많아? 쉴 틈이 없어.”
그나마 점심은 꼬박꼬박 챙기는 마취과마저 힘들다고 고개를 저을 지경이었다.
전공의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김지훈이 나서서 특별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오프 받으면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퇴근해. 퇴근 시간 임박해서 아래 연차에게 무리한 오더 내리면 치프고 뭐고 가만 안 둔다. 이혁원, 나종진, 1년 차들도 작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100일 당직이라고 심하게 밀어붙이지 마.”
이 와중에 졸고 있는 전공의가 있으니 할 말 다 했다. 그것도 오만석이다. 응급실에서 살다시피 한 대가였다.
“오만석, 너도 체력 관리하고 오프 반드시 가.”
이 정도 조치로 될까?
수술을 앞둔 김지훈이 일반외과 전체 수술 스케줄 표를 보며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메이저 수술부터 마이너 수술까지 줄줄이 이어져, 두세 방에서 동시에 진행해도 저녁은 돼야 모두 끝날 상황이었다.
‘수술 많은 건 좋지만 요즘은 많아도 너무 많다. 세 명이 라파로를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네.’
그나마 복강경은 3명이 해도 무리가 없었다. 집도의, 카메라를 잡아야 하는 퍼스트와 시야 확보용 기구를 잡는 세컨만 있으면 충분했다.
문제는 동시에 벌어지는 다른 수술이었다.
뾰족한 수가 없을까 고민해 봤지만 부족한 인원을 보충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수술 건수를 줄이면 환자가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일단 메이저 수술을 우선순위에 두는 수밖에 없네.’
그때 신현수가 눈가를 잔뜩 찌푸린 채 탈의실로 들어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일 있어?”
“위암 수술인데 세 명이 해야 돼.”
마침내 메이저 수술이 겹친 날, 적정 인원인 4명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마이너 수술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좋은 수가 없을까?
도움이 되는 기구가 있긴 했다.
“아쉬운 대로 셀프 리트랙터 사용은 어때?”
셀프 리트랙터(Self Retractor).
메이저 수술 시 배를 연 후 복벽 양쪽을 고정시키는 장치다. 리트랙터를 끌 사람이 필요 없다는 말에 오래전 도입한 기구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환자의 복부보다 약간 위쪽 수술대에 쇠기둥을 고정시켜야 해 거치적거리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야 확보 면에서도 편리하기는커녕 방해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었다.
신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도리어 불편만 가중시키는 거 잘 알잖아?”
한두 시간 내에 끝나면 모르지만 최소 대여섯 시간은 걸리는 수술이다. 병동 환자를 보아야 하는 전공의까지 투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배를 열 때는 몰라도 위 절제할 때는 네 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한 명, 한 명이라.’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신현수를 보았다.
방법이 있을까?
뾰족한 수가 있었다면 벌써 누군가가 생각해 냈을 것이다.
몰려드는 환자와 수술이 아니더라도 일반외과 지원자가 줄어드는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이러다 수술 못 받아서 죽는 사람 생기겠다. 바이탈을 다루는 과는 대우 좀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뼈 부러진 것보다 목숨 구하는 수술이 더 쌀 수가 있어?”
툴툴 불만을 내뱉었지만 의료 정책이 그렇다. 의사들이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정책 당국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답답한 가운데 수술실로 들어갔다.
강병옥과 오하석이 준비하고 있었다. 이혁원은 메이저 수술에 들어갔을 것이다.
“병옥아, 넌 우리 파튼데 회진이나 수술 때 말고는 얼굴 보기 힘들다. 이혁민 선생님이 일을 많이 주셔?”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논문 하나 주셨고, 시간 남으면 위장관 쪽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쳤다.
‘어쩐지, 현수 수술할 때 네 얼굴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러시지? 요샌 3년 차도 눈도장 찍으시나? 어쨌든 병옥이 네게 나쁜 일은 아니다.’
의문도 잠시, 마취가 시작됐다.
서둘러 손을 씻고 들어와 수술 가운을 입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복강경 기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실, 안전, 능력.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여느 때처럼 마취과부터 수술 팀 모두 안정적인 눈빛으로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미 적정 인원을 확보한 이상 오늘은 부족한 인력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다.
수술을 시작했다.
“메스! 에어 팁, 트로카, 카메라.”
평소와 똑같은 과정으로 카메라까지 넣은 김지훈이 신중하게 담낭과 간을 확인했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트로카를 찾았다.
툭! 툭!
복막을 뚫고 기구 두 개를 삽입했다.
강병옥이 카메라 각도를 조절해 남은 하나의 기구가 들어올 위치를 비쳤다. 담낭 이외의 질환이 없는 환자였기에 어떤 문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눈가를 좁힌 채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병옥아, 담낭 염증이 심해 보이지 않았지?”
“예? 그렇게 보였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혹시 놓친 부분이 있었는지 불안해진 강병옥이 다시 담낭을 비쳤다. 담석만 아니라면 거의 정상에 가까운 소견이었다.
숱하게 해 온 수술인데 무엇 때문에 머뭇거릴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이제야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구멍을 뚫을 트로카를 준비하던 고경아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