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권한과 부담 Ⅱ (1)
목소리가 쫙 깔렸다.
“김지훈, 수술 팀을 기분과 감정으로 짜?”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순간 등짝이 서늘해진 김지훈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야?”
고민은 많은데 대답할 수가 없었다.
동기가 아니라 김지훈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문제였다. 누군가 한 명을 택해야 한다는 현실과 그로 인해 서운해할지 모른다는 걱정이자 미안함이었다.
한동안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불현듯 말기 간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길을 떠났을지도 모르는 금경태가 떠올랐다.
전공의 때부터 시작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단 한 발도 물러나지 않았다. 자존심이었는지, 앞서고 싶다는 욕망이었는지 몰라도 최악의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그때 내가 한 발만, 단 한 발만 물러났다면 어땠을까?’
평생 회한으로 남을 일이지만, 절대 자신과 금경태의 전철을 밟을 제자들이 아니었다. 동기이자 친구라는 사실에 고민하는 모습이 고마울 뿐이었다. 엄하게 가르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이런 고민이 필요한 때겠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중 하나야. 객관적인 시각만 잃지 않으면 서운한 점이 있어도 곧 해결되기 마련이다.’
인간적인 문제로 조언을 구하러 왔다.
스승으로서 도움을 줄 때였다.
“현수와 경석이 중 누구도 좋아. 손일석도 괜찮다.”
“일석이도요?”
“너희들끼리 상의해서 혈관 수술 줬다며? 걱정할 정도로 속 좁은 놈들 아니다.”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잠깐 섬뜩했어도 조언을 구하길 잘했다.
어느 한 명 콕 찍어 주면 가장 좋겠지만, 누가 퍼스트를 서도 무방하다는 말에 의의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동기를 믿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 결정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알아서 판단하겠습니다.”
“유방하고 갑상선은 어때?”
한껏 진지하던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제자를 지켜보고 있는 스승이었다. 무뚝뚝하고 가차 없지만 속마음을 솔직하게 꺼낼 수 있었다.
“일이 많아서 힘들기도 하지만, 사실 제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 과장은 아무 이유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야. 우린 일반외과 의사다. 너만이 아니라 다들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스승과 교수들의 의도가 명확하게 다가오진 않지만, 믿고 따르다 보면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참 더 배워야 하기에 이 역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었다.
‘녀석! 불평할 만도 한데 고맙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문을 열다 말고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구미 과장에 이어 혈관 주임 교수 역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직위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신 교수가 네게 혈관 파트를 맡긴 이유를 생각해. 넌 지금 주임 교수야.”
‘쿵’ 문이 닫혔다.
주임 교수란 말에 이유 모를 땀이 맺혔다.
앞으로 수없이 경험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정에 이끌리면 도리어 서운함을 가질 동기들이었다.
주임 교수에게 주어진 권한, 책임, 부담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스승님 말씀대로 누구와 하든 서운해할 리가 없어. 김지훈이 아니라 혈관 파트를 맡은 의사로서 판단해야 돼.’
환자에게만 신경 쓰면 모든 일이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어렵고 판단하기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양한 감정과 서로의 관계가 얽혔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참 어렵다.
고경아와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었다.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고민을 함께 상의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문득 임신 중반기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상당히 오래 걸릴 텐데, 기형종 수술은 안 들어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
“힘들까 봐요? 아직은 괜찮아요. 우리 남편이 집도하는데 병원에서도 내조해야죠.”
“안 그래도 되는데. 사실 경아 씨가 어시스트하면 걱정되면서도 안심하긴 해요.”
고경아가 미소를 머금으며 부엌을 가리켰다.
설거지가 남았다.
남편으로서 외조를 잊으면 안 된다.
쓱쓱! 싹싹! 쏴아아아!
고춧가루 남지 않도록 구석구석 깨끗이 닦자!
다음 날, 허수진의 부모를 볼 수 있었다.
장수연 말대로 어머니는 누가 소아과 의사인지, 누가 집도를 하는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적장애는 부모와 자식 간의 벽이 아니었다.
수진이는 서너 살 어린아이처럼 엄마 손을 놓지 못했다. 딸의 눈물을 본 부모가 펑펑 눈물을 흘렸다. 딸을 보다가도 하얀 가운만 보이면 허리를 굽히며 어둔한 발음으로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장수연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보시는 것처럼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세요. 아버님은 2급이지만 1급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세요. 수술해야 한다는 말도 확실하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프지 않게 해야 한다고만 말했어요.”
“문제는 없겠습니까?”
“필요한 일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선생님, 수술은 잘될까요? 어떤 때 보면 장애를 가진 분들이 우리보다 더 고마워하고, 더 아파하고, 더 슬퍼해요. 수진이 부모님도 그런 분들이세요.”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만 내쉬었다.
허수진은 하루 이틀 사이에 좋아질 상태가 아니었다. 사회적 약자인 아이와 부모 때문이라도 반드시 암 덩어리를 모두 제거하고 싶었다. 아직 수술 날짜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수술 팀을 못 꾸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허수진을 살피고 병실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모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절룩절룩, 아버지는 다리도 불편했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 하나 얹은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장애는 단지 남들보다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뿐이다. 그 차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힘들지 않은 사람 없기에 개개인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개개인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허수진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진 않을 것이다.
‘건강하다는 것만도 행복이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허수진의 상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오랜 수술 시간, 피할 수 없는 출혈 등을 버티려면 충분한 체력과 영양 상태가 필요했다.
무리한 일정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아과 교수와 상의 끝에 일단 2주일 후 수요일로 날짜를 잡았다. 정말 원치 않는 이유 때문에 수술 팀 구성에 여유를 얻었다.
마음의 여유일 뿐, 전임된 이후 편한 날이 없었다. 신현수와 이경석도 무척 바빠져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1기 대장암과 고도 비만이라는 앞선 두 건의 수술이 가져온 여파일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이혁민 교수가 태연한 말투로 하나 더 쌓았다.
“오늘 진료 일찍 끝나지? 갑상선암하고 유방암 수술 있다. 둘이면 되니까 오하석하고 들어와라. 현수하고 지 교수가 바빠서 병옥이는 그쪽으로 보냈다.”
김지훈이 거의 울상이 됐다.
강병옥과 오하석은 더 이상 혈관 파트가 아니었다. 전공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지만 유난히 많은 일을 주고 있었다. 의아한 일이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암담했다.
이미 혈관 수술 두 건이 잡혀 있다.
한 건은 손일석이 집도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건이 문제였다.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에서 동맥과 정맥을 연결해야 한다. 난이도가 확연히 다른 데다 손일석은 전공의 때 마지막으로 본 수술이었다.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근차근 여유를 갖고 수술하려 했는데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과장의 오더다. 퇴근을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일찍 들어가기 글렀네. 언제 다 하지?’
고경아도 이미 스케줄을 보았을 테지만 미안한 일이었다. 슬쩍 눈치를 보고는 오하석과 거의 비슷한 몰골로 수술실로 향했다.
잘근잘근, 조곤조곤.
‘어후! 불길에 비수에 논리의 바다까지, 단 하나도 헤어나질 못하네. 그나저나 날 아주 유방 파트로 삼으실 생각인가?’
1년 차 앞에서 식은땀 뚝뚝 흘렸다.
어려운 수술을 앞두고 예정보다 일찍 들어온 손일석이 수술실 창문 너머에서 씨익 웃었다.
‘지훈아, 너는 안전지대인 줄 알았지? 자식! 벌받는 거야. 나한테 잘해. 현수가 만석이하고 병옥이 잡는 걸 보니까 태우는 실력은 둘 다 탑이지만, 누구든 천적이 있는 법이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이혁민 교수가 일어나자 검은 그림자 하나가 휙 사라졌다.
오하석에겐 운수 대통한 날이었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다져진 놈이 누굴 태울까?
김지훈은 한숨만 푹푹 쉬고, 혈관 수술을 앞둔 손일석은 살판났다. 또 한 번 집도를 하고 어김없이 휴게실에 들렀는데 찢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 활활 태워라. 날 태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달 안에 깨끗하게 해결해 주마.’
강병옥 대신 들어온 송진우의 표정이 묘해졌다.
‘전문의라는 사실이 이렇게 무서웠구나. 2년을 넘게 손을 놓다시피 하셨다는데, 내 눈에는 김지훈 선생님과 달라 보이질 않네.’
창밖이 깜깜했지만 아직 수술 하나 더 남았다.
손목이 아니라 팔꿈치다. 해부학적으로 훨씬 더 복잡했고, 위험 구조물도 많다. 이미 양쪽 손목 혈관을 다 쓴 상태이기 때문에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수술이었다.
약간의 휴식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른 김지훈과 손일석이 훅 숨을 내뱉었다. 이번 수술이야말로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할 때였다.
툭하면 혈관 수술을 들어오게 된 송진우는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잠깐 거드는 세컨이 아니라, 정말 할 일이 많은 세컨을 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국소마취로는 통증을 조절할 수 없다. 마취과 당직 교수가 직접 어깨 부분에서 마취를 해 한쪽 팔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켰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일석아, 오래간만에 보지만 이번 수술도 잘해 낼 수 있겠지? 송진우, 부탁한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신중했다.
피부를 절개했다. 조심스럽게 지방과 근육을 제쳤다. 근육 사이로 주행하는 혈관을 찾아야 한다.
만성 신부전 환자의 근육은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수술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숨어 있는 신경까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했다.
“진우야, 리트랙터 걸어.”
조직을 활짝 벌렸다.
서로 연결해야 할 동맥과 정맥을 찾았다.
바로 옆에 붙어 주행하는 혈관이 아니기 때문에 인조 혈관으로 연결해야 한다.
봉합도 문제지만 투석 바늘을 꽂아야 할 인조 혈관이 주변 조직에 눌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동맥과 정맥 사이에서 보이는 하얗고 가느다란 신경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칫 심하게 눌리면 한쪽 팔을 들지도 못할 수 있었다.
“진우야, 이 수술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신경이다. 절대 잊지 마.”
일말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손일석이 듣기를 바라고 한 말일지도 몰랐다.
따르륵! 따가각!
혈관 겸자로 정맥을 잡고 열었다. 헤파린이 섞인 식염수로 내부를 깨끗하게 씻어 냈다. 석션기를 든 송진우의 손길이 여간 신중한 것이 아니었다.
인조 혈관을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수처 시작합니다.”
루뻬를 통해 정맥과 인조 혈관이 크게 확대됐다.
손목에 위치한 정맥보다 훨씬 굵지만 혈관 벽 자체가 얇고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인조 혈관이 전하는 감촉도 실제 혈관과는 사뭇 다르다.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신중하게 첫 수처를 시작했다. 은빛 바늘을 따라 가늘고 검은 실이 혈관 벽과 인조 혈관을 통과했다.
손일석이 조심스럽게 타이하고, 송진우는 시야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조금씩 정맥과 인조 혈관이 이어졌다.
나직한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확실하게 연결했다.
따르륵! 따가각!
혈관 겸자로 손목 부위에서보다 훨씬 강하게 뛰는 동맥을 잡고 열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해 혈관 벽을 확실하게 시야에 두었다.
강한 혈류가 뿜어져 나오는 부위다.
정맥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연결해야 한다. 타이 역시 신중하면서도 정확하지 않으면 수술 후 결과가 극도로 나빠진다. 스스로를 믿듯 퍼스트와 세컨에게 절대적 신뢰를 보내야 할 때였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사악! 사악!
은빛 바늘이 혈관 벽을 통과했다. 검은 실에 단단한 매듭이 만들어졌다.
지이익! 지이익!
가느다란 석션 팁을 따라 수술 부위를 씻어 낸 물기가 사라졌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히 수처와 타이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어떤 장기 연결보다 어렵고 위험한 과정이었다.
김지훈의 손길이 느려지는 만큼 손일석의 이마에 땀이 진해지고, 송진우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 바늘 한 바늘 진행될수록 수술 팀의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됐다.
동맥과 인조 혈관이 확실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귀중한 혈관 두 개를 날려 먹는다. 이미 양 손목 혈관이 망가진 환자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김지훈이 매듭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물다고 해도 제법 경험을 쌓은 수술이었다. 신기동 교수에게 가장 혹독하게 교육받은 과정이었다.
무슨 일인지 이질적인 두 조직의 감촉에 수처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왜 불안감이 가시질 않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