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09화 (809/1,329)

1화. 권한과 부담 Ⅰ (2)

Mental Retardation.

(지적장애, 혹은 정신지체)

정도가 꽤 심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수술 전부터 후까지 이로 인한 무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환자만이 아니라 의사에게도 상당한 압박이었다. 불편을 호소할 때만이라도 병원을 찾았다면 많은 면이 달랐을 것이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부모는 뭘 하고 있었을까?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지만 솔직히 화가 났다.

아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다. 어떤 이유를 대도, 장애가 있든 없든 아이는 사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진우야, 방치나 무관심도 이 정도 되면 학대지?”

“아무리 무심해도 몇 년 전부터 알 수 있었을 텐데, 이제야 병원에 왔다면 학대 정도가 아닙니다. 아이를 죽음으로 몬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송진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유난히 흥분한 기색이었다. 의사 표현이 원활하지 않을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방치한 부모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내심 다르지 않았지만 의사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감정이 개입되면 그만큼 치료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동안 피치 못할 사정에 직면한 경우도 제법 보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믿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저래 무거운 마음으로 허수진을 찾았다.

한숨에 한숨이 더해졌다. 아니, 한숨조차 쉬지 못할 상황이었다.

소아과 교수와 젊은 여자가 함께 있었다.

“선생님, 아이하고 의사소통은 됩니까?”

“3급이라 일반적인 대화는 거의 문제없다고 보면 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허수진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 간단하게 의견을 나누고 아이부터 진찰했다.

예상대로였다.

비쩍 마른 정도가 아니었다. 뼈만 남은 팔다리가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또래에 비해 키도 상당히 작아, 도저히 14살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배 속을 채운 종양이 오랫동안 정상적인 식사를 방해하며 가뜩이나 부족한 영양분까지 빼앗은 것이다. 심하게 토하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수액과 영양분도 온전히 허수진의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혈관으로 정상 조직과 연결된 암 덩어리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을 것이다.

복부에서 전해지는 압력으로 숨을 쉬기조차 버거운지 반쯤 누운 자세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창백한 입술과 영양실조로 인해 버짐까지 핀 얼굴이 애처로웠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반갑다. 난 김지훈이야.”

이 와중에도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정상적인 아이들에게서는 도리어 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이유 모를 한숨이 나왔다. 마음이 답답한 건지, 무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담요를 걷었다. 터질 것처럼 솟은 배가 딱딱했다. 거대한 종양이 전하는 촉감이었다. 상복부 일부를 제외하고 말랑한 부분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수진아, 많이 아프니?”

“많이 아파요.”

“밥은 잘 먹었어?”

“배고픈데 먹을 수가 없어요. 자꾸 토해요.”

단 하나도 정상 수치를 보이지 않은 혈액 검사 결과가 아니더라도 수술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가슴이 무거워졌다.

소아과 전공의가 들어왔다. 하얀 가운이 자신을 삥 둘러싸자 불안한 모양이었다. 허수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주고는 소아과 교수를 보았다.

“영양실조와 구토 때문에 전신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체중을 불리긴 어렵지만 일주일 정도 치료하고 상태 나아지는 대로 수술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14살 아이가 15킬로그램도 되지 않았다. 복부 종양의 무게를 빼면 심각한 체중 미달이었다. 수술 전 처치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다. 소아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기 때문에 소아과에 맡기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저희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온 거죠? 혹시 부모가 없는 아이인가요?”

소아과 교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도 다 지적장애 1, 2급이야. 생활 보호 대상자라 동사무소에서 여러 번 가 보긴 했다는데, 아이가 이런 상태인지 확인은 못했다네. 여기 계신 분이 복지 기관 관계자 분이야. 얼마 전에 발견해서 데리고 오셨어. 인사하시죠.”

“장수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일반외과 김지훈입니다.”

역시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었다. 아이 상태가 좋지 못한데 부모는 더 심각한 장애가 있다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1, 2급이라는 말에 대화가 가능한지 궁금했다.

“혹시 부모님은 대화가 가능한가요?”

장수연이 고개를 저었다.

“2급인 아버님은 어느 정도 가능해야 하는데, 거의 1급에 가까울 정도예요. 어머님은 아예 1급이라 지금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세요. 아버님도 아파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정도만 이해하는 것으로 보여요.”

김지훈이 목소리를 낮췄다.

“굉장히 위험한 수술입니다. 아이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그런 말도 못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못 알아들으실 거예요.”

부모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반드시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왔다.

“그럼 수술할 때 동의는 누구에게 받아야 합니까?”

“친척이라고 할 사람이 아예 없네요. 부모님도 어려서 버려진 것 같아요. 이런 경우 대부분 부모님과 저희, 행정 기관 관계자 분들이 다 모여서 동의서를 작성했습니다.”

허수진의 부모는 더 아프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시려 왔지만 치료는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하지만 방법이 있다니 다행이었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죠?”

“어머님은 반드시 동행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버님이 폐지를 주어야 아이를 치료할 수 있다고…….”

장수연이 말꼬리를 흐렸다.

가난이 피해 갈 리 없었다. 정부 지원으로는 먹고살기도 빠듯할 것이다.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병원에 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답답한 일투성이였다.

일단 환자에게 집중하는 것이 먼저였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CT하고 혈관 촬영 사진을 갖고 가서 검토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요. 잘 부탁해.”

대화를 나누는 내내 송진우가 허수진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무슨 말을 나눴는지 병실을 나올 때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정확하게 발음하려는 듯 마치 글자를 읽는 것처럼 또박또박 들리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 아픈지 모를 일이었다.

의국으로 돌아와 다시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크기가 커도 난소에서만 발생했으면 기형종을 제거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다.

문제는 후복막 부분이었다. 산부인과에 의뢰하지 못한 이유였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무조건 완전 적출이 원칙이다. 아무리 보아도 절제가 가능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실타래처럼 연결된 혈관은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신현수와 이경석에게 전화했다.

“진우야, 넌 손일석 선생에게 연락해.”

잠시 후, 바쁜 와중에도 동기 4명이 모두 모였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제각각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간 김지훈이 자신들을 한자리에 모을 때면 꼭 어마어마한 수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송진우가 CT와 혈관 촬영 사진을 걸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신현수와 이경석이 깜짝 놀라며 뷰박스에 얼굴을 바짝 가져갔다. 손일석이 졸음이 가득한 눈가를 비비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이거 뭐야? 뼈 같은 게 보이네. 혹시 기형종이야?”

“맞아. 크기도 문제지만 후복막과…….”

“기형종인데 혈관이 왜 이렇게 발달했지? 후복막과 연결된 혈관은 또 뭐야? 살벌하네.”

열심히 노력한 티가 났다.

“악성이 의심되지만 혈관 문제는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종양이 이렇게 커진 이유겠지.”

악성이든 양성이든, 종양 내 혈류가 풍부하면 영양 공급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비정상적인 크기로 자라는 특성과 맞물려 더욱 크게 자랐을 것이다.

CT에 적힌 환자의 성별과 나이를 확인하던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기형종의 크기를 감안해도 지방층이 거의 보이지 않는 소견 때문이었다.

“이제 14살이네. 체중이 어떻게 돼?”

“15킬로그램 정도밖에 안 나가.”

아이 아버지인 이경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 도대체 원래 체중은 얼마라는 거야? 부모는 뭐 하는 사람인데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

“환자도, 부모님도 모두 지적장애가 있어요.”

상황을 전해 들은 이경석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다들 여러 생각이 드는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신현수가 가장 먼저 냉정을 되찾았다.

“지훈아, 혈관 처리가 보통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수술이 가능하겠어? 너무 엉켜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보냈겠지. 신기동 선생님이 안 계시지만 혈관 파트는 맞잖아.”

난소에서만 발생했으면 산부인과에서 수술한다. 후복막과 어지럽게 연결된 혈관 때문에 일반외과에 의뢰한 것이다. 능력 차이보다 분야 차이였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인데 혈관 파트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상당한 부담이 뒤따랐다. 다른 과 교수들도 전임, 특히 김지훈을 믿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믿음은 일반외과 내부에도 존재한다.

교수들이 회진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기형종 자체가 매우 드문 데다 일반외과는 수술할 기회조차 없는 질환이었다.

이준영 교수,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는 물론 박승준 교수와 지동훈 교수까지 관심을 보였다.

의국이 교수들로 바글거렸다.

“지훈아, 교수야, 기형종이 왜 후복막을 먹었니? 잠잠하다 싶더니 또 어려운 케이스가 왔구나. 혈관까지 생겼으니까 고민 많이 해야겠다. 근데 수술하기로 했니?”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반드시 해야지. 이제 14살에 장애까지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지훈아, 교수야, 출혈 못 잡으면 큰일 난다. 큰일. 확실히 하자. 확실히.”

“김지훈, 송재덕 선생님 말씀대로 무척 위험해 보인다. 준비 완벽하게 하고 수술 팀 잘 꾸려서 문제없도록 해라. 퍼스트도 너희들 중에 한 명이 서야 안전할 것 같다.”

당연한 것처럼 집도의로 김지훈을 거론했다.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자 이준영 교수가 확실하게 정리했다.

“이 환자는 혈관 파트 환자야.”

몇몇 귀중한 조언이 이어진 후, 교수들이 모두 회진을 돌기 위해 의국에서 나갔다. 전공의들까지 싹 사라져 동기 4명만 남았다.

신현수가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참여하고 싶다는 강한 열의가 느껴졌다.

“수술 언제 할 생각이야?”

“아이 상태부터 호전시켜야 해서 일주일은 지나야 날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우리 모두 시간이 없어. 수술 전에 다른 환자 스케줄 조정해야 하고, 미리 수술 팀을 짜야 계획이라도 빨리 세울 거 아냐? 누구하고 할 생각이야?”

이혁민 교수는 퍼스트도 전임 중 한 명이 서야 한다고 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능력과 호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특히 이번 수술은 혈관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런 환자를 대비해 신기동 교수도 전임 모두를 가르치며 혹독하게 밀어붙였을 것이다.

“그게 좋겠지? 경석이 형,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함께 수술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하게 보이는데, 누가 가장 적절할지 판단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신현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손일석은 얼굴만 찡그리고 있었다.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했다.

이경석이 원론만 거론했다.

“지훈아, 퍼스트는 집도의가 결정해야지.”

“예. 이삼 일 내에 결정할게요.”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실력은 모두 엇비슷하고 호흡도 잘 맞았다. 그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누구와 함께 수술하는 것이 유리할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위장관 쪽이었다면 신현수, 대장 쪽이라면 이경석과 함께 수술하면 된다. 설혹 욕심을 내도 각자 파트를 고려하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막 집도를 한 손일석은?

‘이런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능하겠지만 신현수나 이경석보다 확실하게 퍼스트를 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손이 돌아왔다고 해도 경험 차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신경 쓰이는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명색이 주임 교수라지만 모두 동기다. 수술 욕심, 혹은 하고자 하는 의욕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다. 손일석도 수술의 위험성이나 어려움보다 애매모호한 입장 때문에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덜컥 한 명을 택하면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완전히 떨칠 수가 없었다.

혼자 결정하기 힘은 일이 생기면 당연히 상의해야 한다. 생각할 여지도 없이 스승의 조언이 필요했다. 지금도 신현수와 이경석에게 복강경 수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가장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것이라 믿었다.

퇴근할 시간이었다. 커피 두 잔 들고 후다닥 달려갔다.

‘이젠 어려운 수술이 있어야 얼굴을 제대로 보네. 너희들끼리 상의해도 다를 바가 없어. 자신감을 갖고 하면 된다.’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커피는 이미 맛있게 한 모금 마신 후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선생님, 수술 팀 때문에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누가 좋을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왜? 부족한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아닙니다. 현수나 경석이 형 둘 다 퍼스트를 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구 한 명을 택하면 자칫 기분 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순간 이준영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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