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801화 (801/1,329)

7화. 궁합 잘 맞는 라이벌 (2)

이준영 교수의 힘은 엄청났다.

김지훈은 단 한 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술 팀 전원이 강한 믿음하에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수야, 처음은 누구나 어려워.’

‘신현수 선생, 그동안 들인 노력이 결코 가볍지 않아.’

신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이준영 선생님과 수술 팀 모두 날 믿고 있는데 자신 있게 해 보자. 실수가 있다고 해도 지훈이가 있잖아.’

마지막으로 윤서연에게 눈길을 주었다.

‘할 수 있어. 난 당신을 믿어.’

동료이자 가족의 응원은 커다란 힘이었다.

기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메라에 잡힌 첫 번째 박리 조직을 신중하게 잡았다.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처컥! 처컥!

규칙적인 기계 소리가 신현수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김지훈의 어시스트와 지동훈 교수의 말없는 응원이 불안과 두려움을 씻어 주었다.

“보비! 켈리! 수처! 클립!”

조금씩 비장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등짝은 축축해졌지만 눈빛만은 차분하고 냉정했다. 굵은 동맥 단면이 드러날 때마다 드는 섬뜩한 기분이 도리어 강한 집중력을 유발시켰다.

띠! 띠! 띠! 띠! 띠!

환자의 바이탈도 안정되게 유지됐다.

툭! 툭! 툭!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봉합한 실이 잘리고 은색 클립이 지방조직 속으로 사라졌다. 약간의 흔들림과 사소한 실수를 보일 때마다 김지훈이 빠르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최고의 퍼스트였다.

끈질기게 남아 있던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졌다.

오직 화면과 손의 감각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덧 도저히 진행할 수 없다고 여겼던 비장 연결 조직 박리가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비장이 안전하게 떨어져 나갔다.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긴 숨을 내쉰 신현수가 마취과 간호사를 보며 고개를 내밀었다. 수술 모자 밑으로 땀이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잠시 쉬겠습니다.”

수술 팀의 눈빛이 뜨거웠다. 마치 엄지를 치켜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집도의는 휴식 시간에도 다음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뿌듯함도 잠시, ‘ㄷ’ 자 모양의 스테이플 끝이 들어가야 할 부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를 스테이플의 ‘ㄷ’ 자 사이에 물리고 자르면 끝이다. 단, 위 조직 이외에 어떤 조직도 사이에 끼면 안 된다. 위에 붙어 있는 연결 조직과 혈관을 깨끗하게 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시작합니다. 모스키토!”

개복 때와 조금도 다르면 안 되는 과정이었다. 더욱 가늘고 작아진 기구와 툭하면 시야를 가리는 지방 덩어리에 방심할 틈이 없었다.

신현수의 손이 현저하게 느려졌다. 카메라와 기구를 동시에 조작하는 김지훈도 자신이 집도하는 것처럼 완전히 몰입했다.

두 개의 손, 네 개의 기구가 마치 한 사람이 조작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함께 수술한 기억이 아득했지만 그야말로 환상적인 호흡이었다. 서로의 장점이 서로의 부족함과 단점을 메운 것이다.

위 조직이 조금씩 말끔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테이플이 들어갈 부분을 확실하게 확보했다.

지속되는 긴장에 입이 바짝 마른 신현수가 훅 숨을 내뱉으며 손을 내밀었다.

“스테이플 주세요.”

마지막 과정만 남았다.

먼저 위 절제선 상부 쪽과 하부 쪽에 각각 하나의 스테이플을 위치시켜야 한다. 그 후 끝 부분의 ‘ㄷ’ 자 사이에 위를 넣고 힘주어 레버만 당기면 저절로 이어진다.

이보다 더 쉬운 과정은 없었다.

성공을 앞둔 신현수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때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스테이플 길이가 부족한 것 같네. 애초에 잘라야 할 선을 잘못 잡았나? 내가 착각한 걸까?’

화면에 보이는 모습으로 길이를 알기는 어렵다. 그동안 쌓은 많은 경험이 잘라야 할 위와 스테이플의 길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느낌상 스테이플과 스테이플 사이에 위가 남을 것 같았다. 무턱대고 한쪽부터 자르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사전에 알려야 했다.

“현수야, 화면으로 보면 실제 길이를 가늠하기 힘들잖아. 상하부 따로따로 자르지 말고 동시에 넣고 완전히 절제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공연한 말을 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신현수가 입술에 침을 축였다.

‘뭔가 불안한 면이 있는 건가?’

첫 번째 스테이플이 들어갔다.

말끔하게 박리된 하부 위 조직을 스테이플 끝 사이에 위치시켰다. 두 번째 스테이플을 상부 쪽에 위치시키고 위를 잡았다. 조기 위암 때와 달리 여러 각도로 구부러지는 새로운 기구 덕에 상당히 수월했다.

위가 구불구불 겹치지 않도록 활짝 펼쳤다.

순간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스테이플에 물리지 않는 위 조직이 보였다. 잘라야 할 위 길이가 스테이플 두 개를 합친 것보다 길었다. 연결할 수 없는 부분이 무려 3센티미터가 넘어 보였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신현수가 이리저리 각도를 다시 잡았다. 간격은 줄어들지 않았다. 김지훈이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과도한 지방조직을 피해 가장 안전한 부분을 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유발한 집도의와 퍼스트의 명백한 판단 착오였다.

위 절제선 부분의 위동맥을 이미 다 처리했다. 때문에 수직 길이가 보다 짧은 부분을 추가로 박리할 수는 없었다. 동맥이 없는 부분을 지나치게 남기면 조직 괴사를 유발할 수 있었다.

난감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술의 성패가 달린 일이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일단 스테이플로 위를 자르고 이은 후 남은 부분은 기구로 봉합해 막아야 하는 것뿐이었다.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 과정이 아니었다.

소장 겉면을 수처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무방했다. 위는 대장 이상으로 주의해야 하는 장기다. 점막을 빠짐없이 연결하고 이중으로 봉합해야 한다.

만일 수술 후 샌다면?

참담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지훈아, 어떻게 하지?”

단 하나뿐인 방법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직접 봉합하는 수밖에 없잖아. 후우! 우리가 생각했던 절제 선에서 이렇게 지나쳤을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퍼스트가 아니라 집도의가 통감해야 할 문제였다. 치명적인 실수를 만회하는 길은 오직 수처 실력에 달렸다.

오늘 수술 중에 한 수처만 해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장을 봉합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겁부터 먹을 일이 아니었다.

‘수술 팀에게 부담을 주어서는 안 돼.’

“오케이! 일단 자르고 봉합하자.”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 신현수가 김지훈에게 눈짓을 하며 스테이플을 잡았다. 수직 절단 선을 따라 상하부에서 끼운 두 개의 스테이플을 차례로 강하게 조였다.

약간은 거북한 소리와 함께 위와 위가 일직선으로 눌렸다. 절제 선을 따라 6중으로 촘촘하게 겹쳐진 짧은 은색 선이 보였다. 확실하게 이어진 것이다.

“가위.”

6중으로 된 선의 가운데를 조심스럽게 잘랐다.

위가 ‘0-0’ 모양으로 남았다.

정면에서 볼 때 좌측은 식도와 십이지장에 연결된 부분이고, 우측은 비장과 이어졌던 부분이다. 여기서 수술이 끝나야 했건만 아직 가운데 부분이 제거할 위와 연결돼 있다.

길이만 거의 3센티미터였다. 안타깝게도 기존 스테이플은 적용시킬 수 없는 위치와 각도였다. 내용물이 새면 안 되기에 조금씩 잘라 가며 좌우측을 모두 봉합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 봉합은 개복 수술 시에도 3년 차는 돼야 할 수 있는 과정이다. 손으로도 그만큼 난이도가 있다는 말이다. 기구로 해야 한다면 난이도가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신현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점막이 빠지면 스테이플을 사용한 부분까지 다 터질 수도 있어. 정확하게 봉합해야 돼.’

집도의로서 끝까지 해내고 싶다는 갈망과 완벽하고 안전하게 봉합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다가왔다. 환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신현수가 결정을 내렸다. 어느 때보다 냉정해야 했다. 자신감이나 욕심, 알량한 경험을 믿고 시도할 때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퍼스트를 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이었다.

“지훈아, 이 부분은 네가 하는 게 좋겠다.”

지동훈 교수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김지훈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집도의가 신중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겸손을 떨어야 도리어 자존심만 상하게 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수술을 맡기셨고, 장 봉합 경험은 나밖에 없다. 손 대신 기구를 사용할 뿐이다. 현수가 날 믿고 집도했듯, 나도 현수를 믿고 진행하면 된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다.

눈빛을 교환한 김지훈이 집도의 자리에 섰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지만 어떤 수술에서도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유사한 경험도 적지 않다.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수술해야 할 때였다.

단 3센티미터다.

김지훈이 힘차게 손을 뻗었다.

“가위!”

연결된 부위를 잘랐다. 비장과 면했던 우측 위는 어차피 제거해야 할 부분이다. 정성을 쏟을 이유가 없었다. 과감하게 한 바늘 크게 떠 열린 부분을 막았다.

남겨야 할 위에서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소화기관 중 가장 혈류가 강하고 왕성한 장기가 위다. 잘린 부분을 따라 주루룩 피가 흘렀다. 신현수가 재빨리 기구 끝에 거즈를 물리고 피를 닦았다.

지혈한다고 지지면 점막이 붙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

“모스키토하고 점막 봉합사 주세요.”

신중하게 남은 부분의 점막을 찾았다. 불그스름한 점막이 다행히 건강하게 보였다.

모스키토로 점막을 잡고 첫 번째 수처를 했다. 연약하면서도 질긴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매듭을 만든 후 단단하게 타이했다. 꽉 조여진 점막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이런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구를 이용해 안으로 말린 점막을 잡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중하게 점막 사이를 벌리는 순간 빨간 피가 흘렀다. 조직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신현수가 피를 닦아 내 구분이 되는 틈을 놓치지 말아야 했다.

절대적으로 완벽한 호흡이 필요했다.

“계속 진행합니다. 자르는 즉시 피 닦아 주세요.”

조금 더 전진했다.

제거해야 하는 부분을 봉합하자마자 신현수가 재빨리 피를 닦았다.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점막을 잡았다. 두 번째 수처와 타이를 진행하는 내내 수시로 피를 제거하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세 번째, 네 번째.

수술 팀이 긴장 속에서도 감탄을 터트렸다.

‘김지훈 선생님 손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호흡이 잘 맞을 수도 있나?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들려면 꼭 필요한 조건 중 하나를 이미 갖추고 있었네.’

감탄과는 달리 김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봉합해야 할 부분이 점점 줄어들수록 점막이 점점 더 심하게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공간이 좁아져 한 방울의 피만으로도 시야가 극도로 나빠졌다.

‘이러다 놓치겠어.’

불과 두세 바늘 남기고 지금까지 방식으로는 진행이 불가능해졌다. 더 이상 점막을 잡을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조작을 멈추자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배를 열었다면 이런 어려움도 없었겠지만,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퍼스트가 미리 점막을 잡고 위 밖으로 당기면 된다. 집도의는 점막을 완벽하게 시야 안에 놓고 봉합하면 끝이다.

문제는 복강경 수술이라는 점이었다.

신현수는 카메라를 잡은 상태에서 피를 닦으며 제거할 위가 방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밀어내야 한다. 기구 하나가 더 있으면 편할 것 같아도, 추가하는 순간 다른 기구들을 조작할 공간이 없어진다.

단 하나 방법이 있었다.

김지훈 혼자 피 닦고 위를 밀어내는 동시에, 수처와 타이까지 모두 할 수 있다면 가능했다. 두 손으로 세 몫, 네 몫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갑갑한 상황에 다들 말을 잃었다. 불과 1센티미터에도 발목 잡히는 수술이 바로 복강경 수술이라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왔다.

김지훈이 해낼 수 있을까?

기필코 해내야 한다. 배를 열면 고혈압, 당뇨에 각종 대사 질환까지 앓고 있는 고도 비만 환자의 무난한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잠시 뚫어지게 화면을 바라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과정을 그린 후 입을 열었다.

“현수야, 개복 때처럼 점막 잡아 줘. 지동훈 선생님, 카메라 고정시켜 주세요. 고 간호사, 거즈 두 장 배 속에 들어갑니다. 거즈 카운트 확실하게 하고 수처 준비합시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김지훈이 막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수술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수술이 거의 다 끝나 간다는 연락을 받은 이준영 교수가 송재덕 교수, 이혁민 교수와 함께 들어왔다.

집도의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는지 숨죽인 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현수가 점막을 잡아 올렸다. 카메라가 움직이며 점막이 확연하게 확대됐다. 주루룩 피가 흘렀다. 동시에 거의 다 떨어져 나간 위가 스르륵 밀려 들어오며 시야를 가렸다.

모스키토! 위를 밀어냈다.

모스키토! 거즈를 잡고 재빨리 피를 제거했다.

니들 홀더(Needle Holder)! 한 바늘을 떴다.

기구 끝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매듭이 만들어졌다.

남은 세 바늘 중 첫 번째 봉합이 끝났다.

다시 위를 밀어내고 피를 닦은 직후,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오직 화면과 손에만 집중한 김지훈의 손이 끊임없이 움직였다.

마지막 바늘이다.

가장 어렵고 중요한 부분이다. 수술복을 축축하게 적셔 오는 땀도 잊었다. 오직 점막과 기구에만 집중했다.

“가위.”

마지막 남은 연결 부위가 잘리며 제거해야 할 위가 완전히 분리됐다. 과감하고 빠른 손길로 구멍을 막고 옆으로 밀어냈다.

핵심은 오직 점막뿐이다.

좁쌀만큼 남은 점막 사이로 은빛 바늘이 사라졌다. 마치 기구 하나가 더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남은 점막을 봉합했다. 타이한 실을 잘라 내자 매듭이 깊숙이 사라지며 화면을 따라 깔끔하게 이어진 점막이 보였다.

김지훈이 훅 숨을 몰아쉬었다.

완벽하게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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