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하나다 Ⅰ (1)
신현수와 이경석은 지금도 복강경 수술을 배우고 있다. 누구 한 명에게 수술을 몰아주면 남은 사람의 기회를 뺏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1기 대장암 수술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던 신현수였다. 하필이면 들끓는 투지가 특유의 냉정함마저 꽉꽉 누르고 있었다. 얼떨결에 입이 열렸다.
“저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눈길 한번 툭 던졌다.
“이번 주는 이경석 네가 다 들어와.”
졸지에 소중한 기회를 홀라당 빼앗겼다. 그것도 몇 번이 될지 모를 집도 기회였다.
닭도 꿩도 다 놓친 상황에 신현수가 푹푹 한숨을 내쉬다 말고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이준영 교수가 의견을 물어본 것만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경석에게 슬며시 주먹까지 쥐어 보였다.
‘현수 너도 참 많이 변했다. 이젠 인턴 때 어땠는지 생각도 잘 안 나네.’
어제저녁에 이어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이 여세를 몰아!
오전 내내 환자와 씨름했다.
내과처럼 환자가 많지 않아 3분 진료는 아니었지만, 수술과 관련된 진찰과 상담이기 때문에 10분이란 시간도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환자 진료를 마쳤다.
단내 나는 입을 커피 한 잔으로 달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기 대장암 준비에 몰두했다. 골머리가 터진 대신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오후 회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었던 탓에 몸이 찌뿌듯했지만 마음은 편했고, 머리는 도리어 맑았다.
‘역시 바쁜 일상이 나한테는 약이야.’
생각 잘못했다. 입방정을 떤 것도 아닌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실 콜이다.
송진우가 의외의 병명을 노티하며 머뭇거렸다.
Severe Obesity(고도 비만).
심각한 비만이 문제인 환자가 왜 외과를 찾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급실을 찾은 김지훈이 헛바람을 터트렸다.
어마어마한 비만의 25살 남자 환자였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키에 체중은 130킬로그램을 육박했다. 정상 체중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근골격계만이 아니라 심폐 기능에도 막대한 부담을 줄 수준이었다.
육중한 몸을 이기지 못한 폐가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멀리서도 숨소리가 들릴 지경이었고, 따뜻한 정도의 히터 바람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슨 환자야?”
“내과에서 의뢰했습니다. 고도 비만으로 인해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과 당뇨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로 수술을 원한답니다. 군대까지 면제받았다니까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술? 무슨 수술? 설마 비만 수술?”
“예. 내분비 내과 최양희 교수님이 주치의신데, 비만 수술을 권하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약물 치료 효과가 너무 미약해서 고혈압, 당뇨가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악화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떤데?”
“약을 복용했는데도 혈압 180/105, 혈당 346입니다.”
정상을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잠시 환자 상태를 살핀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비만 수술은 다름 아닌 위 부분 절제술이다.
위의 상당 부분을 잘라 강제적으로 음식 섭취량을 줄이는 효과를 노린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 취하는 극단적인 치료라고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가장 큰 문제는 심각한 합병증이다.
일단 고도 비만 자체가 수술을 어렵게 만든다. 절개 창은 은 물론 수술 부위 감염 가능성이 높아 상당한 회복 지연을 유발할 확률이 높았다.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합병증을 단 한 사람에게서 볼 수도 있었다. 개복 시 사망률까지 상당히 높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또 있다.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고도 비만 인구가 많은 미국 등지에서는 자주 시행되지만 한국은 달랐다.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수술로 전무한 경험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축축 늘어지는 배를 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어림짐작으로도 정상 체중을 가진 환자보다 두 배 이상 열어야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거의 명치부터 골반까지 열어야 할 것 같네.’
보나 마나 내장 비만도 심각한 상태일 것이다.
위를 절제하는 과정은 물론, 자른 이후 봉합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만일 어디 한 군데라도 터지면 고혈압, 당뇨와 맞물린 치명적인 복막염으로 빠르게 사망할 수 있었다.
‘후우! 이렇게 되기 전에 살을 뺐어야지.’
답답한 일이었다.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원인은 비만이지만 위를 잘라야 하기에 원칙적으로 신현수나 지동훈 교수가 맡아야 할 환자이기도 했다.
곧바로 연락했다.
대충 설명을 듣고 내려온 신현수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함께 내려온 지동훈 교수가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김 교수, 수술이 더 위험할 것 같지 않아? 환자가 원한다지만 보호자 눈에 비만이 병이겠어? 잘못하면 동의서고 뭐고 소송에 휘말릴지도 몰라. 신현수 선생, 어떻게 생각해?”
“정말 난감하네요. 저 배를 어떻게 열죠? 자른 위가 잘 아물지 모르겠습니다.”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고도 비만이 수술을 요하는 질병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운동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혈압이 너무 높은 게 걸리지만, 역시 내과 치료가 우선이야. 수술 위험이 너무 높아.”
지동훈 교수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분비 내과 최양희 교수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첫마디가 터지자마자 3명이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다들 있었네. 지동훈 교수님 오래간만에 보네요. 김지훈 선생, 신현수 선생, 라파로로 가능하지?”
“라파로요?”
“대장암도 라파로로 한 사람이 왜 그렇게 놀라? 신현수 선생도 요새 라파로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어? 둘이 같이하면 될 텐데 엄살이지? 이 환자 배 열면 큰일 난다는 거 나도 아니까 잘 부탁해.”
다들 입맛만 다셨다.
복강경으로 위 절제라!
위를 가로로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로로 절제하기 때문에 소장과 연결하는 과정은 없는 수술이다. 기존 기구로 자른 부분을 막아 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던 순간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갑자기 호흡이 거칠어진 환자가 괴로움을 호소했다. 너무 숨이 가빠져 산소마스크를 씌워야 했다.
비지에이까지 내보내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최양희 교수가 얼굴을 펴지 못했다.
“간호사, 인슐린 20 단위 주고 항고혈압제 주사해요. 환자분, 외과 선생님들이 내려오시긴 했지만 수술 날짜가 결정될 때까지 입원 치료해야 합니다. 보호자는 어디 계시죠?”
눈앞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바이탈이 흔들렸다. 고혈압과 당뇨가 동반된 고도 비만은 확실한 질병이었다.
문득 이대로 가면 얼마 못 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살아 있는 내내 비만은 물론 그로 인한 합병증과 싸워야 할 것이다.
나태와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 식욕이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되면 의학적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사의 책무는 일단 목숨을 위협하는 질병과 싸우는 것이다. 비만을 초래한 이유는 그다음이었다.
김지훈이 깍지를 낀 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여름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가를 바짝 좁혔다.
‘대사 부인보다 비만이 훨씬 심해. 개복은 안 돼.’
“현수야, 저 배 크게 열면 지동훈 선생님 말씀대로 환자도 우리도 문제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다른 방법이면 라파로뿐인데, 위를 이어 줄 기구가 없잖아. 조기 위암 때 사용했던 기구는 너무 작아서 도리어 문제만 일으킬 거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기구였다. 복강경으로 할 방법이 없다면 개복밖에 없었고, 결국 대단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기구라……. 기구만 있으면…….”
기구 소리가 반복되는 순간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강호승 사장님!”
왜 곧바로 떠올리지 못했을까?
필요하기에, 무엇인가 목적이 있기에 떠오른다고 해도 왕왕 우연한 만남이 꽤 큰 인연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일단 첫 번째 실마리가 나왔다. 적절한 기구가 있을지 모르지만 희망을 걸어 볼 만했다.
뒤적뒤적 지갑을 뒤진 김지훈이 명함 한 장을 꺼내다 말고 입술을 모았다.
이미 1기 대장암 환자 수술이 있다.
신경을 분산시키면 성공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어떤 수술이 됐든 나만 가능하다는 생각은 분명한 자만이었다.
신현수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욕심을 대신한 변명에 불과했다. 입으로만 최고의 수술 팀을 부르짖으면 결국 스스로 발등을 찍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수술이 있고, 이준영 교수에게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신현수였다.
‘위장관 쪽이라면 네가 맡아야지. 에휴! 아쉽다.’
미련이 남았지만 스스로 정한 목표와 원칙을 지키고 싶었다. 최고의 써전은 최고의 수술 팀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그동안 해 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명함을 내밀었다.
“현수야, 네가 연락해.”
“내가? 난 말만 들었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야.”
목마른 놈이 우물 파야 하는 법이다.
“나도 잘 몰라. 다 같이 모르는데, 집도해야 하는 사람이 연락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야?”
“이 환자 집도를 나보고 하라고?”
신현수답게 뜻밖의 말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분명 높아졌다. 쉽사리 손을 내밀지도 못했다.
“그럼 누가 해? 위장관 환자야. 지동훈 선생님, 현수하고 같이하셔야죠? 혹시 만에 하나 불안하시면 세컨이나 써드는 제가 서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손만 거들겠다는 말이었다.
지동훈 교수가 흠칫 놀랐다.
“난 경험이 전혀 없는데.”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박승준 교수를 생각하라는 눈빛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신뢰하는 써전이다. 기구만 어느 정도 손에 익는다면 충분히 퍼스트를 설 수 있을 것이다.
지동훈 교수 역시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믿음이었다.
“그럼 전 올라가 보겠습니다. 현수야, 수고해.”
환자까지 맡기고 응급실을 나왔다.
당직을 내세워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독불장군은 언젠가 무너진다.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면 더욱 단단한 수술 팀이 될 것이다.
‘역시 서울에 환자가 많아.’
구미가 떠오르자 저절로 은비가 생각났다.
그동안 매일 잊지 않고 통화했다. 송철성은 믿기 어려운 회복세를 이어 갔고, 며칠 전에 중환자실에서 벗어났다. 아빠의 회복에 은비도 웃음을 되찾았다.
“은비야, 아빠 괜찮으시지?”
(네. 이제 죽도 잘 드세요.)
“너도 밥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한다.”
(오만석 선생님 때문에 살찔 것 같아요.)
이젠 14살 소녀다운 걱정까지 했다.
“넌 더 쪄도 돼. 밥 많이 먹어.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오만석 선생님한테 사 달라고 해. 안 사 주면 내가 혼내 줄게.”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전화를 끊을 때마다 느껴지던 불안과 걱정도 많이 줄었다.
밝은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은 김지훈이 어깨를 활짝 폈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말란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데 어딜 가냐는 것 같았다.
싱글싱글 웃으며 병동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머리를 두들겼다. 전적으로 수술을 맡겼다지만 스승에게 최종 허락을 맡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내민 커피를 자연스럽게 받아 든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수술 방법과 팀 구성에 대해 들으며 한 모금씩 커피를 마셨다. 고도 비만 환자에 대해 듣고서는 눈가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욕심이 꽤 날 텐데 현수에게 집도를 넘겼어? 이젠 펠로우 티도 확실하게 벗는구나.’
“앞으로 모든 수술을 이렇게 진행해.”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이미 대부분의 수술을 그렇게 해 왔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1기 대장암보다 더 어렵고 힘든 수술도 스스로 결정하고 치료하라는 말이었다.
마치 독립할 때가 됐다는 말처럼 들렸다. 지난 6년 동안 쌓아 온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 느낌까지 받았다. 스승과 제자이자 노련한 의사 대 어엿한 의사로서 말이다.
‘수술에 참여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이것일까?’
이준영 교수가 결정적인 말을 날렸다.
“전임부터 정식 교수야. 명심해.”
기분이 묘했다. 스승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병동으로 올라가는 스승의 등이 그 어느 때보다 넓었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회진을 돈 후, 1기 대장암 환자를 만났다.
“다음 주 월요일에 복강경으로 수술하겠습니다.”
수술 전까지 매시간 초조하고 불안할 텐데 뛸 듯이 기뻐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최선을 다해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김지훈이 고경아 마님의 뻐근한 어깨와 다리를 주무르며 입을 쉬지 않았다.
“경아 씨, 스승님이 날 완전히 인정하신 것 같지 않아요?”
“글쎄요. 워낙 짧게 말씀하시는 분이라 난 잘 모르겠어요. 어려운 수술 연이어 한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까요?”
“그런가? 내가 오버한 건가? 에이! 내 말이 맞아요.”
“지훈 씨, 잘 생각하세요.”
갑자기 알쏭달쏭해졌다. 말뜻 잘못 알아들었다간 불벼락이 칠 텐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가를 좁힌 채 열심히 손을 놀리던 김지훈이 혀를 찼다.
‘빨리 끝내고 대장암 준비해야 하는데.’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역시 당직 날은 두 발 뻗고 잘 수 없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