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86화 (786/1,329)

10화. 학회가 가져온 여파 (1)

선공은 언제나 스승의 몫이다.

“담낭 동맥과 담낭관을 잡을 때 기구 각도로 봐서 시야를 거의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위험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까?”

불과 하루 전, 무려 한 시간에 걸쳐 불길을 날리면서도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어제 이 질문을 왜 안 하시나 했는데, 여기서.’

거의 한 달 반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직접 집도를 한 이상 이 정도 질문에 당황하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상대는 스승이다. 한 치의 빈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학회고 뭐고 불바다가 될 것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끊임없이 날아드는 묵직한 돌직구에 정면으로 맞섰다.

스승과 제자가 설전과도 같은 토론을 벌였다. 점잖게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하듯 질문과 대답을 나누는 학회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두들 상당히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누가 어떤 수술을 집도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다는 궁금함을 감추지 못했다. 곳곳에 단서가 있었지만 의심과 의문에 가려졌다.

김지훈이 많이 컸다지만 공력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불과 10여 분이 흐른 후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흠뻑 맺힐 무렵에야 이준영 교수가 뜨거운 불길을 갈무리했다.

‘후우! 학회에서도 예외를 두시지 않네.’

한숨 돌리려는 찰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장 폐쇄 수술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역시 교수들 중 가장 이론을 중시하는 이혁민 교수였다.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숨어 있는 칼날에 하마터면 잘근잘근 다져질 뻔했다.

‘어후! 이혁민 선생님까지 왜 이러시지? 어? 그렇다면?’

번뜩 의문이 스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송재덕 교수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조기 대장암 수술에서 에스 결장 동맥을 잡을 때 후면부 처리를 보다 안전하게 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여유롭게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땀나긴 마찬가지였지만 수없이 해 온 집담회 덕을 톡톡히 봤다.

교수들이 만족스러운 눈빛을 교환했다.

의문을 확실하게 풀어 주는 대답이 이어지자 많은 참석자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집도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다는 표정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었다.

반면 일부는 여전히 강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특히 복강경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병원에 소속된 의사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다.

수많은 경험을 가진 자신들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그런 수술을 펠로우 2년 차가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그만큼 경험의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한 병원에서 모든 시간을 잡아먹을 자리가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질문하실 분 안 계십니까?”

이제야 다른 참석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갖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송곳 같은 날카로움과 궁금함이 가득한 질문이었다. 가장 궁금한 점은 누가 집도를 했는지 여부였지만, 서로 얼굴 붉힐 수 있는 일이기에 차마 직접적으로 묻지 못했다.

어느새 배정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김지훈보다 서너 살 위 정도로 보이는 의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젊은 의사답게 자신만만한 태도와 상당히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였다.

김지훈을 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았다.

“H 병원의 진충기입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김지훈의 눈가에 긴장이 실렸다.

오전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서 2백 건이 넘는 복강경 수술 사례를 발표한 의사였다. 수술 건수와 자부심에 찬 모습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가장 날카로운 질문자일 수도 있었다.

진충기가 힐끗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아뻬는 몰라도 다른 수술은 펠로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야. 실수 부분이나 정확한 대답도 퍼스트를 서고 이준영 교수님과 철저하게 검토했으면 가능해. 그나저나 조기 대장암은 누가 생각해 낸 걸까? 역시 경험이 가장 많은 이준영 교수님이겠지?’

뜸 들인다고 의문점이 사라지지 않는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담낭농증과 조기 대장암 집도의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지훈에게 쏠렸다. 발표할 때보다 더 큰 관심과 숨죽인 침묵이 이어졌다.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을 짓자 이준영 교수가 스윽 마이크를 당겼다. 이런 질문이 나올지, 이미 진충기가 어떤 의사인지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제가 대신 대답하겠습니다. 아뻬 수술 중 일부는 제가 했습니다만, 나머지 수술은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대답이 됐습니까?”

순간 완벽한 침묵이 흘렀다.

간담도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의사이자, 융통성이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고지식한 이준영 교수의 말이었다.

김지훈의 집도를 인정했던 의사들조차 모두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고성문과 교수들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성문 선생님, 누가 봐도 믿기 힘들 겁니다. 펠로우가 저런 수술을 했다는데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할 일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좋으시겠습니다.”

송재덕 교수의 나직한 웃음이 발표장을 울렸다. 힐끗힐끗 눈길이 쏠렸지만 당장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충기가 또 하나의 의문을 꺼냈다.

“조기 대장암 수술 방식은 누가 생각해 낸 겁니까?”

“당연히 집도의 아니겠습니까?”

진충기가 일종의 충격을 받은 것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참석자들의 술렁임이 눈에 보였다. 일부는 놀라운 실력에 이어, 간단하다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

김지훈이 탁탁 마이크를 치며 침묵을 깼다.

“진충기 선생님, 질문 받겠습니다.”

진충기가 급히 얼굴을 폈다.

자신의 발표가 완전히 묻힐 상황이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학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랐다.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먼저 조기 대장암부터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절개 창을 상당히 작게 열었는데 오염 가능성은 없습니까?”

“개복 때와 똑같이 대장 절단부를 처리하면 오염될 가능성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상당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조기 대장암이 아니라 1기나 2기 대장암도 라파로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만일 가능하다면 확실하게 임파선 절제를 담보할 수 있습니까?”

어려운 문제였다.

“2기는 몰라도 1기일 경우 광범위 임파선 절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단, 수술 중 조직 검사를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시간 지연이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겠군요. 저도 충수돌기 주변 농양을 일곱 케이스 정도 했는데, 충수돌기가 맹장 뒤 깊숙이 박혔을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까? 혹시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런 경험은 없습니다.”

그나마 찾아온 기회였다.

“제가 얼마 전 맹장 주변까지 박리하느라 상당히 고생을 했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는지 궁금했는데 아쉽군요.”

상세하게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 진충기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 갔다. 이미 수많은 경험을 쌓은 써전답게 상당히 날카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강한 자신감까지 내보였다. 질문 곳곳에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엿보였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도 최고의 써전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야망까지 보였다. 마치 신기동 교수와 신현수를 동시에 보는 것 같았다.

진충기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김지훈으로서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충기,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이네.’

라이벌은 동기들만이 아니었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병원과 대학에서 근무하는 모든 일반외과 의사가 라이벌이었다.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소통을 절감했다. 제각각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겠지만 건전한 경쟁은 분명하고도 확고한 발전을 부를 것이다.

한 사람과의 질문과 대답으로 예정 시간을 넘기기 직전이었다. 치열하기만 했던 시간이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에 막혔다.

“진충기 선생, 좋은 질문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좌장으로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김지훈 선생,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가 라파로의 확장 가능성인데, 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이론적 토대나 수술 원칙은 개복 수술과 같습니다. 따라서 라파로의 성공 여부는 수많은 경험을 통한 숙련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도로 숙련돼야 가능한 수술이 많을 텐데, 김지훈 선생은 어떤 수술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후배들의 교육 때문이라도 항상 고민해 왔던 문제들이었다. 정답은 누구나 다를 수 있기에 긴장감마저 스르륵 사라졌다.

“지금은 담낭절제가 보편적이지만 아뻬나 탈장도 숙련을 위한 기준 수술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라파로는 개복만큼이나 많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 발표한 내용들이 참석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예정 시간을 넘겨 죄송합니다.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으시면 점심 식사 후 개별적으로 만나 의견을 교환해 주십시오. 이것으로 오전 발표를 끝내겠습니다. 맛있게 식사하십시오.”

카메라 불빛이 김지훈을 환하게 비췄다.

꾸벅 허리를 숙이자 이제야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몇몇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눈을 떼지 못했다.

한동안 거의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김지훈이 강렬한 인상을 심은 날이었다.

예전 전공의 사이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었던 김지훈은 사실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보아도 무방했다. 펠로우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가히 비약적인 발전이자 도약이었다.

인정하기 힘든 사실에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누군가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웅성웅성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반외과 식구들 모두 송재덕 교수와 고성문 주위로 모여들었다.

김지훈도 단상을 정리하고 자리로 향하려는 순간 진충기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 교수님, 앞으로 자주 연락합시다. 전부터 김 교수님에 대한 말은 들었었는데, 라파로에 관한 한 절대 방심할 수 없게 만드네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농담 아닙니다. 시간 허비하려고 1년 동안 연수 갔다 온 것도 아니고요. 일주일에 3건 이상은 할 것 같은데, 정확히 몇 건이나 하십니까?”

오늘 발표한 모든 수술을 김지훈이 했다면 당연히 예상을 뛰어넘는 경험이 수반되어야 한다. 일주일에 세 건 정도만 잡아도 2년이면 3백 례에 육박한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나도 펠로우에게 불가능한 수술 건수라는 것이었다. 기존 교수도 있고, 환자들 역시 초짜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쉽게 맡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런 성과를 낸 이유가 있어야 했다.

김지훈이 눈을 깜박이며 대충 헤아렸다.

“적을 때도 있지만 작년에는 5건 이상 한 것 같습니다.”

과장된 말투가 아니었다.

자신보다 많은 건수에 깜짝 놀란 진충기가 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이준영 교수가 전폭적으로 밀어준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이유가 뭐가 됐든 이 추세로 간다면 우리가 밀릴 수도 있어. 절대 안 돼. 과장님과 다시 상의해야겠어.’

“생각보다 훨씬 많이 했네요. 우리 열심히 해 봅시다. 앞으로 라파로가 대세가 될 테고, 최고의 써전은 결국 한 명이지 않겠습니까? 조기 대장암 수술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

진충기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매서운 눈초리는 결코 풀리지 않았다.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말속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확실하지 않아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시야와 시각을 넓혀 주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최고의 써전은 한 명이라고? 혼자서 도달할 수 있을까? 라파로에 관해서는 최고라고 해도, 그게 최고의 써전이라는 말은 아니잖아.’

은근히 신경 쓰이고 생각이 많아지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질문 도중 실수 부분을 유난히 파고들었었다.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기에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새삼 찜찜한 느낌이 다가왔다.

송진우와 슬라이드를 정리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때, 이준영 교수가 정훈철과 함께 손짓했다. 후다닥 달려가던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인터뷰?’

진충기는 잠시 머릿속 저편에 담아 놓았다.

정장을 차려입은 여기자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카메라 앵글이 잡히며 곧바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은근히 긴장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짜릿짜릿했다.

‘내가 인터뷰라는 걸 다 해 보네.’

“최근에 복강경 수술이 급격하게 늘은 것으로 아는데, 기존 수술에 비해 어떤 이점이 있나요?”

“오늘 발표하신 내용을 보면 조기 대장암 환자까지 수술하셨는데, 아직 다른 병원에서는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도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앞으로 똑같은 환자가 오면 역시 복강경으로 수술하실 생각이신가요? 이번 수술과 달라질 점이 있나요?”

“지금도 수많은 환자분들이 적절하고 안전한 치료를 받기 위해 걱정하고 계실 텐데, 그분들이 참고할 수 있는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가 번갈아 대답했다.

평소 성격이 그대로 나와 짧고 무뚝뚝한 말과 자세한 말이 이어졌다.

카메라를 보며 대답하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지만 15분 정도 진행된 짧은 인터뷰를 잘 끝냈다.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가 동시에 오늘따라 목을 갑갑하게 조여 오는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정 PD님, 식사 같이할까요?”

“아닙니다. 이제 방송국으로 돌아가야죠.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교수, 방영 날짜 나오면 연락할게. 이런 기회 아무나 못 잡아. 술 한잔 사.”

“예. 선생님하고 같이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개인적인 인연과 감정에 휘둘릴 정훈철이 아니었지만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방송이 잘 나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점심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준영 교수는 이미 등을 보였고, 허기 때문이라도 당장 식당으로 향했어야 할 김지훈이 무슨 일인지 머뭇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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