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인연의 끈 Ⅳ (2)
무심한 시간이 지나 면회 시간이 됐다.
오하석이 불안한 표정으로 먼저 들어왔다. 은비가 오하석의 손을 꼭 잡은 채 뒤따라 들어왔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송철성을 보며 한숨을 내쉬자 송진우가 슬며시 검사 결과를 내밀었다.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회복이 생각보다 빠르지?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은비 때문일 것 같다. 은비야, 아빠가 좋아지고 있어.”
삐이익! 삐이익!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 날카로운 경고음이 귓가를 울렸다. 모두들 깜짝 놀라 일제히 송철성을 보았다. 은비의 눈에 두려움이 확 번졌다.
“아빠! 아빠!”
겁에 질린 은비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모니터에 표시되는 모든 수치가 마구 바뀌며, 갖가지 경고음이 하나도 빠짐없이 울렸다.
“아빠! 아빠!”
공포에 찬 목소리가 뾰족하게 울렸다.
오하석을 잡은 손이 달달 떨렸다.
바이탈이 크게 흔들린 걸까?
심박동수가 치솟으며 심전도 그래프가 순식간에 비정상적으로 변했다. 자동 혈압기가 제대로 혈압을 측정하지 못했고, 산소포화도는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행여 주요 장기에 문제라도 생긴 걸까?
기계 이상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다급하게 송철성을 살피며 소리쳤다.
“송진우, 오만석, 모니터 확인해.”
인공호흡기를 확인하려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순간 송진우와 오만석이 숨을 죽였다.
송철성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손에서 시작된 미세한 움직임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마침내 몸을 비틀었다. 목에 걸린 튜브와 강제로 밀려드는 공기가 갑갑한지 연거푸 소리 없는 기침을 발작적으로 해 댔다.
삐이익! 삐이익!
“아빠! 아빠!”
아이의 눈에는 절대 회복이 아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빠일 뿐이었다.
“은비야, 아빠 나빠지는 거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김지훈이 급히 호흡기를 뗐다.
훅! 후욱! 훅!
튜브를 따라 거친 소리가 들렸다. 호흡 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불규칙했던 호흡이 점점 규칙적으로 변하며 강도가 강해졌다.
자발 호흡이 이 정도로 강해지고, 미약하나마 모든 검사 수치가 회복되고 있다면 의식도 돌아와야 한다.
김지훈이 송철성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소리 질렀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김지훈입니다! 환자분!”
아무 반응도 없이 몸만 비틀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오하석의 품에 꼭 안긴 채 바들바들 떨던 은비가 비명처럼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날카롭지만 분명한 딸의 목소리가 송철성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순간 마치 딸을 찾는 듯 고개를 움직였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움직임이 커졌다.
놀라운 일이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은비를 외쳤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은비가 기다립니다.”
송철성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오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누군가를 찾았다.
은비가 와락 아빠의 손을 잡았다. 작고 여린 손이 체온을 전했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바늘이 툭 넘어가는 순간 송철성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르르 눈을 떴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턱턱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분명 의식을 회복했다.
중환자실의 환한 불빛과 튜브를 통해 전해지는 거친 자극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지 연거푸 몸을 비틀었다. 가쁜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러면서도 결코 은비의 손을 놓지 않았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김지훈입니다.”
“아빠! 나 은비야! 아빠!”
은비의 뺨을 따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왜 옆에 있는 나를 못 보냐는 듯 아빠를 잡은 손을 마구 흔들었다.
송철성의 깊은 곳에 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눈동자가 움직였다.
김지훈과 은비의 목소리에 곧바로 반응하지 못해도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홀로 둘 수 없는 은비의 존재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더 큰 희망과 흥분이 다가왔다.
오하석에게 눈짓을 해 은비를 잠깐 물러나게 했다.
동공반사를 확인했다. 어둠과 빛에 분명하게 반응했다.
송철성을 부르는 소리가 연이어졌다.
후욱! 후욱!
거칠게 숨을 내쉰 송철성이 고개를 돌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김지훈에게 향했다.
“환자분, 제가 보입니까? 제 말 들리세요?”
불빛을 받은 눈이 반짝 빛났다.
튜브 끝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힘없는 고갯짓이었지만 분명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였고, 미약하나마 생기마저 되찾기 시작했다.
튜브 때문에 갑갑하다는 듯 고개를 계속 흔들었다. 손과 발을 꿈틀거리며 고통까지 호소했다.
확실히 의식이 돌아왔다.
김지훈은 물론 송진우와 오만석까지 입을 열지 못했다. 기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급격한 변화에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됐어. 가장 위험한 고비를 넘겼어.’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은비가 보였다.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의사가 성급해지면 어떤 문제를 유발할지 알 수 없었다. 하나하나 철저하게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였다.
“갑갑해도 잠시만 참으세요. 검사 하나만 더 하고 괜찮으면 빼 드릴 겁니다. 간호사, 비지에이 갖고 와요. 흉부 사진 찍읍시다. 은비야, 잠시만 기다려. 잠시만.”
송진우와 오만석이 있었지만 직접 하고 싶었다. 몇 년 만에 하는 술기에도 손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동맥을 찌른 주삿바늘을 따라 빨간 피가 차올랐다.
초조한 마음 탓인지 시간이 무척 더디 흘렀다. 은비는 당장이라도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은비야, 나 믿지?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비지에이 결과와 동시에 흉부 사진이 나왔다.
다급히 달려가 확인했다. 사진은 정상적이었다. 산소포화도는 95퍼센트를 넘었고, 대사성 산증도 많이 교정됐다.
튜브를 제거하는 데 하등의 문제가 없었다.
“쿨럭! 쿨럭! 컥!”
강한 석션의 힘에 심한 고통을 호소했지만, 튜브 제거 전 반드시 기관지에 찬 가래를 제거해야 한다.
송철성의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석션을 한 김지훈이 튜브를 뺐다.
아빠의 고통에 은비가 엉엉 울었다.
“끄으으응!”
나직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목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잠시 눈가를 찡그리던 송철성이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벙긋거리며 인상을 썼다.
“으으으! 으으으!”
거친 소리가 바짝 마른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가락을 달달 떨면서도 목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두 눈은 누군가를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드디어 첫마디가 나왔다.
“으, 은비… 우리 은비는…….”
자신의 몸도 지탱하기 힘들 텐데 은비부터 찾았다. 간절함이 담긴 아버지의 두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자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해야 했다.
“은비는 옆에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일단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합니다.”
중환자실이라는 말에 언뜻 두려움이 스쳤다.
“담낭에 염증이 심했고, 간염까지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불안해서 중환자실에 있는 거니까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잘 깨어나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은비야.”
김지훈이 가만히 은비의 손을 아빠의 손에 가져갔다.
딸이 아니라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았다.
“은비야, 은비야! 아빠다.”
“아빠!”
아빠의 눈물 젖은 목소리에 마치 9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가슴 아프고, 시리고, 서러움에 북받친 울음인데 분명 달랐다.
14살 소녀의 가슴속에 박혔던 두려움과 공포가 울음소리와 함께 조금씩 사라졌다.
송철성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기적이다.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벅찬 가슴에 나직한 숨을 내뱉은 김지훈이 부드럽게 은비의 등을 두드렸다.
이대로 회복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은비에게 15분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다. 남은 면회 시간 내내 아빠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몇 마디 오고 가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딸의 사랑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김지훈이 먹먹한 가슴을 누르며 애써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시작이지만 송철성은 딸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은비 역시 아버지를 위해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참아 낼 것이다.
제한된 면회 시간에는 이유가 있다.
김지훈의 눈짓에 오만석이 커다랗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은비의 손을 잡았다.
“은비야, 미안한데 아빠가 쉬어야 할 시간이야. 다음 면회할 때는 더 좋아지실 테니까 나하고 나가자.”
떨어지지 않는 손길을 간신히 떼었다.
“아빠,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
돌아서던 은비가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은비야, 굶지 말고 밥 꼭…….”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말이었다.
송철성 환자를 보는 김지훈의 표정이 착잡했다.
환자는 여전히 갈림길에 서 있었다. 당장은 안정돼 보이지만 이대로 쭉 좋아질지, 아니면 다시 나빠질지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과 한두 시간 사이에 심각한 변동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다음 검사가 나빠지면 안 되는데.’
만일 상태가 다시 악화된다면 지금보다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송철성은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결국 은비만 홀로 남겨진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회 발표는 무조건 해야 하지만, 그땐 정말 예정대로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최철한과 전공의들 모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은비의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은비는 또 어떻게 하지?’
누군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나이였다. 지금은 의료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킵을 담당하는 오만석이 수시로 보살피고 있지만 얼마나 가까워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민해야 할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초조한 눈으로 각종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그중에서도 간 효소 수치와 혈소판이 관건이었다.
검은 숫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또다시 간 효소 수치가 뚝 떨어졌다. 혈소판 수치는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고열은 미열로 바뀌었고, 바이탈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오만석의 우려는 기우일 뿐이었다.
마침 중환자실에 들른 정성호 과장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야! 이런 경우를 다 보네. 김 과장, 출혈은 어때?”
“아직 나오긴 합니다만, 많이 줄어든 상탭니다.”
마치 기적처럼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고 있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5년 전 은비가 보였던 강한 삶의 의지가 아버지의 가슴과 심장 속에도 있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온갖 악조건을 무릅쓰고 복강경으로 담낭과 담도의 염증을 해결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어쩌면 고름 덩어리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전신을 갉아먹던 육체적 부담을 덜었을지도 몰랐다.
출혈은 얼마나 줄었을까?
똑! 똑!
간 기능이 개선되면서 혈소판 수치가 증가했다. 출혈량 역시 현격하게 줄 수밖에 없었다.
불과 이틀도 안 돼 현저한 회복세를 보여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이 추세로만 간다면 일이 주 내에 툭툭 털고 일어나 은비를 안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많이 줄었네. 환자 운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은비라고 했지? 다행이다.”
묘한 여운이 남는 정성호 과장의 말이었다.
송철성 환자가 가져온 긴장이 조금은 사그라지자 은비가 도리어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오만석, 은비 봤어? 다른 사람은 있나?”
“방금 전에 만났는데, 동네 분들이 안 보였습니다. 혼자 밥이나 잘 챙겨 먹는지 걱정이 큽니다. 저녁때 구내식당에서 같이 밥 먹자고 말은 해 뒀습니다.”
보기와는 달리 생각이 깊고, 정이 깊었다.
“잘했어. 우리가 가면 더 힘들어할지도 모르니까 신경 바짝 써. 목소리 높이지 말고.”
나오는 길에 은비를 찾았다.
송철성이 의식을 찾았지만 14살짜리에겐 보통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모습조차 힘에 겨워 보였다.
아버지가 완전히 회복되면 환한 웃음을 되찾겠지만,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될 것이다.
가난에 겹친 가난.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는 치료비.
반복될 수밖에 없는 고단하고 힘든 일상.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돈이다.
많은 돈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희망을 가질 것이다.
5년 전 은비를 치료하며 진 빚을 이제야 갚았다고 들었다.
송철성의 치료에 드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가난한 집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일 수도 있었다. 아니, 중환자실에 입원하면 웬만큼 사는 집들도 큰 부담에 허덕이는 것이 현실이었다.
아픈 몸으로 벌이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의사로서 어디까지 신경 쓰고 관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