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인연의 끈 Ⅳ (1)
1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상처에서도 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 개복했어도 힘들었을 담낭농증을 복강경으로 했다는 감흥 따위는 다가오지도 않았다.
김지훈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마구 잡아 뜯었다.
뻑뻑한 눈을 감을 때마다 은비 얼굴이 떠올라 보호자 대기실로 향했다.
잠깐 얼굴만 볼 생각이었다. 오만석이 오하석과 함께 훌쩍훌쩍 울고 있는 은비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오만석, 오하석, 고맙다.’
커다란 덩치에 따스한 마음이 꽉 차 있었다.
어느새 창밖으로 희미한 빛이 비쳤다. 곧 해가 뜰 모양이었다.
밤을 샌 간호사들이 마지막 힘을 내 환자들을 살폈다. 필요한 처치를 하고 부지런히 각종 검사 결과를 찾아왔다.
물끄러미 결과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직접 드레싱을 했다.
복대를 풀었다.
뚝! 뚝! 뚝! 뚝!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한 줄기 희망이라도 보였으면 좋으련만 검사 결과도 모두 엉망이었다. 절망하기에는 이른 때였고, 절대 그래서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은비를 핑계로 절대 부리지 말아야 할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웅성웅성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면회 시간이다.
오하석이 은비의 손을 잡은 채 문가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갑갑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면회까지 막으면 더 두려워하겠지? 14살이라고 해도 유일한 가족인데 아빠 얼굴도 못 보게 할 수는 없어. 은비야, 미안하다.’
은비가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앞섰다.
아빠가 누워 있는 침대맡에 섰다. 온갖 기계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에 떨고 있었다. 까만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의 차가운 손을 잡은 채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
‘아빠, 나 왔어. 제발 빨리 일어나. 나 너무 무서워.’
가녀린 어깨가 흔들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은비를 안은 오하석의 눈가가 붉어졌다.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은 소녀의 슬픔, 아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15분의 면회 시간이 지나갔다.
“선생님!”
“은비야!”
“우리 아빠 꼭 살려 주세요. 제발요.”
“약속할게. 내가 약속할게.”
“고맙습니다.”
갑자기 훌쩍 커 버린 듯 슬픔과 두려움을 감춘 목소리는 14살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은비를 보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갑갑함과 미안함이 다가왔다.
송철성의 까맣고 바짝 마른 얼굴이 눈에 박혔다.
병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하나뿐인 딸을 지키고자 가난과 싸운 결과일지도 몰랐다. 하기에 시시때때 다가왔을 지독한 고통을 참았을 것이다.
‘은비야, 약속할게. 내가 아버지 꼭 살릴게.’
시간 날 때마다 오만석이 달려와 킵을 했다. 번갈아 가며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 지나도록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가슴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일과가 끝날 무렵 고경아가 찾아왔다.
“지훈 씨, 식사는 했어요?”
“꼬박꼬박 챙기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경아 씨도 끼니 거르지 말고요. 조금만 더 지켜보고 들어갈게요.”
고경아가 토막잠을 잔 탓에 눈이 시뻘게진 김지훈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은비와 환자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커피 한잔했다. 어디선가 오만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은비야, 저녁 면회는 나하고 같이하자. 아빠 반드시 일어나실 거니까 그만 울어, 인마. 내가 아빠 옆에서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주먹을 불끈 쥔 모습에 씁쓸하나마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목요일, 오늘 밤도 오만석이 곁을 지킬 것이다.
오만석과 교대하고 거의 24시간 만에 퇴근했다. 참기 힘든 피로가 몰려왔다.
잠결에 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따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샘, 응급실이에요. 수술 하나 떴어요.)
송철성 환자는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수술 하나에도 킵을 할 사람이 없어 미리 당부했다. 송진우가 있지만 오프를 대신해 응급실을 커버해야 했다.
터벅터벅 병원으로 향했다.
유달리 차갑게 느껴지는 밤공기 때문인지 중환자실 앞으로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오늘 밤도 희망을 찾지 못하는 걸까?
보호자 대기실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살폈다. 은비가 동네 아주머니 옆에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잠시도 편히 자지 못하고 툭하면 뒤척였다.
‘밥은 먹었나? 챙기지도 못했네.’
오만석 대신 킵을 하고 있던 송진우가 벌떡 일어났다. 고마운 일이었지만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인력 부족에 새삼 갑갑하기만 했다.
“환자분 어때?”
“별다른 변화가 없습니다.”
“진우야,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간 후에는 어떻게 하지? 서울 올라가는 걸 일주일 정도 미룰까?”
송진우가 흠칫 놀라면서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은비만이 아니라 끝까지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집도의의 고민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만석이가 잘할 겁니다.”
“그래. 만석이가 있어서 다행이긴 하다.”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바이탈이 표시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액과 혈액 주입 속도를 확인하고, 소변량을 점검했다.
드레인을 통해 감염이 초래될 수도 있어 수시로 드레싱을 했다. 그때마다 거즈가 뻘겋게 젖어 있었다.
수술부터 지금까지 한 모든 치료가 최선이었는지 반문했다. 고민을 거듭해도 현재의 능력과 지식으로는 보다 나은 방법을 생각할 수 없었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복강경이 아니라 개복을 했으면 더 크고 심각한 한계에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았다.
수술을 떠올리는 순간 이제야 담낭농증을 복강경으로 했다는 사실이 다가왔다.
‘환자 상태가 나빴다지만 조기 대장암보다 더 어려웠어. 어떤 수술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돼. 우리가 방심하면 또 다른 은비를 만들지도 몰라.’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진우야, 케이스 리포트에 이 환자 추가할 거니까 내일 내가 자료 주는 대로 슬라이드 만들어. 담낭농증 추가하자.”
“이 케이스를 발표하신다고요?”
약간은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환자는 사경을 헤매고 있고, 누구보다 은비를 걱정하는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발표를 준비하라니, 매정하고 냉정하다는 얼굴이었다. 명예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왜? 내 말이 이상해?”
“그건 아닙니다만, 환자분 회복이 먼저…….”
말꼬리를 흐렸다.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은비 아빠가 마지막 환자일까? 우리가 학회에 발표하는 이유는 내가 이런 수술을 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누군가 똑같은 경우에 처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수술했는지 알고 있다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큰 도움이 될 거야. 그게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길이 아닐까?”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미안하긴. 전공의 때는 그게 더 어울려.”
잠시 리포트에 쏠렸던 관심이 다시 환자에게 향했다.
이제 하루 반도 안 지났다. 떠날 날 역시 하루 반도 남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초조함이 점점 더 심해졌다.
송철성처럼 여러 질환이 겹친 환자가 며칠 만에 회복 추세로 접어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대처해야 할 시기인데 남은 날이 너무 부족했다.
‘미룰까? 딱 일주일만 더 있게 해 달라고 이혁민 선생님께 부탁드릴까? 서울 병원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 하지?’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오만석이 들어왔다.
“선생님, 언제 오셨습니까? 수술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죄송합니다. 들어가시죠.”
“아니다. 조금만 더 있자.”
김지훈, 오만석, 송진우가 나란히 앉았다.
셋이 있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곧 구미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송진우도 마찬가지 마음일 것이다.
(지훈 씨, 내 걱정 말고 환자 잘 봐요.)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내가 애예요?)
고경아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띠! 띠! 띠! 띠! 띠!
삐이익! 삐이익!
밤새 중환자실 기계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 댔다.
간 문제로 내과 전공의가 수시로 들렀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노티하고 필요한 처치를 하느라 잠 한숨 자지 못한 인턴의 눈이 시뻘겠다.
‘일주일 연장해야 하나? 경아 씨는 어떻게 하지?’
반복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리포트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몇 글자 써 내려가다 말고 송철성 환자에게 눈을 돌리기 일쑤였다.
드레인에서 떨어지는 피가 줄어든 것 같았지만 바람일 뿐이었다.
새벽녘이었다.
오만석이 응급실 환자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 대신 환자 곁을 지키고 있던 송진우가 다급하게 케이스 발표를 정리하고 있는 김지훈을 불렀다.
“선생님!”
두툼하게 거즈를 댔건만 복대까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복대를 풀자 역한 냄새와 함께 피범벅이 된 거즈가 보였다. 옆구리를 따라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설마 재수술을 요하는 출혈이?
섬뜩한 냉기가 등짝을 따라 온몸으로 흘렀다.
송진우가 황급히 바이탈을 확인하며 드레싱을 했다. 거즈에 코를 들이박으며 양상을 확인한 김지훈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송진우도 한숨 돌렸다는 듯 이제야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후우! 액티브 블리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히 피에 상당한 양의 고름이 잔뜩 섞였다. 혹시 몰라 즉각 시행한 혈액 검사 결과와 바이탈에 큰 변화가 없어 다소 안도할 수 있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제길! 깨끗하게 처리한다고 했는데 어디에서 고름이 이렇게 나오지? 어딘가에 고인 거 아냐?’
워낙 지저분했지만 하윤호처럼 거칠게 처리하고 간신히 마무리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한편으로 빠른 시간 내에 염증이 빠져나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 속에 고름이 고이는 것보다는 빠져나오는 편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초조함 속에 송철성의 변화를 빠짐없이 머릿속에 담았다. 송진우에게 한 말처럼 훗날 비슷한 환자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금요일 새벽, 중환자실 일과가 다시 시작됐다.
각종 검사가 나가고 정리하는 사이, 오만석이 드레싱을 준비했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드레싱을 했다. 출혈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랐다.
복대를 풀었다. 아무 말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매번 피로 벌겋게 물들었던 가장 바깥쪽 거즈가 누렇게 보였다. 역겨운 냄새로 보아 고름이 묻어 나온 양상이었다.
출혈이 줄었다는 징후로 볼 수 있었지만 경험상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변화였다. 도리어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성급한 판단은 금물이다. 피가 떨어지는 속도부터 확인해야 했다.
기대와 불안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레인 끝에 매달렸던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째깍! 째깍!
똑! 똑! 똑!
믿을 수 없게도 확실히 속도가 줄었다. 혈관 속의 피를 바로 뺀 것처럼 검붉고 진했던 피가 다소 옅어졌다. 혈액 응고 기능이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송진우와 오만석이 흥분된 기색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간호사가 부리나케 달려와 검사 결과를 전해 주었다. 일제히 결과지에 눈길을 주었다.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간 효소 수치가 500대로 뚝 떨어졌다. 백혈구는 여전히 10,000을 넘었지만 수술 직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수치였고, 오히려 면역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결정적으로 혈소판 수치가 지혈을 기대할 수 있는 최소 수치인 50,000을 넘어 70,000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흥분으로 훅훅 숨이 가빠졌다.
“만석아, 지금이 터닝 포인트 같다. 혈소판하고 혈장 더 투여하자.”
“예.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요.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겠죠?”
간 효소 수치가 크게 증가한 환자 중 매우 드물게 간 기능이 더욱 악화되며, 도리어 회복세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염증이 빠져 효소 수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간이 아예 기능을 멈춰 효소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그렇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0에 가까워져 측정 불가로 나오면 간부전에 빠진 것이고, 이는 곧 갑작스러운 사망이었다.
김지훈이 정색을 하며 오만석을 노려보았다.
의사로서 당연히 의심해야 할 소견이었지만 지금은 티끌만치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배 속에서 고름이 대량으로 빠져나온 효과 중 하나이기만을 바랐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어느 쪽인지는 환자 경과에 달렸다. 원하는 방향이라면 분명 변화를 보일 것이다.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송철성만 바라보았다.
확실히 줄어든 출혈 속도.
아슬아슬하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바이탈.
정확하게 투여되는 강력한 항생제.
끊임없이 주입되는 혈소판과 혈장.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
그리고 은비의 사랑과 아버지의 의지.
이 모든 것이 맞물리고 있는 한 결코 나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송철성은 여전히 의식조차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고, 천근만근의 바위가 눈꺼풀을 짓누르고 있었다.
‘검사 결과가 좋아졌다면 분명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남은 시간, 결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 그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초조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