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인연의 끈 Ⅲ (2)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지금도 건드린 부분마다 한 곳도 빠짐없이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설상가상 튜브와 담도 사이에 틈이 벌어져 담즙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수술 후 100퍼센트 복막염을 일으킨다.
시간은 촉박하고, 갈 길은 아직 멀었다.
헐떡이는 심장 소리와 수혈 라인을 따라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보는 순간 초조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훅! 숨을 내뱉은 김지훈이 이를 악물며 손을 내밀었다.
‘조금 더 신중해야 했어.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면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침착해야 돼.’
“수처.”
단 두 바늘만 더 뜨면 된다.
틈이 너무 좁아 바늘을 찔러 넣을 조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작은 틈새를 뚫고 수처해야 했다.
다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벌어진 틈을 잡았다.
날카로운 바늘 끝에서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T-tube다.
너무 깊숙하게 떠 조직과 함께 묶이면 평생 제거하지 못한다.
세심하게 바늘 끝을 조절하며 담도 벽을 찾았다. 카메라 불빛에 반짝이는 바늘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뒤이어 길게 빠져나온 검은색을 가볍게 당겼다.
조직만 떴다는 경험적 감각이 다가왔다.
확신을 갖고 타이했다.
마지막 바늘이 남았다.
틈 사이가 더욱 좁아졌고, 바늘을 찔러 넣을 조직은 아예 숨어 버렸다. 거칠게 박리한 탓에 오직 기구를 통해 전해지는 촉감에 의지해야 했다.
은빛 바늘이 조직 사이로 사라지자 수술 팀이 숨을 죽였다. 김지훈의 눈은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기구를 잡은 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코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두 번째 실매듭이 조직을 파고들었다.
T-tube를 잡은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키며 기구를 움직였다. 약간의 저항과 함께 튜브가 충분한 유동성을 보였다. 튜브를 건드리지 않고 정확하게 타이했다는 의미였다.
더 이상 손을 댈 부위는 없었다.
마무리만 남은 상태였지만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담낭을 제거한 자리부터 담도까지 모든 수술 부위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출혈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담낭을 떼어 낸 자리에서는 지금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하윤호가 생각날 지경이었다. 그 덕에 어디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눈에 보였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별별 경험이 다 도움이 됐다.
눈가를 굳힌 김지훈이 지체 없이 마무리를 진행했다.
“수처 주시고, 보비 들어갑시다.”
단 한 곳도 무시하거나 방심할 수 없었다.
실매듭이 조직을 파고들어 갈 때마다, 보비로 출혈 부위를 지질 때마다 추가 손상을 입힐까 불안하기만 했다.
특히 간에 인접한 부분은 악몽이라고 할 정도였다. A형 간염, 치솟은 간 효소 수치, 경증의 간경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석션 통으로 뻘건 핏물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피에 물든 거즈가 바닥에 쌓여 갔다.
최철한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도 김지훈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울 뿐이었다.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마무리해 나가는 모습은 또 다른 긴장을 가져왔다.
어느새 손을 써야 할 부분을 모두 처리했다.
‘너무 거칠다 싶었는데, 이렇게 마무리를 할 수 있네. 담낭농증 환자를 라파로로 할 수 있을까?’
솔직히 김지훈처럼 수술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도달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었다. 언제 그 수준에 오를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최철한이 사소한 과정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화면을 노려보던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야 했다.
간 절제 후 사용하는 혈액 응고 제제까지 동원했다.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액체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다 했다.
아직도 우징(Oozing)처럼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출혈이기에 저절로 멈추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4시간을 훌쩍 넘어 5시간 가까이 걸렸다. 시간을 더 끌어 봐야 환자 상태만 나빠질 것이다.
“드레인 박읍시다.”
재빨리 드레인을 박고 수술을 끝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수술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가 드레인을 통해 뚝 떨어졌다. 뒷덜미가 서늘해졌지만 더 이상의 외과적 치료는 무의미했다.
‘제발 멈춰라.’
띠띠띠띠띠띠!
환자의 심장이 안정될 리 없었다.
수술 팀 모두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이용철 과장이 환자를 회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수시로 인공호흡기를 떼며 호흡을 확인했다. 숨 쉬는 소리가 미약하기만 했다.
결국 고개를 젓고 말았다.
수술 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5시간에 육박한 수술과 마취 시간, 끊임없이 지속된 출혈까지 유리한 구석이 없었다.
단 하나, 복강경으로 수술했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김 과장, 확실하게 돌아올 때까지 인공호흡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중환자실로 옮기자.”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드르륵!
“환자 갑니다. 비켜 주세요.”
조성민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수술 방 유리문이 열리자마자 오하석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은비가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창백한 안색으로 눈도 뜨지 못한 아버지.
입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튜브.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피.
다급한 의료진의 목소리.
아버지를 실은 침대가 향한 중환자실.
“아빠! 아빠!”
발만 동동 굴렀다.
울먹이며 소리치는 은비를 보고 멈칫거렸던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은비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희망을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은비야, 잠시 아빠 보고 나올 테니까 선생님하고 기다리고 있어. 아빠 괜찮아지실 거야.”
어떻게든 웃는 얼굴을 보이고 싶었지만 굳은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은비를 위한 길은 아버지의 회복뿐이었기에 먼저 환자에게 집중해야 했다.
송철성을 실은 간이침대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김지훈이 급히 뒤따라 들어가자 달달 떨던 은비가 오하석의 품에 안겨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아이의 울음은 언제나 아프지만 은비의 울음은 유난히 시리고 아팠다.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혈압 100에 70, 호흡 28회, 체온 38.4도예요.”
바이탈을 체크하며 동시에 오더를 확인했다.
즉각 채혈한 후 항생제를 투여하고, 혈액과 수액 주입 속도를 조절했다.
곧이어 흉부 사진을 찍고 비지에이가 나갔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한 조성민이 신중하게 호흡 모드를 선택했다.
차례차례 검사 결과가 나왔다.
흉부 사진은 깨끗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간 효소 수치는 여전히 1,000을 넘었고, 혈소판 수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량의 수혈과 간 염증으로 대사성 산증까지 발생했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 나온 정성호 과장과 향후 치료에 대해 상의했다.
A형 간염이 상당한 문제였지만, 환자 전신 상태와 맞물린 것이었다. 수술 부위의 염증이 빠지고, 출혈이 완전히 멈춰야만 회복의 길에 접어들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났다.
드레인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복부를 감았던 복대를 푸는 순간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두툼하게 드레인을 감싼 거즈가 가장 바깥쪽까지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거즈를 치웠다.
뚝! 뚝! 뚝! 뚝!
드레인을 따라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수술 중 건드린 모든 부위에서 발생한 우징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심각한 혈액 응고 장애가 원인이었지만, 응급 수술을 요하는 액티브 블리딩(Active Bleeding)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칠게 처리한 수술 부위가 떠올랐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채 아슬아슬하게 클립에 물린 동맥이 마음에 걸렸다. 빠질 리 없고, 우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했다.
“최철한 선생님, 혈관이 빠진 건 아니겠죠?”
“의심되는 부분은 다 잡았잖아. 우징이 분명해.”
최철한의 목소리가 침울하기만 했다.
혈소판과 혈액 응고 인자가 포함된 혈장을 투여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배를 열기에는 모든 조건이 치명적이었고, 해결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김지훈이 거즈에 코를 가져갔다.
피 냄새만이 아니었다. 역겨운 고름 냄새가 뒤섞였다. 그나마 수술 부위 주변에 고였던 염증과 고름이 순조롭게 빠져나온다는 사실이 위안이었지만, 차마 발길을 뗄 수 없었다.
“김 과장,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일단 지켜보자. 오만석, 김현철, 책임지고 킵해. 송진우, 보호자하고 절대 접촉하지 마. 어린아이다.”
최철한이 송진우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냉랭한 말을 내뱉었다. 서운한 일이 아니었다. 사흘 후에 떠나야 하는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은비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킵을 하는 것이 마땅했다.
구미에서 떠난 이후에 은비가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단 며칠이라도 수시로 만날 수 있다면 믿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지훈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처치가 모두 끝난 후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최철한 선생님, 이번만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오만석, 나 따라와. 네가 은비까지 신경 써야 돼.”
은비가 오하석과 함께 냉기 도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파래진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김지훈을 본 은비가 일어나자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걱정이 가득한 기색이었다.
“은비랑 같은 동네 사는 사람들입니다. 은비 아빠 어떻습니까? 수술 잘됐습니까?”
뒤늦게 도착한 모양이었다. 동네 사람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은비부터 봐야겠습니다.”
은비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오하석과 오만석이 잠자코 뒤를 따랐다.
“은비야, 아빠가 많이 힘들어하시네. 그래서 조금 더 있다가 아빠를 봐야 할 것 같아. 은비야,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은비가 울면 아빠가 더 힘들어하실 거야.”
“선생님! 아빠 괜찮으신 거예요?”
“은비 때문이라도 벌떡 일어나실 분이 아빠잖아. 기다릴 수 있지? 우리 선생님들이 항상 아빠 옆을 지킬 거야. 은비도 무서우면 여기 이 선생님을 찾으면 돼.”
찾아야 할 사람은 김지훈 자신이 아니었다.
결코 하기 쉬운 말이 아니었다.
오만석을 가리키자 눈물이 또 흘렀다. 작은 소녀의 눈 어디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숨어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이 아닌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아빠가 자신만 남겨 놓고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의사로서, 한 사람으로서 뼈저린 한계를 느꼈다.
“오하석 선생, 오늘 밤은 함께 있어. 오만석, 킵하는 중간에 수시로 은비 잘 있는지 살펴.”
“예, 선생님.”
최철한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었지만, 은비와 은비 아빠를 알기에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했다. 누군가는 은비를 따뜻하게 안아 주길 바랐다.
혀를 차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에이구!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도 안 돼 저렇게 될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놈의 돈이 웬수지. 엄마가 없어서 그렇지 그럭저럭 먹고사는 집이었는데, 은비가 입원했을 때 돈이 억수로 많이 나와 빚까지 졌어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눈가를 붉혔다.
“그래도 워낙 성실해서 거의 다 갚은 것 같았는데, 몇 달 전부터 자꾸 아프다고 하대요. 병원 가 보라고 몇 번이나 말해도 웃기만 하면서 은비 고등학교, 대학교 보내야 한다는 말만 하더니, 결국 이 난리가 났네요.”
“에휴! 별일 아닌 줄 알았는데, 덜컥 쓰러질 줄 누가 알았나? 은비가 119라도 빨리 불러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초상 치를 뻔했다.”
“눈치도 없이 재수 없는 소리는 왜 해요? 선생님, 은비 아빠 꼭 살려 주세요. 은비가 저녁 해 놓고 기다린다고 술자리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은비 아빠만 그랬나? 14살밖에 안 된 놈이 아빠 밥해야 한다고 쌀 씻는 거 보고 있으면 눈물이 다 나더라. 은비나 아빠나 서로만 보고 살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고.”
가슴이 아팠다.
5년 전 은비를 살리는 일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는 생각도 못했다. 9살 은비의 강인함, 아빠의 사랑과 정성에 감동했을 뿐, 퇴원 후에 벌어질 문제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과중한 의료비로 유발된 빚과 가난.
서로를 믿고 의지한 아버지와 딸.
또다시 반복되는 상황.
보는 사람도 암울한데 당사자는 어떨까?
은비가 있어야 할 보호자 대기실을 보는 순간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송철성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았다.
중환자실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오만석과 송진우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슈우욱! 슈우욱!
인공호흡기가 강제로 숨을 불어넣어도 송철성은 반응이 없었다.
오만석이 굳은 표정으로 드레싱을 했다. 어느새 새로 간 거즈가 거의 다 피로 젖었다.
뚝! 뚝! 뚝! 뚝!
출혈 속도는 여전히 빨랐다. 배 속에 온통 염증이 퍼졌는지 역겨운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다. 드레인을 따라 피로 벌겋게 물든 지저분한 조직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째깍! 째깍!
오래전 자정을 넘은 시간이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외래 진료도, 수술도 없지만 전공의들은 해야 할 일이 있다. 고경아도 은비에 대해 알고 있으니 이해할 것이다.
“오만석, 은비 보고 올라가서 쉬어.”
“아닙니다. 제가 있겠습니다.”
“오더야. 난 내일 오전에 짬을 내서 자도 되니까, 너는 빨리 올라가. 입원 환자를 다 현철이에게 맡길 거야?”
머뭇거리던 오만석이 서늘한 눈빛을 받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겼다. 한시라도 빨리 은비의 마음을 얻길 바랐다. 답답한 마음을 꾹 누르고 송진우와 함께 환자 치료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중환자실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추운 곳이다. 김지훈이 가만히 송철성의 손을 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담요를 덮어 주었지만 온기가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처치도, 당장 해야 할 일도 없는데 떠날 수가 없었다.
‘라파로가 정말 최선이었을까? 조금 더 매끄럽게 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지만 끊임없는 자책이 다가왔다.
고민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