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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778화 (778/1,329)

6화. 인연의 끈 Ⅲ (1)

심한 염증으로 탄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강하게 타이하면 구멍을 막기는커녕 점점 더 크게 찢어질 것이다. 자칫 담낭 절제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터진 부분 모두 헐겁게 보일 정도로 느슨하게 타이했다. 작은 틈을 따라 숨어 있던 고름이 새어 나왔다. 석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 담낭을 절제해야 한다.

최철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담낭에 난 구멍은 막았지만 어떻게 절제할지 걱정이 앞섰다. 통상의 경우처럼 상부에서 담낭 벽을 박리해 나가기에는 너무 약했다. 당장 잡고 지지할 조직이 없었다.

기구 하나로 담낭을 끌어 간과의 공간을 확보해야 사이를 박리할 수 있다. 작은 바늘로도 찢어지는데, 섣불리 잡아끌다가는 담낭이 쭉쭉 찢어질 상황이었다.

절제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들 같은 걱정을 했다. 수술 팀의 눈길이 김지훈에게 향했다.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지?’

잠시 모니터에 집중한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그나마 담낭 하부 주변 조직이 강해 보입니다. 먼저 담낭 동맥과 담낭 관부터 잡겠습니다. 이후에 거꾸로 박리해 나가 절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수술 팀 모두 흠칫 놀랐다. 시야 확보가 안 되는 상태에서 동맥부터 잡겠다니, 극도로 위험한 방식이었다. 더구나 이미 출혈 장애까지 발생했다.

수술 팀의 불안과 걱정을 알지만, 결정을 내린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통상의 방법이 더 위험합니다. 마취과, 출혈에 대비해 주세요. 시작합니다. 켈리!”

담도 위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 담낭을 최대한 밀었다. 담도를 덮고 있는 조직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그 위쪽 어딘가에 담낭 동맥과 담낭 관이 있을 것이다.

보비로 살짝 지졌다. 번쩍 불꽃이 튀기며 조직 속에 고인 체액과 섞인 혈액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혈관일 텐데 출혈량이 만만치 않았다.

불안감이 다가왔다.

켈리로 조심스럽게 지방조직을 벌렸다. 어김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보비로 지지고 수처를 해도 확실하게 잡을 수 없었다.

환자의 육신은 미세한 손상마저 감당하지 못했다.

무작정 지혈에만 매달릴 시간이 없었다. 소소한 출혈은 무시하고 동맥부터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신중하게 간과 담낭 및 담도의 위치를 가늠하고, 동맥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위로 접근했다.

랜드마크인 담도부터 확보해야 했다.

깊게 파고들어 갈수록 시야는 점점 더 나빠졌다. 그나마 시야를 확보한 부분도 불과 동전 하나 크기가 안 됐다. 크게 부어오른 담낭이 계속 밀려와 기구 조작마저 어렵게 했다. 켈리마저 수술 부위에 비해 컸다.

“모스키토! 석션! 보비!”

모든 신경을 오직 한 부위에만 쏟았다.

담낭 동맥이 보이지 않았다. 위치를 잘못 잡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함이 밀려왔다.

아니다. 이 부분에 분명히 있어야 했다. 출혈을 감수하고 동전 크기만 한 부분을 모두 박리했다.

주르륵 피가 솟구칠 때마다 식은땀이 맺혔다. 석션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상황까지 몰렸는데, 랜드마크가 될 담도마저 보이지 않았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수술복은 흠뻑 젖었다.

수술 팀 역시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히 이곳에 있어야 하는데, 왜 안 보이지? 틀림없이 이 부분에 있어.’

확신을 갖고 다시 한 번 주변 구조를 확인했다. 보다 깊숙이 박리하는 순간 빨간 피가 비쳤다. 섬뜩한 기분과 동시에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석션! 보비!”

빠지직!

불꽃이 튀며 지혈이 되는 순간 하얀 구조물이 보였다. 그렇게 찾던 담도였다.

담도의 주행 방향 및 담낭과의 간격을 확인한 김지훈의 손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박리한 조직 근처에 동맥이 바짝 붙어 있을 것이다. 부종과 출혈과 좁은 시야 때문에 놓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동맥 손상을 입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긴장이 확 치솟았다. 신중의 신중을 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단 몇 밀리미터를 박리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손을 멈췄다. 모스키토 끝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벌떡! 벌떡!

박리 경계와 딱 붙은 곳에서 동맥이 뛰고 있었다. 깊숙하게 퍼진 염증 때문에 단단하고 질겨야 할 동맥벽이 조금만 힘을 주어도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만일 박리 중 끊어졌다면?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동맥 주변을 깔끔하게 박리하기에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도리어 조직이 남더라도 거칠게 처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마저 쉽지 않았다. 건드리는 족족 피가 났다. 담낭에서 새어 나온 고름까지 흘러들었다.

“석션, 보비. 최철한 선생님, 조금 더 밀어 주세요.”

동맥 주변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모스키토의 작은 끝마저 위험했다. 필사적으로 시야를 확보해 가며 클립이 들어갈 공간만 간신히 만들었다.

“클립!”

끼이익! 끼이익!

클립에 물린 동맥이 축 늘어졌다. 동맥 특유의 탄력이 조금도 남지 않았다는 징후였다.

앞으로 박리해야 할 조직이 얼마나 약할지 짐작이 갔다. 한숨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잠깐 사이에 벌려진 조직 사이로 피가 차올랐다. 최단 시간에 담낭 관을 찾아야만 담낭 제거를 시작할 수 있다. 석션과 보비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불과 1센티미터 정도 더 박리해 나가는 동안 출혈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석션과 보비만으로 제어하기 힘들어 거즈까지 이용했다. 거즈 넣고 빼는 시간마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 밖으로 꺼낸 거즈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몇 장으로 끝낼 상황이 아니었다. 수술실 바닥에 피에 물든 거즈가 쌓여 갔다.

이용철 과장이 흠칫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똑! 똑! 똑!

이미 혈소판 농축액과 각종 혈액 응고 인자가 포함된 전혈 및 혈장을 투여하고 있다. 과연 이것만으로 출혈이 방지될지 조금도 확신할 수 없었다.

똑똑똑! 똑똑똑!

투여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올렸다.

“인턴 선생, 빨리 가서 혈소판 농축액, 혈장 5파인트하고 적혈구 농축액 3파인트 더 타 와.”

외부에서 가해지는 치료는 한계가 명확했다. 가능한 한 빨리 원인이 된 담낭을 절제하고, 염증이 퍼진 담도 액을 배출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직 김지훈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악전고투 끝에 담낭 관을 찾았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시간은 없는데 갈 길이 너무 멀었다.

끼이익! 끼이익!

담낭 관을 묶었다.

클립에 물린 동맥과 담낭 관이 아슬아슬하게만 보였다. 불안이 엄습했지만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담낭과 간 사이를 박리해 제거해야 한다.

왼손에 든 켈리로 잘린 동맥과 담낭 관을 단단히 잡고 조심스럽게 당겨 올렸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강한 조직이지만 손상을 주면 담낭까지 찢어진다. 아무리 위험해도 시야 확보를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 압력은 버텨 줘야 돼.’

조직을 당겨 올리는 손에 강한 긴장이 서렸다.

간에 접한 담낭 하부가 간신히 보였다. 어느 부위나 염증 소견이 심각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이해득실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 때였다.

최대한 간에 붙여 확실하게 제거해 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응고 장애까지 발생한 상태다.

정상보다 30배 이상 치솟은 간 효소 수치는 간염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담낭과 담도 염증이 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도 몰랐다.

무리한 박리와 과도한 수술 시간은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 있었다.

반면 염증 조직이 너무 많이 남는다면?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 중요했다.

“최철한 선생님, 확실한 제거와 시간 중 어느 쪽이 중요할까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던 최철한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수술 후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용철 과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도 시간이 많이 흘렀어. 마취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어. 김 과장, 서둘렀으면 좋겠다.”

더 이상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시간에 달렸다.

눈가를 굳힌 김지훈이 보비를 잡았다.

간과 담낭 벽 사이에 중요 구조물은 없고, 출혈은 불가항력일 정도로 제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심각한 손상만 아니라면 도리어 과감해야 했다.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퍼졌다.

켈리는 사용하지도 않았다. 보비만으로 거침없이 담낭 벽을 쳐 냈다.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염증의 주요한 원인인 담낭 제거가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거즈! 석션! 수처!”

복강 아래 고인 피를 빨아냈다. 박리한 면을 시뻘겋게 물들인 피를 닦아 냈다.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출혈은 수처로 통제했다. 바늘을 찌를 때마다, 매듭을 조일 때마다 긴장이 치솟았다. 가슴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냉철했다.

이미 구멍 난 주변 담낭 벽이 찢어지며 고름이 새어 나왔다. 감염이 우려됐지만 지연되는 수술 시간이 더 문제였다. 석션으로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제거하고 그대로 진행했다.

통상적인 경우에도 이 정도로 과감하진 않았다. 최철한마저 걱정이 앞설 정도로 거침없는 손이었다.

담낭 벽이 분리될 때마다 간 조직이 아슬아슬하게 보비 끝을 피했다.

삐이익! 삐이익!

마침내 보비 끝이 담낭 상부에 도달했다.

전기 소작으로 발생한 열에 조직 속 체액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간까지 열 손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섬뜩하기만 했다.

김지훈은 멈추지 않았다.

툭!

마침내 담낭이 간에서 떨어져 나왔다. 재빨리 콘돔에 넣고 배 밖으로 빼냈다.

너무 부어올라 절개 창을 통과시키기 쉽지 않았다. 강한 힘으로 당기자 콘돔 속에 든 담낭이 짓이겨졌다.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에 최철한이 후욱! 숨을 내뱉었다. 한편으로 그런 방법을 과감하게 택할 수 있는 김지훈의 실력과 판단에 감탄이 터졌다.

순간의 생각일 뿐이었다.

“T-tube 준비하세요.”

시야를 막고 있던 담낭이 제거됐다. 담도를 덮은 지방조직이 온전히 드러나야 하지만,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에 시야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염증으로 인한 부종도 상당히 심각했다.

일단 결정을 내리면 과감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하지만, 판단은 신중해야 했다.

김지훈이 기구로 전해지는 감촉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가늠했다.

담낭과 마찬가지로 꼼꼼한 박리는 위험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았다. T-tube를 넣으려면 메스로 담도 일부를 절개해야 한다. 어차피 손상받을 부분이기에 보비를 이용해 과감하게 박리했다.

삐이이! 삐이이!

날카로운 보비 소리와 하얀 연기, 번쩍번쩍 조직을 태우는 불꽃에 수술 팀이 숨을 죽였다. 얼마나 손상을 줄지는 오로지 김지훈의 손과 감각에 달렸다.

피! 피! 피!

건드리면 피가 나왔다. 그렇게 두려워했던 출혈을 무시하고 진행했다. 석션으로 빨아내고, 거즈로 닦아 내며 오로지 시야 확보에만 신경 썼다.

수술 팀의 불안과 긴장이 배가됐다.

‘김 과장, 너무 과감한 거 아니야?’

최철한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지만, 김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극도로 긴장한 기색을 보였지만 과도한 불안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 출혈이면 시간 단축이 더 유리해.’

거칠게 박리된 조직 사이로 담도가 드러났다. 정확한 식별이 힘들 정도로 뻘건 피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역시 개의치 않았다.

“석션! 메스!”

주행 방향을 따라 1.5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시커멓게 변한 담즙이 쏟아져 나왔다. 재빨리 빨아내고 최대한 담석을 제거했다.

통상의 수술에서는 거의 피가 나지 않는 부분에서도 출혈이 발생했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는 의미였다.

빠르게 T-tube를 넣었다. 여러 번 경험한 덕에 상당히 능숙했지만 출혈 부위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모니터 화면이 온통 빨간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띠띠띠띠띠!

지금도 대량 수혈과 대량의 수액 공급이 지속되고 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환자의 심장은 간신히 버텼다.

이용철 과장이 심한 불안감에 눈가를 찡그렸다.

“수처!”

봉합도 마찬가지였다. 꼼꼼하게 처리할 시간이 없었다.

김지훈이 담도 절개 부분만이 아니라 주변 조직까지 한꺼번에 떴다. 실 사이에 낀 조직이 두꺼워 타이하면 다음 수처할 부분이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 감안한 일이었다.

실을 길게 남긴 채 모든 수처를 마친 후 타이했다. 차례차례 담도 절개 면과 주변 조직을 단단하게 조였다. 담도 절개 면에서만큼은 확연하게 출혈이 줄어들었다.

“컷!”

이로써 목표했던 주요 과정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의도적이든, 아니든 거친 손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사소하다고 해도 환자 상태가 너무 나빠 대가가 더욱 클 것이다.

수술 팀 누구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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