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인생 최고의 행복. Ⅱ (2)
오하석부터 이혁민 교수에게 인사시켰다. 반가운 기색 대신 엄한 표정이었다. 전공의 지원 때마다 본 얼굴이었고 여자라고 해서 예외는 없었다.
“니 서울에서 우리 과 도는구나. 여자라고 봐줄 수 있는 과가 아니다. 지켜볼 거다. 열심히 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디 가지 말고 김 교수 발표 참석해라.”
오하석이 나가자마자 껄껄 웃었다.
“얘기 들으니까 모두들 당차다고 하네. 앞으로 봐야 알겠지만 마음에 든다. 김지훈, 구미 가서 참 많은 일을 하는구나. 수고했다. 참! 오만석이 일 잘하고 있지?”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만석, 오하석? 누가 보면 남매인 줄 알겠다. 만석이? 글자 하나 차인데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이미 오만석과 오하석에 대해 알아보고 확인할 것 다 확인한 모양이었다.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었다.
송진우에게 발표 준비를 맡기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인사할 시간도 없이 이준영 교수가 급히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제가 말씀드린 김지훈 선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말씀 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얼떨결에 인사는 했지만 어안이 벙벙했다.
“수술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김지훈 선생과 환자 분 먼저 만나 보고 복강경 여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복강경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스승이 수술을 상의하다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환자일까?
장 폐쇄 환자였다.
원인은 3년 전 시행한 복막염 수술이었고 입원 5일째까지 폐쇄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때마침 김지훈이 한 수술도 있고 해서 복강경을 권한 모양이었다.
장 폐쇄 환자의 통상적인 증상을 보였다.
단순 복부 사진과 CT를 확인했다.
확장된 소장 이외에 특별한 이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밴드나 혹은 심한 유착이 의심됐다. 스승의 환자였기에 반복적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가능하겠어?”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았다.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시작하자.”
난데없이 장 폐쇄 환자를 복강경으로 수술하게 됐다. 의아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지만 케이스 리포트와 상관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당장 퍼스트를 서야 한다. 두 번째라고 해서 쉬울 리 없겠지만 지난 경험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술 방으로 내려온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준영 교수 혼자서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신현수나 이경석도 훌륭하게 퍼스트를 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경험을 더 쌓으라는 말씀이실까?’
그럴 확률이 높았다. 한편으로 누구보다도 제자의 능력을 믿는다는 말이었다. 확고한 신뢰는 불문가지의 일이었다.
대단한 부담이자 벅참이었다.
일반 외과 구성원들이 속속 수술 방으로 들어왔다. 전공의와 펠로우는 물론 송재덕 교수와 신기동 교수까지 보였다. 마지막에 박승준 교수, 지동훈 교수까지 들어와 부담이 더욱 커졌다.
“했던 대로 하면 된다.”
익숙할 대로 익숙한 스승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안정이 찾아왔지만 오산이었다. 수술대 앞에 서려던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긴장이 확 치솟았다.
퍼스트가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 집도의 자리를 가리키는 스승의 눈빛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가져왔다. 세컨과 써드 자리에 서는 신현수와 이경석의 모습에서 강한 각오를 보았다.
그야말로 최고의 수술 팀이었다.
개개인의 마음과 능력이 모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어떤 수술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술도 시작하기 전에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찼다.
장 폐쇄 수술은 잘될 수밖에 없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십시오.”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처컥! 처컥!
수술이 시작됐다.
일반 외과 사람들로 수술실이 꽉 찼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김지훈의 손에 집중하고 있었다.
배 속을 확인하고 장 유착을 풀어 갔다.
침착하면서도 확실하게 수술을 진행했다.
툭! 툭! 툭!
여기저기 어지럽게 들러붙어 있던 소장이 하나둘 자유롭게 풀려났다. 출혈에도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기다란 기구로 수처와 타이를 하는 손이 자연스럽기만 했다. 누군가는 심각한 기색을, 누군가는 감탄을,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완전히 몰입했다.
수술 부위 이외에는 어디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긴장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스승과 동료가 전하는 안정감은 절대적인 힘이었다.
유착이 가장 심한 부위에 도달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장과 기구가 맞붙었다. 단 1밀리미터만 비껴 나도 큰 손상을 입힐 것처럼 보였다. 수술실이 긴장감으로 꽉 찼다.
사아악! 사아악!
작은 기구 끝이 절묘하게 박리할 면을 타고 넘었다.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유착 부위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개복 시에도 박리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툭!
소장 벽이 제법 깊게 찢어졌다. 이준영 교수가 카메라를 접근시켰다. 눈가에 힘을 주며 점막 부위까지 손상을 입었는지 확인한 김지훈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수처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간호사, 5번 주세요.”
이준영 교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가느다란 바늘과 실이 소장 벽을 파고들었다. 장 폐쇄로 인한 부종으로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면 수술 후 샐 가능성이 높았다.
한 바늘, 두 바늘, 세 바늘.
모두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적절하게 조여진 매듭이 소장 손상을 확실하게 복구시켰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진행하는 모습에 신현수와 이경석이 숨을 죽였다.
마침내 모든 유착 부위를 해결했다.
손으로 직접 수술한 것처럼 깔끔하게 끝났다.
마무리하는 김지훈의 손은 힘찼고 이준영 교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신현수와 이경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컷!”
두 시간 반 만에 수술이 다 끝났다.
김진호 교수가 나직하게 웃었다.
“이준영 선생님, 김 교수는 지방 타입인가 봅니다. 음성에서도 그렇고 구미에 가 있더니 손이 확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다르긴 뭐가 달라. 똑같아.”
이번만은 표정과 말이 달랐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달라졌다고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때 수술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강병옥이 이혁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혁원이 당직인 신현수에게 조용히 노티했다.
“선생님, 아뻬 한 명 있습니다. 충수돌기 주변 농양이 의심됩니다. 바로 수술 준비하겠습니다.”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가를 찡그렸다.
아직 복강경 기구가 완전히 숙달되지 않았다. 담낭 절제 말고는 복강경 집도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지훈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였다. 간접 경험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때였기에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자존심은 두 번째 문제였다.
“이준영 선생님, 터진 아뻬가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환자도 라파로로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가 회복되는 동안 응급실이 부산해졌고 이내 수술이 준비됐다. 이준영 교수는 물론 당직인 신현수도 처음부터 환자를 맡겼다.
졸지에 복강경을 또 하게 됐다. 그것도 학회 발표용 리포트에 딱 맞는 케이스가 연이어졌다. 누구도 수술실을 나가지 않았다. 생각 이상으로 뜨거운 관심이었다.
처컥! 처컥!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의 눈빛이 번쩍였다.
쉬운 수술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했다.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수술이었고 그만큼 여유가 있었지만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승과 동료들이 지켜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환자에 대한 의무를 잊는 순간 무슨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단 한 시도 흐트러지면 안 되는 자세였다.
신중하고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이준영 교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든 원동력은 지금 보이는 네 모습이야. 평생 잊지 말고 항상 지금 자세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순조롭게 수술이 끝났다. 김지훈이 뻐근한 어깨를 흔들며 신현수에게 눈길을 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수술 맡겨 줘서 고맙다.”
“라파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대장암 수술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겠어.”
이준영 교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스승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크 뒤로 숨은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회복실로 향했다.
자신의 환자가 아니라고 해서 달라질 김지훈이 아니었다. 병동으로 올라가 수술한 환자들을 신중하게 살폈다. 보호자들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까지 하고서 회의실로 내려왔다.
문을 열려다 말고 멈칫거렸다.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지훈이 저놈 손에 뭐가 달렸나? 라파로는 최고네, 최고. 경석아, 현수야, 열심히 해라. 오늘 수술 보니까 대장암을 라파로로 했다는 게 실감나지? 보통이 아니다, 보통이 아니야. 이 교수, 내 말이 맞지? 대장해야 하는데, 대장.”
이준영 교수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전혀 상관없는 말을 꺼냈다. 송재덕 교수도 그러려니 하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김지훈에 대해서는 각자 갈 길을 갈뿐이었다.
“신현수, 케이스 리포트 복사해 왔어?”
“예. 여기 있습니다.”
“한 부씩 나눠 드려.”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나직하게 들렸다.
“깔끔하게 잘 썼네. 이 교수, 신 교수, 이거 발표하면 난리 날 것 같지 않니? 특히 대장암 수술은 센세이션이다, 센세이션. 이런 생각을 누가 할 수 있겠어, 누가. 지훈이가 대장해야 하는데, 대장.”
“구미 내과 정성호 과장하고 통화했는데 혈관도 제법 많이 했고 결과도 좋답니다. 다행입니다. 신현수, 이경석, 너희들은 그동안 김지훈보다 케이스가 많았어. 바짝 긴장해.”
민망해진 김지훈이 과한 칭찬이 멈추길 기다렸다 문을 열었다. 일제히 시선을 주었다. 이미 일과가 끝나고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혁원, 나종진, 강병옥까지.
송재덕 교수가 웃으며 채근했다.
“라파로 대장 왔니? 라파로 대장. 지훈아. 교수야. 배고프다, 배고파. 빨리 발표 듣고 밥 먹으러 가자.”
“김지훈, 시작해.”
불이 꺼지고 슬라이드가 한 장씩 넘어갔다.
김지훈과 송진우의 호흡이 척척 맞았다. 충분이 준비했고 발표 경험도 있기에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발표가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뿌듯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구미에 가 있는 동안 주말 집담회 분위기를 잊었다. 눈앞에 있는 교수들이 어떤 의사들인지도 잊었다.
“김지훈, 장 폐쇄 환자 박리할 때 기구 선택에 문제는 없었어? 오늘 수술도 마지막 부분에서 상당히 위험했어.”
이준영 교수가 포문을 열었다.
급기야 이혁민 교수도 모자라 복강경과 상관없는 신기동 교수까지 가세했다.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고프다던 송재덕 교수는 조기 대장암 수술에 대해 물으며 가히 물고 늘어진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모든 화력 집중이다.
삐끗하는 순간 장렬히 산화할 것이다. 머리를 싸매며 질문에 집중하고 신중하게 대답했다. 평생 함께할 동료인 신현수와 이경석은 타든 말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로지 리포트에 집중할 뿐이었다.
‘매정한 놈.’
온몸이 폭삭 젖었다.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입 안이 바짝 마를 무렵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 다소 애매모호했던 부분들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자신감을 찾은 김지훈의 입이 풀렸다.
분위기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그때 뜻밖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고성문이 슬그머니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송재덕 교수와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견하고 기특한 사위를 바라보는 장인의 눈빛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허기가 심해질 때쯤 자리가 끝났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하자 모두들 박수로 화답했다. 조용히 일어난 이준영 교수가 뭔가를 들고 다가왔다.
“오늘 수술한 환자 정보하고 농양 아뻬 수술 케이스다.”
보강하라는 말이었다.
자료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결코 제자리에 안주할 스승이 아니었다. 조기 대장암 케이스만 없을 뿐 충분히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수술 건수가 적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선생님께서 직접 발표하셔도······.”
“네가 알려 준 수술 방법이야.”
너무 당황해서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공동 저자로 등재하고 발표하겠습니다.”
“난 간담도 전공이고 라파로 응용은 네 몫이야.”
의사의 명성은 실적과 발표에서 나온다. 제자의 연구 실적을 빼먹는 스승을 빙자한 교수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세상이었다. 경우까지 다르고 또 한 번 이름을 알릴 기회인데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발표 잘했다. 밥 먹자.”
뚜벅뚜벅 회의실을 나가는 스승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렇게 큰 가르침을 어떻게 잊지 않고 따라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지훈아, 교수야, 뭐 하니? 가자가자. 배고프다.”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두 달 반 만에 본 선후배들이었다. 예약된 식당으로 가며 한창 인사하기 바쁠 때 누군가 슬며시 다가왔다.
박승준 교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헛기침을 했다.
“김 교수, 대장암 라파로 잘 봤어. 난 생각도 못했네. 올라오면 케이스 잡아서 같이해 보면 안 될까?”
눈이 동그랗게 떠질 정도로 뜻밖의 말이었다. 안 될 것이 없었다. 그사이에 이경석과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저야 좋죠. 케이스만 잡아 주십시오.”
거리낌 없는 밝은 목소리에 박승준 교수가 웃었다.
“김 교수, 고마워. 이경석 선생, 함께 케이스 잡자.”
“예, 선생님. 내과에 연락하겠습니다. 참! 월요일에 저한테 보내신다던 치질 환자 왜 안 보내세요?”
“그 환자? 월요일에 이 교수 대장 수술 있다고 해서 내가 하기로 했어. 미리 말 못해서 미안해. 그리고 목요일에 직장암 수술 있는 거 알지? 스테이플 사용해야 돼.”
“예. 시간 맞춰 들어가겠습니다.”
진짜 마음을 튼 동료들 간의 대화로 들렸다.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