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68화 (768/1,329)

1화. 한 발 더 올라서다. Ⅱ

조심스럽게 조금씩 조금씩 박리를 진행했다.

하행 결장과 면한 에스 결장에 바짝 접근했다. 무수한 난관을 넘겼지만 복강경으로는 더 이상 절개나 박리가 불가능했다.

애초에 계획했고 예상했던 과정이었다.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제 V자 중 한쪽 선을 잘랐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다른 수술이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극도의 긴장이 연이어진 수술이었다. 남은 과정 역시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유달리 어깨와 목이 뻑뻑했다.

수술 팀 모두 휴식이 필요한 때였다.

“마취과, 오 분간 쉬겠습니다.”

김지훈이 눈을 감고 이어질 과정을 그렸다.

집도의의 침묵에 수술실이 고요했다.

째깍! 째깍!

갈증과 피로를 면한 오 분이 지났다.

다시 시작이다.

김지훈이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V자로 표시한 장간막의 남은 선을 박리하고 잘라 내야 장간막과 에스 결장을 모두 들어낼 수 있다.

“켈리! 보비! 수처! 클립!”

같은 과정이 다시 시작됐다.

어려움이나 위험성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계속되는 긴장과 반복되는 손놀림에 기구를 조작하는 손이 하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천천히 힘 빼고.’

차근차근 목표 지점을 향해 전진했다.

혈관 하나가 묶일 때마다 장간막이 떨어져 나왔다.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개복이었다. 수술실 안의 모든 의료진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째깍! 째깍!

마침내 직장에 면한 에스 결장에 접근했다.

몇 번만 더 기구를 조작하면 장간막 박리가 모두 끝난다. 장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됐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동맥이 관건이었다.

툭!

느낌이 안 좋았다.

주루룩!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장간막은 불과 몇 밀리미터도 안 남았지만 반드시 결장에서 박리해 내야 한다. 양과 상관없이 무조건 지혈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다.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수처!”

고경아가 멈칫거렸다.

“몇 번을 드릴까요? 지금 실은 너무 굵어요.”

김지훈이 어깨를 흠칫거렸다.

귀중한 조언이었다.

고경아가 아니었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실 굵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다 장까지 피에 물들 정도로 크게 지연시켰을 것이다.

‘철저히 대비한다고 하면서 정작 이런 상황을 생각도 하지 못했네. 바보 같은 놈.’

김지훈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5번 주세요.”

장 봉합에 쓰이는 실 중 가장 가는 실을 택했다. 바늘도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남은 조직이 적었다. 최철한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저걸 어떻게 수처할 생각이지?’

“카메라 접근시켜요. 켈리.”

피가 솟는 부분을 켈리로 잡았다.

남은 장간막은 거의 없었고 바늘을 찌를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바늘이 장을 찌를 것처럼 바짝 붙어 통과했다.

아슬아슬했다.

장을 건드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바늘구멍만큼 남은 부분을 수처한 것이다. 실로 놀랍도록 정확한 기구 조작이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실에 매듭을 만들고 타이까지 한 김지훈의 손은 정확 그 자체였다.

“컷합니다.”

수술 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송재덕 교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맛만 다셨다. 사실 자신감을 보였지만 누구보다도 긴장했던 사람은 김지훈이었다.

‘후우! 정말 운이 좋았어. 경아 씨 아니었으면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실패했을지도 몰라.’

이로써 모든 박리와 절제가 끝났다. 은빛 클립과 검은 실매듭이 줄줄이 매달린 장간막이 삼각형 모양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출혈이나 주변 조직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부분까지 계획대로 무사히 진행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에스 결장과의 연결만 남은 상태다.

이제 대장을 자르고 이어야 한다.

복강경 기구로는 자르지도 못하고 이어 줄 수도 없다. 장과 장을 연결하는 스테이플이 아예 없기 때문이었다. 직장암 때 사용하는 스테이플은 길이가 짧아 에스 결장 근처에도 접근시킬 수 없었다.

개복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과정이었다.

수술 후 두려움과 암이 주는 두려움 사이에서 완강히 거부하던 환자에게 최선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구를 차례차례 뺐다.

어떻게 한다는 말일까?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카메라와 기구 하나만 남았다.

꺼멓게 변색된 에스 결장에 초점을 맞췄다.

김지훈이 복부 중앙을 여기저기 누르며 에스 결장과 가장 가까운 부위를 찾았다.

“최철한 선생님, 여기쯤이 좋겠죠?”

“지금 누르는 부분이 가장 좋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메스!”

피부에 새로운 절개창을 냈다.

6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개복을 바로 했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길이였다. 뚱뚱한 사람 아뻬 때 절개도 이보다 클 정도였다. 별 차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차이가 환자의 고통을 몇 배 이하로 줄여 줄 것이다.

이용철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를 연다는 말은 들었는데 너무 작잖아. 저기로 어떻게 장을 빼낼 생각이지?’

의문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김지훈과 최철한이 빠르게 복벽을 열었다.

복막을 열기 직전 에스 결장을 잡아 절개창 밑에 위치시켰다. 사람 몸은 돌다리 두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주의해야 한다. 가끔은 뭐에 홀린 듯 엉뚱한 부위를 제거해야 할 결장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멀쩡한 장 자르면 난리난다.

“카메라만 남기고 기구 모두 뺍니다. 에어 오프!”

공기가 빠져나가며 배가 서서히 꺼졌다. 복막과 에스 결장이 맞닿았다. 다시 한 번 에스 결장 위치를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복막을 열었다.

“카메라 빼세요. 켈리. 롱켈리.”

신중하게 에스 결장을 잡았다.

수술 전 준비를 충분히 했지만 속에 찬 공기로 에스 결장이 빵빵했다. 장 크기에 비해 절개창이 너무 작았다. 게다가 절제한 장간막까지 빼내야 한다.

무리하게 힘을 주다 어딘가 찢어지기라도 하면 심각한 출혈이나 오염을 유발할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장간막을 최대한 박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순한 과정이지만 이대로 잡아 빼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일이다. 때론 사소한 생각의 전환이 문제를 의외로 쉽게 풀리게 할 수 있다.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았다.

“메스!”

절개창에 살짝 걸쳐진 에스 결장에 구멍을 냈다.

“석션!”

대장 속을 채웠던 공기가 사라지며 쭈글쭈글해졌다. 부피가 충분하게 준 것을 확인한 후 구멍을 단단히 봉합했다.

에스 결장을 조심스럽게 당겼다.

그래도 절개창이 작았다.

한참을 씨름했다.

에스 결장이 장간막과 함께 서서히 배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침내 자르고 이어 줄 부분까지 모두 빼냈다. 결과적으로 절개창은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조심해야 했다.

배 밖에 나온 에스 결장과 연결된 대장 및 장간막에는 지금도 강한 혈류가 흐르고 있다. 배 속에 있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함부로 조작하다 약한 부분이 쭉 찢어질 수도 있었다.

“장겸자.”

따르륵! 따가각!

신중하게 대장을 잡고 잘랐다.

마침내 에스 결장이 V자로 절제된 장간막과 함께 통째로 제거됐다. 어딘 가에 숨어 있을지 모를 암세포도 함께 말이다.

이제 이어 주는 일만 남았다.

개복 시 배 속에서 하던 과정을 배 밖에서 할 뿐이었다. 대장 연결은 무척 신중해야 하지만 오늘 수술 중 가장 간단하고 쉬운 과정이었다.

김지훈과 최철한의 손이다.

내부를 깨끗이 닦아 내고 연결을 시작했다. 손이 척척 움직이며 감탄이 나올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유지했다. 빠르게 대장과 대장이 연결됐다.

눈으로 보며 손을 직접 사용할 때가 가장 안전하다. 연결 부위는 깔끔했고 색깔이나 움직임에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V자 모양으로 잘린 장간막도 가능한 부분까지 배 밖에서 이어 주었다.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과정은 모두 끝났다. 연결된 대장을 배 속으로 집어넣고 복막을 단단히 봉합했다. 수술은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카메라 넣읍시다. 에어 온!”

처컥! 처컥!

배가 다시 빵빵해지며 모니터에 수술 부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확대된 연결 부위가 더욱 선명하고 자세하게 보였다. 문제 될 부분이 없었다.

중요한 과정이 하나 더 남았다.

V자로 잘린 장간막 양쪽을 꼼꼼하게 이어 주어야 한다. 이대로 남기면 장이 장간막 사이 공간에 끼어 꼬이거나 심하면 장 폐쇄까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구 끝에 물린 은빛 바늘이 날카롭게 빛났다.

검은 실매듭이 장간막 속으로 깊숙이 묻혔다.

째깍! 째짝!

처컥! 처컥!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수술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봉합과 타이를 반복했지만 익숙해지기보다 어렵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했다.

‘끝까지 침착하게. 집중하자. 집중.’

잘렸던 장간막이 서서히 하나로 이어졌다. 마침내 모든 과정이 끝났다. 제거해야 할 부분은 모두 제거했고 개복해서 수술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최철한 선생님, 끝내도 되겠죠?”

“예. 잘된 것 같습니다.”

대장과 장간막이 안전하게 연결된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드레인은 넣은 후 모든 기구를 빼냈다. 마지막으로 복부에 난 절개창을 닫았다.

오래 걸릴 이유가 없었다.

“컷!”

수술의 끝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온몸의 맥이 쑥 빠져나갔다. 6센티미터의 절개창과 기구가 들어갔던 작은 절개창 세 개만 보였다.

김지훈의 마스트가 불룩해졌다.

수술 팀 모두 감탄인지 안도하는 것인지 모를 묘한 소리를 냈다.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는 말없이 김지훈만 보고 있었다.

절반의 개복?

절반의 복강경?

어떻게 부르든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처음 시도한 방법으로 다른 질환도 아닌 암을 확실하게 제거했다. 복강경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는 수술이었다.

김지훈의 표정이 복잡했다.

뿌듯함 속에 불안감이 실려 있었다. 오늘 수술의 목적은 새로운 시도 혹은 첫 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환자의 치료에 있기 때문이었다.

환자에게도 큰 의미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회복실로 환자가 옮겨졌다.

수술 팀 모두 김지훈의 뒤를 따랐다.

경이로울 정도로 감탄을 자아낸 수술이었는데 막상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만석에겐 가히 충격이었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김지훈과 환자를 번갈아 보았다.

‘와! 김지훈 선생님이 바로 진짜 써전이었네. 방법을 생각해 낸 것도 대단하지만 손이 예술이다. 예술.’

끝까지 참관한 오하석은 무슨 이유인지 단발머리를 흔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송진우가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낼 지경이었다.

“끄으응!”

환자가 눈을 떴다.

마취 기운에 주변이 흐릿할 텐데도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수술 잘 끝났는지 묻는 것 같았다.

“환자 분, 수술 잘 끝났습니다.”

“고마··· 워요.”

이제야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고맙다는 첫 말이 절실하게 감사한 날이었다.

12시에 시작된 수술이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하루 종일 지속된 긴장에 온몸이 뻐근했다. 예정보다 빨리 끝났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을 주었다. 실력이 늘긴 는 모양이었다.

자! 이제 평가를 받을 시간이다.

어려운 수술을 성공했다고 대견해하고 좋아하기만 할 스승이 아니다. 휴게실 문을 열자 이준영 교수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두 달 반 만에 스승과의 단독 대면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조용히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삐그덕 문이 열리며 최철한이 들어와 김지훈 옆에 섰다.

헉!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스스로?

“김지훈, 수술 중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두 번이나 할 뻔했어. 준비 제대로 한 거야?”

에스 결장 동맥 후면을 박리할 때와 고경아가 아니었으면 우왕좌왕 했을 상황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말하는 김지훈의 이마에 수술 때보다 더 진한 땀이 맺혔다.

“최철한, 첫 집도가 아니라 환자가 첫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해. 어떤 경우에도 미숙함은 핑계가 될 수 없어.”

연이어지는 수술에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첫 마디에 이어 몇 마디 짧은 지적만으로도 화력은 충분했다. 시뻘건 불길을 쏟아 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전문의 두 명이 바스러졌다.

역시 이준영 교수였다.

털썩! 털썩!

간만에 불길에 휩싸인 김지훈이 쓰러졌다. 나름 각오하고 태움을 자청했던 최철한은 식은땀을 흘리다 결국 혼미한 정신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리틀 이준영!’

김지훈의 별명과 이준영이란 이름에 함축된 다양한 의미를 간과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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