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한 발 더 올라서다. Ⅰ(2)
빠르게 수술 계획을 정리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십시오.”
이용철 과장의 목소리에도 긴장이 실렸다.
최철한과 눈을 마주친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메스!”
은빛 칼을 건네는 고경아의 손에 믿음이 실렸다.
배꼽 속에 낸 절개창에서 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 침착하게 지혈하고 에어 팁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단단한 복벽이 뚫리며 저항이 사라졌다.
“에어 온!”
드디어 조기 대장암 환자의 수술이 시작됐다.
개복이 아닌 복강경으로 말이다.
가장 큰 절개창도 불과 10밀리미터다. 박리는 몰라도 절제된 대장을 어떻게 잇고 꺼낼지 모를 일이었다. 방법이 있기에 시도했을 것이다.
이준영 교수의 눈이 제자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번쩍번쩍 빛났다. 송재덕 교수의 눈가가 긴장으로 바르르 떨렸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에어가 주입됐다.
배꼽 속으로 카메라가 들어갔다.
마치 어떤 병도 없는 것처럼 깨끗했다. 복강경으로 시작하길 잘했다.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각오가 격렬하게 솟구쳤다.
“트로카!”
10밀리미터 트로카 한 개와 5밀리미터 트로카 두 개로 복벽을 뚫었다. 도합 네 개의 기구가 삽입됐다. 카메라와 5밀리미터 기구를 잡아야 하는 최철한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김지훈이 꾸불꾸불 배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장과 소장을 능숙하게 한편으로 밀었다. 지난 몇 건의 수술이 가져다준 경험의 힘이었다.
절제해야 할 에스 결장을 확보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든 암이 그 속에 숨어 있다.
김지훈이 긴장감에 훅 숨을 내쉬었다.
찬찬히 에스 결장을 확인했다.
중간 부위에서 암이 발생한 용종을 떼어 냈다.
수술하는 입장에서 무척 운이 좋은 상황이었다. 암 발생 부위를 기점으로 에스 결장을 절제한 후에도 이어 줄 부분이 남기 때문이었다.
후복막에 묻힌 하행 결장이나 직장을 박리해야 했다면 애초에 복강경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복강경 기구를 사용하기에 너무 위험한 부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술이 쉬워질 리 없었다.
단지 불가능한 상황을 피했을 뿐이었다.
결장 동맥과 임파선이 포함된 장간막을 절제해야 한다. 조기 위암 때 단 한 번 해 본 경험이 다였다. 더구나 범위가 훨씬 크고 위험 구조물도 그만큼 많다.
양손에 기구를 잡은 김지훈이 잠시 모니터를 응시한 채 눈가를 굳혔다. 계획은 계획일 뿐 실제 수술에서 발생하는 변수는 예측할 수 없다. 하기에 더욱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박리만 확실하게 하면 성공한다.’
“최철한 선생님, 제가 잡아 주는 부분을 확실하게 잡고 최대한 시야를 확보해 주셔야 합니다.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수술 시작이다.
수술 팀의 긴장이 확 치솟았다.
따르륵!
이름 그대로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에스 결장 한 부위를 잡았다. 최철한이 에스 결장이 최대한 펼쳐지도록 조심스럽게 기구를 밀었다.
두툼한 지방으로 덮인 장간막이 드러났다.
뒤쪽에서 카메라 불빛을 비췄다.
혈액으로 가득 찬 동맥과 정맥, 수많은 분지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검은 음영으로 나타났다. 나뭇가지 모양으로 주행하는 혈관을 모두 묶고 잘라야 한다.
설혹 암이 퍼졌다고 해도 정상 크기의 임파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식별할 방법도 없다. 지난 경험과 해부학에 근거해 박리할 선을 설정해야 했다. 머릿속으로 선을 그린 후 조심스럽게 장간막 하부에 접근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구조물은 장간막 절제와 박리의 시작점인 에스 결장 동맥이다. 장간막 가장 깊숙한 곳에 대동맥에서 갈라져 나온 동맥이 위치한다.
뭉툭한 기구가 단단한 동맥을 자를 리 없지만 대신 가느다란 분지가 있다. 굵은 동맥에 가까이 위치한 분지일수록 혈액의 압력이 강하다. 자칫 기구로 잡을 수 없는 출혈이 유발될 수도 있었다.
이제와 배를 열 수는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동맥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개복 시에는 박동을 촉진해 찾을 수 있지만 기구로는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기본을 확실하게 지켜왔다. 남은 과정을 생각하면 난관이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정확한 해부학 지식과 랜드 마크!
동맥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부위의 장간막 겉 부분을 살짝 지졌다. 연기와 함께 미세한 불꽃이 튀며 조직이 하얗게 익었다.
사악! 사악!
하얗게 변한 선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노란빛이 감도는 지방 조직이 갈라지며 검붉은 피가 비쳤다. 정맥피다. 문제없이 지혈할 수 있다. 보비로 지져 가며 더욱 깊숙이 박리해 들어갔다.
지방 속을 파고든 켈리를 벌리는 순간 빨간 피가 주루룩 흘러나왔다. 긴장도 잠시 생각보다 양이 적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분지일 뿐이다.’
침착하게 보비를 사용해 출혈 부분을 지졌다.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지방만 녹을 뿐 빨간 피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씩 주변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굵거나 혈류가 강한 분지였다.
빠르게 지혈하지 못하면 박리해야 할 조직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자칫 지방 사이에 혈액이 차 부어오르면 박리는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수처!”
살짝 힘만 주어도 쉽게 찢어지는 연약한 지방 조직을 한 바늘 뜨고 타이했다. 그동안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어차피 제거해야 할 부위였고 지혈이 목적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준영 교수의 눈이 반짝였다.
살짝 놀라는 것 같기도 했다.
‘기구 다루는 수준이 확실히 달라졌어.’
랜드 마크하면 송재덕 교수다.
‘내가 가르쳐 준 걸 지금도 잊지 않고 있구나. 야! 막대기 끝에 달린 기구를 참 쉽게 다루네. 전에 봤을 때하고 확 달라진 것 같은데 구미 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감탄도 잠시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벌떡! 벌떡!
서서히 굵은 에스 결장 동맥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접근시키자 동맥이 화면 절반을 채웠다. 확대된 탓도 있지만 써전에게 혈관은 언제나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장기였다.
가슴이 서늘해졌다.
“곧 동맥 잡습니다. 켈리.”
김지훈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전면이 노출됐다.
동맥 주변을 완전히 노출시켜야 안전하고 확실하게 묶을 수 있다. 기구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결코 무리한 힘은 가해지지 않았고 박리해야 할 면을 따라 정확하게 움직였다.
벌떡! 벌떡!
동맥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박동을 따라 점점 심하게 꿈틀거렸다. 아차 하는 순간 손상을 줄지도 모르는 상황에 김지훈이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살짝 피가 비쳤다. 사소하다고 지나치면 동맥벽까지 피에 물들어 박리할 선을 놓치게 된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보비.”
삐이익! 삐이익!
굵은 동맥 바로 옆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최철한의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날카로운 소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동맥 하부 박리합니다.”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오로지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과 모니터 화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1센티미터도 되지 않은 부위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대가라 불리는 의사도 긴장을 피할 수 없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동맥 밑으로 파고든 기구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첫 박리는 순조롭게 보였다. 그러나 살짝살짝 벌어지던 기구가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뻘건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동맥 분지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출혈 부위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팀은 물론 참관하던 교수들마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빠르게 해결하지 못하면 복강경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이 부분은 절대적으로 주의했어야 했는데.’
자책할 틈이 없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최철한이 잡고 있던 기구를 잡았다. 주변 조직과 분리된 에스 결장 동맥 일부분을 최대한 밀었다. 박리된 조직 끝 부분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석션. 수처.”
왼손으로 석션을 하며 출혈 부위를 찾았다. 조직 속에 숨어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다. 넓은 부분을 수처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바늘을 접근시켰다.
지방 조직을 뚫고 들어간 바늘을 빼려는 순간 벌떡벌떡 뛰는 에스 결장 동맥이 가로막았다. 무리하다간 동맥을 찌를 판이었다.
최철한이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더 이상 밀어낼 수가 없었다.
여전히 피는 나고 있다.
석션으로는 한계가 있다.
어떻게든 동맥 분지가 포함된 조직을 한꺼번에 묶어야 했다. 바늘을 뺄 틈을 찾지 못했다. 초조함에 땀 한 방울이 목덜미에 맺혔다.
벌떡 벌떡!
박동과 박동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확한 시점에 바늘을 뺐다. 동맥벽이 아슬아슬하게 바늘 끝을 스쳐 지나갔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점점 벌겋게 물드는 조직을 한 바늘 더 떠야 했다. 미세한 떨림마저 막기 위해 숨을 멈췄다. 극도의 긴장과 경험이 가져온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또 한 번 바늘 끝이 동맥을 스쳐 지나갔다.
극도의 긴장 속에 원하는 부분을 수처했다. 검은 실이 조직 속으로 파고들며 출혈 부위를 묶었다. 길게 내뱉은 숨에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출혈이 또 발생하면 훨씬 더 힘들어진다.’
전에 없이 신중을 기했다.
한참을 씨름했다. 등이 후줄근하게 젖고서야 기구 끝을 반대편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켈리를 벌려 공간을 넓힌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클립!”
끼이익! 끼이익!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힘차게 흐르던 굵은 동맥이 클립에 물렸다. 대동맥에서 전해지는 강한 압력을 따라 클립이 툭툭 흔들렸다.
끼이익! 끼이익!
삼중으로 클립을 물렸다.
클립 사이를 따라 작은 가위로 동맥을 잘랐다.
납작하게 눌린 단면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야 첫 난관을 넘겼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준영 교수마저 나직한 기침 소리를 내뱉었다.
혈류가 차단되며 산소 공급이 끊겼다.
에스 결장의 색이 서서히 어둡게 변하기 시작했다.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 김지훈이 장간막을 최대한 펼쳤다. 마치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동맥 분지와 임파선을 포함해 모두 절제해야 한다.
“보비!”
삐이익! 삐이익!
날카로운 소리가 날 때마다 보비 끝이 장간막 겉면을 살짝살짝 태웠다. 클립으로 잡은 동맥 부위에서 시작된 하얀 선이 에스 결장까지 브이(V)자 모양으로 그려졌다.
절개선이다.
주 동맥은 묶인 상태지만 하행 결장과 직장 동맥에서 보내는 교차 혈류가 남아 있다. 나뭇가지처럼 갈라지고 이어진 동맥 하나하나를 모두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 속에 포함된 임파선은 두말할 것도 없다.
“켈리! 보비! 수처! 클립!”
절개선을 따라 지방 조직을 조심스럽게 벌렸다.
하얀 연기와 함께 불꽃이 튈 때마다 빨간 피가 사라졌다. 보비로 제어되지 않는 출혈과 확실하게 묶어야 할 부분은 봉합했다.
은빛 바늘이 장간막을 찌르고 나올 때마다 긴장이 치솟았다. 검은 실매듭을 안전하게 꽉 조이고 나서야 긴장이 다소 완화됐다.
분지도 분명 동맥이다.
교차 혈류는 결코 약하지 않다.
손상을 주면 기구로 잡을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한다. 하나둘 분지가 드러날 때마다 김지훈의 손길이 현저히 느려졌다. 동맥벽이 온전히 나타날 때까지 수술 팀 모두 숨을 죽였다.
끼이익! 끼이익!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동맥 분지를 일일이 클립으로 잡았다. 납작하게 잘린 동맥의 흔적과 스멀스멀 피가 새어 나올 때마다 등짝이 서늘해졌다.
“켈리! 보비! 수처! 클립!”
끊임없는 반복이다.
위험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에스 결장에 도달할 때까지 마음 놓고 자를 수 있는 구조물은 없었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서서히 에스 결장에 바짝 연결된 장간막까지 접근했다.
모든 구조가 얇고 약해 개복 시에도 출혈이나 장 손상 등의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위다. 다른 부위보다 훨씬 촘촘하고 꼼꼼하게 처리해야 한다.
김지훈이 기구를 빼내며 고경아를 보았다.
“모스키토!”
복강경 수술을 하며 처음으로 사용한다.
개복 시에도 기구가 작으면 작을수록 다루기 힘들다. 하물며 30센티미터나 되는 막대 끝에 달린 기구다. 경험이 없으면 켈리로도 문제를 만드는데 더 작은 모스키토를 사용해야 한다.
김지훈이 극도의 긴장 속에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시야를 확보하며 어시스트까지 해야 하는 최철한의 모자가 땀에 젖은 지 오래였다.
사각! 사각!
갈수록 장간막이 얇아졌다. 동맥도 정맥도 그만큼 가늘어져 아차 하는 순간 끊어지거나 놓칠 수 있었다. 한 번에 불과 몇 밀리미터만 절개할 수 있었다.
김지훈의 수술 모자도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마지막 이 부분이 가장 위험해. 신중하게.’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