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한 발 더 올라서다. Ⅰ(1)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보였다.
김지훈이 얼어붙었다.
‘어? 여긴 웬일이시지? 진료 안 하시나?’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위로 눈만 보였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였다.
“철한아, 아직 시작 안했구나. 1분만 있다 하자. 1분만. 이 과장, 미안해. 숨 좀 돌리자. 숨 좀.”
너무 뜻밖의 일이었기에 김지훈도 말을 잃었다. 일일이 눈인사를 보내며 숨을 돌린 송재덕 교수의 눈가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야! 새벽에 출발했는데 늦었다. 늦었어. 철한아, 교수야, 인사는 이따가 하고 시작해. 보자. 보자. 잘한다. 잘해. 무슨 그렇게 수술을 잘하니? 우리 김 과장도 열심히 했구나. 열심히.”
시작도 안했는데 송재덕 교수에겐 벌써 끝난 수술이었다. 평일 오전인데 구미까지 온 이유는 빤했다. 먼 길을 달려온 스승과 송재덕 교수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벅찼다.
이준영 교수가 팔짱을 낀 채 최철한과 모니터를 번갈아 보았다. 빨리 시작하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이었다. 간담도와 복강경의 대가답게 그 자체로, 서있는 자체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다.
“최철한 선생, 집중해. 이 과장, 갑자기 들어와서 미안해.”
더 이상 반갑다고 인사 나눌 때가 아니었다. 존재만으로도 부담 백배였다. 유일하게 반가운 눈인사를 주고받은 고경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취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마취 아주 잘 됐습니다. 시작하세요. 두 시간 후에 깨우겠습니다. 첫 집도 성공 미리 축하드립니다.”
이용철 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부담이 아니라 믿음이자 격려였고 이는 곧 자신감이었다. 최철한의 눈빛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김 과장, 시작할게.’
‘긴장 푸시고 편안하게 하시면 됩니다.’
김지훈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지만 구미 파견의 이유가 된 수술이었다. 단순히 성공한다는 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었다. 앞으로 복강경 수술을 책임지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를 앞에 두고 말이다.
최철한이 얼굴을 굳히며 손을 내밀었다.
“메스!”
은빛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였다.
피부를 절개하던 최철한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아무리 단순한 과정도 시작이 좋지 않으면 결과도 나빠지는 법이기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순조롭게 절개 창을 따라 기구가 삽입됐다.
처컥! 처컥!
귀에 익숙한 기계 소리가 들렸다.
모니터에 수술 부위가 정확하게 잡혔다.
두 개의 기구가 담낭을 잡았다.
간과 맞붙은 담낭 벽이 서서히 박리됐다.
역시 실력과 노력이 겸비된 최철한은 달랐다.
능숙하다고 볼 수 없었지만 첫 집도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침착하게 진행했다. 염증이 심하지 않은 경우였기에 출혈도 수월하게 잡았다.
‘좋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어시스트에 최철한의 손이 더욱 침착해졌다. 어느 새 담낭 벽이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박리된 단면을 보는 김지훈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지금보다 더 깔끔해야 염증이 심한 경우를 대비할 수 있어. 확실하게 짚어야 할 부분이야.’
가장 위험한 부위에 접근했다.
최철한은 경험 많은 써전이다.
가중되는 긴장 속에서도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했다. 박리해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 신중하게 접근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가장 깊숙한 부위에 도달했다. 얼핏 보이는 하얀 구조물이 벌떡벌떡 뛰었다. 슬슬 맺혀들던 땀이 최철한의 등을 흠뻑 적셨다.
‘깨끗하게 박리해야 합니다.’
동맥 주변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는 물론 김지훈의 눈에도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기다려야 할 때였다. 집도의 에게 얼마나 어렵고 긴장된 순간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후배에게 살벌하게 타며 들은 조언을 잊지 않았다. 결코 서둘러서는 안 되는 과정이었다. 동맥이 드러날수록 최철한의 손도 더욱 신중해졌다.
사아악! 사아악!
마침내 담낭 동맥을 확보했다.
연이어 담낭 관 주변까지 깔끔하게 박리했다.
“클립.”
클립을 받아든 손길이 긴장으로 살짝 떨렸다.
끼이익! 끼이익!
은빛 클립에 동맥과 담낭 관이 안전하게 묶였다. 담낭을 무사히 빼내고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첫 집도치고는 상당히 깨끗하게 절제했다. 드레인 을 넣은 손길에서마저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이준영 교수의 고개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지훈이가 아주 적절한 케이스를 골랐어. 최철한도 노력 많이 했네. 둘 다 잘했다.’
수술 부위가 확실하게 정리됐다.
“컷!”
배꼽 속 절개 창까지 깔끔하게 처리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끝났다.
“끄으응!”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가 몸을 비틀었다.
“환자 회복실로 옮깁시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리자 최철한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온몸을 휘감았던 긴장에서 해방됐는지 목과 어깨를 휘휘 돌렸다.
“야! 잘한다. 잘해. 역시 철한이다. 철한이. 허허허!”
송재덕 교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히 만족한다는 의미였다. 조성민과 오만석이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확실히 전공의와 전문의는 달랐다. 아니, 집도의의 능력이 다르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간담도 대가가 눈앞에 있다.
수술 팀의 눈길이 일제히 이준영 교수에게 향했다. 김지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최철한을 보던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조언은 네 몫이야.’
“난 참관하러 왔을 뿐이다.”
“나도 수술만 보러 왔다. 수술만. 잘했다. 이제 구미 라파로는 걱정할 일이 없겠다. 지훈아, 짐 싸라. 서울 가자. 대장하자. 대장.”
여느 때와 똑같은 교수들의 말과 행동에 최철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지만 최소한 실망을 안기지는 않았다.
아직 김지훈이 남았다.
조용히 휴게실 문이 열렸다.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따라 들어왔다. 뭔가 기대에 찬 눈빛을 보였다. 김지훈의 평가를 듣고 싶은 사람은 최철한만이 아니었다.
스승이 앞에 있다는 사실에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수술을 준 당사자였다. 할 말은 해야 했다. 조근조근 눈에 밟혔던 과정을 말했다. 두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은 아직 거론할 때가 아니었다.
이준영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수술을 보는 수준도 정말 높아졌어.’
문제를 제대로 지적했다는 의미였다.
“야! 지훈이가 갈수록 말도 잘하고 예리해지는구나. 예리해. 예리해. 대장 수술하기 딱 좋은 성격이야. 지훈아, 그걸 왜 너만 모르니? 지훈아, 교수야, 대장하자. 대장.”
이준영 교수가 힐끗 따가운 눈길을 던졌다.
대단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첫 집도 평가까지 끝났다. 본의 아니게 불길을 내뿜지 못했고 후배의 의견이었지만 단 한 마디도 흘려들을 최철한이 아니었다.
뿌듯함 속에 반성이 있었다.
한 발 올라섰지만 두 발 더 전진해야 할 때였다.
분위기가 상당히 진지했다.
송재덕 교수가 갑자기 박수를 쳤다.
“누구 죽었니? 누구? 이런 날은 좋아하는 게 맞아. 누굴 닮아가는 거야? 누굴. 야! 철한아, 처음인데 이렇게 잘하면 어떻게 하니? 어떻게. 깜짝 놀랐다. 깜짝.”
“감사합니다. 선생님. 더 노력하겠습니다. 평일인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철한아, 근무 시작했는데 신경도 못써 미안하다. 미안해. 첫 집도에 처음 시도하는 수술을 한다고 해서 겸사겸사 왔어. 이 교수가 같이 가자고 얼마나 조르던지 내가 도망 다니다가 결국 잡혀왔다. 힘들다. 힘들어. 쩝!”
송재덕 교수가 힐끗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제가요?”
“험험! 그럼 아니야? 사실 이 교수가 제일 오고 싶어 했잖아. 진료 시간까지 바꾼 사람이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된다. 안 돼. 솔직해지자. 솔직하면 없던 밥도 나온다. 밥이.”
무안함을 감추고 싶은지 이준영 교수의 표정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젠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나직한 헛기침을 터트리며 화제까지 바꿨다.
“최철한 잘했다. 김지훈이 한말 잊지 마.”
“명심하겠습니다.”
“다음 수술 바로 이어서 하나?”
겸사겸사 왔을 테지만 주목적은 바로 조기 대장암 수술이었다. 의사로서의 지적 호기심만이 아니라 제자의 수술과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아 김지훈으로서는 몸 둘 바를 모를 일이었다.
“예. 곧 시작합니다.”
“우리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해.”
“그래. 그래. 우리는 참관만 해도 너무 좋다. 너무. 지훈아, 교수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다음 수술 대장암이지? 성공하면 라파로 대장하자. 라파로 대장. 이 교수는 간담도지 라파로가 아니잖아. 맞지? 내 말이 맞지? 민 원장님은 궁금하지도 않으신가? 왜 안 오시지?”
복강경 전문의 소리를 듣더니 이젠 라파로 대장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론은 대장이다. 면역은 둘째 치고 하다못해 내성이라도 생겨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색할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고 마침 시간도 다 됐다.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회복실로 가 환자를 살폈다. 순조로운 회복에 미소를 짓는 순간 단발머리 하나가 눈 아래에서 흔들렸다.
“무슨 일이야?”
“리포트 다 썼습니다. 수술 이어서 하시면 저녁에나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 갖고 왔습니다.”
눈이 빨갛다. 기특한 마음에 웃음을 보였지만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 송진우가 옆에 있어 리포트를 건넸다.
“진우야, 이거 확인하고 지적할 부분 철저하게 체크해. 앞으로 하석이 교육까지 맡아. 오하석, 내일 탈장 수술 있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예? 탈장이요?”
씨익 서늘한 미소를 보냈다. 송진우가 입맛만 다시는 오하석에게 눈길을 주며 빨간 펜을 꺼냈다. 얼굴이 벌게진 채 말이다.
“선생님, 탈장은 또 언제 쓰죠? 도와주시면 안돼요?”
“미안해. 걸리면 어떻게 될지 잘 알잖아?”
맞는 말 하면서 왜 눈치를 볼까?
곤란한 사람은 송진우만이 아니었다.
오만석이 오만가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넌 누구니? 누구야?”
“예. 2년차 오만석입니다.”
“그래. 그래. 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덩치가 장난이 아니구나. 장난이. 우리 이 교수보다 더 큰 의사 처음 본다. 일 잘하니? 체격만큼 일 잘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소리도 크구나. 목소리도. 근데 니가 소문으로만 듣던 그 놈이지? 나갔다는 놈. 아주 나쁜 놈. 버르장머리 없는 놈. 맞지? 내 말이 맞지?”
전후사정을 아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범한 오만석이 쩔쩔 매며 입도 열지 못했다. 놈놈놈 소리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송재덕 교수가 지그시 노려보며 말했다.
“기회를 한 번 더 얻었으면 절대 놓치지 마라. 김 과장한테 열심히 배우면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거야. 다음번에 볼 땐 서로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알았지?”
“명심하겠습니다.”
“나쁜 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체격만 큰 놈.”
확실히 찍혔다.
앞으로 얼마나 들어야 할까?
거의 같은 높이에서 무뚝뚝한 눈길을 주는 이준영 교수는 아예 거대한 바위였다. 깔리면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온몸을 휘감은 가공할 압박에 단순, 대범 오만석이 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드르륵!
때 마침 환자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오만석이 위기에서 벗어났다.
송진우가 리포트 몇 군데를 급하게 체크한 후 부리나케 수술실로 향했다. 오하석이 뒤를 따랐다. 벌건 얼굴과 단발머리가 묘하게 어울렸다.
훅 숨을 내쉰 김지훈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단발머리까지 줄줄이 뒤를 따랐다.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의 얼굴이 불안해 보였다.
최철한은 환자를 응시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고경아와 이 간호사는 수술 기구를 점검하고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취용 마스크를 든 이용철 과장이 마취과 간호사와 나직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항상 보는 모습이지만 은근한 긴장이 느껴졌다.
김지훈이 눈을 감고 수술에 대비했다.
수술실에서는 잡념과 다름없는 걱정이 다가왔다.
‘후우! 문제없이 해낼 수 있을까? 수술이 끝난 후 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만족할까?’
대장암 수술이기에 수많은 난관이 예상됐다. 이준영 교수마저 이론은 몰라도 실제 수술에선 도움을 줄 수 없다. 함께 수술하지 않는 한 말이다.
‘스승님께 도와달라고 할까?’
그럴 스승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온갖 불안이 다가왔다.
이준영 교수와 송재덕 교수가 들어왔다.
아무 말도 없이 수술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지훈아.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해. 실패해도 의미가 상당한 수술이야.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네가 자랑스럽다.’
가뜩이나 고조되던 긴장이 스승의 존재와 침묵으로 말미암아 극에 달했다. 한편으로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열망이 뜨겁게 다가왔다. 스승의 눈빛 속에 담긴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고 싶었다.
‘난 할 수 있다. 우린 할 수 있다.’
“마취 시작합니다.”
이용철 과장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마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든 기구가 제 자리에 놓였다. 손과 눈에 익을 대로 익은 기구들이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보였다. 문득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집도의는 수술을 지배해야 한다. 사소한 차이도 환자에겐 큰 의미가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