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고민. 고민. 고민. (1)
치료를 마친 양아치가 씩씩대며 스테이션으로 다가와 애꿎은 간호사를 노려보았다. 얼굴이 잔뜩 찌그러져 있었다. 생살을 여덟 바늘이나 꿰맸으니 한동안 쪼이고 욱신거릴 것이다.
또 무슨 말을 할까?
김지훈이 쓰윽 가로막으며 등을 내보였다.
마치 찜 쪄 먹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처럼 말이다. 손을 바들바들 떨던 양아치가 이를 부드득 갈며 황급히 빠져나가려 했지만 오만석에게 막혔다.
“치료비 내고 가야죠.”
“뭐? 치료비?”
“돈 없으면 당신이 한 짓까지 해서 몸으로 때워.”
당당한 체격에 머리통 하나 더 큰 오만석의 두 눈이 양아치를 찍어 눌렀다. 기세에 눌려 입만 벙긋거리던 양아치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 경찰이 도착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정식으로 처벌을 요청했다.
응급실이기에, 꼴에 환자이기에, 술까지 먹었기에 폭력조차 경범죄에 불과했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김지훈은 고개를 젓기만 했다.
“폭력을 행사하며 의료진을 위협했고 다른 환자 분 치료까지 방해했기 때문에 반드시 진료 방해죄로 처벌해야 합니다. 술 먹은 놈으로 처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일 확인 전화 드리겠습니다.”
결국 올 때는 두 발로 걸어왔지만 갈 때는 경찰차에 실렸다. 훈방 조치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그마저 안 하면 같은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응급실을 휘감았던 긴장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간호사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샘, 멋져요. 오만석 쌤 같은 분이 또 있는 걸 왜 몰랐을까요?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해도 되죠?”
“저런 사람 오면 오만석 선생 말고 내게 바로 연락해요. 만석아, 주먹은 절대 안 돼. 재주는 좋다.”
머리를 긁적였다.
“뒤늦게 마음잡았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어떻게 의대 들어왔는지 불가사의한 사람이 있다. 오만석도 희한한 경우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뒤늦게 마음을 잡아?”
김지훈이 목소리를 높이자 오만석이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남들에게 피해 주는 짓은 절대 안 했습니다. 체격 좋다고 잠시 유도를 배웠었습니다.”
‘하긴 네 덩치면 눈길만 줘도 겁을 먹었겠다.’
“이번으로 끝이다. 넌 전공의야. 문제가 더 커질 수 있고 손을 대도 내가 대. 알았어?”
‘정말 하나도 안 변하셨네.’
김지훈 나름 유명했던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오만석 덕에 큰 문제를 피했다. 초토화된 응급실을 보니 간호사 걱정이 앞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특히 오하석이 걱정됐다.
괜찮을까?
당직실 문밖으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무척 서럽게 들렸다.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송진우가 오하석의 어깨를 꼭 잡고 있었다.
마치 안아 주는 것처럼.
‘미안하다. 널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팔에 힘이 들어갈수록 서러운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며 물었다.
“안에 누구 있어?”
“진우가 같이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들어가 봐야 어색하기만 할 테고 송진우가 잘 달래 줄 것이다. 오하석도 잠시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나타날 것이다. 걱정을 감추고 돌아서던 김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너 오하석하고 어떻게 돼? 설마 남매야?”
“아닙니다. 하석이 아버님께서 돌림자를 쓰셨습니다. 그 덕에 학교 다닐 때 많이 친했습니다. 하석이가 굉장히 귀엽지 않습니까?”
“하긴 남매치고는 체격 차이가 너무 나네. 알았다. 오만석, 나 따라와. 아! 오늘 잘했고 잘 돌아왔어. 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에 오만석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무작정 나가 버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마지막 불안이 사라졌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살살 말해. 귀 떨어지겠네. 환자들 놀래, 인마.”
“예. 명심하겠습니다.”
작아지긴 했다.
외래로 향하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첫날부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의사에게 어울리지 않고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도리어 무난하게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최철한부터 시작해 과장들에게 일일이 인사시켰다. 모두들 반갑게 맞이했고 힘찬 인사 소리에 깜짝 놀랐다.
“확실히 화통을 삶아 먹었어. 만석이 넌 나갔다 와도 변하질 않는구나. 열심히 해, 이놈아. 김 과장 아니었으면 내가 먼저 잘랐어. 서류에 막 사인하려던 참이었는데 아깝네.”
민혁기 원장도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얼굴만 알아도 다행인 전공의에게 이놈 저놈 할 정도로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병원과 후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일 것이다.
반드시 배워야 할 일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흥분이 느껴졌다. 들뜬 마음은 여기까지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지훈이 자료 한 보따리를 내밀었다.
“복귀한 이상 넌 한 식구야. 잊지 마. 이번 주 내로 자료 모두 파악해. 어제 만났을 때 네가 한 말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내가 널 믿는 것처럼 너도 날 믿어.”
한 식구라는 말과 믿으라는 말에 오만석이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불과 두세 시간 만에 몇 번이나 감동 먹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했다. 질책이나 훈계는 필요 없었다. 힘든 일과를 이겨내고 확실하게 따라온다면 한 명의 어엿한 일반외과 의사가 될 것이다.
응급실 일 때문인지 의외로 듬직했다.
문득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람이 없으면 기술을 사용하고 혜택을 받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한 존중 받으려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아닐까?
평정을 찾는 사이 응급실에 아뻬 하나 떴다.
다시 소리가 난무한 끝에 김현철이 아뻬를 집도했다.
조성민이 퍼스트다. 그 옆에 송진우와 굳이 참관을 자청하지 않아도 좋을 오만석이 보였다.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를 확실하게 보여 정말 다행이었다.
“선생님, 안 들어가십니까?”
“진우야, 좋은 날이잖아. 하석이는 괜찮아?”
“이젠 진정이 좀 된 것 같습니다.”
김지훈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게 한두 시간 내에 진정이 될 일이야? 넌 오프면서 여기서 뭐해? 빨리 가서 하석이 달래 줘.”
“수술 전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거 갖고 진정이 되겠어? 응급실에서 어떻게 했는지 다 들었으니까 끝까지 책임져. 혹시 또 알아? 네 정성에 감동해서 우리 과 할지도 모르잖아.”
이 상황에서도 전공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얼굴 벌게진 송진우가 떠밀리다시피 여자 숙소로 향했다. 어째 제 발로 걷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였다.
오만석이 씨익 웃고 있었다.
‘자식!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적거리다 피눈물 흘린다.’
오하석을 기다리던 송진우가 입술을 모았다.
‘날 오빠라고 부른 것 같은데 맞나?’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호칭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선배였고 병원에서는 선생님이었다. 경황 중에 들은 탓에 가물가물했다. 기억이 확실하길 바랐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오하석이 고맙다며 이제야 웃음을 보였다.
송진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가 이어졌다.
회진을 돌던 김지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
여느 때처럼 단발머리가 정성호 과장 앞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쪼르르 먼저 달려가 문을 열고 안을 기웃거리다 곧장 다음 병실로 향했다.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안 좋은 일은 툭툭 털어야지.’
남들보다 머리 하나 큰 놈이 자꾸 머리를 들이밀었다. 덩치까지 커 꽤 거슬렸지만 바람직한 일이었다. 힘에 밀려 휘청거린 조성민이 눈을 부라린 덕에 약간의 갑갑함마저 이내 사라졌다.
‘두 배는 열심히 해야지.’
회진이 끝난 후 민혁기 원장이 외래로 찾아왔다.
김지훈이 재빨리 커피 한 잔을 탔다.
“김 과장, 어제 고생했다며? 나한테 연락하지 그랬어. 간호사들이 다 고마워 해. 만석이 1년차 때 어제 같은 일로 생난리를 쳐서 큰 문제 생길 뻔 했었어. 그놈 주먹이 솥뚜껑만 하잖아. 가끔 주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김 과장은 말 한마디로 해결했다며? 그런 면이 있었어? 대단해.”
이제야 들은 모양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만석이 체격 덕도 많이 봤고요.”
“그 양아치가 체격 좋다고 겁을 먹어? 어림없는 소리. 한두 번도 아니고 아주 치가 떨리는 놈이야. 그래도 몸조심해.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아닌 게 아니라 응급실에서 전에 없던 환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 없었던 간호사들이 더 생생하게 수다를 떨었다. 미국 안 가 본 놈이 가 본 놈보다 더 잘 안다는 소리가 공연한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온 오만석이 뜻하지 않은 일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다른 누구보다 함께 일해야 할 전공의들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조성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흘기면서도 툭하면 웃었다. 송진우는 무슨 이유인지 의아할 정도로 고마워했다. 오하석 때문일지도 몰랐다. 2년차 한 명 더 생긴 김현철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사람이 들고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다.
첫날부터 입에 오르내린 오만석이 가져온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았다.
가운이 작아 보일 정도로 큰 덩치에서 나오는 체력과 시원시원한 성격은 활력이었다. 풀(full) 당직이라는 말을 듣고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송진우에겐 또 하나의 자극이었다.
김지훈이 건넨 자료와 밤새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강병옥의 자리를 대신할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한 것이다.
한 가지 고민을 털어 낸 김지훈도 외래 진료와 수술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최철한이 하루가 다르게 자리를 잡아 가며 여유까지 얻었다.
반면 전공의들은 죽어났다.
조성민은 빨간 펜이 불 질러 버린 논문 초안을 들고 꺼이꺼이 울었다. 복강경 수술 때마다 세컨을 서는데 전보다 더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최철한마저 타고 있기에 아얏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다.
“진우야, 만석아, 왜 온 세상이 빨갛게 보일까? 어이구! 진우야, 얼굴 치워. 뻘건 건 보기도 싫다.”
각오를 다진 송진우도 죽을 맛이었다.
전문의 논문보다 중요도가 떨어진다지만 김지훈이 내준 논문이 있다. 역시 눈앞에서 춤추는 빨간 펜을 보아야 했다. 오프 때도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오만석이 전화벨만 울리면 쿵쿵 소리를 내며 응급실로 달려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동작까지 빨라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병옥이 형이 없으니까 만석이가 나타나는구나.’
수술은 또 얼마나 잘할지 궁금하기만 했다.
우리의 막내 김현철은 이미 죽음직전이었다.
병동, 수술 방, 응급실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하루가 저물었다. 아뻬를 받을 때마다 만세를 불렀지만 잠시뿐이었다. 지겨울 정도로 이어지는 다시 소리와 오만석의 부러움에 찬 눈빛은 부담 그 자체였다.
‘오늘이 내 오픈가? 에휴! 오프고 뭐고 잠부터 자자.’
오만석은 어떨까?
하루 일과가 예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일과 중에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정규 수술 전후에 벌어지는 토론 때 역시 긴장을 풀지 못했다. 확 달라진 분위기가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적응하기 위해 기를 써야 했다.
성격 하나는 정말 단순, 대범했다.
김지훈이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여도, 자료 확인 때마다 매서운 눈초리에 온몸이 찔려도, 아뻬 들어가 첫 퍼스트를 선 후 활활 타도 돌아서면 웃었다.
일반외과 전공의로서 배울 수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하하하! 성민이 형, 가뜩이나 형한테 미안했었는데 빨리 좀 연락 주시죠. 이제야 살 것 같네요. 몇 달 놀았다고 돌머리가 됐나. 이놈의 자료 참 눈에 안 들어오네.”
오늘도 응급실이 난리였는데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자료를 꺼내 들고 있었다. 가뜩이나 힘 좋을 텐데 쉬는 동안 체력까지 비축됐는지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앞날이 분명하게 보였다. 눈 밑이 까매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오만석 자신만 몰랐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해 대다 결국 고개를 끄덕끄덕 졸면서도 말이다.
사실 오만석의 내심도 달랐다.
‘라파로에 메이저까지 정말 정신없이 수술 해 대시네. 성민이 형하고 진우는 한참 앞에 있고 현철이도 달라졌어. 언제 따라가지? 제길! 죽으나 사나 붙어 있을 걸 괜히 나갔어.’
겉과는 달리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암 수술, 복강경, 혈관과 응급 수술까지.
복귀하기 전 조성민과 통화하며 과장된 말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지금은 도리어 구미 일반외과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나갈 때는 전임 과장 탓을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탓하며 채찍질해야 했다. 누가 이유를 제공했든 간에 결국 책임은 자기 자신이 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 탓만 하면 발전이 아니라 퇴보할 것이다.
전공의만큼 힘든 사람이 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