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61화 (761/1,329)

7화. 사람다워야 대우 받는 법이다. (2)

용기를 냈다.

오하석이 재빨리 처치실에서 빠져나왔다. 드레싱만 하고 당직실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응급실 인턴이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절대 비겁하다고 할 수 없었다.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사회와 병원이 내린 궁여지책이 피하라는 대책뿐이기 때문이었다.

다치면 의사만 손해였다.

하소연할 데도 없다.

“하석아, 빨리 들어와.”

조그만 가운이 휘날렸다.

양아치의 눈에 딱 뜨였다.

“어이! 너 뭐야? 너도 의사야?”

오하석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예, 의산데요.”

“꼴에 의사야? 씨발! 그럼 니가 와서 꼬매. 오라는 새끼들은 안 오고 기지배한테 치료 받게 생겼네. 빨리 치료 안 하고 뭐해?”

이런 인간은 약해 보이는 사람 특히 여자를 더 깔보기 마련이다. 어찌 할 바를 몰라 주춤거리자 벌떡 일어나 위협적으로 손을 치켜들었다.

통제 불능이다.

오하석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급기야 쌍욕이 터지자 겁에 질린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혔다. 모두들 당황했다. 두려움이 퍼지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담배까지 빼 물었다.

“너 거기서 밤샐 거야? 인턴이지? 의사라는 것들이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자빠졌네. 씨발! 빨리 와서 꼬매. 좋은 말로 할 때 내 말 들어라.”

오하석이 눈물 맺힌 눈으로 손만 달달 떨었다. 응급실 인턴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냈다. 이를 악물고 막 당직실에서 나오려는 순간 덜컥 문이 열렸다.

송진우다.

난데없는 고성에 들른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 송진우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문신으로 도배한 웃통을 드러낸 환자와 떨고 있는 오하석을 보는 순간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가 환자 앞을 막았다.

“불 꺼요. 하석아,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막 라이터를 키던 양아치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너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선생님!”

오하석이 온몸에 새겨진 문신을 가리키며 가운을 잡아끌었다. 자기 몸도 챙기기 힘든 와중에 걱정이 가득했다. 치료 도중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험상 거의 100퍼센트였다. 전공의들이 겪는 폭력의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술 취한 양아치나 깡패기 때문이었다.

송진우가 단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 말라는 듯 미소까지 보이며 오하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전에 없이 얼굴은 시뻘게져 있었다. 두려움인지 오하석을 보호하려는 마음인지 알 수 없었다.

“괜찮아. 들어가 있어. 환자 분, 진정하시죠.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신 겁니까?”

이대로 수긍하면 양아치가 아니다.

목소리를 떨면서도 눈길 하나 피하지 않는 태도가 도리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오하석에게 보인 미소에 무시당했다는 생각까지 들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넌 뭐야? 맞아 죽기 싫으면 꺼져. 야! 내가 너한테 치료하라고 그랬잖아? 빨리 안 와?”

이빨을 하얗게 드러내며 간이침대에서 내려왔다. 입에 물린 담배를 탁 반으로 분지르며 바닥에 집어 던졌다. 이런 놈 침 뱉는 건 예사다.

송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벗어 재낀 웃통에 난 칼자국과 호랑이 문신, 벌겋게 피로 젖은 팔, 험상궂은 인상에 깡패 특유의 말투까지.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깡이나 주먹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다. 때론 마음이 약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오하석 앞에 서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말씀 똑바로 하시죠. 여긴 응급실이고 우린 당신을 치료할 의사들입니다.”

꽉 진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이 새끼 봐라? 어디서 고개를 빳빳이 들어. 눈깔을 확 파 버리기 전에 눈 안 깔아? 넌 치료할 준비 안 하고 뭐해?”

갈수록 도를 더해 갔다.

냄새가 날 정도로 술 먹었다고 심신미약이 아니다. 결코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상대를 짓밟은 놈들의 특징일 뿐이었다.

급기야 오하석을 잡아채려 했다.

송진우가 몸으로 막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당장 나가요. 당신 같은 환자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지금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나한테 소리 지른 거야? 오늘 칼침 맞아서 기분도 안 좋은데 너도 맛 좀 볼래? 쪼그만 기지배 너 이리 와. 니가 치료해.”

난리 났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송진우의 멱살을 잡고 주먹까지 휘두르려 했다. 간호사가 비명을 질렀다. 양아치가 잡아채려는 듯 손을 뻗자 완전히 겁에 질린 오하석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하석아, 당직실로 들어가.”

송진우가 필사적으로 오하석을 보호했다.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팔에 난 상처가 벌어지며 사방에 피가 튀었다. 제 피를 본 양아치가 더욱 흥분했다. 주먹질이 벌어지면 결과는 빤했다.

오하석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요. 오빠! 안 돼요.”

“오하석, 빨리 들어가.”

간호사가 전화기를 붙잡고 정신없이 다이얼을 돌렸다. 행적 직원이 달려왔지만 험악한 분위기에 당황한 채 어쩔 줄 몰랐다.

양아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송진우의 얼굴에서 피가 튀기 직전이었다.

잘못 맞으면 코뼈가 부러질지도 몰랐다.

그때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

도저히 환자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양아치가 송진우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다 못해 오하석에게 다시 팔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거구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나 왔습니다. 반갑죠?”

“선생님! 저 환자 좀 어떻게 해 줘요.”

간호사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대학 병원보다 이런 일이 더 자주 벌어지는 개인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한 오만석이었다.

단박에 상황을 알아챘다.

굵직한 목소리가 뚝 끊겼다.

쿵! 쿵! 쿵!

그대로 달려가 멱살 잡은 손을 잡아채며 양아치를 밀어냈다.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맥없이 뒤로 밀려난 양아치가 흠칫 놀랐다. 머리통 하나 차이가 날 정도로 체격 큰 놈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뭐하는 짓이야? 여기까지만 하고 술 깬 후에 봅시다.”

‘어후! 이 자식이 하석이를 건드려?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복귀 첫날이라 참는다.’

오만석이 당황한 양아치를 위압적으로 내려 보며 으르렁거렸다. 목소리를 낮춘 것 같은데 구석에서도 똑똑히 들렸다. 오만석이 누군지 모르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더 놀랄 정도였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양아치이자 인간쓰레기가 분명했다. 체격을 보고는 바로 행동이 바뀌었다. 때리면 벌금이나 익숙한 유치장 신세지만 맞으면 합의금이다.

“어쭈! 해 보겠다 이거야? 이러다 한 대 치겠다. 자신 있으면 쳐 봐. 쳐 보라니까? 넌 뭐야?”

도리어 고개를 들이밀며 소리를 질렀다. 손끝이라도 스치면 대자로 누워 경찰부터 찾을 것이다.

“나? 일반외과 전공의.”

양아치 표정이 돌변했다.

손마디를 꺾으며 우습지도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문신 내놓고 위협하면 대부분 설설 긴다. 더구나 체격만 컸지 공부 이외에는 모르고 산 의사다.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전공의? 쪽팔리네. 니가 지금 상황을 모르지? 그래서?”

“좋은 말 할 때 나갑시다. 아니면 나한테 얌전하게 치료 받든지. 나 오늘 복귀하는 날이라 많이 참고 있습니다.”

“지금 해 보자는 거야?”

오만석의 눈빛이 변했다.

“마음대로.”

겁먹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자 양아치만이 갖는 특유의 자존심이 상했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상황이었고 이런 일 한두 번이 아니었다.

2:1이든 3:1이든 상대는 의사다.

체격 크다고 싸움 잘한다는 법은 없다.

어느 싸움이든 선방이 진리다.

사전 경고 없이 주먹이 날라 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인식조차 못했다. 분노와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놈이다.

“악! 어머!”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놀랍다.

오만석이 주먹을 피한 것도 모자라 도리어 멱살을 잡아챘다. 그대로 메어치며 바닥에 깔고 뭉갰다. 이런 동작은 실전 경험이 풍부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외과 전공의가?

힘에서 완전히 압도당한 놈이 버둥거렸다. 여전히 입은 살아 도저히 글로 옮길 수 없는 욕을 내뱉었다. 오만석이 이준영 교수보다 더 무지막지한 주먹을 쥐었다.

눈에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얼굴에 작렬하면 대형 사고 날 것이다. 주먹이 콱 내리 꽂히려는 순간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만석, 주먹은 안 돼.”

김지훈이었다.

“선생님! 이런 자식은······.”

씩씩 거친 숨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내 말 안 들려? 너 복귀하는 날이다.”

의사와 환자 간에 폭력이 오고 가면 의사가 훨씬 큰 책임을 지게 된다. 우습게도 법은 어떤 행패를 부려도 환자를 약자라고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술은 도리어 말도 안 되는 관대함을 불렀고 그래서 술 먹고 더 패악질을 하는지도 몰랐다. 비단 응급실에 국한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만석이 이를 악물었다.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라 멱살은 놓지 않았다. 그런데 김지훈이 태연한 표정으로 버둥거리는 놈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넌 또 뭐야? X도 아닌 것들이 아주 떼거리로 달려드네. 이 새끼들 내가 얼굴 똑똑히 기억한다. 밤길 조심해라.”

‘입은 안 죽네. 슬쩍 스치기만 해도 지가 한 짓은 생각도 안하고 돈부터 달라고 할 놈이지.’

“일반외과 과장 김지훈입니다. 내가 치료해 줄 테니까 입 다물고 처치실로 가죠.”

과장이라는 말 때문일까?

환자가 주춤거렸다. 흥분한 기색도 없이 차가운 눈빛만 보이자 눈가를 찌푸리며 인상만 썼다.

김지훈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말했다.

“간호사, 수처 준비해요. 송진우 선생은 오하석 선생 데리고 들어가. 오만석 선생, 놔주고 어시스트 서.”

오만석이 머뭇거리다 힘을 빼자 양아치가 벌떡 일어났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았다. 손에 잡히는 것을 무엇이든 들고 휘두를 기세였다.

‘에휴! 의사가 종도 아니고 뭐하는 건지. 이런 인간들은 없어지지를 않네.’

쇠로 된 폴(pole)대라도 잡으면 난리 날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 전에 한 대 패 주고 싶었다. 꾹꾹 눌러 참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한마디 날렸다.

“대우해 줄 때 대우 받아요. 손에 뭐라도 잡으면 흉기라는 거 알죠? 죄가 달라요. 사람들 보기 창피하니까 빨리 치료 받고 갑시다.”

혀를 찬 김지훈이 조용히 처치실을 가리켰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너무 태연했다. 대답은 필요 없다는 태도에 양아치가 도리어 당황한 모양이었다. 뒤통수를 노려보며 따라 들어왔다.

‘이런 놈도 환자지? 어떻게 해야 하나.’

장갑을 끼던 김지훈이 피식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양아치에게 빠질 수 없는 객기가 있다. 경험이 있는 것 같은데 십중팔구 만취 상태였을 것이다.

“마취를 안 하고 꿰매겠다고요?”

“당신이 날 잘 모르는 모양인데 병원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나 모르는 사람 없어. 쪽팔려서 애들을 안 데리고 왔더니 의사까지 날 무시해? 그냥 꼬매.”

존댓말은 아예 사전에 없는 모양이었다.

데자뷰(Deja vu)다.

‘정말 정신 못 차리는구나. 너 같은 놈을 본 적이 있지. 하석이까지 건드려? 그때는 마취해 줬지만 오늘은 아니다.’

팔다리를 봉합하는 실은 상당히 굵다.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늘도 굵다. 게다가 우리 몸에서 가장 통증에 민감한 부위가 바로 피부다.

“장미 흐트러지지 않게 조심하쇼.”

이 와중에 팔에 새긴 문신 걱정까지?

잘됐다.

환자도 환자 나름이다.

꼼꼼하게 봉합해야 장미가 활짝 필 것이다.

짝! 짝!

김지훈이 손뼉을 쳤다.

하얀 소독 가루가 휘날렸다.

고통의 시작이다.

미안할 이유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은빛 바늘이 번쩍번쩍 서늘한 빛을 뿌렸다.

굵은 바늘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나왔다. 첫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비명이 터졌지만 김지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장미 흐트러집니다. 가만히 있어요.”

옆에 앉아 컷을 하던 오만석이 입맛을 다셨다. 끝까지 마취를 안 할 줄은 몰랐다. 환자의 입에서 욕이 터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이런 새끼들 우습게 여겼다는 말은 들었는데 지금도 똑같으시네.’

“으아악! 제발 마취 좀 해 주세요. 아아악!”

눈물 콧물 흘리다 못해 존댓말까지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이런 놈에게 베풀 자비는 없었다. 사람다워야 대접도 해 줄 수 있는 법이다.

“여덟 바늘밖에 안 되니까 참아요.”

세 바늘이면 될 상처를 여덟 바늘이나?

실을 자르던 오만석에게 눈길을 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손가락이 장미를 가리키고 있었다. 양아치가 원했던 대로 장미가 깔끔하게 맞춰졌다.

오만석이 고개를 돌리며 웃고 말았다.

드레싱까지 한 김지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 그땐 치료도 못 받을 줄 알아. 특히 의사든 간호사든 병원 직원들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 병원에도 깡패 하나쯤은 찜 쪄 먹는 사람 있다는 걸 잊지 마. 양아치 주제에.”

자연스럽게 말을 놓으면서도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젠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예전에 양아치 두셋 뚜드려 팰 때의 기억까지 살렸다.

“오늘은 한 명이 아니라 둘인가? 오만석, 내가 있을 땐 한 명으로 족하다.”

양아치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서늘한 눈빛이 꽂혔다. 흠칫 놀란 오만석이 후다닥 따라 나와 공손하게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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