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사람다워야 대우 받는 법이다. (1)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이 누군가를 찾았다.
아내와 노모가 차디 찬 임승민 환자의 손을 꽉 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전해졌다.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가족의 마음이 차갑게 식은 환자의 혈관과 신경을 타고 흘렀다.
눈꺼풀이 경련이라도 하듯 바르르 떨렸다.
“애비야! 애비야!”
꿈틀! 꿈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여보! 눈 떠 봐요. 나 여기 있어요.”
결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눈꺼풀이 움직였다. 한줄기 밝은 빛이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을 떴다.
“여보, 나 보여요? 여보!”
“애비야, 어미 왔다. 애비야, 나 보이니?”
초점 없는 눈동자가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남편이자 아들이 아내와 노모의 손을 잡았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마침내 깨어났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았다.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아내가 남편을 부르며 펑펑 울었다.
모두들 김지훈을 보았다. 환자가 의식을 찾았고 이제 회복 속도는 더욱 빨라질 텐데 이송이 필요하냐는 눈빛이었다.
잠시 갈등이 찾아왔다. 하지만 의식 상태 하나 때문에 이송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수많은 고비와 난관을 넘어야 일어설 수 있었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입는다.
‘후우! 정말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눈을 떴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렸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임승민 환자 치료는 지금도 시작일 뿐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송진우, 이송 진행하자. 보호자 분, 훨씬 더 큰 희망을 안고 가실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반드시 툭툭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선생님!”
아내가 김지훈의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노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였다. 이송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회복까지 몇 배 이상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김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송진우, 뭐해? 이 시간도 아깝다는 거 몰라?”
앰뷸런스가 출발했다.
사이렌 소리가 멀어진 후에도 한참 동안 돌아서지 못했다. 킵이 고된 만큼 보호자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강한 신뢰를 받았다면 아쉬움과 미안함은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우야, 최선을 다했으니까 뒤돌아보지 마. 네 덕에 눈까지 떴다. 수고했어.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만석이 같이 만나자.”
“예.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씁쓸했다.
텅 빈 임승민 환자의 침대가 복잡한 여운을 남겼다. 올바른 결정이라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람만큼, 그중에서도 목숨만큼 귀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진우야, 힘내자. 우리가 책임져야 할 환자가 지금도 넘친다.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야 아주 살짝 미소가 감돌았다.
마음이 가벼워지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김지훈이나 송진우나.
어떻게 알았는지 오하석이 곁에 서서 웃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싱숭생숭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힘들었다. 습관인 것처럼 중환자실을 들르려다 말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이게 최선인데 왜 아쉽고 안타까울까?’
모를 일이었다.
오후 회진을 마치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최철한과 당직날이 같은 조성민이 연신 시계를 보며 두리번거렸다. 수술이라도 뜰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걱정 가득한 얼굴 뒤로 장난 아닌 체격을 가진 청년 한 명이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눈에 딱 띌 것 같았다.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쳤다.
‘아! 덩치를 보니까 생각나네. 저놈 이름이 만석이였구나. 스승님보다 체격 좋은 의사 처음 보네.’
후배를 몰라보다니 은근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과 달리 얼굴이 절로 굳었다. 과장 혹은 교수와 전공의 간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오만석도 김지훈을 바로 알아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만석입니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커피 마시던 커플이 깜짝 놀라 커피를 쏟았다. 홱 고개를 돌리던 남자가 오만석의 체격에 또 한 번 놀라며 눈가만 찌푸렸다. 어쨌든 목소리에 힘이 있어 다행이었다.
대화를 풀어 나가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앉아.”
자리에 앉은 오만석이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제 발로 나간 전공의가 할 말은 없기 마련이었다.
김지훈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일단 엄하게 나가야 하나?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을 꺼내야 하나?’
막상 얼굴을 보니 여러 생각이 뒤엉켰다.
그때 문득 하윤호와 하성원 원장이 떠올랐다. 돈과 명예와 권위까지 모두 얻었지만 결과는 나락이었다. 절대 남 탓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혹시 올바른 조언을 해 줄 사람, 걱정하며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우가 다르다고 해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찾은 것만은 아니었다. 일반외과를 택했던 후배이자 동료를 만나러 온 것뿐이었다.
‘그래. 난 오만석이란 후배를 만나러 온 거야. 그동안 신경도 안 쓴 주제에 이제와 선배랍시고 질책하고 혼낼 자격은 없어. 나 혼자 결론 내지 말고 편하게 허심탄회하게 대하자.’
김지훈이 콧소리를 내며 얼굴을 풀었다.
“그래. 네가 만석이 맞지? 기억난다. 잘 지냈어?”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곧바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옛날이었으면 장군감이었을 테지만 주변 시선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나간 놈이 잘 지낼 수 있겠습니까? 염치없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염치없고 감사하다고 했다.
말에 군더더기도 붙지 않았다.
단순 과격이란 말이 스윽 다가왔다.
그렇다면 에둘러 말할 이유가 없었다.
“나간 이유가 뭐야?”
“배울 여건이 안 돼서 나갔습니다. 실력을 쌓을 수가 없는데 전문의 면허만 따면 뭐합니까? 복귀하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습니다. 조성민 선생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대단히 직설적이다.
짧은 말 속에 핵심이 있었다. 단순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판단과 행동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는데 잘잘못을 따지며 긴 말 해 봐야 말만 꼬일 것이다.
“아직도 일반외과 하고 싶어?”
“예. 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기회가 안 된다면 내년에 다시 지원할 생각입니다.”
마음 확실하게 알았다.
조성민이 이미 병원 상황을 전한 덕도 있겠지만 일반외과를 향한 오만석의 열정이 보였다. 이미 결정이 난 것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설적이고 센 놈에게 군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 이젠 여건이 되니까 당장 짐 싸서 들어와.”
김지훈이 대답도 듣지 않고 일어섰다.
오만석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조성민을 보았다.
“말씀 못 들었어? 바로 들어와.”
최소한 몇 마디 질책 정도는 들을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결정됐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조성민과 송진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은 벌겋고 어깨에 피로까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성실하기로 유명한 송진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여건이 된다는 말이 강하게 다가왔다.
‘조성민 선생님 말대로 확실히 변했구나. 이삼 개월만 더 버틸걸. 내가 너무 성급했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기회다.
오만석이 꾸벅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응급실 당직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내일 오후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럼 내일 보자.”
“감사합니다.”
커피숍이 또 쩌렁쩌렁 울렸다.
‘자식이 화통을 삶아 먹었나. 무슨 목소리가 이렇게 커? 남자로서는 성격 좋다는 소리 듣겠지만 환자하고는 어떨지 모르겠네. 어쨌든 마음에 담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짓자 걱정 아닌 걱정을 알아챈 조성민이 슬쩍 옆에 붙었다.
“환자에게는 징그러울 정도로 사근사근합니다. 행패만 안 부리면요.”
“그래? 다행이네. 들어오는 즉시 바로 근무시켜. 공백이 있었으니까 나 서울 올라갈 때까지 풀 당직이다.”
“풀 당직이요?”
“너희들 따라가려면 그 수밖에 더 있어? 차이 많이 날 테니까 성민이 네가 신경 바짝 써. 치프잖아. 진우 너도 동기라고 봐주지 말고 확실하게 해.”
“하긴 만석이 저 자식 체력이 엄청나서······.”
말을 하다말고 조성민의 입이 쭉 찢어졌다. 김지훈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매일 타고 또 탄 결과이자 노력한 보람이었다.
송진우는 어김없이 얼굴이 벌게졌다.
문밖까지 따라 나온 오만석이 눈가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기대와 각오가 보였다. 구미 병원 상황을 들었어도 실제로 보면 다르기 마련인데 너무 쉽게 일이 끝났다.
조성민이 사전 작업을 많이 했을까?
두고 볼 일이었다.
송진우가 슬쩍 손을 흔들며 웃었다.
“만석아, 내일 보자. 잘 돌아왔어.”
“고맙다. 내일 보자.”
그러고 보니 둘 다 예비역이다. 의대만큼 삼수생 이상이 넘쳐나는 과도 없을 것이다. 한 살 정도 차이가 날지 모르지만 말 트고 지내는 것이 서로에게 훨씬 편한 법이다.
‘만석이, 진우가 다 예비역이란 말이지?’
한 놈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부족한 인력과 동시에 곧 펠로우 자리가 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병원에 남기를 희망한다면 제대로 훈련시켜야 할 것이다.
때 이른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오만석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하루가 지났다. 공백을 채울 방법이 필요했다. 복귀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더욱 신경 쓰였다.
‘올 때가 되지 않았나?’
김지훈이 막 시계를 볼 때쯤 응급실 문이 열렸다.
수건으로 팔을 감싼 환자 한 명이 들어왔다.
흰 티에 검은 배 바지 그리고 팔자걸음.
딱 동네에서 거들먹거리는 양아치다.
얼굴을 보자마자 간호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 온갖 행패와 위협을 서슴지 않아 똑똑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어느 응급실이나 환자가 아니라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술 취해 행패 부리는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반말 찍찍 내뱉는 사람,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자기만 급하다는 사람, 같잖은 깡패 행세 하는 사람 등등.
그중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유든 자신을 치료할 의료진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상 중의 진상이다.
그래도 우리는 환자라고 부르며 치료해야 한다.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술 냄새가 풍겼다.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장미 문신이 새겨진 팔을 드러내며 소리부터 질렀다. 흰자위를 잔뜩 드러내며 말이다.
“빨리 안 오나?”
접수고 뭐고 절차는 안중에도 없었다.
경력이 없으면 이런 인간 대처하지 못한다. 경험 많다는 이유 하나로 선임 간호사가 간이침대를 끌고 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너 나 알지? 꼬매러 왔으니까 빨리 연락해.”
정형외과에서 봐야 할 환자다.
간호사가 움찔 겁을 먹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하필이면 모두 수술 방에 있었다.
“정형외과 선생님들이 지금 수술 중이라 잠깐 기다려야 해요. 잠시만 침대에 누워 계세요.”
“뭐라꼬? 니 눈깔엔 나 칼침 맞은 거 안 보여? 기분 안 좋으니까 빨리 불러라. 후딱 안 오면 다 뒤집어 버린다. 의사라는 놈들이 환자가 왔는데 뭐하자는 거야?”
“일단 상처부터 소독······.”
“그걸 왜 니가 해? 의사 없어? 인턴 나부랭이라도 있을 거 아냐?”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른 환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제집 안방인 양 안하무인이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두려움으로 눈길도 마주치지 못했다.
응급실이 조용해졌다.
하필이면 내과 환자 때문에 처치 실에 있던 오하석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험상궂은 얼굴에 여기저기 문신을 새긴 놈이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웃통을 벗어 재끼자 등짝에 새긴 커다란 호랑이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흉하고 추하다. 그래서 더 두렵다.
여자는 여자다.
오하석이 꼼짝도 하지 못했다. 허우대 멀쩡한 응급실 인턴도 잔뜩 겁을 먹었다. 동네 양아치라도 곤란할 판에 조폭이라도 되면 큰 사달이 날 상황이었다.
응급실 근무 때 툭하면 경험하는 일이지만 해결 방법은 없었다. 의사나 간호사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도 없다. 그저 빨리 치료하고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정형외과는 소식이 없었다.
“야! 간호사, 왜 안 오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려 줘?”
흥분을 못 이긴 환자가 주먹을 쥐며 위협적인 행동까지 하기 시작했다. 청원경찰은 이미 몸을 피했고 행정 직원이 와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경찰에 연락했지만 아마도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야 도착할 것이다.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두려움에 떠는 환자들을 두고 외부로 빠져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간호사들이 스테이션 구석으로 몸을 피하며 눈짓을 했다.
숨을 구석이 없는 오하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