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무엇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2)
한솥밥 먹은 인연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간 고민해 왔던 일이 분명했다.
“솔직히 1년 넘게 같이 지냈는데 갑자기 나가서 화도 많이 나고 배신감 비슷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오시고 나서 왜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무슨 소리야?”
조성민이 콧등을 찡그렸다.
“정말 창피하지만 이제야 일반외과가 어떤 과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만석이는 그 사실을 저보다 먼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땐 저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가는 게 두려워 주저앉았을 뿐이었습니다. 허락하시면 복귀시키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만나 볼까요?”
“연락했다면서 말은 안 해 봤어?”
“안부만 주고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먼저 결정하셔야 하는 일로 생각했습니다.”
조성민이 잊지 못하는 일반외과 후배를 잊고 있었다. 후회하고 있을지, 후련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과도 아니고 우리 과 후밴데 왜 아무 생각도 없었지? 자리값이 아깝다. 과장 소릴 들을 자격은 있는 거야?’
이제라도 잘못된 일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했다.
조성민 말대로 나간 이유가 일반외과 내부에 있었다면 이젠 변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선택은 오만석의 몫이지만 기회는 김지훈만이 줄 수 있기에 반드시 말해야 했다. 기회가 아니라 도리어 일반외과 선배로서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일지도 몰랐다.
“연락해. 나하고 같이 만나자.”
“선생님이 직접 만나신다고요?”
“그래. 나간 건 괘씸하지만 미안한 것도 사실이야. 선배로서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조성민과 송진우가 서로를 보았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선배로서 사과한다는 소리에 생각이 많아지는 모양이었다. 서열을 중시하고 도제 교육을 해야 하는 의사 사회다. 선배 특히 교수 입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씁쓸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무거운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임승민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주일 넘게 지켜보았는데 단 두 시간 만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한 명 더 있다고 회복을 장담할 수 있을까?
주덕현 과장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
과연 더 좋은 장비와 시설을 무시할 수 있을까?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솔직히 답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만석이 복귀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당장 오늘 밤에 또 수술이 뜨면 지켜볼 의사가 없다. 그때마다 나와 대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지속적으로는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환자에게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대구 대학 병원의 상대적으로 풍부한 의료진과 절대적으로 앞선 시설은 구미 병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민아, 이 환자 우리가 책임질 수 있을까?”
조성민이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물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빤했다.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해야 했다.
“성민아, 진우야, 이 환자 대구 보내자.”
내심 짐작했던 조성민마저 깜짝 놀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누구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강한 애착을 가졌을 송진우가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 좋아지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사의 열정을 믿고 미련을 둘 때가 아니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했다.
“진우야, 나도 한때는 죽자 살자 매달렸지만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환자가 짊어질 수밖에 없더라.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환자에게 좋겠어? 솔직하게 말해 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중환자실 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무거운 표정에 아쉬움이 담겼다. 자신과 병원의 한계에 대한 실망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도리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또 한 명의 조언과 결정이 남았다.
주덕현 과장에게 연락했다.
이송 문제를 상의하자 신중하고도 주의 깊게 생각한 후 동의한다는 말을 했다. 걱정한 대로 늑골 골절 수술 가능성이 가장 큰 이유였다.
(김 과장,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한 건 아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송했으면 좋겠다. 추가 수술이 안전할지, 환자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지금 있는 장비로는 대처하기 힘들어.)
힘겨운 결정을 내렸다.
미적거리면 또다시 의료진을 한계까지 밀어붙일 테고 환자는 실낱같은 희망에만 의존해야 할 것이다. 의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입원 환자 이송을 결정하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착잡함이 느껴졌다.
‘그래. 수술 전에는 간이 제일 문제였지만 지금은 흉부외과 문제가 더 클 수 있어. 이송이 맞아.’
다 함께 보호자를 만났다.
“어머님, 보호자 분, 환자 분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대구로 가시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받아야 할 치료가 만만치 않습니다.”
병원의 한계를 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보호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문제였다.
“아이고! 선생님만 믿고 있는데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혹시 우리 에미 말이 서운하셨나요?”
“절대 아닙니다. 어디에서 치료 받는 것이 가장 유리할지 충분히 생각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절 믿고 대구로 가십시오.”
노모가 가슴을 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쩌면 환자를 포기한다는 말로 들릴지도 몰랐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물었다.
엄마이자 아내인 여인은 누구보다 강하다.
의외로 침착했다.
“선생님, 대구로 가면 정말 여기보다 희망이 더 있나요? 우리 애 아빠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도 협조를 요청하지만 보호자 분이 직접 예약을 잡으시는 편이 훨씬 더 빠릅니다. 필요한 서류는 작성해 드릴 테니 내일 바로 다녀오십시오. 이송 전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마지막 대답이 없었다.
막상 김지훈이 결정을 내리자 대구로 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처음과는 달리 마음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가장 얼굴 많이 본 김지훈과 송진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모양이었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마침 주덕현 과장이 나왔다.
심난한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받아야 할 흉부외과 치료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설명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가 갑자기 눈가를 붉혔다. 밤낮으로 옆을 지켜 온 의사들도 치료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급적 빨리 결정을 내려 주셔야 합니다.”
답은 이미 나왔다.
김지훈과 주덕현 과장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상 대구로 가는 수밖에 없다. 아내와 노모는 말이 없었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고경아가 답답한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내밀었다. 단번에 들이켜 가슴속을 꽉 채우고 있던 갈증을 달랬다.
어쩐 일인지 한 잔 술에 얼굴 벌게진 김지훈이 새벽이 될 때까지 뒤척였다. 잠이 채 깨기도 전에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의 대낮처럼 환한 불빛에 임승민 환자의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월요일 일과가 시작됐다.
수술만 있는 날이다.
오전 외래 예약이 없는 최철한이 복강경 퍼스트를 서고 그 외 수술은 조성민과 송진우가 번갈아 섰다. 지적할 점은 지적하고 불길 한 번 날리자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최철한과 정식으로 오만석 복귀 여부를 상의했다.
수련을 중도에 포기한 전공의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없다. 오만석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최철한이 조금은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흔쾌히 동의했다.
안 그래도 김지훈과 송진우가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던 참이었다.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김 과장이 직접 보고 복귀시켜도 된다고 결정하면 난 무조건 찬성이야.”
“오만석이 동의하면 곧바로 복귀시키겠습니다. 성민아, 최대한 빨리 연락해서 자리 만들어.”
오만석 입장에서는 쉽게 나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닐 것이다. 얼굴 마주 보기만 해도 반쯤 성공이었다. 잘 풀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임승민 환자를 찾았다.
면회를 하던 보호자가 이틀 후 입원해도 된다는 확약을 받았다며 슬픈 미소를 머금었다. 몇 배나 큰 대구 병원에 거는 한 가닥 희망이었다.
결코 실망할 일이 아니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듯 가족 또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우야, 이틀이다. 그때까지 잘 보자.”
뚝딱 하루가 지났다.
모처럼 함께 산책을 나간 고경아가 활짝 웃었다.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모습에 미안한 감정이 앞었다. 왜앵 왜앵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포장마차에서 가볍게 한잔했다.
중환자실에 자꾸 신경이 갔지만 최철한이 있고 오프 때는 최대한 피로를 푸는 것이 필요했다. 병원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찐득찐득 달라붙은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임승민 환자 이송도.
오만석 복귀 문제도.
다음 날 역시 오전부터 바빴다.
진료실과 중환자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임승민 환자를 이송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외래 진료가 늘어 오후까지 입을 쉬지 못했다.
이송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구 병원 일반외과 교수와의 통화로 제법 시간을 끌었다. 다른 병원에서 수술한 환자를 받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환자실 환자를 말이다.
원무과의 입원 예약을 그대로 수용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한창 입씨름을 하며 통화하던 중 이름을 듣고는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
(아! 김지훈 선생님이셨군요. 알겠습니다. 보낼 수밖에 없는 환자겠군요. 보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절 아십니까?”
(학회 때 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라파로 때문에 이름을 또 들었고요. 환자 욕심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 보내시는데 받아야죠. 시간 되면 공동 세미나나 한 번 하시죠. 우리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대구 병원에서도 이름을 들었다?
피식 실소가 터질 정도로 기분이 묘해졌다. 문득 반드시 넘고 싶은 스승의 발끝 정도 올라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본의 아니게 잘 마무리됐다.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일과를 끝냈다.
당직을 대비해 바로 몸 관리에 들어갔다.
별거 없다. 오늘 같은 날은 입에서 단내 사라지면 된다. 저녁 식사 제 시간에 하고 뜨뜻한 물에 샤워한 후 대기하면 끝이다.
따르르릉!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최근 응급실 상황을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왔나?’
(조성민입니다. 환자 때문이 아니라 만석이 일로 전화 드렸습니다. 내일 저녁에 시간이 난다고 합니다.)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바로 얼굴 보자니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내일 오픈데 잘됐네. 뭐하고 있대?”
(개인 병원 응급실에서 아르바이트식으로 근무했답니다. 복귀하지 않으면 내년에 다시 지원하거나 일반의로 살아야 하는데 만석이도 깜깜했을 겁니다.)
문득 군대가 떠올랐다.
그 생각을 못했다.
“성민아, 혹시 군대 가기 싫어서 만나는 거 아냐?”
(그놈 예비역입니다. 만나 보시면 알겠지만 절대 그런 놈이 아닙니다. 무식한 건 아닌데 단순 과격이거든요. 응급실에 행패 부리는 사람 오면 몸으로 막아 내는 놈입니다.)
단순 과격?
얼굴 봐야 알 일이었다. 약속 장소와 시간을 잡은 후 전화를 내려놓기 무섭게 휴대폰이 울렸다.
(송진우입니다.)
바로 응급실로 직행했다.
한차례 수술실에 올라가고 응급실 돌아본 후 중환자실까지 경유했다. 전보다 강해진 파이팅과 잘 유지되는 바이탈에 마음이 바뀔 뻔했지만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니었다.
불안해하는 보호자를 안심시키고 당직을 끝냈다.
일상이 점점 더 바빠졌다.
수요일 오전 정규 수술을 마치고 곧바로 임승민 환자를 찾았다. 이송 준비가 거의 끝난 상태였다. 노모의 아쉬움과 아내의 불안함을 보며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우리 남편 잘 치료받고 와서 꼭 인사드리겠습니다.”
“꼭 오셔야 합니다. 저도 남편 분 건강한 모습과 목소리를 듣고 싶네요.”
“우리 작은 선생님한테 고마워서 어쩌나.”
노모가 송진우의 손을 차마 놓지 못했다.
“할머니, 대구 가서는 꼭 쉬셔야 합니다. 할머니 건강까지 나빠지면 환자 분은 더 힘들어 질 수 있어요. 제 말 잊으시면 안 됩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송진우는 더한 모양이었다.
얼굴만 벌게진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간이침대가 들어왔다.
모두들 환자를 옮기기 위해 둘러섰다. 듣지도 못하는 상태지만 인사는 하고 싶었다. 김지훈이 아쉬운 마음에 환자를 크게 불렀다.
“환자 분, 대구 가서 잘 치료 받으세요.”
그 순간 마치 대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이 꿈틀거렸다. 송진우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간호사들도 갑작스러운 반응에 입을 열지 못했다.
“선생님, 반응이 있습니다.”
이송을 앞두고 목소리에 반응하다니 도리어 얼떨떨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잠시 환자를 살핀 김지훈이 귓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환자 분, 제 말 들리세요? 눈 떠 보세요.”
반응이 없었다.
잘못 본 것일까?
아니다.
주변을 둘러싼 의료진들 대부분이 똑똑하게 보았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송진우는 엄지발가락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죽은 듯 미동조차 하지 못했던 임승민 환자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간절한 목소리와 자극이 이어졌다.
“환자 분, 제 말 들리시면 눈 떠 보세요. 임승민 환자 분.”
다시 한 번 크게 이름을 부르는 순간 눈꺼풀이 확실하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불규칙하게 움직이며 환자의 눈가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
아내와 노모가 숨도 쉬지 못했다.
의료진 전체가 얼어붙었다.
“여보!”
“애비야!”
애끓는 절규가 임승민 환자의 귓가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