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758화 (758/1,329)

6화. 무엇도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1)

삼신할미의 의미를 알면 저절로 꼽게 되는 숫자다. 달에 9를 더하고 날에 7을 더하면 엄마는 고통에 시달리고 아빠는 머리를 쥐어뜯기며 새로운 생명, 희망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다.

계산상 8월 중순이다.

할 일 하나 끝나자 슬슬 배가 고파졌다.

육군으로 시작해서 육군으로 끝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미로 돌아오는 길에 늦은 점심으로 한우 불고기를 먹었다. 가볍게 4인분 해치우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구미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막 넘어간 후였다.

정말 간만에 즐겁고 알찬 오프를 즐겼다. 임승민 환자가 내내 따라붙었지만 완벽했다. 전화 한 통 없었고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잘 쉬고 왔습니다.’

고경아를 고이 집에 모시고 중환자실로 향하다 슬쩍 응급실에 얼굴이 들이밀었다. 간호사들의 잡담이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한가했다.

“환자가 없네요.”

그냥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간호사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벌떡 일어났다.

“쌤! 쌔앰!”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고,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퉁명스럽게 내민 주말 환자 리스트가 새까맸다. 일반외과 병명이 주루룩 매달려 있었다. 마지막 언저리를 보니 최철한은 수술 중이 분명했다.

‘어휴! 이놈의 입방정. 수술도 꽤 했고 정신없었겠네.’

“고생 많이 했네요. 난 그냥······.”

민망하고 미안해 서둘러 응급실을 나왔다. 간호사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등짝에 팍팍 꽂혔다. 간사한 웃음을 곁들인 과자와 주스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설마 막창 때문은 아니겠지?’

마음을 추스르고 중환자실 앞에 섰다.

하루 밤낮을 잊고 있었던 갈등과 고민이 다시 다가왔다. 이송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계속 치료해도 될지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부족한 전공의와 흉부외과 문제는 결코 작지 않았다. 임승민 환자를 받는 병원도 여러 면에서 상당한 어려움과 부담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수술 및 초기 치료와 경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가중되는 문제였다. 인력이 남아도는 병원도 없다. 어느 병원이나 중환을 꺼려하는 이유였고 환자에게도 불리할 수 있었다.

띠! 띠! 띠! 띠!

임승민 환자를 보는 순간 눈가에 남아 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전보다 좋아졌지만 여전히 낭떠러지 끝에 선 상태였다. 지금 역시 단 한 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될 때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 명은 오프고 나머지는 인턴까지 모두 수술 방에 있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여유도 없었다. 전공의들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르며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나하고 진우가 올라가면 최철한 선생님까지 셋밖에 남지 않네. 그 인원으로 수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으면 어떻게 치료하지?’

무엇이든 일으켜 세우는 일은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궤도에 오른다한들 유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서울이나 천안 병원도 인력 부족은 마찬가지라 무작정 파견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과 송진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이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삐이익! 삐이익!

그때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파이팅이다.

급히 일어나 환자를 살피는 사이 간호사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진정제를 투여하라고 말하려던 김지훈이 갑자기 손을 들며 진정제 투여를 막았다.

가쁘게 호흡을 하는 모습이 무언가 이상했다. 흐린 의식 속에서 상체를 비틀고 있었다. 괴로움은 분명한데 파이팅이 아니었다.

95 - 90 - 85퍼센트.

산소 포화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띠띠띠띠띠띠!

돌연 심장까지 급박하게 뛰었다.

바이탈이 흔들릴 만한 모든 요인을 확인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계속되는 경고음에 김지훈마저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도대체 원인이 뭐야?’

급히 달려온 중환자실 인턴이 멈칫멈칫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김지훈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진정제를 들고 있던 간호사까지 당황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확실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점점 다급해지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원인을 찾기 위해 눈가를 좁힌 채 하나 하나 짚어갔다.

분명 기계 이상이나 오작동은 아니었다.

요란한 경고음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경고음 꺼요.”

날카롭게 귓가를 자극하던 소리가 사라졌다. 산소 포화도는 여전히 낮은 상태였고 환자는 지금도 본능적인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파이팅도 기계도 아니라면?’

결국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호흡에 문제가 있다면 폐부터 확인해야 한다.

청진을 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가래 끓는 소리에 피리 소리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겹쳤다. 폐렴이나 천식 때 들을 수 있는 호흡음이 아니었다.

도대체 뭘까?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어디에선가 공기가 새고 있을 가능성을 간과했다.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는 부위는 단 한 군데였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빨리 인투베이션 준비해요.”

“인투베이션이요?”

“다시 할 겁니다. 빨리 준비해요.”

드르륵!

응급 세트가 준비되자마자 기관에 삽입돼 있던 튜브를 제거했다. 정상 이하로 떨어진 산소 포화도를 올리기 위해 환자의 육신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우두둑! 우두둑!

골절된 갈비뼈 엇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다.

이러다 심정지가 올지도 몰랐다.

“석션.”

입안과 기도를 채운 가래를 제거하고 신속하게 다시 삽관했다. 간호사가 재빨리 튜브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 공기를 채웠다. 공기 주머니가 부풀며 기도와 튜브 사이 공간을 완전히 밀착됐다.

재빨리 청진을 했다.

피리 소리가 사라졌다.

바로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진정제를 투여했다. 돌발적인 상황과 호흡 충돌로 여전히 바이탈이 흔들렸고 의식은 혼미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또 다른 원인은 없을까?’

“간호사, 체스트 피에이(chest PA)흉부 사진 찍읍시다. 인턴 선생, 비지에이 해.”

흉부 사진은 변동이 없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대사 변동까지 초래됐다. 깨지기 쉬운 유리병 같은 상태였다. 필요한 약물을 투입하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혹시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강하게 다가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하게 다시 점검했다. 불안이 극에 달할 무렵 다행히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떨어지기만 하던 산소 포화도가 증가했다. 산소를 얻은 장기들이 부담에서 벗어나며 서서히 바이탈이 안정됐다. 이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5분 남짓에 불과한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확실하게 진정된 환자를 보며 김지훈이 기도에 삽입됐던 튜브를 확인했다. 튜브와 기도 사이의 공간을 완전히 막아 주어야 할 작은 공기 주머니에 구멍이 나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과 파이팅이 반복되며 초래된 문제일 수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불량이었을지도 몰랐다. 간과하기 쉬운 문제 때문에 환자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뒷덜미가 차갑게 식었다.

‘만일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조치했을까?’

심장이 벌렁거렸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노련함과 능력을 믿지만 담당해야 할 환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임승민 환자처럼 고도의 치료를 요하는 환자는 많은 병원에서 집중 치료실을 만들어 따로 치료한다. 설령 만든다고 해도 구미 병원 인력으로는 담당 의사를 배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두려움이 다가오며 식은땀까지 났다.

이런 상황만 문제일까?

자발 호흡이 강해질수록 다발성 늑골 골절로 인해 고통과 위험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 골절 부위 고정 수술을 시행할 수도 있었다. 주덕현 과장의 능력을 떠나 추가 수술은 구미 병원의 능력을 벗어나는 행위가 분명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이런 환자를 끝까지 치료하기에는 시설, 인력, 장비 모든 것이 부족해.’

구미 병원의 한계가 절실하게 다가왔다.

의료진 개개인의 능력과 열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개인 병원과 대학 병원이 다른 것처럼 규모가 크면 평균적인 능력 또한 커진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까지 확인한 후에야 누가 내려와도 내려올 수 있다. 주말 내내 이런 상황이었을 것이다. 평일이라고 해도 언제든 큰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깜짝 놀라며 임승민 환자에게 집중한 김지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파이팅이었다. 곧바로 투여된 진정제에 안정을 되찾았다.

김지훈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원인과 처치는 극과 극이었다. 의사의 부재 여부 역시 극과 극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이 아쉽고 절실한 상황이었다.

갑갑한 얼굴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며 눈가를 찡그렸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나간 2년차가 생각났다.

간혹 과를 막론하고 중도 포기하는 전공의가 있지만 교수가 관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각자 개인의 결정이고 싫다고 나간 놈 억지로 붙들어야 위신과 체면만 깎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지훈 역시 구미 온 지 한 달이 넘도록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반외과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했다.

이제와 사람 모자란다고 아쉬운 손을 내밀면 서로 민망하다 못해 자칫 자존심만 구겨질 수 있었다. 선뜻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임승민 환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띠! 띠! 띠! 띠! 띠!

지금은 안정적이지만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

그 순간 고민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교수 체면 따위는 고려할 일이 아니었다. 무조건 환자의 회복 일 순위에 놓는 것이 마땅했다.

당장 직면한 문제만이 아니라 구미에서 떠난 후를 생각하면 이름도 모르는 2년차가 반드시 필요했다.

‘내 체면보다 환자와 2년차 입장이 훨씬 더 중요해.’

더구나 구미 병원 과장이다.

체면, 창피함, 미안함, 어색함.

책임을 가진 과장으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이혁민 교수라면 이미 조치를 취했을 테고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루를 밀면 그만큼 힘들어진다.

후회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공연한 말만은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2년차는 분명 꺼려할 것이다. 하지만 조성민은 암담한 상황이 원인이라고 했다.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과장과 2년차가 아니라 의사와 의사로서 말이다.

일반외과에 애정이 남아 있다면 최소한 귀를 기울이고 고민할 것이다. 2년차 역시 적당한 때를 놓쳐 복귀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한 가닥 기대도 걸었다.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습관적으로 소변량을 확인했다. 얼굴이 더욱 안 좋아졌다. 소변 줄을 따라 똑똑 떨어지던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흔들렸던 바이탈이 뒤늦게 영향을 끼친 것이다.

신장 기능이 망가지면 온갖 독소가 포함된 노폐물을 제거하지 못한다. 요독증이라도 발생하면 환자는 영영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었다.

치명적인 문제였다.

“간호사, 라식스(이뇨제) 하나 줍시다.”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갑자기 줄어든 양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똑똑 떨어지는 소변 방울이 점차 빨라지고 있는데 정작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다.

일요일 밤, 환자는 생사를 오고 갔는데 아무도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수술 중 달려 나온다면 또 다른 한 명의 환자마저 위험하게 할 뿐이었다.

두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조성민과 송진우가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깜짝 놀라 발소리를 죽이며 부리나케 달려왔다. 김지훈이 킵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혹시 환자에게 문제가 있는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구미 병원의 한계가 또 한 번 다가왔다.

“수술 끝났어?”

“예. 이제 끝났습니다. 어쩐 일이습니까?”

“환자는 별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집에 들어가다 잠깐 들렸어. 최철한 선생님은 들어가셨어?”

“아니요. 휴게실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네. 성민아, 한 가지 물어보자. 그만둔 2년차 이름이 뭐야?”

갑작스러운 말에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오만석입니다. 우리 학교 출신이라 이름은 몰라도 얼굴 보시면 바로 기억나실 겁니다.”

“오만석? 만석이? 이름이 독특한데 처음 듣는 이름이다. 혹시 그동안 연락은 했었어?”

“완전히 끊고 지낸 건 아닙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게 아니고 복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여러 감정이 오가는지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오므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