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치료다. Ⅱ (2)
임승민 환자가 파이팅까지 했다.
의식이 점점 돌아오며 자발 호흡까지 강해져 인공호흡기와 충돌한 것이다.
삑! 삐익! 삑! 삐익!
요란한 경고음에 송진우가 급히 인공호흡기를 분리했다. 환자 호흡의 강도를 알기 위해 온전히 드러난 튜브에 손을 가져갔다.
후욱! 후욱!
예상외로 강했다.
다발성 늑골 골절로 호흡 자체가 쉽지 않을 텐데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산소 포화도가 90퍼센트 전후를 아슬아슬하게 오갔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모습이 상당히 힘겨워 보였다.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
쇠약해진 근력만 문제가 아니었다.
힘겨운 움직임에 부러진 갈비뼈들이 폐를 다시 찌를 가능성만 높일 것이다. 추가 손상을 받는다면 더 이상 손을 쓸 여지가 없었다. 단, 의식을 찾아 의사의 통제를 따를 수 있다면 상황이 약간은 달라진다.
“환자 분. 눈 떠 보세요. 제 말 들리세요?”
송진우가 귓가에 대고 몇 번이나 소리쳤지만 반응은 없었다. 의식은 여전히 혼미한 상태였다. 모든 여건이 자발 호흡 유지는 무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진우야, 환자 재우자.”
잠에 빠진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면회 시간도 아닌데 불렀다는 것은 좋아졌거나 나빠졌거나 둘 중의 하나다.
환자는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일말의 기대와 동시에 강한 불안이 감돌았다.
“환자 분이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힘에 부쳐 일부러 재우는 중입니다. 이 상태로 가면 다음 주 월요일 정도에 이송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초조해하던 노모가 갑자기 서럽게 울었다. 아내는 한동안 멍한 표정만 지었다. 이송이 가능하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느낀 후에야 비로소 눈물을 보였다. 미소가 섞인 것 같았다. 슬프고 아픈 미소일 수도 있었지만 젊은 아내의 미소는 처음이었다.
이송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신경 쓰였다.
동시에 이율배반적 생각이 들었다.
중환자실 환자는 병동 환자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힘이 든다. 당장 송진우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대구로 가면 몸은 절대적으로 편할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웃으며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는 킵에 몸은 엄청나게 힘들어질 것이다. 이후에 얻는 기쁨과 보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라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송할 때 하더라도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 후우! 우리가 끝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
보호자들만큼 강한 갈등이 다가왔다. 그러나 의사는 치료에 관한 한 절대 감정에 지배당하면 안 된다. 냉정하게 치료 능력과 역량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해야 돼.’
“진우야, 조금만 더 고생하자.”
어쨌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퇴근을 미루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숨 가쁘고 정신없었던 일주일이었다.
임승민 환자까지 겹쳐 과 운영을 어떻게 할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솔직히 주초에 이미 과장으로서 확실하게 체계를 잡아야 했었다. 특히 두 달 동안 이어질 최철한과의 근무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했다.
‘에휴! 이놈의 고민거리는 끝이 없네. 어떻게든 최철한 선생님에게 과장 자리를 넘겼어야 했어.’
진료실 불이 꺼지지 않는 사이 송진우와 오하석이 자판기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중환자실 환자가 좋아져서 정말 좋아요.”
“나도 그래. 왜 그런지 몰라도 보호자를 볼 때마다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나.”
“어머니요?”
“평생 고생만 하셨는데 집에도 제대로 못 가니까 죄송한 마음밖에 없어.”
어머니? 송진우의 어머니?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네요.”
갑자기 송진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특별한 말이라도 되는 양 눈을 맞추지 못했다. 오하석이 고개를 흔들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이 밝았다.
임승민 환자는 밤새 한발 더 전진했다. 진정제 효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파이팅을 했고 검사 결과는 느리게나마 꾸준히 좋아지고 있었다.
보호자의 눈에도 희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김지훈의 눈에는 더욱 심한 갈등이 실렸다.
‘의식은 왜 더 이상 안 돌아올까? 이송하는 것이 최선일까? 다발성 늑골 골절을 어떻게 해결하지? 진우나 성민이에게 계속 킵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과 고민이 점점 심해졌다.
감정이 아니라 냉정함이 필요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자. 환자를 두고 절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돼.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지 결정하기 힘드네. 휴우! 일단 급한 일부터 해결하자.’
오후 회진을 돈 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과 운영에 대해 과장으로서 말하기 위한 자리였다.
“최철한 선생님, 다음 주부터 제가 월수금 수술하고 화목에 진료하겠습니다. 전주부터 맞춰 왔으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성민이는 메이저하고 라파로, 최철한 선생님 수술 들어가고 진우는 나머지 수술 들어와.”
송진우가 피곤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반색했다.
최철한이 급히 다음 주 스케줄을 확인하며 손가락을 꼽았다. 예약된 정규 수술은 열 개였다. 위암 두 건과 갑상선 수술 등을 제외하고 여섯 건이 복강경이었다.
모두 김지훈 수술이었다.
혈관 수술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최소 서너 건은 할 것이다. 한 달 반도 안 되는 시간에 일반외과 과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정성호 과장은 자신 앞으로 단 한 건의 컨설트도 내지 않았지만 각오한 일이었다. 또한 진료 시간을 잘 조정하지 않으면 복강경 수술 때 퍼스트를 못 서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외래 환자가 점점 늘고 있으니까 한동안 뛰어다니는 수밖에 없겠다.’
“당직은 선생님 말씀대로 화목에 제가 서겠습니다. 너희들은 앞으로 오프 철저히 챙겨. 쉴 때 확실하게 쉬어야 중환자실 킵도 제대로 할 수 있어. 최철한 선생님, 주말 당직은 어떻게 할까요?”
“그동안 쉬지도 못했는데 당연히 김 과장이 먼저 가야지. 임승민 환자는 걱정하지 말고 이번 주말 오프 꼭 가. 충분히 쉬어야지 월요일 수술에 문제 생기지 않을 거 아냐?”
뭔가 단단히 발목을 잡았다.
“이번 주까지는 제가 있어야······.”
최철한이 싹둑 말을 잘랐다.
‘수련 때 우리가 했던 말을 아직도 철저하게 지켜 주는 건 고맙고 배워야 할 일이지만 이제는 아니야.’
“김 과장, 우리가 처음 봤을 때 지금보다 편하고 심각한 환자가 없었을까? 그때도 오프는 갔어. 누구보다도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잖아?”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동료와 후배에 대한 믿음이야. 신뢰가 없으면 훨씬 경한 환자도 맡기지 못하는데 설마 김 과장 마음이 그런 거야? 우리 후배들만 한 전공의 없다.”
맞는 말이었다.
걱정이 안 될 수 없었지만 이젠 확고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 멀리만 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전공의들에게 한 말도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이번 주 다들 수고했어. 아! 조성민, 이거 받아. 얘들 밥 확실하게 먹여. 최철한 선생님도 받으시죠.”
50만 원씩 든 하얀 봉투였다.
“이게 갑자기 뭐야?”
“의국비입니다.”
“이걸 왜 날 줘?”
“제가 과장이니까 선생님은 총무하시죠. 하하! 그럼 다음 주에 웃는 얼굴로 봅시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웃음으로 얼버무린 후 서둘러 회의를 마쳤다. 중환자실에 들러 보호자를 만난 후 송진우에게 단단히 일렀다.
“변동 있으면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바로 연락해.”
관사에 들어서자마자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긴장이 풀린 것도 아닌데 눈도 뜨지 못할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비몽사몽, 김지훈이 중얼거리며 픽 쓰러졌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경아 씨, 딱 2시간만 잡시다.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멀리 못 가니까 해운대는 힘들고 대구로······.”
“대구요?”
드르렁! 푸우!
고경아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베개를 받쳐 주고는 김지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구는 갈 수 있을까?”
완전히 곯아떨어졌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2시간이 아니라 3시간을 잤다. 짧아진 11월 해는 이미 서산을 넘보고 있었다.
후다닥 일어나 세수하고 고경아를 찾았다.
화장 중이다.
“경아 씨, 화장까지 하면서 왜 안 깨웠어요?”
“어머! 눈곱만큼도 기대 안 했는데 일어났네요. 대구 갈 수 있겠어요? 안 피곤해요?”
말과 행동이 달랐지만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해운대의 ‘해’자도 꺼내지 않았다. 일 때문에 이렇게 어여쁜 아내의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지?’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대구가 먼저다.
일사천리로 준비하고 출발했다.
물론 중환자실을 경유하고 난 후였다. 임승민 환자는 강한 회복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 자는 동안 한 번도 울리지 않은 휴대폰에 왠지 마음이 더 놓였다.
‘별일 없겠지.’
구미와 대구는 지척이다.
차가 꽤 밀리는 데도 1시간이 약간 넘게 걸렸다.
“우리 일정이 어떻게 돼요?”
병원 식구 중 대구 출신 많다. 하오문주는 아니지만 손일석에게 받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어차피 입만 필요한 일이기에 바쁜 와중에도 준비는 다했다.
“일단 서문 시장으로 가서 납작 만두부터 먹읍시다.”
“납작 만두? 맛있대요?”
“그건 모르죠. 대구에 가면 꼭 한 번 먹어 봐야 한다니까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나저나 주차를 잘 시켜야 하는데.”
물어물어 서문 시장을 찾았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전통 시장 의외로 재밌다. 납작 만두도 기대 이상이었다.
배를 반쯤 채운 후 두 번째 목적지 막창 골목을 찾았다. 고경아가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금기라고 이런 음식 잘 안 먹잖아요?”
“당직일 때 얘기고 미신 같은 거잖아요. 설마 대구에서 먹는데 구미에서 뭔 일 나겠어요?”
당직이 아닌 이상 막창 할아버지라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선택 잘했다. 푸짐한 양에 한 번 놀라고 생각보다 잘 먹는 고경아를 보며 두 번 놀랐다.
“맛있네. 가끔 올까요?”
“그래요. 지훈 씨, 그동안 술은 입도 못 댔는데 소주 한 잔 할래요?”
고경아가 먼저 술 먹자니 세 번째 놀랐다.
만세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가운 말이었다. 단, 과음 아니, 한 병 이상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금오산에서 못다 한 일을 반드시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했다.
한 잔 한 잔 소중하게 아껴 가며 막창은 마음껏 먹었다. 서문시장을 찾기 전에 유료 주차하고 택시를 이용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 목적은 달성했다.
“아주머니, 1인분만 더 주세요.”
오프라고 너무 마음 놓고 먹는 경향이 강했다.
대가는 엉뚱한 곳에서 치르고 있었다.
그 시간 구미는 아수라장이었다.
“성민아, 다음 환자 수술 준비 끝났어?”
“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진우야, 스케줄 어떻게 됐어? 무슨 환자가 이렇게 몰려와. 현철이 이 자식 오프라고 혹시 곱창전골 먹고 있는 거 아니야? 최철한 선생님 일복인가?”
“선생님, 이번 환자 마무리하는 동안 아뻬 바로 이어서 하신 답니다. 제가 들어갈까요?”
“그래.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아뻬는 니가 들어가.”
전공의들 발바닥에 불이 났다.
허기진 배는 우유와 계란으로 대충 때웠다.
아뻬가 끝난 후 한참 만에 중환자실로 들어온 송진우가 불끈 주먹을 주었다. 임승민 환자의 파이팅의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김지훈이 옆에 있었다면 가장 좋아했을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마침 전화가 왔다. 노티를 받는 김지훈의 목소리가 편안했다.
(고생 많다. 주말이니까 조금만 더 신경 써.)
“송진우 샘, 응급실에 환자 있답니다.”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또 호출이다.
허겁지겁 환자 상태를 확인한 송진우가 응급실로 달려갔다.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당직자 모두 환자와 수술로 끼니도 챙기지 못했다.
구미와 대구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오프는 자신의 일로 밤을 샐 때다.
“진우가 있으니까 마음이 푹 놓이네. 꺼억! 잘 먹었다. 소주 한 병에 알딸딸해지네요. 경아 씨, 시간도 꽤 지났는데 쉬었다 갈까요?”
팔공산이 보이는 곳에 호텔로 위장한 모텔이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동안 굶주렸던 늑대가 마치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포효했다.
우워워워워!
두 번을 격하게 울고 나서야 지쳐 쓰러졌다.
삼신할미가 문 앞까지 와 있을 것이다.
삐그덕!
바람결에 창문이 흔들렸나?
혹시 이미 들어왔나?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꼭 안고 있는 김지훈과 고경아를 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점지한 아이를 품에 안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임승민 환자도 별다른 변동 없고 좋다.’
다음 날.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동화사를 찾았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사람만 적당히 있다면 절이나 성당은 항상 마음을 편하게 한다.
대웅전 앞에 선 김지훈이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지훈 씨, 뭐해요?”
“어제 온 힘을 다했는데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경아 씨도 빨리 빌어요.”
고경아의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우리 엄마 아빠 성당 다니시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기도가 필요했다. 거듭되는 눈빛에 고경아도 결국 손을 모았다.
‘이왕이면 건강하고 예쁜 딸 주시고 바쁘시더라도 임승민 환자 꼼꼼하게 살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돌아서는 김지훈의 머릿속에서 숫자 두 개가 떠다녔다. 상상만 해도 벅찼다. 지금 이 순간만은 오직 고경아만 보였다.
9 + 7.
앞은 달이고 뒤는 날이다.